진아의 빛 속에서 두려움이 없는 상태

2020. 9. 30. 00:10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신은 말한다. "해탈 후의 헌신은 나의 화현력(신의 화현을 취하는 힘)이다"

해탈 후의 헌신은 브라만의 힘이다. 

브라만의 힘과 헌신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아가 브라만이라는 깨달음이 있을 때 개아라는 상태는 사라진다. 

빠라마트만이 유일한 존재이다. 

빠라마트만의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이 해탈 후의 헌신이다. 

 

개아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개아는 두려워하지만, 그러나 신, 곧 시바는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그대로 있어라. 

호랑이와 쥐는 생각하는 차원이 다르다. 

쥐는 누구를 만나면 그것이 자신의 죽음을 의미하므로 두려워하지만, 

호랑이는 늘 어떤 동물을 사냥한다.

호랑이가 무엇을 만나든 그것은 호랑이의 먹이가 될 수 있다. 

 

어떤 존재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만이 진인, 곧 깨달은 자이다. 

그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려움은 심리적 현상일 뿐이다. 

사람이 잠들어 있을 때는 뱀이 몸위로 기어간다 해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깨어 있을 때는 뱀을 멀리서 보아도 두려움을 느낀다. 

두려움은 마음 상태이다. 

여러분이 모든 것이라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가장 큰 두려움은 죄와 공덕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두려움은 신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신일 때,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여러분이 태어나지마자 두려움이 생겼다. 

자궁 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세상에 나와서 두려워졌고, 

그 두려움이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아이에게 꿀과 젖을 주어 진정시키려 하지만 두려움은 지속된다.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참스승(사드구루)이 베푸는 가르침을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다. 

깨달음의 지혜를 베푸는 것은 여러분이 진아임을 깨치도록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깨달음의 지혜가 여러분을 두려움이 없도록 해준다. 

쁘랄라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진아 깨달음이 곧 '두려움 없음'이다. 

 

어떤 사람이 부자라 하더라도 만일 아침에 한 시간 늦게 일어나면 

'오늘은 좀 늦었네, 돈이 좀 손해를 보겠는데 '하는 느낌을 가지고 두려워하게 된다. 

누구나 이런 식으로 두려워한다. 

그는 잠자리에 들 때에 아내에게 일찍 깨어달라고 말해 둔다

그가 왜 두려워할까?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가 매일 하는 일을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깨어나기도 한다. 

그들은 내면의 시계를 감아 두었다가 그들 자신의 자각에 의해 깨어난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만물에 편재해 있다. 

여러분은 밥을 먹으면서도 두려워하고, 일을 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그리고 두려움 때문에 많은 혼란이 생긴다. 

두려움 그 자체가 혼란의 원인이다. 

두려움 없이 있어라. 

 

행복하게 자고, 행복하게 먹고,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행하라.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하지 마라. 

부질없이 근심하지 말라. 침묵하고 평온하게 있어라. 

그때 그때 다양한 상황에 부딪치면서 마음이 평안해지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자기 자신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노력을 해라.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고 동요된다해도 무엇이 문제인가? 

 

왜 두려워 하냐고 마음에게 물으면 그것은 이내 잠잠해 진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물으면, 그것은 이내 침묵한다. 

그 모든 불안감이나 걱정이 과연 무엇인지는 누구도 대답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가끔 방문객에게 여기 온 목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뭐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별 생각없이 들렸습니다. "

이것은 습관적인 대답이지 진짜 대답이 아니다. 

얼마 후에는 그 사람이 마음을 열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말하고, 자신의 걱정꺼리를 토로한다. 

 

호랑이는 늘 포효하는데, 이는 호랑이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호랑이는 늘 두려움이 없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해탈이며, 그 상태를 즐기는 것이 헌신이다. 

두려움 없음은 누구 혹은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그것이 진정한 신성(神性)의 상태이며, 여려분은 늘 그 안에서 살고 있다. 

여러분은 늘 빠라브라만 상태 안에서 살고 있다. 

이것을 해탈 후의 헌신이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진아의 빛 속(신의 영광)에서 사는 것을 뜻한다. 

신의 진정한 화현인 이들은 이 헌신을 알며, 

그들은 자유를 얻고 난 뒤에도 신에게 헌신한다. 

 

스스로 해탈했다고 하면서 여전히 어떤 신체적 손상이나 일상 세속 삶에 따른 결과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진정한 의미에서 '해탈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자유로운 사람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의식을 거행하면 순수함이  있고, 

그런 것을 거행하지 않으면 순수하지 못함이 있다고 결코 생각해서는 안된다. 

일단 진아 깨달음이 있으면 생전에 해탈하며, 

이후에 신의 영광 속에서 사는 상태 자체가 해탈 후의 헌신이다. 

그것이 화신이라고 불리는 신의 화현을 취하는 힘이다. 

여러분은 신으로서 살아야 한다. 

신은 두려움이 없다. 

만일 두려움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개아인 것이고, 

아직도 어떤 의심이 남아 있는 것이다. 

 

욕망과 정서가 곧 여러분이 고통받는 결과의 원인이다. 

사람이 진아 깨달음을 얻고 나서도 여전히 전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그런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신이 이해한 것에 따라 행위하는 사람이 참으로 깨친 사람이다. 

그가 신이다. 주 크리스나가 말한다. 

"내가 모든 존재들의 신이 된 것은 창조,유지, 파괴라는 그들의 개념 때문이다. "

 

신은 수백 개의 세계를 창조하고 파괴하지만, 그 때문에 그가 어떤 죄를 짓거나 공덕을 얻는가?

누가 그를 벌하겠는가? 달리 아무도 없다. 

그러면 그를 두려워 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는 모든 개념을 초월해 있다. 

그는 형상이 없고 보이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것이다. 

그가 없이는 어디에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가 없다. 

여러분이 지금 여기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가 없이는 여러분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전 우주이다. 나는 모든  것을 즐기고, 모든 것을 먹고, 모든 것을 파괴한다. 나는 나 자신의 유희를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의 혀를 핥으면 그것이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침은 더럽다고 여긴다. 

핥고 있는 모든 혀들을 가진 자, 전체에 오직 홀로 있으면서도, 모든 것 안에 있는 자는 전혀 두려움이 없으며, 

따라서 한 분의 신의 화현으로서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것이다. 

 

                                             - Master of Self-Realiz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