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사 금강경 강의(17-3)

2020. 9. 21. 23:55성인들 가르침/금강경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所言一切法者(소언일체법자)는 即非一切法(즉비일체법)일새

是故(시고)로 名一切琺(명일체법)어니,

수보리야, 말한바 일체법이라 한자는 곧 일체법이 아니라, 이런고로 이름이 일체법이니라.

[해설]

말하자니, 일체법이라 한 것이요, 이름하자니, 일체법이라 하였을진언정, 

일체법이 일체법이 아니니, 말과 이름에 따라다니지 말라. 

일체법에 착할가 두려워 하신 말씀이시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譬如人身長大(비여인신장대)이니라,

須菩提言(수보리언) 하시되, 世尊(세존)이시여, 如來說人身長大(여래설인장대)는 即爲非長大(즉위비장대)일세,

是名大身(시명대신)이니이다. 

수보리야, 비유컨대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는 말과 같으니라. 

수보리,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인신장대라고 하심은, 곧 큰몸이 아니라, 이 이름이 큰 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해설]

우리가 보통 하는 말에, 아무개는 큰 사람이다, 대인이다, 하는 말을 하나니, 이것은 그 사람의 키가 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지혜나, 덕이나, 도량이 큰 것을 지칭하는 대명사임을 알면 따로 강의할 것이 없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菩薩(보살)도 亦如是(역여시)하여 若作是言(약작시언)하되 我當滅度無量衆生(아당멸도무량중생)라하면 即不名菩薩(즉불명보살)이니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야 實無有法(실무유법)일새 名爲菩薩(보살)일러니라, 是故(시고)로 佛說一切法(불설일체법)이 無我無人無衆生無壽者(무아무인무중생무수자)라하시니라.

수보리야,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만약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무량중생을 멸도하였다 하면, 곧 보살이라 이름하지 못할지니라. 어째서 그러하냐 하면, 수보리야 실로 법을 두지 아니함이, 이름이 보살이 되느니라. 이런고로 부처님 말씀하시되, 일체법이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수자도 없다 한 것이다. 

[해설]

보살은 자기 본심을 알아 일체법에 통달무애한 것이어늘, 멸도한 내가 있고, 멸도 받은 중생이 있고, 멸도시킨 법이 있고, 이를 즐기는 마음이 있으면, 이것이 곧 상이니, 걸림이 있는 것은 보살이 아니다. 그러므로 부처가 말하기를 일체법이 나만 없으면, 남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자도 없다 한 것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若菩薩(보살)이 作是言(작시언)하되 我當莊嚴佛土(아당장엄불토)라하면 是名菩薩(보살)이니라.

何以故(하이고)오 如來說莊嚴佛土자(여래설장엄불토자)는 即非莊嚴(즉비장엄)이요 是名莊嚴(시명장엄)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이러한 말을 하되 내가 마땅히 불국토를 장엄하였다 하면 이는 보살이 아니니, 

어찌한 연고이냐. 여래가 말씀한 불국토의 장엄은, 곧 장엄이 아니요, 이 이름이 장엄이니라. 

[해설]

장엄이라는 것은, 좋게 단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니, 연지 찍고 분 바르는 것으로 알지 말라. 

그리고 향등 화촉(香燈 花燭)을 밝히는 것으로도 알지 말라. 불국토의 장엄은 자기 본심의 장엄이니, 

본심의 장엄은 한법도 서지 않는 청정본연의 장엄인 것이요, 장엄이란 이름도, 더러운 때가 되는 것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若菩薩(보살)이 通達無我法(통달무아법자)는 如來說名眞是菩薩(여래설진시보살)이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내가 없는 법을 통달한 자이면, 여래가 말하기를, 참으로 이것이 보살이라 이름하나니라.

[해설]

무아법(無我法)을 통달(通達)한 자라야, 참으로 이것이 보살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어법이란 내가 없는 법이니, 내가 없으면, 법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뇩보리는 쉽게 말하여 잘 사는 법이라고 말했는데, 누가 있어 잘 살며, 잘 사는 법이 설사 있다한들 누구에게 필요하느냐 말이다. 

여기서 먼저 무아법을 깊히 알아야 할 것이니 지금까지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이, 전부 무아를 말씀하셨으므로, 보살들은 이미 무아법을 깨쳐 알았을 줄로 생각하거니와, 내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큰나(大我) 참나(眞我)를 뜻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가장 잘 사는 부자가 되려면 먼저 가장 못 사는 가난뱅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니, 한 물건도 갖지 아니한 자가 가장 가난뱅이요, 한 물건도 없는 것 없이 다 가진 것이 가장 부자일 것이다. 

저 허공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주 삼라 만상을 하나도 버림없이, 다 가진 부자가 아닌가. 

허공이 이처럼 가장 크게 소유한 것은, 한 터럭도 없이 비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아뇩보리를 성취할 사람은, 티끌 하나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 가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까지도 마저 없어야 한다. 이것이 무아법, 즉 내가 없는 법이다. 무아법은 이러하거니와, 이 법을 알았다 하여 보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권 법문은 이보다 행(行)에 더 치중하여 착안하신 법문이시다. 

그러므로 무아법을 통달한 자라야 보살이라 하셨으니, 통달(通達)이라는 두 글자가 매우 중요한 말씀이시다. 

깨침과 같이, 얻음과 같이, 무아법을 그 이치와 같이 걸림이 없이, 때를 따라, 처소를 따라, 자유자재로 무아법을 사용하는 것이 통(通)이 된다. 예를 들면, 국가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고 전 세계 인류의 유익과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희생한 의인 열사, 혁명가, 학자, 예술가, 성현들과 발명가들이 곧 무아법을 통달한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내가 없는 법을 알아, 내가 없는 법과  같이, 내가 없는 행을 한 전체인 나, 참나의 영원불멸의 생인 것이니, 어찌 오척단구(五尺短軀)인, 작은 나에 탐착하여 오욕락(五慾樂)을 즐기는, 하루 살이의 구구한 못난 생(生)에 비할바 있겠는가. 그러므로 이 무아법인, 아뇩보리를 행하는 사람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해안선사 강의<금강반야바라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