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9. 16. 23:27ㆍ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신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대들이 신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신이다.
이것을 확신한 사람은 성자 중에서 최고이고, 해탈한 자 중에서도 가장 높다.
신을 보는 효과가 이러하므로, 그대들이 신을 확신할 때는 신의 영광을 얻는다.
우리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를 잘 알듯이,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며,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는지를 잘 안다.
이 모든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또한 어떤 것을 자신이 소유해야 하고,
어디까지 사물을 통제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외모,여러가지 성격 등에 관련된 그 자신의 개념에 연관해서만 그 모든 행위가 나오고,
모든 활동이 전개된다. 그에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영광을 즐긴다.
사람은 내면의 신성한 영적 힘과 자신의 진아에 대한 부단한 기억에 따라,
점차적으로 신적 영광, 실재에 대한 지(知), 자신의 참된 근원, 곧 자신의 근원적인 성품을 성취한다.
자신의 진아의 자리, 원래부터의 자기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다.
육체와의 동일성 안에서 사는 사람은 육체의 고통을 겪는다.
현재에 신체적 고통을 겪는 사람은 미래에도 다시 그것을 겪어야 하며,
바로 지금도 그 유한한 육체를 초월해 있는 사람은
그 육체가 해체된 뒤에도 진아로써,
계속 있는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고서 선생님이 이야기할 때에 질문하는 학생은 별로 현명하지가 못하다.
그 학생이 묻는다. " 어떻게 하면 육체를 초월할 수 있겠습니까? 아울러, 어떻게 하면 제가 그런 영광을 성취하게 될지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이 대답한다. 그 친절한 선생이 학생에게 다시 가르침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개아이다.
몸을 넘어서 있는 것은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적인 것', 즉 주체이다.
정서적인 것, 상상 그리고 개념들은 모두 대상이다.
개념이나 상상대로 세계는 존재한다. 그것들은 모두 개념들이다.
개아는 거짓이다. 우리의 존재는 그 자체로 몸이 없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은 몸을 가지고 있지만,
'내적인 존재'인 그것은 몸이 없으며,
여러분이 바로 '그것'이다.
여러분이 언제 육체의식을 초월하느냐고 질문한다면,
그 답은 여러분이 깊히 잠들어 있을 때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실은 깊은 잠의 상태마저 넘어서 있다.
깊은 잠의 상태에서는 세계도 없고 고통도 없다.
그래서 깊은 잠이 편안하고 지복을 주는 것이다.
존재의 행복은 잠의 안락함보다 훨씬 더 깊고 초월적이다.
그것이 여러분의 참된 진아상태이다.
누가 잠을 자는가?
여러분은 육체를 초월해 있는 바로 그것이다.
그것 때문에 깊은 잠이 편안한 것이다.
이것은 얼음 속에 넣어둔 따뜻한 음식이 곧 차가워져서 보존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예에서, 음식이 차가워진 것은 얼음의 성질에 의해서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존재 덕분에 깊은 잠이 행복한 체험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대가 그것이다'
그대들은 그것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기를 육체라고 말하면 안된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나는 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몸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그 한계 내에서 움직이는 것을 '죄'라고 한다.
이것을 이해한 자가 빠라마트만이다.
그는 자유롭고, 속성을 넘어서 있고, 형상을 넘어서 있고, 파괴불가능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가 바로 베다에서 칭송하는 자이다.
베다와 여러 경전들은 그런 것의 장식품이고, 칭송물이다.
그렇기는 하나, 베다도 여전히 빠라마트만을 묘사할 수 없었다.
영광이 무엇인가?
제반 경전, 기도 ,진언이 오직 그를 찬양하고 노래한다.
무술림들이 '쿠다(Khuda : 무슬림들이 유일신을 지칭하는 페르시어 단어, '알라'와 같은 뜻)니 '알라(Allah)라고 말하는 것은 그(신)에 대해서일 뿐이고, 기독교인들도 몸과의 동일시를 버리면 이 영광을 즐기는 것은 곧 그대들이다.
진짜 왕인 사람이 농부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그의 불운이다.
누가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선(善) 그 자체의 완전한 전체성이다.
이 몸없는 빠라마트만이 그렇기에 성공, 명성, 권력, 실로 모든 것이 그의 영광이다.
자신이 빠라마트만이라는 여러분의 믿음이 전적으로 확고할 때, 그것이 '완전한 확신을 가진 신'이다.
사람이 빠라마뜨만에 대한 아무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을 때, 삶 속에 뱀이요, 전갈인 온갖 악이 있다.
신(비슈누)의 확신자가 없는 곳은 빠라마뜨만에 대한 관념이 없는 곳이다.
그곳에는 온갖 재앙이 찾아와 머무른다.
세계가 개념 혹은 심리적 상상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마야의 견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야의 남편이 파라마뜨만이다.
그녀는 먼저 좋은 음식을 빠라마뜨만에게 드린 다음 남들에게는 사멸할 것들을 준다.
크리슈나가 살고 있는 곳에는 성공, 명성, 권력이 산다.
여러분은 자신의 집이 천국이고, 여러분의 아내가 곧 라다(크리슈나의 아내)이다.
여러분이 먹는 것은 마하데바(시바)에게 바치는 공물이다.
여러분이 파라마뜨만이라는 것을 확신하면, 여러분이 목욕할 때 넘치는 물이 곧 갠지스강이다.
진인이 식사하고 남긴 음식 한점은 수십 만명의 브라민들에게 대중공양을 올린 공덕과 맞먹는다.
힌두신화에서 라자수야 의식 때 진인 수끼가 앵무새의 형상을 취하여 그 남은 음식을 좀 먹었는데,
그가 음식을 한 줌씩 먹을 때마다 천상의 종소리가 울렸다.
여러분이 진아를 깨달으면 여러분의 식반에 남은 음식 한 점을 먹는 개미도 해탈을 얻는다고 한다.
여러분이 (깨달은 뒤) 큰 소리로 신의 이름을 한 번만 선포해도 그것이 종일 온 우주에 울려 퍼진다.
성자 까비르의 한 제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가 한번은 어느 마을에 들어 갔다가, 중병에 걸려 거의 죽기 직전 상태이던 어떤 사람을 찾아 갔다.
그 사람은 까비르의 큰 제자가 자기 집에 찾아온 것을 보고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 제자에게 환자를 위해 축복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그 제자는 병자를 친절하게 위로하며 안심시켜 주고, 라마의 명호를 세 번 말하라고 했다.
그가 말하는대로 하자마자 병이 사라졌고, 그 사람은 치유되었다.
그러고 얼마 후 까비르의 이 제자가 집으로 돌아가서 이 일화를 까비르에게 들려 드렸다.
그러나 까비르는 매우 화를 내며 말했다. "라마의 명호를 한번만 말하게 했어도 그 사람이 나았을 텐데,
왜 세 번씩이나 라마의 명호를 말하라고 했나?" 제자는 부끄러웠다.
요컨대 이 이야기의 의미는, 깨달은 자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완전히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그가 "영광스럽게' 된다.
그는 그 자신의 지위 안에서 살아야 한다.
진정으로 완성된 마하트마(진아를 깨달은 존재)였던 한 현자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오후 낯잠을 자고 있었다.
해가 지려 하는데도 그가 깨어나질 않자 아내는 남편이 해에게 물을 바치지 않은 상태에서 해가 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남편이 죄인이 된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를 깨웠다. 그가 그녀에게 되물었다.
"왜 방해하는거요?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해가 지지 않을 거요!"
그러면서 그는 다시 잠들었고, 해는 기다렸다.
이것은 그 마하트마가 자신의 힘을 매우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은 여러분은 워낙 강력하여, 여러분이 원치 않으면 세계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여러분이 실제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이 하나의 몸뚱이에 불과하다는 관념을 놓아 버려야만 그런 영광을 얻는다.
여러분 스스로 자기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그 행복, 즉 여러분의 참된 성품을 볼 수 있으면,
상상적인 일들을 하느라고 그렇게 애쓸 필요가 없다.
외부 세계의 행복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의 환희,
곧 여러분의 내적 행복의 완전성에 의해서이다.
- Master of Self- Realization-
'성인들 가르침 > 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취 너머의 성취 (0) | 2020.10.13 |
---|---|
진아의 빛 속에서 두려움이 없는 상태 (0) | 2020.09.30 |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모든 것이다. (0) | 2020.08.26 |
첫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에게 주는 충고 (0) | 2020.08.06 |
내가 신(神)임을 확신하면, 실제로 나는 하나님이 된다. (0) | 2020.0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