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사의 금강경 강의(17-1)

2020. 8. 13. 23:16카테고리 없음

究竟無我分 第十七(구경무아분 제17) ①

[본문]

​爾時(이시)에 須菩提(수보리)이 白佛言(백불언)하시되 世尊(세존)이시여 善男子 善女人(선남자 선여인)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한 이는 云何應住(운하응주)며 云何降伏其심(운하항복기심)이니까. 

저 때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루어 말씀하되, 세존이시여, 선남자,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아오니, 어떻게 하여 마땅히 머물도록 하며, 어떨게 그 마음을 항복받으오리까?

[해설]​

상권 첫째 머리에서 묻던 말과 같이, 똑같은 말을 하권 첫째 머리에서 똑같이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물었으니, 그 뜻이 어데 있는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고구정령하신 불법을 듣고, 수보리와 및 대중은 금강바라밀경이, 어떠한 경인 것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어떠한 법인 것과, 또 이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을 깨쳐, 이 법의 희열을 크게 감탄하게 되었으며, 자기가 여래인 것도 잘 증득하였다. 그러나 한 가지 실망되는 점이 있었으니, 이것이 무엇일까.

이치(理致)로는 비록,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확실히 깨어 얻었으나, 일(事)은 이치와 합치되지 않는 점이다. 

마치, 대와 죽순과 같이, 대는 똑같은 대이지마는, 죽순을 가지고는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죽순이 대 되는 것이요, 소나무가 대 되는 것은 아니니 죽순만 되면 대 되는 것은 시일만 걸릴 뿐이다. 이와 같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치로는 알았으나, 행으로는 이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말로는 나도 부처와 같이 행할 수 있지마는, 행(行)은 부처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아(我)가 공(空)하고, 법(法)이 공(空)하고, 공한 것까지도 공한 줄 잘 알지만, 항상 상에 착하기가 쉽다는 말이다. 

눈에 아무 경계도 보이지 않고, 귀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을 때에는, 나도 없고, 남도 없는 불생불멸(不生不滅)의 깨끗한 부처이지마는, 바람이 치불고, 비가 퍼붓고, 집이 떠내려가고, 번개가 번쩍하고, 우뢰가 소리 하고, 천지가 진동할 때에는, 공포심이 일어나고, 아상 ,인상, 중생상,수자상이 생긴다는 말이다. 

아무 일없는 평시에는, 모두 자타가 없는 것 같지만, 탐진치(貪嗔痴)의 경계를 당하여 보면, 사상(四相)에 착되고 만난다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건지시고저, 그 토록 친절 정녕히 갖은 수단과 갖은 방편으로 상,중,하근기를 다 맞추어 정한 법이 없는, 가장 잘 사는, 아뇩보리법을 보여주셨거늘, 누가 제게 있는 제 보리를 보지 못할 사람이 있으며, 제게 있는 제 경을 깨지 못할 사람이 누구일 것인가. 

그러나 고인의 말씀에도, 얻기는 쉬워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 말은, 알기는 쉬워도, 안 것과 같이, 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과연 그렇다. 일생을 두고 수행을 하였다는 이들 중에고, 이(理)와 사(事)가 같지 않고, 아는 것과 행이 하나가 못되고, 말과 행이 다른 것을 흔히 볼 수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선지식이 아닌 것은 아니니, 법을 배우는 자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해야 한다. 

지(知)와 행(行)이 일치되는 것은 깨친 사람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오랜 세상을 두고, 다생다겁으로 내려오면서, 익힌 습기(習氣)라는 것은, 일조일석에 전부 제(除)하여 지는 것이 아니므로, 다생(多生)을 두고 닦고 닦아야 제하여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 하므로, 상권 법문에서 수보리와 및 대중은 아뇩보리를 깨어 얻어, 본래 주가 없는 마음을 무주에 주할 것을 알았으나, 깨친 바와 같이, 무주(無住)가 안되고, 경계를 대하면 곧 상(相)에 주하게 되므로, 다시 부처님에게 똑같은 말로써 물었으니, 뜻은 다른 것이니, 상권에서는, 마음을 주하는 이치를 물은 것이요, 하권에서는 행을 물은 것이다. 행을 떠나서 이치가 없고, 이치를 떠난 행이 없으니, 이(理)와 행(行)을 구별하여 보면 그러하나, 행은 이치의 증거이기 때문에, 중생을 교화함에 있어, 증거를 보이지 않고 말로만 설하여서는, 잘 믿어지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생각에는, 상권에서는 이(理)를 밝히고, 하권에서는 행(行)을 밝힌 것이라고 한다. 

 

[본문]

佛告須菩提(수보리)하시되 若善男子(약선남자) 善女人(선여인)이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는 當生如是心(당생여시심)하되 我應滅度一切衆生(아응멸도일체중생)하리라 하여 一切衆生已(일체중생이)하여는 而無有一衆生(이무유일중생)도 實滅度者(실멸도자)니라.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사대,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일진댄,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이 나리니, 내가 응당 일체 중생을 멸도하였으나 일체중생을 멸도하고 나서는, 실은 한 중생도 멸도된 자가 없다 하리라.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若菩薩(약보살)이 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유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면 即非菩薩이니,何以故(하이고)오

어찌한 연고이냐,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곧 보살이 아니니라. 

 

[본문]

所以者何(소이자하)오 須菩提(수보리)야 實無有法(실무유법)하여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者(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니라. 

어찌한 까닭이냐. 수보리야, 실로 법이 있어, 아뇩다랴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자가 없나니라. 

[해설]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깨친 자는, 자기 자심에서 생기는, 모든 번뇌인, 일체 중생을 제도 할 것이다. 이 모든 중생을 하나도 남김없이 멸도하고 나면, 멸도를 받는 한 번뇌 중생도 없을 것이니, 본래 한 법도 없는 것을 깨친 자가, 곧 아뇩보리를 깨친 자이기 때문이다. 깨친 자는 깨침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 인, 중생, 수자상이 있으면, 어찌 보살이라 할 것인가. 

 

                                                             -해안 선사 강의 <금강바라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