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1. 23:16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당신께서는 제가 비약띠(인격체), 비약따(초인격체),아비약따(비인격체) 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비약따는 보편적이고 실재하는 순수한 '나'이고, 비약따는 그것이 의식 안에서 '내가 있다'로 반사되는 것이며, 비약띠는 신체적,생명적 과정의 총합입니다. 현재 순간이라는 좁은 한계 내에서 비약따는 시공 안에 있는 사람을 자각하는데, (금생의) 한 사람 뿐 아니라 카르마의 실에 엮인 (다생에 걸친) 사람들의 긴 연쇄를 자각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주시자일 뿐더러, 축적된 경험들의 잔여물이고 기억의 자리이며 (다생의 사람들을 잇는) 연결고리(연쇄자아)입니다. 보편자(아비약띠)는 모든 이름과 형상을 넘어서 있고 의식과 성격을 넘어서 있는 순수한 무(無), 자기의식적 존재입니다. 제가 당신의 견해를 올바르게 표현했습니까?
마하리지 : 마음의 수준에서는, 그렇지요. 마음의 수준 너머에서는 한 단어도 해당되지 않습니다.
질 : 저는 '사람'이란 하나의 심적 구성물, 즉 일련의 기억과 습관들에 대한 하나의 집합명사라고 이해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에게 일어나는 자, 곧 주시하는 중심(주시자)도 심적입니까?
마 : 인격체(비약띠)는 하나의 기반, 곧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하나의 몸을 필요로 합니다. 마치 어떤 색상이 그것이 나타날 표면을 필요로 하듯이 말입니다. 그 색상을 보는 것은 그 색상과 독립해 있습니다.
색상이 무엇이든 보는 것은 동일하니까요. 어떤 색상을 보려면 그대에게 눈이 있어야 합니다. 색상은 많지만 눈은 단 하나입니다. 초인격체(주시자)는 그 색상 안에 있고 눈 속에도 있는 빛과 같지만, 단순하고, 단일하고,나눌 수 없고, 그것이 현현된 거것들에서 지각될 때를 제외하고는 지각 불가능합니다.
알수 없지는 않지만 지각 불가능하고, 비대상적이며, 분리할 수 없습니다. 물질적이지도 않고 정신적이지도 않고, 파괴적이지도 않고, 주관적이지도 않은 그것은 물질의 뿌리이자 의식의 근원입니다.
단순한 삶과 죽음을 넘어서 있는 그것은 일체를 포함하면서 일체를 배제하는 생명인데, 그 안에서는 탄생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탄생입니다.
질 :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절대자 혹은 생명은 실재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무지를 덮기 위한 하나의 이론에 불과합니까?
마 : 둘 다지요. 마음에게는 하나의 이론이고 그 자체로는 하나의 실재입니다. 거짓된 것을 자발적으로, 전체적으로 배척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실재입니다. 빛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둠을 소멸하듯이, 절대자도 상상을 소멸합니다. 모든 지(知)는 무지의 한 형태라는 것을 보는 것 자체가 실재의 한 운동입니다. 주시자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그것을 위한 하나의 토대, 곧 하나의 유기체, 하나의 몸이 있을 때 생겨납니다. 그 안에서 절대자가 자각으로서 반사됩니다. 순수한 자각이 자기자각으로 됩니다. 하나의 자아가 있을 때는 자기자각이 주시자입니다. 주시할 자아가 없을 때는 주시하기도 없습니다. 모두 아주 단순한 것인데, '사람'이 존재하면서 복잡해 집니다. 영구적으로 별개인 '사람'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아십시오. 그러면 일체가 분명해집니다. 자각, 마음, 물질 - 이런 것들은 하나의 실체이지만, 움직일 수 있고 움직일 수 없는 두 측면과 따마스, 라자스, 사뜨와 라는 세 가지 속성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질 : 무엇이 먼저입니까? 의식입니까, 자각입니까?
마 : 자각이 하나의 대상을 가질 때 의식이 됩니다. 대상은 늘 변하고 있습니다. 의식 안에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자각은 그 자체로는 움직임이 없고 무시간적이며, 지금 여기 입니다.
질 : 지금 이 순간 동파키스탄에 고통과 유혈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당신께서 그것이 어떻게 보이며, 그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미 : 순수한 의식 안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질 : 제발 그런 형이상학적인 고지에서 내려와 주십시오. 누구도 그 자신 외에는 그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는 말을 고통받는 사람이 들은들, 그것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것을 환으로 치부하는 것은 다친 사람을 또 모욕하는 격입니다. 동파키스탄의 벵골인들은 하나의 사실이고, 그들의 고통도 하나의 사실입니다. 부디 그것을 분석하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당신께서는 신문도 읽으시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들으십니다. 몰랐다고 항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마 : 어떤 견해도 없습니다.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질 : 어느 날 당신의 앞에서 폭동이 일어나, 어쩌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고 하시며 초연하게 계실 수는 없겠지요>
마 : 저는 초연하게 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는 어쩌면 제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그 소동 속으로 뛰어들엇다가 살해당하는 것을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큰 건물이 무너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방들은 무너져 있지만, 어떤 방들은 무사합니다. 그러나 그 공간이 무너졌다거나 무사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피해를 입은 것은 그 구조물이고, 그 안에 살고 있던 사람입니다. 공간 자체에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형상들이 무너지고 이름들이 소멸될 때 생명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금세공인이 오래된 장신구들을 녹여 새것으로 만듭니다.
어떤 때는 좋은 제품이 나쁜 제품과 어울리기도 하지만, 그는 그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냅니다. 어떤 금도 잃어버리지를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질 : 제가 반기를 드는 것은 죽음이 아닙니다. 죽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마 : 죽음은 자연적이고 죽는 방식은 인위적입니다. (개아들의) 별개성이 두려움과 공격성을 야기하고, 그것이 다시 폭력을 야기합니다 인위적 분리들을 없애버리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는 이런 모든 끔찍한 일이 확실히 종식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죽이는 일도 없고 죽는 일도 없습니다. 실재는 죽지 않고, 비실재는 결코 산 적이 없습니다. 그대의 마음을 바로 잡으십시오. 그러면 모두 올바르게 될 것입니다. 세계가 하나라는 것, 인류가 하나라는 것을 알면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그대가 느끼고, 생각하고, 사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대 자신 안에 질서가 없다면 세계 안에도 질서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이라는 스크린 위에 운명이 화면들, 곧 예전에 투사한 것들의 기억을 영원히 투사하고, 그리하여 환(幻)은 부단히 갱신됩니다. 화면들은 오고 가지만, 이것은 무지에 의해 차단된 빛들입니다. 그 빛을 보고 화면들은 무시하십시오.
질 :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치고 얼마나 비정한 방식입니까? 사람들은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데, 여기서 당신께서는 화면이야기를 하시니 말입니다.
마 : 얼마든지 가서 스스로 살해당하십시오. - 만약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니면 가서 남을 죽이든지요. 그것을 그대의 임무로 삼는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악을 끝내는 방법이 아닙니다. 악은 병든 마음이 발산하는 악취입니다. 그대의 마음을 치유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왜곡된, 추악한 화면들을 투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질 :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지만,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삶에 대한 이런 이상적이기만 한 견해에 저는 깊히 혐오감을 느낍니다. 저 자신이 영구적으로 어떤 꿈의 상태에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 : 비영구적인 몸에 의해 야기된 상태 안에 어떻게 그대가 영구적으로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런 오해는 자신이 몸이라는 그대의 관념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 관념을 조사하고, 거기에 내재된 모순들을 보고, 현재 그대의 존재는 소나기처럼 쏫아지는 섬광들과 같아서, 각 섬광은 1초밖에 지속되지 않고 그 소나기 자체도 1,2분 밖에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분명히, 시작이 곧 끝인 것에는 어떤 중간도 있을 수 없습니다. 품위있는 용어를 사용하십시오. 실재는 찰나적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무시간적이지만, 무시간성은 지속성이 아닙니다.
질 : 제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것의 왜곡된 화면을 보는, 실재하는 어떤 세계는 없습니다. 그 왜곡은 제 몸이나 마음 안의 어떤 오염에 기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세계도 실재하지 않고 제 마음 속에 하나의 꿈 세계가 있을 뿐이라고 말씀하시면, 제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존재계의 모든 끔찍한 일들이 제가 하나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살이 거기서 벗어나는 길일 테니까요.
마 : 관념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한 - 그대 자신의 관념이든 남들의 관념이든 - 그대는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모든 가르침, 모든 책, 언어로 표현된 어떤 것도 무시하고 그대 자신의 내면으로 깊히 뛰어 들어 그대 자신을 발견하면, 그것이야말로 그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입니다. 그때는 그대가 모든 상황을 완전히 좌우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 대한 그대의 관념들에 지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그대가 매력적인 여성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대는 그녀에 대한 관념들을 얻고, 그것이 어떤 성적인 상황을 조성합니다. 그러다가 문제가 발생하고, 그대는 금욕 혹은 즐김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대들이 아기라면 벌거벗고 함께 있어도 아무 문제가 일어나지 않겠지요. 그대들이 몸이라고 생각하기를 그만두십시오. 그러면 사랑과 성에 관한 문제들이 의미를 상실할 것입니다. 한계에 대한 모든 느낌이 사라지면 두려움과 고통, 그리고 쾌락에 대한 추구 - 이 모든 것이 그칩니다. 자각만이 남습니다.
-아이 엠 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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