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사 금강경 강의(15)

2020. 7. 7. 22:48성인들 가르침/금강경

持經功德分(지경공덕분) 第十五(제십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若有善男子(약유선남자) 善女人(선여인)이 初日分(초일분)에 以恒河沙等身(이항하사등신)으로

布施(보시)하고 中日分(중일분)에 復以恒河沙等身(부의항하사등신)으로 布施(보시)하고 後日分(후일분)에 

亦以恒河沙等身(역이항하사등신)으로 包施(보시)하여 如是貿量百千萬億劫(여시무량백천만억겁)을 以身包施(이신보시)이나 若復有人(약부유인)이 聞此經典(문차경전)하고 信心不逆(신심불역)하면 其福(기복)이 勝彼(승피)하리니 

河況書寫受持讀誦(하황서사수지독송)하여 爲人解說(위인해설)이리요.

수보리야,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도 다시 항하 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고, 저녁 때에도 또한 항하모래와 같이 많은 몸으로 보시하여, 이와 같이 한량 없는 백천만억겁을 몸으로써 보시할지라도, 만약 다른 어떤 사람은 이 경전을 보고 신심으로 거슬리지 아니하면, 그 복이 저보다 승할 것이어늘 항차 이 경을 등하고, 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줌이겠는가. 

[해설]

이렇게 백천만억겁을 두고, 사람의 몸을 수생(受生)하기를 헤아릴수 없이 많이한 그 몸으로, 승사공양(承事供養)하여 보시할지라도, 이 경을 얻어 듣고, 진정으로 믿는 복덕만 못하다는 말씀이니, 더군다나 서사 수지 독송(書寫受持讀誦)하고, 남을 위하여 일러주는 공덕이야 말할수가 있겠는가, 하신 말씀이시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以要言之(이요언지)컨댄 是經(시경)은 有不可思議(유불가사의) 不可稱量(불가칭량) 無邊功德(무변공덕)하나니,

수보리야, 한 말로써만 하자면, 이 경이 가히 생각할 수 없고, 가히 측량할 수 없는 한없는 공덕이 있나니.

[해설]

아무리 부처님께서 천언 만어로써 이 경의 공덕을 찬탄하실지라도, 믿어지지 않는 것이니, 다만 자기 본심을 반조하여 스스로 얻음이 있기를 바란다. 물을 마시는 사람만이 차고 더운 줄을 아는 것이다.  

 

[본문]

如來爲發大乘者說(여래위발대승자설)이며 爲發最上乘者說(위발최상승자설)이니라.

여래가 대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요, 최상승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니라. 

[해설]

불교에는 대승소승(大乘小乘)이란 말의 있으니, 본래 이 자리는 대소, 고하가 없는 것이니, 사람의 근기에 따라 대 소승으로 비교한 것이니, 대승을 기차와 같고, 소승은 자전거와 같다. 기차는 대승을 위한 것이요, 자전거는 소승을 위한 것이다. 나도 건지고 남도 건지는 것은 대승이요, 나만을 건지려고 하는 것은 소승이다. 

이 법은 수행함이 있어, 상에 집착하여 닦는 것은 소승이요, 상을 여이고 닦는 것은 대승이다. 

지옥을 싫어하고 천당을 좋아하여, 닦는 것은 소승이요, 천당과 지옥이 둘 아닌 것을 알고 닦는 것은 대승이다. 

여기 최상승(最上乘)이란 말이 있으니, 배움도 없고, 함도 없어 망상을 제하지도 않고, 참을 구하지도 않는 것은 최상승이다. 그런데 이 경은 대승심을 발한 자와 최상승심을 발한 자를 위하여 설한 것이라고 하셨다. 과연 그렇다.

나무를 얻어 가지 만지기가 기특한 일이 아니라, 천만 길되는 절벽에서 붙잡았던 손을 탁 놓아버리는 것이, 장부의 일인 것이다. 조그마한 벱새가 어찌 대붕(大鵬)의 뜻을 알 수가 있으랴.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한 걸음 대딛여야 한다. 

 

[본문]

若有人(약유인)이 能受持讀誦(능수지독송)하여 廣爲人說(광위인설)하면 如來(여래)가 悉知是인(실지시인)하며

悉見是人(실견시인)하여 皆得成就不可量(개득성취불가량) 不可稱(불가칭) 無有邊(무유변) 不可思議(불가사의)

功德(공덕)하리니 如是人等(여시인등)은 即爲荷擔如來(즉위하담여래) 阿耨多羅三藐(아뇩다랴삼먁) 三菩提(삼보리)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수지독송히고, 남을 위하여 일러주면, 여래가 이 사람을 다 알고, 이 사람을 다 보아 헤아릴 수 없고, 일커를 수 없고, 한없는, 가히 생각지 못할 공덕을 다 얻어 성취하리니, 이러한 사람들은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진 것이 되나니라. 

[해설]

이 경을 능히 수지독송하고, 여러 사람을 위하여 일러주는 사람은, 이가 곧 여래의 둘도 없는 가장 잘 사는 법을 자신있게 짊어지고, 몸을 바쳐가며 전법도생(傳法度生)을 하는 대승 보살이니, 작은 선(善)에나 집착하여 지옥을 피하고, 천당을 원하며,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구하는 소승 따위가 유가 아니다. 

 

[본문]

何以故(하이고)오 須菩提(수보리)이 若樂小法者(약요소법자)는 着我見人見衆生見(착아견인견중생견) 壽者見(수자견)이라 即於此경(즉어차경)에 不能聽受讀誦(불능청수독송)하여 爲人解說(위인해설)이니라.

어찌한 연고이냐,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을 좋아하는 자는, 아견과 인견과 중생견과 수자견에 착하여, 곧 이경을 능히 알아 듣고, 읽고, 외운다든지 남을 위하여 해설하여 주지 못하느니라.

[해설]

소승은 항상 작은 나(小我)를 근본으로 하여 수행하기 때문에, 사상(四相)의 견해(見解)를 여이지 못하고, 상(相) 있는 작은 과(果)를 좋아하므로, 감히 과가 없는 불과(佛果)를 얻음이 없이, 얻을 생각을 하지 못하므로,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는, 이 경이, 귀에 들어가지를 않기 때문에, 읽어 외울 생각도 없거니, 어찌 자기도 모르는 것을 남에게 일러 줄 수가 있을 것인가 말이다.  

 

[본문]

須菩提(수보리)야 在在處處(재재처처)에 若有此경(약유차경)하면 一切世間(일체세간) 天人阿修羅(천인아수라)의

所應供養(소을공양)이니 當知此處(당지차처)는 即爲是塔(즉위시탑)이라 皆應恭敬(개응공경)하며 作禮圍遙(작례위요)하고 以諸華香(이제화향)으로 而散其處(이산기처)하니라.

수보리야, 간데마다 만약, 이 경만 있으면, 일체 세간의 하늘과 사람과 아수히가, 응당 공양하는 바이나, 마ㄸㅇ히 알라. 이곳은 곧 탑묘가 됨이니, 응당 다 공경하여, 예를 지어 둘러 싸며 모든 꽃과 향으로써 그 곳을 흩어 덮나니라. 

[해설]

그러므로 알아라, 수보리야,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이 경의 진리를 신해수지하는 이만 있으면, 이 곳이 곧 부처가 계시는 도량인지라. 모든 세간의 하늘이며, 사람이며, 아수라들이, 다 모아 공양하며, 받들고 절하고 에워 싸고, 꽃이며 향으로써, 그 곳에다 흩어놓게 된다는 말이시다. 

 

                                                  -해안선사 강의 <금강반야바라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