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탐구 실제수행방법및 이론 정리 (10)

2020. 6. 19. 23:3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 몰입에는 두 종류가 있으니, 라야(laya, 일시적 고요함)와 나사(nasa, 영구적 소멸)가 그것이네.

라야에만 흡수된 것은 다시 일어나겠지만, (나샤 속에서) 그것의 형상이 주어 버리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네." 

                                                        -우빠데샤 운디야르(가르침의 핵심) 제13연-

 

마음의 몰입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만일 그 몰입이 일시적이면 그것을 '마노-라야 (mano laya)'. 즉 마음의 침묵이라고 한다. 

만일 마음이 라야에 흡수되면 언젠가 때가 되어 다시 일어날 것이다. 

두 번째 종류의 몰입은 마노-나샤(mano nasa)'. 즉 마음의 소멸이다. 

이러한 소멸에서는 마음이 죽고, 어떤 상황에서도 되살아 나지 않는다. 

그것은 죽었기에 더 이상 불행을 일으킬 수 없다. 

따라서 이 두 번째 종류의 몰입, 곧 마음의 소멸을 통해 얻은 행복은 영원하다. 

그것이 지고의 지복이다. 

 

우리가 오관을 통해 즐거운 경험들을 즐기는 생시의 상태에서는 극히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침묵이 있다. 

잠 속에서는 마음의 침묵시간이 조금 더 길다. 

죽음의 상태에서도 마음은 그와 같이 침묵할 뿐이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의 침묵(mano laya)일 뿐, 마음의 소멸(mano nasa)은 아니다. 

불행(곧,마음)이 일시적으로 흡수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것이 소멸되어야 한다. 

이것이 인류의 목표이다. 

 

마음의 일시적인 침묵(laya)은 불행의 일시적인 침묵이고, 

마음의 영구적인 침묵(nasa)은 불행의 영구적인 소멸이다. 

즉, 마음 그 자체가 불행인 것이다. 

따라서 마음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보자 

마음이란 무엇인가? 스리 바가반이 내린 판정은 이렇다. 

 

마음은 생각일 뿐이니 (- - -)

                 -우빠데샤 운디야르 제18연-   

 

우리가 모든 생각을 포기하고 마음이 무엇인지 관찰하면, '마음' 같은 것은 아예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마음의 형상은 부주의 없이 탐구하면, 마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

이것이 모두에게 직접적인 길이라네 ! 

                                               -우빠데샤 운디야르 제17연-

 

마음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생각들을 소멸하는 것으로 족하다. 

따라서 생각이란 실제로 무엇인지 알아보자. 

이 탐색은 한가한 시간 보내기가 아니다.

온 세계가 행복을 위해 분투하고 있지 않은가?

이 탐색조차도 바로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 일반의 노력과 구도자가 하는 노력 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세간 사람들의 노력은 어떤 찰나적인 행복 비슷한 것을 가져다 줄 뿐인 반면, 

구도자의 이 노력- 자기 탐구 -은 완전하고 영원하며 무한한 행복의 길을 열어준다. 

따라서 이 탐색은 다른 모든 종류의 인간적 노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

이 탐색 전반에 걸쳐 우리는 매우 예리하게 깨어 있어야 하고, 최선의 노력을 쏫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의 탐색의 결과 -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소득 -가 지금 여기에서 얻어질 것이다. 

이것은 바가반 스리 라마나 자신의 체험에 의해 잘 입증된다 ! 

 

우리는 생각들을 면밀히 탐색하겠다는 제안으로 시작하지 않았던가 ?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 목표는 모든 생각을 소멸하고, 그럼으로써 완전한 행복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서는 수백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는데, 그 중에서 우리는 최초의 뿌리 생각을 찾아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1인칭인 생각, 곧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일어나는 '나는 이 몸이다' 하는 생각이 최초의 생각임을 발견한다. 이 '나'라는 생각이 모든 생각의 뿌리 생각이다. 

 

마음은 생각일 뿐이니, 모든 생각 중에서 '나'라는 생각이 실로 뿌리 생각이라네.

따라서 이른바 마음이란 '나'라는 생각('나는 몸이다'라는 느낌)일 뿐이네.

                                                 -우빠데샤 운디야르 제18연-

 

세 가지 인칭 - 1인칭(나), 2인칭(너), 3인칭(그. 그녀, 그것 등) - 중에서 1 인칭인 '나'가 최초로 일어난다. 

1인칭이 일어나지 않으면 2인칭과 3인칭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1인칭은 '나'라는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이야말로 마음이다. 

2인칭과 3인칭은 1인칭이 일어난 뒤에야 일어날 것이다. 

세계는 2인칭과 3인칭에 지나지 않는다. 

잠 속에서는 1인칭의 느낌, 곧 '나는 몸이다'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잠 속에서는 세계(2인칭과 3인칭)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몸이다'라는 형상의 1인칭이 존재해야만, 2인칭과 3인칭도 존재할 것이네.

                                          -실재사십송 제14연-

 

'나'라는 생각이 없으면 다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 아루나찰나에 바치는 8연시 제7연 -

 

'나'라는 생각 - 모든 생각의 뿌리 생각-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면 다른 모든 생각도 일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 나무의 수백만 개 잎과 수백만 개의 가지를 잘라 버리고 싶다면, 그 나무둥치를 잘라버리는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든 생각을 소멸하려는 사람은 그 생각들의 뿌리인 '나'라는 생각을 소멸하면 그 일에 성공한 것이 된다. 

우리는 생각들을 면밀히 탐색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논의를 시작하지 않았던가? 

앞서 우리가 살펴본 대로라면, 생각 하나 하나를 탐색할 필요는 없고, 모든 생각의 뿌리인 '나'라는 생각만 탐색하면 충분하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 모른다. 

" 행복은 생각들의 소멸을 통해서 얻어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왜 어떤 생각을 탐색해야 하는가? 그것은 부질없는 일 아닌가?" 그들은 심지어, 바가반 스리 라마나가 언젠가 ('나는 누구인가?'에서) "단번에 다 내다 버려야 할 쓰레기를 자세히 조사해 봐야 아무 쓸데 없다"고 말한 것을 인용할지도 모른다. 

그런 부적절한 질문은 스리 바가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될 것이다. 

 

어째서 그런지 보자.

스리 바가반은 "진아를 은폐하는 모든 원리들(2인칭과 3인칭인 비진아)의 온갖 속성을 자세히 조사해 봐야 부질없다"고 말했다. 2인칭과 3인치에 속하는 생각들을 우리가 아무리 면밀히 조사해도 그것들은 결코 가라앉지 않고 증가하기만 할 것이다. 

바가반은 1인칭에 대한 면밀한 조사(자기탐구)를 포기하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1인칭 생각인 '나'는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나는 누구인가?' 하고 탐구하면서) 주의를 그것에 집중하면, 이 '나'라는 생각은 가라앉게 된다. 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2인칭과 3인칭에 속하는 생각들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면 기울일수록 그런 생각들은 더 많아질 것이다. 영화관에서는 스크린이 영사기에서 멀면 멀수록 화면이 더 커지고, 스크린이 빛의 근원인 영사기 쪽으로 가까워질수록 화면은 작아져서 심지어 한 점에 불과한 크기까지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주의가 2인칭과 3인칭 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세계라는 화면(생각들)은 몇배로 늘어난다. 그러나 주의가 마음빛의 근원인 진아 쪽으로 향하면 마음(첫번째 생각인 '나') 그 자체가 가라앚을 것이다. 

 

'나는 살과 뼈로 된 이 몸이다'라는 생각은 다른 온갖 생각들이 꿰어져 있는 하나의 실이네. 

따라서 우리가 내면을 향해 '이 나는 어디에 있는가?'하고 물으면, ('나'라는 생각을 포함한) 모든 생각이 종식될 것이고, 그때 (심장) 동혈 속에서 진아지가 '나-나'로서 저절로 빛날 것이네.

                                                                            -진아지 제2연-

 

염주의 실을 자르면 염주알이 모두 떨어지듯이, 모든 생각을 소멸하고 싶은 우리가 모든 2인칭과 3인칭 생각들을 마치 염주알 꿰는 실처럼 꿰고 지탱하는 1인칭 생각, 곧 '나'를 면밀히 조사하면 그 모든 생각이 애씀 없이 소멸될 것이다. 

 

----1인칭의 진리에 대한 탐구를 통해 1인칭이 사라지면, 

2인칭과 3인칭의 존재가 사라질 것이고 --- 

                                   -실재사십송 제14연-

 

이와 같이 '나'라는 생각을 소멸하는 방법은 또한 다른 모든 생각을 소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핵심은 1인칭 생각인 '나'를 소멸하는 것이다. 

그것을 소멸하는 유일한 방도는 그것의 성품을 면밀히 조사하는 것이다 ! 

다른 어떤 방도도 없다 ! 

 

- - -'나'가 일어나는 근원을 탐색하지 않고서, 달리 어떻게 '나'가 

일어나지 않는 상태 - 에고 없음의 상태 -를 성취하겠는가 ----

                                         -실재사십송 제27연-

 

헌신의 길인 자기순복의 길에서도, 1인칭인 '나'라는 생각을 신에게 내맡겨 그것의 성품이 아무 가치없는 것임을 

알게 됨으로써 (에고인 그 '나'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거나, 아니면 진아, 곧 진정한 '나'가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임을 앎으로써) 그것의 소멸을 성취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1인칭인 '나'라는 생각을 탐구하는 것뿐이다. 

 

                                                   -스리 사두 옴 지음, 대성 옮김 <스리 라마나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