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9. 10:08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서문]
바가반은 한때 당신의 중요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20연의 타밀 시를 지었다. 그 시들은 하나의 시가 되도록 어떤 특정한 순서로 지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스리무루가나르는 바가반에게 전통적인 연수(聯數)인 40연이 되도록 20연을 더 지어 보이시라고 권했다. 그에 따라 바가반은 20연을 더 지었다.
이 49연 중에서 까비야깐따 가바빠띠 무니가 2연을 기원시로 골라냈다. 그러자 바가반은 40연을 채우기 위해 2연을 더 지었다. 그 시들 중에 어떤 것은 산스크리트어 원전을 번역한 것이었는데, 헌신자들이 40연 모두 독창적인 시이기를 원했기 때문에 그것들을 뻬고 그 대신 새로운 시를 지었다. 그리고 이 시편들은 하나의 시가 되게 연속적인 순서로 배열되었다. 나중에 재차 40연의 시로 이루어진 '보유(補遺)'가 추가 되었다.
바가반은 작자가 되는데 워낙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 보유시'들을 모두 창작하지 않았다. 적당한 것이 발견되면 -대부분은 산스크리트 원문에서 번역한 것인데- 그것을 사용했고, 적당한 것이 없으면 당신이 지었다. 원래의 40연에서 빠진 시들은 이 보유에 포함되었다.
이 80연 시는 마하리쉬의 가르침을 가장 폭 넓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가지 번역본이 나왔고 주석서들도 씌어졌다. 그리고 이 시들은 <실재사십송> <실재지(實在知)> <드러난 진리> 등의 제목으로 아쉬람에서 별개의 소책자들로 출판되었다. 바가반은 이 시들을 <실재사십송>이란 제목으로 텔루구어로 번역했고, <실재직견(實在直見)>이란 제목으로 말라알람어로 번역했다.
-옮긴이의 말-
바가반은 <실재사십송>을 모두 벤바 운으로 지었는데, 나중에는 깔리벤바 운으로 각 연 의 사이에 '연결어'를 몇 단어씩 두어 연들이 서로 연결되게 하여 40연 전체를 한 수의 시처럼 노래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두 시형(詩形)의 차이라면 깔리벤바 시에서는 마지막 행에 한 단어 정도, 그리고 다음 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약간 단어가 추가되는 정도이고, 그 나머지 내용은 벤바 시와 전적으로 동일하다. 여기서는 이 깔리벤바 시를 번역한다. 각 연의 시작 직전에 추가된 단어들은 행을 달리하고 있는 점에 유의하라.
[서시]
1. "실재의 성품과 그것을 성취하는 수단을 저희에게
보여주시어, 저희가 구원받게 하소서"라고 무루가나르가 청하자,
비실재 세계의 미혹에서 벗어나 계신 고귀한 스리 라마나께서
권위있는 '실재사십송'을 즐거이 드러내셨네.
2. 실재는 하나가 아니라 다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실재가 하나임을 선언하기 위해 노래하신 저 '실재사십송' 벤바들을
하나의 훌륭한 깔리벤바로 스리 라마나께서 적절히
바구어 주셨다는 것을 알라.
<이 서시는 스리 무루가나르가 지은 것임>
[기원시]
1. 실재가 없다면, "있다"는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가 실재는
생각이 없이 심장 안에 존재하는데, 심장이라고 하는
실재를 어떻게 명상할 수 있는가? 심장 안에서 있는 그대로
안주하는 것이야말로 (실재에 대한) 명상이라는 것을 알라.
-내면에서
2.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는 이들이 피난처로서
죽음도 없고 탄생도 없는 지고한 주(主)의 두 발에
매달리면, 그 매달림으로 그들은 죽어버리는데,
죽음이 없는 그들에게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겠는가?
[본문]
-시각과 결합된
1. 우리가 세계를 보기 때문에, 다양한 힘을 가진
하나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피하네. 이름과 형상들의
화상(畵像), 바라보는 자, 공존하는 스크린과 두루 비치는 빛
- 이 모두가 진아인 그분이라네
-세계, 신, 영혼의
2. 세 원리를 모든 종교가 처음에 전제하지만,
"하나의 원리만 존재한다, 세 원리가 늘 세 원리이다"라고
다투는 것은 에고가 존재하는 동안만 그렇다네. '나'를 절멸하고
진아의 상태 안에 안주하는 것이 최상이라네.
-헛되아
3. "세계는 참되다, 거짓된 모습이다, 세계는 지각한다, 그렇지 않다
세계는 행복이다. 그렇지 않다" 고 다투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세계를 포기하고 자기를 알며, 하나와 둘 다 끝이 나고
'나'가 사라진 그 상태가 모두에게 좋은 것이네.
- 살로 이루어진
4. 형상이 자기라면, 세계와 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네.
형상이 자기가 아니라면, 그들의 형상을 누가
어떻게 볼 수 있으며, 보이는 모습이 눈과 다를 수 있겠는가?
그 눈인 진아는 무한한 눈이라네.
-면밀히 살펴보면
5. 몸은 다섯 껍질로 된 형상이니, 그 다섯 가지가
몸이라는 말 안에 모두 들어 있네. 몸이 없이
세계가 존재하는가? 몸을 내버리고 세계를
본 사람이 있는지 말해보라
-보이는
6. 세계는 다섯 감각 지각의 형상 외에 달리 무엇이 아니고,
이 다섯 감각 지각은 다섯 감관에게 지각되네.
세계를 마음 하나가 다섯감관을 통해 지각하니,
마음이 없다면 세계가 존재하는지 말해보라.
-(우리) 앞의
7. 세계와 마음은 함께 일어나고 가라앉지만,
세계는 마음으로 인해 빛난다네, 세계와 마음이 일어나고 가라앉는 터전인,
일어나지도 가라앉지도 않고 빛나는 그 전체야 말로 실재라네.
- (원래) 가능한 일이지만
8. 어떤 이름을 붙여 어떤 형상으로 누가( 그 실재를 ) 숭배하든,
그것이 이름과 형상으로 실재를 보는 길이네.
그러나 그 실재의 진리 안에 자신의 진리를 알고(에고가 실재하지 않음을 안다)
가라앉아 (그것과) 하나가 되는 것이 진실로 (실재를) 보는 것임을 알라.
-하늘의 푸름(간이 실재하지 않는)
9. '둘'과 '셋'은 늘 '하나(나,에고)'에 매달려 존재한다네.
"그 하나가 무엇인가? 하고 마음 안에서 찾아보면
(그것은) 떨어져 나갈 것이고,그것을 본 사람들만이 진리를 알며,
그들은 동요되지 않네. 그렇게 보라.
- 어둠 같은
10. 무지 없이는 지(知)도 없고,
지(知) 없이는, 무지가 없네.
" 그 지(知)와 무지(無知)가 누구에게 있는가?"하고
물어서 최초의 자아를 아는 앎이야말로 (참된) 지(知)라네.
-알려지는 대상들을
11. 아는 자기는 모르면서 다른 것들을 아는 것은 무지인데,
그것이 (참된) 지(知)일 수 있겠는가?
지(知)와 '다른 것'(無知)의 바탕인 자기를 알면,
지(知)와 무지(無知)는 사라질 것이네.
- 아예
12. 지(知)와 무지가 없는 것이 (참된) 지(知)라네.
아는 그것은 참된 지(知)가 아니네.
알것도 알려질 것도 없이 빛나기에, 진아가 (참된) 지(知)라네.
그것은 공(空)이 아님을 알라.
-라마나 마하리쉬의 십재사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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