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 마하리쉬 최초저작인 <자아탐구>-10. 최종분

2019. 12. 31. 20:26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36.

제자 : 왜 해탈에 이르는 길을 서로 다르게 가르칩니까? 구도자들의 마음에 혼란을 초래하지 않겠습니까?

스승 : 베다에서는 자질을 갖춘 구도자들의 상이한 수준에 맞게 몇 가지 길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해탈은 마음의 소멸에 불과하기 때문에, 모든 노력은 마음의 제어를 그 목표로 합니다.

비록 명상방식들은 서로 다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모두 하나가 됩니다. 이 점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마음의 성숙도에 맞는 길을 선택하면 됩니다.

기(氣)의 제어는 요가이고, 마음의 제어는 지(知:jnana)인데, 이것은 마음의 소멸을 위한 두 가지 주된 방편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자가 쉽게 보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겐 후자가 쉽게 보이겠지요. 그러나 지(知)는 거친 황소를 푸른 풀로 유인하여 길들이는 것과 같고, 요가는 힘을 써서 제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이들은 말하기를, 자질을 갖춘 세 등급의 구도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은 베단타적 탐구에 의해 실재의 성품을 판단하여 마음을 진아 안에 확고히 자리 잡게 함으로써, 그리고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을 실재의 성품을 가진 것으로 봄으로써 목표에 도달하고, 중간정도인 사람들은 절대지식(絶對止息)이나 실재에 대한 오랜 명상을 통해 마음을 심장 안에 머므르게 함으로써 목표에 도달하며, 가장 낮은 등급의 사람들은 호흡제어 등을 통한 점진적인 방법으로 그런 상태를 얻는다고 합니다. ​ 

무지의 형상을 하고 심장 안에 거주하고 있는 '나'라는 생각이 소멸될 때가지는, 마음을 심장 안에서 휴식하게 해야 합니다. 이 자체가 지(知)이며, 또한 이것이야말로 명상입니다.

그 나머지는 단지 말을 이리저리 벌려 놓은 것이며, 책을 이리저리 써놓은 것일 뿐이라고 경전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이런 저런 방편을 통해 마음을 자신의 진아 안에 붙들어 두는 기술을 터득하면, 다른 문제들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위대한 스승들도 헌신가는 요기보다도 훌륭하며, 해탈에 이르는 방편은 자기 자신의 진아에 대한 성찰(內觀)의 성격을 갖는 헌신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브라만을 깨닫는 그 길이 심공지(心空知, 심장공간에 대한 知), 범지(梵知). 진아지(眞我知) 등 여러가지로 불리는 것입니다. 이 이상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나머지는 추론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경전들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가르칩니다. 위대한 분들은 그 모든 방식으로 분석해 본 뒤에, 이것이 가장 빠르고 가장 뛰어난 방편이라고 선언합니다.


37.

제자 : 위에서 가르치신 행법들을 수련함으로써 마음 안에 있는 무지, 의심, 과오 등의 장애들을 제거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마음의 가라앉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마음이 심장 안에서 해소된 뒤에는 전체적 실재로서 빛나는 의식만이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진아의 형상을 취했을 때는 탐구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러한 탐구는 자기 숭배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은 내내 자기 어깨 위에 있는 양을 찾아 헤메는 목동의 이야기나 마찬가지겠습니다 !

스승 : 개아자체가 시바이고, 시바 자신이 개아입니다. 개아가 다름 아닌 시바라는 것은 진실입니다. 알곡이 껍질 속에 있으면 벼라 하고, 껍질을 벗기면 쌀이라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업(業)에 속박되어 있는 동안은 개아로 남아 있지만, 무지의 구속이 해소되면 시바, 즉 신으로서 빛나는 것입니다. 경전에서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인 개아는 실제로는 순수한 진아입니다. 그러나 개아는 이러한 진리를 잊어버리고, 자신을 하나의 개인적 영혼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라는 형상 안에 속박됩니다. 따라서 바로 자기 자신인 진아를 찾는 것은 마치 목동이 (자기 어깨 위에 있는) 양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 자신을 잊어버린 개아는 단순히 그러한 앎을 명상한다고 해서 진아가 되지는 않겠지요. 전생에서부터 쌓아온 잔류 인상들이 야기하는 장애로 인해 개아는 거듭거듭 진아와의 동일성을 망각하고, 미혹되어 자신을 육신 따위와 동일시합니다. 사람이 고위 관리를 단지 쳐다 본다고 해서 고위관리가 됩니까? 그러한 방향으로 부단히 노력해야 고위직의 관리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육신 등과의 심적이 동일시에 의하여 속박되어 있는 개아는, 진아에 대한 성찰의 형태로 점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마음이 소멸되었을 때, 개아는 진아가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이 진아에 대한 성찰을 부단히 닦으면 마음이 소멸될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마치 송장을 태우는 장작 불쏘시개처럼 그 자체도 타 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가 해탈이라고 합니다.


38.

제자 : 만약 개아가 성품상 진아와 동일하다면, 개아가 자신의 성품을 깨닫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스승 : 그것은 자기의 참된 성품에 대한 개아의 망각입니다. 이것이 은폐력(隱蔽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9.

제자 : 개아가 그 자신을 잊어버린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나'-체험이 모두에게 일어나는 것입니까?

스승 : 그 가림막은 개아를 완전히 숨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나'의 진아성품만을 숨기면서 '나는 몸이다'하는 관념을 투사(投射)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인 진아의 존재는 숨기지 않는데, 이것은 실재하며 영원합니다.

40.

제자 : 생전해탈자(生前解脫者,생전에 해탈한 자)와  무신해탈자(無身解脫者, 죽으면서 해탈한 자)의 특징을 무엇입니까?

스승 : "나는 몸이 아니다, 나는 진아로서 드러나는 브라만이다. 전체적 실재인 내 안에서, 몸 등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는 마치 하늘의 푸름과 같은 단지 하나의 겉모습일 뿐이다." 이처럼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생전해탈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아직 해소되지 않는 한, 발현업으로 인한 대상들과의 관계 때문에 그에게는 어떤 불행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움직임이 그치지 않으므로 지복의 체험이 없겠지요. 진아의 체험은 지속적인 명상의 결과로 미세해지고 움직이지 않게 된 마음에게만 가능합니다. 이처럼 미세해진 마음을 가진 사람, 그리고 진아의 체험을 가진 사람을 생전해탈자라고 합니다. 이 생전해탈자의 상태를 일컬어 속성없는 브라만이라고도 하고, 뚜리아라고도 합니다. 미세한 마음마저 해소되고 진아에 대한 체험이 그칠 때. 그리고 지복의 바다에 잠겨 어떠한 차별화된 존재도 없이 그것과 하나가 되었을 때, 그 사람을 무신해탈자라고 합니다. 이 무신해탈의 상태를 일컬어 초월적인 속성없는 브라만이라고도 하고, 초월적인 뚜리아(뚜라아따따)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그들이 겪는 불행과 행복의 정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깨달은 자인 생전해탈자와 무신해탈자는 브라마비드, 브라마바라, 브라마바리얀, 브라마바리슈타의 네 가지 범주 중 하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그들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있는 것이고, 실제로는 진지(진지)를 통해서 얻은 해탈에는 아무런 구분도 없습니다.

<<譯註 : 생전해탈자에 대한 이 부분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생전해탈자도 마음이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으면 불행을 경험할 수 있고 진아의 지복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 것은, 마음의 완전한 소멸을 해탈로 정의한 바가반 자신의 개념과도 상치된다. 그러나 여기서 마음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은 '발현업'때문에 외관상 마음이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를 뜻하며, 지복의 체험이 없다는 것도 외관상 그렇게 보이는 경우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답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탈자의 구분은 그것을 바라보는 자의 관점에 따른 것이지, 해탈에는 구분이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의 체험과 지혜의 깊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  - 끝 -

- 경례(敬禮)

위대한 시바 자신이시면서 또한 인간의 형상을 하신 스승님,

라마나의 두 발이 영원히 번영하시기를 !​ ​

                                                                                              -라마나 마하리쉬 저작 전집-



送舊迎新(송구영신) ! ! !

(실제로는 가는 것도 없고, 새로 오는 것도, 아무 것도 없는데 ~.그냥 심심해서 말로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