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나 마하리쉬 최초저작 <자아탐구>-3

2019. 11. 15. 10:09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9.

제자 : 어떻게 심장이 다름 아닌 브라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스승 : 비록 자아가 생시, 꿈, 깊은 잠의 상태에서 각기 눈, 목,심장 안에 머무르면서 자기의 경험을 즐기기는 하지만, 실은 자신의 주된 자리인 심장을 결코 떠나지 않습니다.

일체의 성품으로 되어 있는 심장 연꽃 안에는, 바꾸어 말해서 마음 허공 안에는, 그 진아의 빛이 '나'의 형상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이들의 안에서 이처럼 빛나기 때문에, 바로 이 진아를 '주시자'라고도 하고, 뚜리아( 초월상태, 문자적으로는 '네 번째 상태) 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 안에서 '나'의 형상을 한 그 빛에 대해 '안'으로서 빛나는 '나' 없는 그 지고의 브라만은 진아-허공(혹은 지(知)-허공)인데, 그것이야말로 절대적 실체입니다. 이것이 뚜리아따따입니다. 그래서 심장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브라만이라고 이야기됩니다.

더욱이 브라만은 모든 영혼들의 심장 안에서 진아로서 빛나기 때문에, 이 부라만에 '심장(心藏,마음의 중심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흐리다얌이라는 단어를 흐릿-아얌으로 나누어 보면 그 의미는 사실상 브라만입니다.

진아로서 빛나는 브라만이 모든 존재들의 심장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적절한 증거는, 사람들이 '나'라고 말할 때 누구나 자신의 가슴을 가이킨다는 것입니다.

10.

제자 : 전 우주가 마음의 형상으로 되어 있다면 우주는 하나의 환(幻)이라는 결과가 되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왜 베다에서는 우주의 창조를 이야기 합니까?

스승 : 우주가 환(幻)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베다의 주된 취지는 외관상의 우주가 거짓이라는 것을 보여준 다음, 참된 브라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베다에서 세계창조를 인정하는 것은 이 목적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더욱이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은 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원질(原質), 대지성(大知性),미세원소,(微細元素),조대원소(粗大元素), 세계, 육신 등이 브라만에서 단계적으로 진화해 나간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상근기의 사람들에게는 동시창조(同時創造'나'라는 생각과 세계는 동시에 일어나고 동시에 사라진다는 이론, 이 이론에 따르면 '나'가 있으므로 세계가 있고, '나'가 없으면 세계도 없다) 을 가르칩니다.

즉 이 세계는 자신이 진아인줄 모르는  결함(無知)으로 야기된 우리 자신의 생각들로 인해 마치 하나의 꿈처럼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계창조가 서로 다른 방시으로 기술되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베다의 취지는 어떤 식으로든 우주의 환적(幻的)인 본질을 보여준 다음 브라만의 참된 성품을 가르치려는 데 있음이 분명합니다.

세계가 환(幻)이라는 사실은, 자신의 지복- 성품을 체험하는 형태인 깨달음의 상태에서는 누구나 직접 알 수 있습니다.

11.

제자 : 본성상 끊임없이 변하는 마음이 진아체험을 할 수 있습니까? 

스승 : 사뜨와 구나(순수성)가 마음의 본질이고, 마음은 (본래) 허공처럼 순수하고 오염이 없으므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지(知)의 성품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음이 그 본래적인 (즉, 순수한) 상태에 머물러 있을 때는 '마음'이라는 이름도 없습니다.

그 순수한 마음을 '마음'이라고 불리는 그것으로 오인하는 것은 그릇된 지(知)일 뿐입니다.

순수한 지(知)의 성품을 지닌 (본래는) 순수한 사뜨와의 마음이었던 것이, 무지로 인해 그 지(知)-성품을 잊어버리고 따모 구나 (둔함, 무지각성을 조장하는 브라끄리티의 구성요소,따마스)의 영향 하에서 세계로 변환되고, 라조 구나 (활동성, 정열 등을 조장하는 쁘라끄리띠의 구성요소,라자스)의 영향 하에서 '나는 몸이다.세계는 실재한다' 는 생각을 하며, 결국 애착, 혐오 등을 통해서 선업과 악업을 짓게 됩니다.

또한 잔류인상(原習, 마음에 미세하게 남아 있는 과거 행위의 인상, 마음의 경향성,습기, 혹은 業習)을 통해서 생사에 윤회합니다.

그러나 여러 생 동안 해온 집착없는 행위를 통해 오염(죄)가 없어진 마음은, 참스승으로부터 경전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그 의미를 성찰하며, 마음의 상(相)이 진아의 형상-즉, 브라만에 대한 지속적인 내관(內觀)의 결과인 '나는 브라만이다' 하는 형상 -인 본래적 상태를 얻기 위하여 명상합니다.

이리하여 따모 구나의 측면에서 마음이 세계로 변환되는 일이 없어지고, 라조구나의 측면에서 그것이 그 세계 안에서 헤메고 다니는 일이 없었질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어지면 마음은 미세해지고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순수하지 않고 라자스와 따마스의 영향 아래 있는 마음은, 아주 미세하고 불변인 실재(實在, 즉 진아)를 체험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고운 비단천을 무거운 지렛대로 깁지 못하는 것과 같고, 미세한 대상의 세밀한 부분을 바람에 깜박이는 등불로는 식별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명상에 의해 미세해지고 움직이지 않게 된 순수한 마음 속에서는 진아 -지복(즉, 브라만)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체험도 있을 수 없으므로, 극도로 미세한 상(相)을 갖춘 정화된 마음은, 그 형상 안에(즉, 브라만의 형상 안에) 머무름으로써 진아-지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자신의 진아가 브라만의 성품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또렷히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12.

제자 : 자신의 발현업(發現業, 열매를 맺기 시작한 과거의 업)에 따라서 역활을 수행해야 하는 마음이, 경험적 존재의 상태(생시의 일상 활동 상태) 속에서도 앞에서 말한 진아 체험을 할 수 있습니까?

스승 : 어떤 브라민이 한 연극에서 여러 가지 역활을 할 수 있지만, 자신이 브라만이라는 생각은 그의 마음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여러가지 경험적(일상적) 행위를 하고 있을 때에도 '나는 진아다' 하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나는 몸이다' 하는 그릇된 관념이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마음이 그 상태에서 벗어나면, 즉시 '어! 어! 우리는 몸 따위가 아니다 ! 우리는 누구인가? 하고 탐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마음을 그 (순수한) 상태로 돌려 놓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탐구는 모든 불행을 제거하고 위없는 지복을 성취하는 주된 수단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마음이 그 자신의 상태 안에서 고요해지면, 진아 체험은 아무 장애없이 저절로 일어납니다.

그 다음 부터는 감각적인 쾌락과 고통이 마음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됩니다.

그때는 모든 것(현상)이 마치 꿈처럼 나타날 것이며, 그에 대해 전혀 집착이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전면적인 진아 체험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 진정한 박티(헌신)요, 요가(마음 제어)요, 지(知)이며, 다른 모든 고행입니다. 진인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저작전집, 자아탐구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