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과 자아탐구 수행

2019. 10. 18. 10:31카테고리 없음



금강경은 현대 한국불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의경전이며, 또한 가장 많은 불자들이 독송하고 수지하는 아주 중요한 경전입니다.

그런데 그 금강경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무엇일까요? 

​금강경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문장은 바로 사구계라는 문장입니다.

우선 사구계를 여기 실어서 다시 한 번 봅시다.​ 


<금강경 사구게>

 

1)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이원화 대상)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주체,본래면목)

 

2)응당 색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것이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것이요 (이원화 대상)

응당 머문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어다 (본래면목,무심,무상,무주)


3)만약 색신으로써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원화 대상)

 

4)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같이 관할지어다 (이원화 대상)

 

위의 4 가지 사구계 문단은 금강경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단축해 논 요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의 네 가지 문단을 더욱 간단하게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주객 이원화(主客 二元化)의 상태(중생들마음)에서 나타나는 모든 심리적 현상적 물리적 대상은 실체없는 환상의 그림자임을 알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위의 사구계에는 안 나왔지만, 나라는 아상(我相)은 대상이 아니고 주체라고 착각하지만, 이 아상(我相)의 네 가지상(我相, 人相,衆生相,壽者相)을 버려야 된다고 금강경에서는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즉 중생의 보통마음인 주객(主客,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의 이원화 상태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인데,

이 이원화 차원에서 벗어나려면 객(客,대상)을 실체가 없는 꿈이나 환상같이 보거나 또는 "나"라고 생각하는 보는 가상 주체가 없어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는 자인 나'와 대상"은 항상 같이 한쌍으로 있어야 대상이 나타나는데, 만일 주,객 둘 중에서 주(主)든 객(客)이든 하나가 없어지면 둘다 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왜냐하면 主는 客으로 인해서 생겨났고, 客은 主로 인해서 생겨나는 것이며, 주,객은 서로 의존해서 나타난 것이므로 둘 중에 하나가 사라지면 나머지 것도 같이 사라집니다.

위에 예시한 사구계는 전부 대상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관법(觀法)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러나 위의 사구계보다 금강경에서 더욱 핵심적 문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금강경의 전반에 걸쳐서 자주 나오는 문장이 또 하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면 깨달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이다'라는 문구입니다.

이런 <A라고 말한다면 A가 이니다. 그러므로 A라고 한다>이란 형식의 문장이 다양하게 주제만 바뀌어서 자주 나오는데, 그 회수를 대략 세어보니 40~45회 정도 반복해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형식을 가진 문장의 여러가지 예를 보면 몇 가지 다음과 같이 다양한 내용입니다


불법은 불법이 아니다. 그래서 불법이라고 한다.

법을 얻었다는 것은 법을 얻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법을 얻었다고 하는 것이다.

여래의 삼십이상은 여래의 삼십이상이 아니다. 그래서 여래의 삼십이상이라고 한다.

실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상이 아니다. 그래서 실상이라고 한다.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다. 그래서 제일 바라밀이라고 한다.

인욕바라밀은 인욕바라밀이 아니다. 그래서 인욕바라밀이라고 한다.

마음의 머뭄은 마음의 머뭄이 아니다. 그래서 마음의 머뭄이라고한다.

모든 상은 모든 상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상이라고 한다.

중생이라는 것은 중생이 아니다. 그래서 중생이라고 한다.


몇 가지만 발췌해서 올려 보았는데, 이것을 단 한 가지로 간추린다면,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라고 공통적인 기본문장으로 간추릴 수 있습니다

사실은 위의 사구계보다도 금강경에서 이 한 문장이 더 중심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사구계는 이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라는 내용을 수행하기 위한 예비적인 지식이고, 금강경에서 진짜 가르쳐 줄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가 금강경의 가장 중요한 수행요령이면서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라는 문장을 좀 더 자세히 분석해 봅시다.

앞의 구절인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이것은 주객 이원화 현상세계에서 모든 심리적 현상적 물리적 대상(客또는 塵)을 말합니다. 즉 이 대상은 말로 표현되고 오감으로 감지도 되고 오음(五陰,識)으로 인식되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의식의 이원화된 대상의 그림자들이므로 환(幻)의 그림자처럼 실체가 없습니다.

마치 거울 표면에 대상으로 반사된  그림자(像)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대상들을 "아니다"라고 부정해 버리면, 남어지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때는 대상이 사라지므로 주체도 대상을 따라가서 동시에 같이 사라집니다.

쉽게 말해서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쳐진 자기 상을 바라보다가 거울 속에 있는 자기의 반사상이 자기가 아니고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가 완결된다면, 뒤의 문장인 <그래서 A인 것이다>는 앞에 보이는 허상이 허상인 줄 알면 오로지 남은 것은 진짜 A라는 것입니다. A의 본래부터 있는 진째 본질(본성,본래면목)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이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라는 문장을 <나>로 대치해 보겠습니다.

<라고 생각한다면 나가 아니다. 그래서 인 것이다.>

<나>라는 것은 "나라는 느낌"인데, 이 나라는 느낌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오음(五陰)을 말하며, 오음이 전체 우주만물을 포함한 마음과 몸이 전부 포함된 상태를 "나라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물질과 정신이 "나라는 느낌"안에서 생주이멸하는데. 이것이 바로 "나라는 느낌입니다.

이 색수상행식의 오음(五陰)은 나라는 느낌이지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이것들을 대상화해서 모두 부정해 버리면 마지막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그것이 바로 진짜 나(참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라고 생각한다면 나가 아니다. 그래서 인 것이다.> 이것은 바로 라마나 마하리쉬가 말씀하신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선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자아탐구를 설명하기 전에, 라마나 이전부터 인도 베단타에서 수행해 오던 기존의 자아탐구법이 있었는데, 그 자아탐구법은 모든 대상들(심리적,물질적 현상)을 <이것이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식으로 마음과 감각 안에 나타나는 모든 대상들을 < ~아니다, ~아니다>로 몽땅 부정해버리면서 그것들을 아는, 또는 보는 주시자의 내면으로 주의를 향하는 자아탐구기법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단타 자아탐구법의 기본은 대상을 자꾸 부정함으로써, 그 대상을 타고 넘고 넘어(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뒤로 뒤로) 그것을 보는 배면의 내면 주시자로 깊히 깊히 파고 들어가는 것을 고대의 진아탐구법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단타 수행자들은 이 방법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따라서 금강경에 나오는 <라고 생각한다면 나가 아니다. 그래서 인 것이다.> 문장도 자기가 알고있는 앞의 대상들을 부정하므로써 점점 내면바탕의 깊은 곳으로 향해서 수행자의 주의가 내면을 향해가는 기법으로 결국은 꾸준히 하면 최종 주시자와 합일되어, 앞서 대상이 나타났던 그 본래 성품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도 베단타의 고전적 진아탐구기법과 거의 같은 기법이다.

다시 말하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는 용사와 같이, 감각과 마음의 대상들을 지켜보면서 그 대상들의 시체를  발판 삼아서  내면으로 내면으로 깊히 깊히 들어가 무심(無心) 자체가 되는 기법입니다.

그런데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 고전적 베단타 자아탐구인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형식의 대상을 부정하는 자아탐구 기법을 수동적이고 게을은 자아탐구법이라고 평가해 버리고,  <나는 몸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 하는 식으로 그 부정하는 것에 덧붙혀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으로 에고의 근원을 꼭 붙들고 만 있으라고 권장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내면 물음이 바로 에고의 근원(보는 자,주시자)에게 주의를 고정시키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에고의 근원만 한시도 놓치지 말고 꽉 붙잡고만 있으면 저절로 에고가 사라지게 되고, 그러면 그 자체가 바로 무심, 참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몸도 아니고, 감각기관도 아니고, 생기도 아니고 의식도 아니다>이렇게 부정하던 고대 베단타 진아탐구기법으로는 그냥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해서는 자아탐구를 끝까지 성취하기가 쉽지가 않으니, 그 다음에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기 물음을 더 붙혀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적극적으로 에고근원을 탐구하는  자아탐구법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라마나 마하리쉬는 불과 15세의 소년시절에 손수 실천으로 궁극의 깨달음을 이루어서,인류에게 직접 증험해 보여준 근세기 가장 수숭한 깨달은 성인으로 존경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금강경의  <라고 생각한다면 나가 아니다. 그래서(그러므로) 인 것이다.> 라는 가르침이 고대 베단타의 진아탐구법과 동일하다는 시실은 이제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할 겁니다..

그러면 이것이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와는 어떻게 같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수행을 기초단계부터 간단하게 설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몸과 마음과 생기는 내가 아니다.(이원화대상)

2)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의문,집중성찰)

3) 나는 "내가 있다"는 자각(自覺)이다.(본래면목,본래성품,깨달음)


금강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대응될 수가 있습니다.

1) 나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아니다.(이원화 대상 제거;몸,마음,생기,생각,말,사물,현상)-성찰도 겸함

2) 그래서 (침묵)- 성찰

3) 나인 것이다.(본래면목,본래성품,참나)


 여기에서 금강경의 그에 대응하는 문장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나는 몸과 마음과 생기가 아니다,-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이원화 대상 제거)

2) 이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인가?" -그래서(그러므로) 에고의 근원에 주의를 고정-성찰

3) 나는 "내가 있다"는 자각(自覺)이다. - 나인 것이다. (무심,깨달음,절대자각)


그런데 세밀히 관찰해 보면, 라마나 마하리쉬의 "나는 누구인가?" 자아탐구에서는 중간의 성찰이 가장 중요한 중심수행인데, 금강경에서는 맨 처음 이원화 대상을 부정으로 제거하고는, 중간에 성찰부분이 생략되고, 이어져서 나의 본질을 묘사하는데, 대상을 부정만 하고 바로 본질의 본래면목 임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금강경에서는 성찰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아마도 <그러면>이 성찰을 표현한 것 아닌가 합니다만,

이렇게 비교해 보니깐 대부분의 듣는 사람들은 약간은 이해가 될 듯, 말 듯하기도 하고, 또한 의심이 생겨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수행해서 스스로 증험해 보는 수 밖에 없고 말로써는 묘사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엄청 걸리고 또한 직접 수행으로 언제인가 성공할 수 있다고 기약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열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누구인가?"자아탐구법보다 약간 이해하기 쉬운 기법은 없을까요?

물론  사람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자세에 따라서 달리 보겠지만, 최종 깨달음의 목표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금강경의 그 구절과 자아탐구가 동일하다는 이해를 빨리 가져다 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그러나 이 방법이 깨달음을 빨리 가져다 줄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두 방법이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잇는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해를 한 결과나 이득은 금강경을 하던 자아탐구를 하던 예전보다 훨씬 효율적인 수행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어 여기 간단하게 소개해 봅니다.


얼마 전에도 이 부로그에 한 번 올린 적이 있는데, <나-나 자아탐구 수행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심으로 항상 마음의 주의를 '나라는 느낌'(에고근원,보는 자)에 고정시키는 방법대신에,나 ~ 나 ~ 나 ~ 나 ~, 하고 <나>라는 느낌과 생각을 반복적으로 생각하거나 마음 속으로 반복해서 외면서 "나라는 느낌"의 대상을 주시하는 주시자 쪽으로 마음의 주의를 되돌려 반조해서 비추는 자아탐구 기법인데,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라고 생각한다면 나가 아니다. 그래서(그러므로) 인 것이다.> 라는 문장에 대치하여 응용할 수가 있는 것같습니다.

나 ~나 ~나 ~하고 마음 속으로 나라는 느낌을 상기하면서 그 "나라는 생각과 느낌"을 대상화 합니다.

일단 대상화 하여 반조해서 지켜보면 그것은 말없는 "내가 아니다"가 저절로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생각과 느낌"을 대상화해서 반조해서 되비쳐서 지켜본다면 그것은 이미 "나가 아니다"라는 것이 자동적으로 되어 버립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한 마음의 작용인 것인데, "내가 아니다"라는 부정을 일부러 하지 않아도 <나라는 느낌을 대상화 해서 지켜보는 것>이 <내가 아니다>와 동등합니다. 굳이 "내가 아니다"라는 말과 생각을 할 필요가 없이 저절로 "나"에서 나를 대상으로 분리시켜서 내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라는 문구는 자동으로 ,대상화 해서 지켜보는 것으로 대치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를 대상화 해서 분리시키면 '나가 아니다'가 됩니다.

그리고 나서 배면의 주시자로써 회광반조하면 그 분리시킨 나라는 느낌은 녹아 버립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렇게 대상화 해서 반조하여 지켜보기만 하면 "나라는 생각과 느낌"이 저절로 사라지는데,.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바로 금강경의 <그러므로 나인 것이다>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완전한 무심(無心)상태입니다.

이 나라는 느낌을 대상화 해서 분리시킨후, 반조로 지켜보는 과정으로 나 ~ 하고 한 번 생각하고, 다음에 또 나~ 하면서 대상화 시켜서 분리시켜 지켜보는 수행을 계속하면서 중간에 가끔 "나는 누구인가?" 또는 이"나는 어디서 오는가?" 라는 물음을 하면 나,나 탐구하다가 어느 때에 무기(無記)에 빠지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나~ 할 때에 대상화 하면서 이미 배면의 주시자 쪽으로 되비쳐서 대상을 지켜보는데, 이것을 반조(返照), 또는 회광반조(廻光返照)라고도 하는데, 주시자 입장으로 되돌려서 '나라는 느낌'을 대상화하면, 그 방금 일어난 나라는 느낌은 사라져 버립니다. 다시 나~라고 생각해서 나라는 느낌을 일으킨 다음 그 나라는 느낌의 등을  밟고 주시자 쪽으로 넘어가서 대상을 비추면 대상이 사라집니다. 또 나~라는 느낌을 일으키고 그 느낌을 내면으로 되돌려서 비추어주면 그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면서 마음의 주의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나~나~나~를 반복하는 자아탐구기법은 금강경에서 말한 이른바 <나라고 여기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인 것이다.>이 문장이 <나 ~,나 ~> 할 떼마다 반복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대상에서 항상 뒤로 멀찍이 물러나 분리시킨 뒤에 배면의 주시자 쪽에서 꾸준히 주의를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면의 보이지 않는 주시자는 주시자라고 할만은 어떤 꼬뚜리나 형상이나 느낌이 없으므로 초보자는 이것이 좀 어렵다고나 할까, 그러나 나~나~ 하면서 간혹 이것이 나가 아니다, '나는 누구인가?' 혹은 '이 나라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가?'라고 내면으로 물으면 점점 깊은 침묵의 내면으로 진입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라는 암호 같은 문장을 이해할 수 있는 자아탐구 수행인 것입니다.

그래서 금강경<A라고 생각하면 A가 아니다. 그래서 A인 것이다 >의 문장과 라마나 마하리쉬의 자아탐구수행법이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입니다.

직접 수행해 보신 분들은 아마 직접 증험해 볼 수가 있고 또한 화두선도 방법은 좀 다르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방편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화두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가 있을 때에 또 한번 연구해 보겠습니다.   

                                                        - 무한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