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12. 10:52ㆍ성인들 가르침/아쉬타바크라 기타
제 19장. 진아 속에 머무르니,
자나까 왕이 말했습니다.
저는 진리의 집게로
내 가슴 속의 가장 깊은 곳에 박혀있던
원죄(妄想)의 가시를 뽑아 버렸습니다.(19-1. 277)
진아의 영광스러운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는
법(法,Dharma)이 어디에 있겠으며,
업(業,Karma)이 어디에 있겠으며,
이루어야 할 목표(Artha)가 어디에 있으며,
분별심,이원성과 비이원성이라는 개념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9-2, 278)
진아의 영광스러운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과거,현재, 미래라는 시간관념이 어디에 있겠으며
영원과 공간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9-3, 279)
진아의 영광스런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진아(참나) 또는 비진아(個我)가 어디에 있으며
선과 악이란 것이 어디에 있으며,
불안함이나 불안하지 않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9-4, 280)
진아의 영광스런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생시, 잠, 꿈의 상태가 어디에 있으며,
이 세 상태를 넘어선 네번째 상태(투리아)가 어디에 있으며,
그리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9-5, 281)
진아의 영광스런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가깝다, 멀다 라는 것이 어디에 있으며,
안과 밖이 어디에 있으며,
거친 것과 미세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9-6, 282)
진아의 영광스런 빛 속에 머물러 있는 이에게
삶과 죽음이 어디에 있으며
세상과 세상과의 관계가 어디에 있으며
무기(無記)상태와 삼매(三昧)상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19-7,283)
진아의 영광스런 빛 속에서 쉬고 있는 이는
인생의 세 가지 목표도 아무 쓰잘데 없는 것이고
요가 수행도 필요하지 않으며
진리에 대한 지혜에 대해서도 말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19-8,284)
제 20장. 깨달음의 완성
자나까 왕이 말했습니다.
청정하고 밝은 참나 속에서 충만해 있는 이에게
물질적 오원소와 육체, 감각기관,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따라서 공허함과 절망감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1, 285)
참나 속에서 충만해 있는 이에게
경전과 깨달음에 대한 지식이 뭔 필요가 있으며,
이원성이니 비이원성이니 하고 구별하는 것이 어디 있으며,
감각대상에 대한 무집착 혹은 만족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으며,
또한 욕망을 없애야 된다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2,286)
참나 속에서는 아무런 속성이 없는데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이 어디에 있으며,
'나'와 '내 것'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으며,
속박이나 자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3, 287)
참나 속에서는 오직 하나만 있을 뿐인데,
현재에 지은 업(業)의 과보를 풀기 위하여
살아 있는 동안에 해탈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죽은 후에 해탈하여야 한다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4, 288)
참나 속에서는 지금 여기에 아무도 없는데,
업(業)을 짓는 자와 업보(業報)를 받는 자가 어디에 있으며,
생각의 일어남과 사라짐이 어디에 있으며,
드러나지 않은 진리와 드러난 현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5, 289)
참나 속에서 둘이 없는 비이원성으로 있는 이에게,
세상이 어디에 있으며,
해탈을 염원하며 명상하고 깨닫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으며,
속박 속에 묶여 있는 사람이나 해탈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6, 290)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오직 하나 밖에 없는데,
창조와 소멸이 어디에 있으며,
(구도의)수단과 목적이 어디에 있겠으며
구도자와 구도자의 성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7,291)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순수한 자각 그 자체인데,
아는 자, 아는 과정, 알려지는 대상 또는 앎자체가 어디에 있겠으며,
유(有), 무(無)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20-8, 292)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영원한 고요 그 자체인데,
산란이나 집중이 어디에 있으며,
깨어있다거나 미혹이 어디에 있으며,
즐거움이나 슬픔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9,293)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생각이 전혀 없는 무심(無心) 속에 있는데,
상대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이 어디에 있으며,
행복과 불행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10,294)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영원한 순수함 그 자체인데,
환상(마야)이 어디에 있으며, 세상(삼사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집착, 무욕이 어디에 있으며,
중생과 신(神)이 어디에 있습니까? (20-11, 295)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영원히 불변하고 나눌 수 없는데,
유위행(有爲行)이나 무위행(無爲行)이 어디에 있으며,
해탈이나 속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20-12,296)
참나 속에 머무는 이는 한계가 없는 절대선(善) 그 자체인데,
이것에 대한 가르침이나 경전이 무슨 필요가 있으며,
가르침을 주고 받을 제자와 스승이 어디에 있으며,
이 생(生)에서 성취해야할 지고(至高)의 선(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0-13, 297)
참나 속에 머물고 있는 이에게는,
존재나 비존재가 어디에 있으며,
이원성이나 비이원성이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따라서 더 이상 말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나에게는 일어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20-14. 298)
- 번역 : 무한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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