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22. 09:43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평정심과 고요함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고통이 있어야 깨닫겠다는 충동이 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빤다바 형제들('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아르쥬나 5형제)의 어머니인 꾼띠는 크리슈나에게 자신이 그를 기억할 수 있도록 고통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마하리지 : 그대는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것은 무지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그대 자신이 정체성을 발견하면 그런 질문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대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 다음 질문은 이렇게 되겠지요. '라마와 시따의 결혼을 주관한 사제는 누구였습니까?'라는.
질문자 : 만약 진아지가 적절한 접근방법이라면, 헌신을 할 여지가 어디 있습니까?
마하리지 : 서로 다른 것이 아니지요. 헌신과 지(知)는, 그것은 그대가 진아를 깨달을 때에야 알게 됩니다. '내가 있음'이 있기 때문에 그대가 신에게 헌신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과정이 라마, 끄리슈나,그리스도 등에 대한 헌신에 의해 대체되고, 결국 자기가 자기를 깨달을 때 그것이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면 일체가 자기(진아)일 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질문자 : 영혼이 편안히 안식하라고 기도하는 것도 무슨 도움이 됩니까?
마하리지 : 그것은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죽은 사람에게 영혼이 남아 있어서 그가 평안에 듭니까? 그대가 죽은 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우유 한 사발을 가져다 그 죽은 사람에게 올리면 그가 와서 우유를 마십니까? 그것은 그대에게 만족을 주기 위한 것 뿐입니다. 왜 죽고 나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묻습니까? 오늘 그대는 무엇입니까? 이 환(幻)이 늘 그대를 자신의 진아로부터 떨어져 있게 합니다. 그대는 늘 바깥에 있는 온갖 것에 대해서 묻지만 그대가 무엇인지 발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평생토록 그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녀 왔습니다. 태어난 뒤에는 자신이 아이라고 인식했고, 그 다음에는 소년, 어른, 중년, 노년으로 인식했습니다. 이 정체성들 중 어느 것도 그대와 함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그대가 '나 자신'이라고 집착하는 그 무엇도 결국에는 사라질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참스승(사두구루)이 그대를 인도해야 합니다. 완전히 이해한 사람만이 참스승이라 할 수 있지요. 그 모순을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저는 무엇을 설명하든, 뭔가를 의도합니다.
그대가 이해했다고 말하면 그것은 핀트가 맞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상태에 도달해야 합니다. 또 이러한 이해의 단계를 넘어가서 그 너머의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결론에 도달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그대가 무엇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이해하고 그 안에 안주했건 간에, 그 단계들은 거짓임이 들어났다고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영적인 추구를 해 오는 동안 이해하려고 애썼던 것이 무엇이었던, 그것은 거짓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 것도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이 점을 성찰해 보십시오.
질문자 : 오늘은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저 의식을 지켜보십시오. 저 말썽을 피우고 잘 잡히지 않는 의식, 그것 때문에 그대가 여러 단계를 관찰하게 되는 의식 말입니다.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이 의식은 예전에는 없었고 (언젠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대는 존재할 것이고 저 의식을 지켜 볼 것입니다. 절대자인 그대는 완전한 상태입니다. 그대는 필요와 욕구로 가득 차 있는 그 의식이 아니고, 그 의식 안에 있지도 않습니다.
또 이렇게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헌가, 헌신 등을 통해 얻은 모든 지식은 신에 대한 지식 앞에 바쳐지지만, 나는 그것이 아니다. 나는 저 지식이나 의식의 향기 안에 들지 않는다. 모든 것은 의식 그 자체 앞에 바쳐지지만 나는 그것과 별개이다'라고 말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의식을 포함하여 내 모든 지식을 저 현현된 의식인 브라마에게 바친다'는 것입니다. 창조계 자체가 브라마이고, 희생의 불 역시 브라마이며, 희생을 바치는 자가 곧 브라마입니다.
질문자 : 제가 단 하나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실제이지 몸-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늘 그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하리지 : 그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해 보십시오.
질문자 : 그것은 아주 어렵습니다. 그것이 바로 존재하는 모든 것이고, 우리는 항상 그것입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거기에 이름이나 형상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묘사하기가 무척 힘들다는 것을 아는데,그대가 묘사할 수 없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질문자 : 저는 그냥 '내가 있음'의 현존, 그 존재의 느낌입니다. 그것을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는 저 지각성을 보지 못하지만, 그것은 다른 일체를 봅니다. 저 의식은 모든 것의 안에서, 그리고 도처에서 동일합니다. 확신을 가지고 이것을 깨닫고 나면 그대는 그것을 이용할 수 있습니가?
질문자 : 아뇨, 그것은 전혀 이용할 수 없습니다.
마하리지 :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그대를 똑같은 견인력으로 끌어 당기겠습니까?
질문자 : 아뇨, 전에는 일어나는 모든 일에 신경을 썻지만 지금은 신경 안씁니다.
마하리지 : 세상 일은 늘 그랬던 것과 같이 일어나지만, 그대는 자신에게 아무 이름이나 형상이 없고 그래서 아무 활동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꿈의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세상을 향상시키는 데 흥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 속에서의 행동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명민한 지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 지성으로 세상에 대한 최대의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겠지만, 그 토대가 거짓이기 때문에 그 모두가 아무 쓸모없습니다. 이런 말들의 의미를 귀담아 듣고 나서 그대는 자신의 원래 상태에 도달했습니까? 그대 말입니다.
질문자 : 아뇨.
마하리지 : 그것은 그대가 몸-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질문자 : 우리는 왜 세계를 봅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이 질문을 할 때 그대 자신을 자각하지 않습니까? 그대의 몸과 동일성을 갖지 않습니까?
질문자 : 예 갖습니다.
마하리지 : 그 생각을 포기하십시오.
질문자 :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실은 포기할 것도 없습니다. 그대는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대는 그 이름이 자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질문자 : 그 이름의 기능을 무엇입니까? 제 몸입니까? 제 인격입니까?
마하리지 : 그대에게는 인격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 마음 속에 있습니다.
질문자 : 저에게는 마음이 있고 그 마음은 제가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저에게 말해줍니다. 저는 어떻게 합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하나의 별개의 존재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생각입니다. 생기가 생각을 일으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도 없습니다. 그 기운이 세상 속에서 생각들을 일으키고, 그대는 그것을 보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대가 몸-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 이 주제는 그대의 이해력이 미치지 않는 저 멀리 있습니다. 마음을 넘어서야 합니다.
질문자 : 저는 넘어서고 싶지 않습니다.
마하리지 : 몸-마음과의 동일시 없이 들을 준비가 되었을 때만 여기 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 동일성을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여기 오지 마십시오.
질문자 : 하지만 저는 계속 여기 오고 있는데요.
마하리지 : 좋습니다. 그러면 오십시오. 그러나 이것을 계속 성찰하십시오. 즉, 그대는 그 몸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질문자 : 그것을 늘 생각합니다만 제 생각이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마하리지 : 계속 생각하면서 분별하십시오. 몸이 죽어도 그대는 죽지 않습니다.
질문자 : 그것은 제가 전혀 몰랐던 저 자신의 일부일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그저 제 몸, 제 이름, 제 인격을 알 뿐입니다. 그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마하리지 : 그것을 계속 생각하면서 제가 하는 말을 들으십시오. 그에 대한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연구해 보십시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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