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1. 23. 20:24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왜 마하리지께서는 저희들에게 거친 형상을 무시하라고 하십니까?
마하리지 : 나는 그러지 았았소. 모든 시간, 형상이 나 자신이오. 그러나 변화의 과정은 계속 진행되고 있소. 거친 형상들은 다시 허공으로 변환되면서, 그런 변환들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오.
질문자 : 왜 우리는 그 순환을 가속화하는 것에 대해서 걱정을 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누가 가속한다는 것이오?
질문자 :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마하리지 : 자기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인식범위가 겨우 발가락부터 머리끝까지인데, 누가 그대들에게 걱정하라고 했소?
질문자 : 두 가지의 고통이 있습니다. 세계와 저의 고통입니다.
마하리지 : 그것이 그대의 육체 동일시가 일어나는 바로 그 지점이오.
질문자 : 저의 주변 환경 일체를 무시해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그 특정된 지(知)와 이해의 단계(내가 있다)에 도달하면 그것을 체험하고 즐기게 될 것이오. 그러나 그것을 초월하면 그것을 똥처럼 내버리게 될 것이오. 내가 브라마신의 성질을 이해하여 브라마신이 되었다 해도 브라마신보다 더 수승한 것이 있으면 그것을 추구하고 이것들은 배척할 것이고, 또 그 다음도 그런 식일 갈 것이오. 이런 것이 여러 가지 경지의 표현 내지는 단계라는 것이오. (참)나에게는 어떤 움직임이란 것이 없소. 그러한 동시에 나는 또한 움직임이며, 무한 그 자체인 것이오, 그 움직임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바짝 말려 버릴 수가 없소. 세계의 모든 것이 내 안에서 합일되고, 자리잡고 휴식을 취한다오. 분명히 스승들은 아주 중요하고 가치가 있지만 결국에는 그들도 허공 속에 합일되는 것이오. 그대가 무엇을 끌어안고 무엇에 매달리건 모두 사라질 것이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 자신이 무엇인지를 탐구하시오.
질문자 :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자신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싶으면 그냥 '나'의식을 껴앉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제자와 스승 간의 관계와 비슷하거나 아니면 똑같은 것입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그 지(知)와 하나가 되면 '내가 있다'는 앎이 바로 우주의 스승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오.
질문자 :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선생님에게 사랑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데, 왜냐하면 선생님께서 아주 단순하시면서 정돈된 방식으로 반응하신다고 제가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의식을 제가 껴안기 시작할 때 선생님의 충고가 필요로 했고, 선생님의 지혜에 도움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를 좀 더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마하리지 : 알려지는 모든 것은 바로 그것 자체 안에 들어 있소. 그대가 한 이야기는 맞는 말이오.
질문자 : 저는 전에도 여기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모습과 선생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이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그것이 설사 스승에 대한 생각이라도 말입니다.
마하리지 : 그대가 하는 말은 전적으로 옳소. 스승은 지(知)의 현현인데, 그대도 때가 되면 그렇게 될 것이오.
질문자 : 선생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런데 저는 수행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그저 일들이 오고 가게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마하리지 : 해야 할일은 아무 것도 없소. 그것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고, 그저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오. 해가 비치면 햇살이 자기 갈 곳으로 갈 것이오. 설탕으로 만든 인형이 하나 있소. 그 인형은 설탕일 뿐이오. 마찬가지로 그대가 어떤 스승의 모습을 볼 때 그것은 지(知), 곧 그대의 의식을 대표할 뿐이오. 그 모습은 그 스승의 것일 수도 있고, 주 크리슈나, 그리스도 등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대 자신인 그 지(知)의 현현입니다.
질문자 : 이 과정에서 온갖 종류의 지식, 온갖 유형의 개념들이 - 개인적인 것은 물론 우주적인 것도, 거리킴없이 제 마음에 다가 옵니다. 그것들이 흐르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고, 관계들이 변합니다. 세상에서는 일들이 일어나지만 저는 거기에 정확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하리지 : 한 사람으로서, 한 환(幻)으로서 행위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소. 한 개인으로서의 그대의 개입없이 그대를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적절하고 무위적인 행위가 되는 것이오.
질문자 : 제가 과거에 여행을 하면서 스승들을 찾아 다닐 때, 온갖 부류의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만뜨라 요가, 꾼달리니 요가 등을 가르치는 분들인데. 그런데 그 저변의 실재는 무엇입니까? 구도자는 꾼달리니 각성이라든가 차크라 같은 것들을 꼭 알아야 합니까?
마하리지 : 그대가 존재성에 대한 지(知) 안에서 안정되면, 그대는 다른 모든 지식도 활용할 수 있소.
질문자 : 제가 어디를 가든 이 꾼다리니 지식이 저를 따라다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내버려야 할지 아니면 그냥 바라만 보아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마하리지 : 그런 것은 내버리고 그대의 존재, 그대 자신의 진아에만 매달리시오. 그대의 존재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마시오. 그저 존재하시오. 단 하나의 순수한 지(知)는 진아지인 것이오.
질문자 : 어떤 책에서 가야뜨리 만트라를 봤는데, 제가 그것을 좀 좋아합니다. 어떤 효용이 있습니까?
마하리지 : "내가 있다" 앎 외에는 어떤 것도 사용하지 마시오. 다른 것 일체를 잊어 버리시오. 수많은 가지와 잎이 달린 거대한 나무가 한 그루 있다고 합시다. 그 뿌리로 들어 갈 일이지 가지를 찾지 마시오.
질문자 : 왜 스승들은 늘 제자들에게 어떤 정해진 방식의 전수를 해줍니까?
마하리지 : 그것이 그들의 성품이오. 결혼을 하고 나면 자식들이 늘어나는데, 그것은 부부애의 성품이오. 스승-제자 간의 전수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오.
질문자 : 여기도 전수를 합니까?
마하리지 : 아, 있소. 여러분에게 어떤 글귀를 주고, 깨어 있으면서 그 신성한 말들의 의미로 남아 있으라고 가르쳐주고 있소.
질문자 : 그 소정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제가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합니가?
마하리지 : 그 신성한 문장의 의미가 그대의 진아라는 굳은 확신을 가지기만 하면 되오.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하고, 그대의 주의가 항상 살아있어야 하오.
질문자 : 전수를 해달라고 청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까?
마하리지 : 잘못이라고 할 것은 없소. 그대가 원한다면 그것이 주어질 것이오. 사실 그것은 공식적인 전수이지만, 이런 모든 대담 내용이 바로 전수의 한 과정이오.
질문자 : 그런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저는 공식적인 전수를 받고 싶습니다.
마하리지 : 그것이 주어지겠지요. 그러나 그것과 함께 공식적 전수 이상의 뭔가를 받게 되는 것이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대가 그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오. 그대가 그 말의 의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오. (그 신성한 문장이란) '그대가 있다'는 것 뿐이지 달리 아무 것도 아니오.(199)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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