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29. 20:44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불교관련글
만약 오늘 '나'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는 믿음을 넘어선다면, 당신은 오늘 당장 해탈한다.
만약 내일 넘어선다면 당신은 내일 해탈한다.
그러나 당신이 결코 그 믿음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절대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나'란 단지 한 생각에 불과하다. 그리고 생각들은 그 자체로서 실체, 형태, 빛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성내는 한 생각이 거세게 당신의 마음을 온통 차지해 당신이 누군가와 싸우다 그를 죽여 버리고 싶다고 치자.
그 분노 자체가 칼을 휘두를 것인가? 그 분노가 군대의 선봉에 설 것인가? 그 분노가 불처럼 당신을 태우고 바위처럼 당신을 덮쳐 깔아 뭉개고, 괄괄 흐르는 급류처럼 당신을 떠내려 보낼 힘이 있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각이나 느낌이 다 그렇듯이, 분노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는 몸이나 마음의 어떤 곳에도 위치하지 않는다. 분노는 허공에 부는 바람과 같다.
치밀어 오르는 생각에 매여 그 노예가 되지 말고, 그 생각들의 본질이 텅 비었음을 깨달으라 !
만약 안에서 분노를 제어한다면, 당신은 바깥에 더 이상 단 하나의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리라.
그렇게 하지 못하면, 비록 우주의 모든 존재를 쳐부수더라도 당신의 분노는 여전히 커지기만 할 것이다.
분노가 제멋대로 커 가게 놓아두면 분노를 흩어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가장 참을 수 없는 당신의 적이 바로 분노이기 때문이다.
반면 분노의 본성을 살펴보면 분노는 하늘의 구름처럼 스러질 것이다.
마음은 형태도 빛갈도 실체도 없다. 마음의 텅 빈 면모가 이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은 수없이 다양한 현상을 인식하고 인지할 수 있다.
이것이 마음의 '빛나는' 혹은 알아차리는 면모이다.
이 두 면모, 공성과 빛남이 뗄 수 없이 결합한 것이 이른바 마음의 본래 성품이다.
지금 당장은 당신 마음의 본래 광명이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이 너울이 사라지면 차츰차츰 당신은 깨어난 의식이 환히 빛나는 것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마침내 당신의 생각은 생겨나는 바로 그 순간 물 위에 그린 그림처럼 스러질 것이다.
마음의 본성을 바로 알아 차릴 때, 그것이 이른바 '열반' 즉 고통의 피안이다.
이 본성이 환상에 의해 가려져 있을 때 이것이 이른바 '윤회(삼사라)' 즉 거짓된 외양의 세계이다.
궁극적 실재에 따르면, 윤회와 열반은 절대 본성의 연속과 따로 구분된 적이 한번도 없다.
깨어난 의식이 충만함에 이르렀을 때 마음의 혼란의 장벽은 무너지고 절대의 성채는 결정적으로 정복돼 명상이라는 개념조차 뛰어 넘게 된다.
-딜고 캔첸 린포체-
- 티베트 지혜의 서(담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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