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9. 10:20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법신은 형상(形相)이 없기 때문에 보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보게 된다.
법은 소리가 없기 때문에 듣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듣게 된다.
반야(般若)는 분별적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알지 못함으로써 그것을 알게 된다.
만약 자기가 분별적인 봄으로만 본다고 하면 보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지만,
보았지만 보았다는 생각이 없는 것(분별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본다고 하면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
만약 들은 것만으로 들었다(분별적인 들음)고 하면 듣지 못하는 것이 있지만
들었지만 들었다는 생각이 없는 것(분별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들었다고 하면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만약 자기가 알고 있는 것(분별앎)으로만 안다고 하면 알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고,
알지만 알았다는 생각이 없는 것(분별을 초월한 앎)으로 알았다고 하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자기 스스로를 알 수 없으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사물(대상)을 접촉하여 알게 되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무엇인가를 얻는 것(분별적인 방법)으로 얻음을 삼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며,
얻지 않음으로 얻음(분별을 초월한 방법)을 삼으면 얻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옳은 것만으로 옳다(분별적인 방법)고 생각하면 옳지 못한 것이 있게 되며,
옳지만 옳다는 생각이 없는 것(분별을 초월한 방법)으로 옳음을 삼으면 옳지 못한 것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한 지혜의 문으로 백 가지, 천 가지 지혜의 문으로 들어 간다고 한다.
예컨대 눈앞의 기둥을 보고 기둥이라는 이해를 하는데 그것은 기둥의 겉모습을 보고 기둥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그렇지만 기둥을 기둥이라고 보는 그 마음을 본다면 기둥의 모습이 없는 법신(法身,理法,바탕)인 것이니,
그러므로 기둥을 보는 즉시 바로 기둥의 이법(理法,法身,바탕)을 터득하는 것이다.
다른 일체의 형상과 물질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法身은 無形故로 不見以見之하고 法은 無音聲故로 不聞以聞之하며 波若는 無知故로 不知以知之니라
若以見爲見하면 有所不見이나 若以無見爲見하면 卽無所不見이니라.
若以聞爲聞하면 卽有所不聞이나 若以無聞爲聞하면 卽無所不聞이니라.
若以知爲知하면 有所不知이나 若以無知爲知하면 無所不知니라.
不能自知는 非有知며 對物而知는 非無知로다.
若以得으로 爲得이면 有所不得이며,若以無得으로 爲得하면 無所不得이며,
若以是로 爲是하면 有所不是하며, 若以無是로 爲是하면 無所不是니라.
一智慧門으로 入百千智慧門이니라
見柱하고 作柱解하면 是는 見柱相하고 作柱解이니 覩心是柱라 하면 法無柱相이니
是故로 見柱卽得柱法이니라. 見一切形色도 亦如是니라.
-달마대사의 이입사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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