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6. 09:45ㆍ성인들 가르침/기타 불교관련글
[금강삼매경-36]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쭈었다.
"존자이시여, 생멸여지상이란 무엇입니까?"
[원효론 -36]
이하 부분에 여섯가지 문답이 있는데 인론생론(因論生論)의 방법으로 모든 의심을 해결한다. 위 대목은 그 첫째의 문답에 해당하는데 능은여지상(能隱慮知相)을 설명한다.
[금강 삼매경 - 3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도리(理)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만약 옳고 그름이 있으면 온갖 망념이 발생한다. 그 천만 가지 사려분별이 곧 생멸상이다."
[원효론-37]
이 답변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첫째는 간략하게 답변하고, 둘째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첫째의 간략한 답변에는 두 구절이 있다.
첫째는 미혹의 대상(所迷)을 언급한다.
미혹의 대상의 도리는 마음의 작용이 미치지 못하므로 "도리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고 말한다.
"옳다(可)"는 시(是)이고, "그르다(不)"는 것은 비(非)이다. 도리(理)는 사구를 없애고 모든 시비를 떠나 있어 분별심의 작용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둘째는 미혹의 주체(能迷)를 드러낸다.
"만약 옳고 그름이 있으면 온갖 망념이 발생한다" 는 것은 무명 때문에 평등을 깨치지 못하여 곧 옳고 그름의 분별심이 발생한다. 이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의 염심(染心)이 함께 일어난다. (여섯가지 염심은 執相應染心, 不斷相應染心, 現色不相應染心, 能見心不相應染心, 根本業不相應染心-아래 참고란 참조))
"그 천만 가지 사려분별이 생멸상이다" 는 것은 여섯 가지의 염심에 추(麤-거친 것)와 세(細-미세한 것)가 있어 모두 평등에 어긋나는 것은 그것이 생멸상이기 때문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또한 생멸상을 분별하면 대략 두 가지가 있다. 두 가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추(麤)인데 중생심에 상응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세(細)인데 중생심에 불상응하기 때문이다. 또 추 가운데 추는 범부의 경계이고, 추 가운데 세 및 세 가운데 추는 보살의 경계이며, 세 가운데 세는 곧 부처의 경계이다.
이 두 가지 생멸은 무명의 훈습에 의거하여 존재한다. 소위 인에 의거하고 연에 의거한다. 인에 의거한다는 것은 불각의 뜻이고, 연에 의거한다는 것은 허망하게 일으킨 경계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만약 인도 소멸하면 연도 소멸한다. 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소멸하고 연이 소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소멸한다.
생각해 보면 여기에서 '추가 중생심에 상응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세 가지 상응염이고, '세가 중생심에 불상응한다'는 것은 말하자면 세 가지 불상응염이다. ' 추 가운데 추'는 말하자면 집상응염(執相應染)과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으로 모두 육식에 해당하므로 범부의 경계이다. '추 가운데 세'는 말하자면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과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이다. '세 가운데 세'는 말하지면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이다.
이 세 가지(현색불상응염, 능견심불상응염, 근본업불상응염)는 모두 제8식의 경지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세 가지 세생별(細生滅)은 무명의 바람으로 기동되기 때문에 '인이 소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소멸한다'고 말하고, 이 가운데 세 가지 추생멸(麤生滅)은 경계의 바람으로 기동되기 때문에 '연이 소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소멸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저 <기신론소>에서 서술한 바와 같다.
지금 경문에서 말한 "그 천가지 사려분별"이란 모든 불상응염심의 세분별을 총섭한 것이다. "그 만 가지 사려분별"이란 모든 상응염심의 추분별을 총섭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망념이 기동한 모습이므로 생멸상이라 한다.
-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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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대승기신론에서]
오염된 마음에는 여섯가지가 있다. 여섯가지는 각각 무엇인가?
첫째는 집상응염(執相應染: 執取相과 計名字相에 해당)이다. 성문, 연각의 해탈과 신상응지(信相應地: 十住,十行,十廻向이란 三賢位)에 의지하여 이 번뇌를 멀리 떠날 수가 있다.(六識의 見惑,思惑에 해당, 성문, 연각과 十信 경계를 초월한 것)
둘째는 부단상응염(不斷相應染: 相續相에 해당)이다. 신상응지에 의지하여 방편을 익혀 점차적으로 떠남으로써 십지(十地)의 첫번째 단계인 정심지(淨心地)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이 번뇌를 초월할 수가 있다.(三賢부터 初地까지)
세번째는 분별지상응염(分別智相應染: 智相에 해당)이다. 구계지(具戒地:십지가운데 이지)에 의지하여 점점 떠나 무상방편지(無相方便地)에 이르러야 궁극적으로 이 번뇌를 초월할 수가 있다.(二地부터 七地까지)
네째는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 三細 가운데 現相에 해당)이다. 색자재지(色自在地: 八地)에 의지하여야 능히 이런 오염된 마음을 떠날 수가 있다.
다섯째는 능견심불상응염(能見心不相應染 : 三細의 見相에 해당))이다. 곧 심자재지(心自在地:九地)에 의지하여야 이런 오염된 마음을 멀리 초월할 수가 있다.
여섯째는 근본업불상응염(根本業不相應染: 三細의 無明業相)이다. 보살의 십지가 다하여야 여래의 경지에 들어가 모든 번뇌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 무한진인 부로그 <대승기신론 삼가해외-24>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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