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5. 09:58ㆍ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마술사의 환상, 꿈,
그리고 물에 비친 달처럼
모든 존재와 현상에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
이 모든 것들은 비록 확고하게 존재하지 않지만
마치 물에서 나오는 물거품처럼 우리에게 드러나 보인다.
-궁탕-
우리는 '나'. 그리고 다른 현상들의 본질을 살펴보고 난 지금 그들이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술사가 만들어 낸 환상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가르주나는 <보행왕정론>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그것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게 보인다.
만일 신기루가 진짜 물이라면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왜 그 물이 보이지 않는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신기루처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얼굴의 이미지는 얼굴처럼 보이지만 어째든 실제 얼굴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든 면에서 얼굴이 아닙니다.
마술사는 사람이 상자 속에서 칼에 찔리는 환영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런 환영들은 결코 실제가 아닙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현상들은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든 현상이 '환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들이 '환상처럼'존재한다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이 정말 자신의 얼굴은 아니지만 거울에 비친 상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실제 내 얼굴 모습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물은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실제로 행동할 수도 있고 경험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환영과도 같다는 것은 토끼의 뿔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과는 다릅니다.
[명상해 보기]
1) 거울에 비친 사람을 실제 사람이라고 착각했던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2) 그것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3)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은 원인과 조건에, 그들의 부분에,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4) 이와 같이 사람과 사물은 환상처럼 존재합니다.
- 겉모습과 살제의 차이를 구별하기
나는 어떤 것의 겉모습과 실제 모습 간의 차이를 설명할 때 종종 환영이나 거울, 물에 비친 그림자나 신기루같은 예를 듭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모습이 실제 얼굴이 아님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거울에 비친 모습에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여전히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래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 모습이 실제 얼굴이 아님을 아는 것이 곧 공(空)을 진정으로 깨닫는 것이라면 자신의 몸, 자신의 팔, 자신의 집 같은 다른 대상을 생각했을 때도 즉각 그것에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는 쉽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일체 존재와 현상들은 '환상'이 아니라 '환상같은 것'입니다.
나, 그리고 모든 현상들은 환상같은 것으로 보려면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대상의 거짓된 모습을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존재와 현상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모든 현상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을 찾아 보지만 그런 성질을 찾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현상들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환상과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일체는 거짓되고 현혹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사물의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실제 모습 간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이 영원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괴로움에 이르는 길이 행복에 이르는 길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삭을 과하게 먹는 것은 즐거움의 원인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괴로움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행복을 원하지만 무지 때문에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모릅니다. 괴로움을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움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추구합니다.
마술 쇼를 보는 사람들은 마술사의 속임수에 넘어 갑니다. 그리고 속임수로 인해서 자기가 말이나 코끼리 등을 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겉모습에 현혹되어 어떤 현상의 좋거나 싫은 상태를 부풀리고, 그로 인해 탐욕과 성냄이라는 해로운 마음을 일으켜 업을 쌓게 됩니다. 본질저으로 존재하는 '나'가 아닌 것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나'로 보이고 그 모습을 당연히 받아들입니다.
- 환상처럼 보는 것의 이로움들
사람들과 사물들을 환상처럼 존재하는 것으로 보면 해로운 마음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탐욕이나 성냄같은 해로운 마음은 우리가 어떤 현상에 대해 그것의 실제 모습이 상으로 좋거나 싫은 성질들을 덧붙이는 데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화를 낼 때 우리는 그 사람이 나쁘다는 생각을 강하게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진정이 되고 나서 그 사람을 다시 보면 전에 내가 했던 생각이 아주 많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통찰지혜의 이익은 어떤 대상에 대해 실제 이상으로 좋은 점이나 싫은 점을 덧붙이지 않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대상의 좋거나 싫은 점을 부풀리지 않으면 탐욕과 성냄을 없앨 수 있고 탐욕이나 성냄같은 해로운 마음을 없애면 선한 마음과 선한 행동이 자라날 여지가 커지게 됩니다. 통찰지혜로 현상을 봄으로써 그러한 현상들을 공을 실천하는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자애와 연민을 실천하는 연습을 할 때도 자애와 연민 그 자체나 자애와 연민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점에서 마술사의 환상과도 같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들을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자애와 연민을 충분히 계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환상과도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과 실제 존재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갖게 되면 공에 대한 통찰지혜와 함께 자애와 연민이라는 선한 마음을 키워 나갈 수 있으며, 이 같은 이해를 바탕으로 효과적으로 자비로운 행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명상해 보기]
1) 앞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실체를 지닌 '나'를 마음 속에 떠올립니다.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나가 분명히 있다고 믿었던 순간을 기억하거나 상상하면서 떠올리면 됩니다.
2) 무지로 인해서 '나'에게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확인합니다.
3) 고정된 실체가 있다면 '나'와 몸-마음 결합체는 동일하거나 아니면 별개여야 한다는 점에 대해 특히 집중적으로 명상합니다.
4) '나'와 몸-마음이 동일하거나 아니면 별개라고 주장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고 느끼면서 그런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명상합니다.
'나'와 몸-마음이 동일한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ㅇ. '나'와 몸-마음은 완전히 그리고 모든 면에서 하나여야 합니다.
ㅇ. 그러한 경우에 '나'라는 것이 따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ㅇ. '나의 몸'이나 '나의 머리' 혹은 '나의 마음'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ㅇ. 몸과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ㅇ. 몸과 마음은 복수이기 때문에 '나'도 복수일 것입니다.
ㅇ.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몸과 마음도 하나일 것입니다.
ㅇ. 몸과 마음이 생겨나고 허물어지듯이 '나'도 본질적으로 태어나고 본질적으로 허물어진다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에 선한 행위의 좋은 결과도 불선한 행위의 나쁜 결과도 우리에게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거나 아니면 자기가 하지도 않은 행위의 결과를 받게 됩니다.
'나'와 몸-마음이 별개인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ㅇ. '나'와 몸-마음은 완전히 별개여야만 합니다.
ㅇ.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없어지고 나서도 '나'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ㅇ. '나'는 생겨나고 유지되고 허물어지는 특징을 지니지 않아야 되는데 이는 터무니없습니다.
ㅇ. '나;는 터무니없게도 망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거나 아니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ㅇ, '나'는 터무니 없게도 몸과 마음이 지닌 그 어떤 육체적 정신적 특징도 지니지 못할 것입니다.
5) 그런 '나'를 발견하지 못하면 '나도, 그 어느 누구도 고정된 실체, 즉 자성을 지니지 않는다'라고 확실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6) 잠시동안 자성의 공(空)함에 대해 집중하면서 공의 의미를 깊히 생각합니다.
7)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사람들의 모습을 마음 속에 떠올립니다.
8) 사람들은 연기적 맥락에서 행동을 하고, 업을 쌓고, 그러한 행위의 과보를 받는다는 사실에 대해 깊히 생각합니다.
9) 자성은 공하지만 사람들은 현상적으로 존재한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10) 현상으로 드러난 것과 공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면 거울에 비친 이미지의 예를 생각합니다.
ㅇ. 거울에 비친 얼굴의 이미지는 그것이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눈이나 귀 등을 실제로 갖고 있지 않습니다. 얼굴의 이미지는 얼굴과 거울에 의존해서 생겨나며 얼굴이나 거울이 없으면 그 이미지도 사라집니다.
ㅇ. 이와 비슷하게, 사람은 자성을 지니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위를 하고 업을 쌓고 그 과보를 받고 업과 해로운 마음에 의존하여 다시 태어납니다. 이 두 가지 점은 서로 모순이 아닙니다.
11) 모든 사람과 사물에 있어서 현상으로 드러난 것과 공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음을 보고자 노력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전하는 우리가 명상할 때 꼭 알아야 할 것들(불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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