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36-2)

2018. 10. 5. 09:53성인들 가르침/불교 교리 일반


[이기영 박사의 원효대사 대승기신론소 해설] 


(2) 용(用) 훈습

용훈습이라는 것은 진여의 마음이 중생의 자각을 위한 외적 계기가 되어 훈습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위에서 중생이 깨달아 가는데 그 근본원인이 되는 것은 진여한 마음 자체이고, 그 외적 계기가 되는 것에 제불, 보살 등이 있다고 했다. 그 외적 계기, 즉 외연의 형식으로 훈습하는 것을 진여의 용훈습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원인과 계기를 각각 내적, 외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 원인과 계기는 하나인 마음, 순수하고 영원한 마음의 자체상(自體相)과 용(用)의 두 가지 면이지 절대적으로 무관한 두 개의 실재, 즉 내적인 것과 외저인 것의 차별적 실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불, 보살이라고 말하는 객관적 존재는 참되고 한결같은 영원한 마음의 기능으로서 중생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지 어떤 객관적 실재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이제 본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들어보기로 하자. 먼저 <기신론> 본문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용훈습이 무엇이냐를 밝히고, 중생이 깨닫는데 있어서 외적 계기가 되는 것에는 어떻한 일정한 정형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가변성이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크게 나누면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대승기신론 본문 논-50-1]

진여의 용훈습(진여가 그 기능을 발휘하여 훈습함을 말한다)은 중생이 깨닫도록 하는 외적 계기가 되는 힘이다. 이와 같은 외적 계기에는 무한한 뜻이 있다. 그러나 이를 크게 나누면 두 가지가 된다. 그 하나는 '개별적인 계기(差別緣)'이고 다른 하나는 '보편적 계기(平等緣)'이다.


A. 개별적 계기(差別緣)

중생의 자각을 돕는 외적 계기에 개별적인 것이 있고 보편적인 것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개별적인 계기(差別緣)란 사람들 자신의 내면적 준비, 내적 수용자세에 따라 결정되는 계기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며, 보편저인 계기(平等緣)란 사람들 자신의 아직 불완전한 정신자세여하에 따라 차별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위대하고 완전한 능력의 주인공인 진여의 마음, 즉 지혜이자 대자비인 각(覺) 그 자체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선의의 배려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계기를 말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할 것없이 다 이 두 가지 외적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외적인 것이 아닌 진여의 용훈습을 받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착하고 순수할수록 이 사회에는 그와 같은 진여의 용훈습의 면모가 두드러지게 드러날 것이다.

이제 본문의 설명을 들어 보자.


[대승기신론 50-2]

개별적인 계기란 다음과 같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사람이 처음에 부처님 또는 보살 등 때문에 참되게 살아보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진리를 구해 나서서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보고 생각하는 동안에 나타나는 계기이다. 사람이 착한 의향을 발하고 열심히 노력하노라면, 어떤 때는 권속 부모, 친지가 되고, 또 어떤 때는 심부름하는 사람이 되고, 또 어떤 때에는 지우(知友)가 되고, 혹은 원수가 되어 심로를 끼치고, 또 어떤 때에는 보살이 되어서 좋은 일(① 물건이나 위로를 베풀어주다.=布施, ②자비롭게  말하다=愛語. ③ 도움되는 일을 하다=利行. ④ 힘을 합해 같이 일하다= 同事)을 해 주는 등 그 사람이 무엇을 하건 모든 일을 통해 좋은 계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진여의 본체는 자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작용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착한 마음씨가 더욱 늘어나게 하고, 그들이 보거나 듣기만 해도 도움을 얻게끔 하는 까닭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여한 마음의 작용은 그 결과를 속히 나타나게 하는 경우가 있고, 늦게 나타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가 속히 나타나는 계기가 되는 것을 '가까운 계기'(近緣)라 하고, 늦게 나타나는 계기가 되는 것을 '먼 계기(遠緣)'라고 한다. 또 이것을 다른 의미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착한 마음씨를 증장시키는 계기'(增長緣行)이고, 또 다른 하나는 '참된 인생행로에 들어서게끔 인도하는 계기'(修道緣)이다.


원효는 이와 같이 사람따라 달리 나타나는 좋은 계기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분별사식 훈습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원효는 또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착한 마음씨를 증장시키는 계기'라고 할 때의 '좋은 일'(行)은 육바라밀다(六波羅蜜多, 여섯가지 완덕)를 말한다고 했다.

또 '참된 인생행로에 들어서게끔 인도하는 계기'라고 할 때 어떻게 인도하느냐 하면, 세 가지 종류의 지혜를 다 일으킴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세 가지 지혜란 ① 문혜(聞慧), ②思慧(사혜) ③ 修慧(수혜)의 셋을 말하며, 그것은 각각 ① 스승의 교훈을 그대로 닦아 가는 것, ② 듣고 배운 바를 자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서 옳다고 믿게 되는 지혜,  그렇게 해서 얻어진 지혜를 실천을 통해 체득해 가는 지혜를 의미한다. 사람으로 하여금 진리의 소리를 듣게 하고 나아가 그것에 맛들이게 하고, 그것을 확신하게 하고, 마침내 그 사람의 전생활이 지혜로워지도록 하는 계기가 밖에서 오는 것 같이 나타나지만, 사실은 그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면 끝내 그 계기가 나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B. 보편적인 계기(平等緣)

불교에서 쓰는 '평등'이란 말이 오늘날 현대인이 쓰는 '평등'과 다르고 그보다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우리는 과거의 낱말이 지니고 있던 풍부하고 심오한 의미가 점차 천박하고 피상적인 것으로 타락해 온 많은 예를 알고 있지만, 이 말도 그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기신론>을 영역한 스즈끼 다이세쯔는 차별연(差別緣)을 '개별적인 이유'라고 번역하고, 평등연(平等緣)을 '보편적인 이유'라고 옮긴바 있다. '보편적'이란 말은 '아무런 이기주의적 필요도 조건도 없다는 뜻', 즉 '자연'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특징과 '항상 모든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는 자비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특징을 나타낸다.

프랑스 혁명의 평등정신이 이처럼 보편적인 것이었더라면, 근세 유럽의 역사는 보다 더 평화로웠을 것이고,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평등의 원리가 이러한 동체의식에서 우러나온 협동단결의 이상으로 이해되고 실천되어 간다면,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 혼란은 그 악마적 위력을 부리지 못하고 말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본문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자.


[대승기신론 50-3]

진여의 마음이 훈습하여 보편적 계기(平等緣)를 이룩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모든 각자(覺者), 깨달은 마음을 지닌 자들- 그들이 보살이건 불이건- 그들은 모두 일체 중생을 도탄의 고통 속에서 구제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을 스스로의 본원(本願)으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없이, 또 아무런 필요도 없이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일체의 중생을 잠시도 버리는 일이 없다. 중생과 더불어 하나의 몸을 이룬다는 지혜로운 자각이 있으므로 보는 바, 듣는 바에 따라 일을 한다. 이른바 중생이란 존재들은 그 삼매의 힘으로 어디, 어느 때에든지 그 각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원효는 이 마지막 구절에 대해 특히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원효소 50]

'평등하게 각자(覺者)의 모습을 본다'고 한 까닭은 십해(十解,十住) 이상의 구도자들은 각자의 완전한 인간성이 한없이 아름다운 특징들을 지니고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음을 보는 까닭이다. 또 '삼매의 힘으로'라고 한 까닭은 만약 마음이 산란하면 그와 같은 훌륭한 모습을 도저히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본문은 진여의 자체상훈습과 용훈습을 통해서 아직 다 되지 않은 채 일으키는 훈습과 이미 다 되어 일으키는 훈습의 두 가지 구분이 가능하며, 또 유전 연기를 낳는 훈습(染法薰習)은 끝이 있으나 환멸연기를 낳는 훈습(淨法薰習)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 이기영 박사 저 <원효사상 세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