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인 '나'는 모든 현상계 넘어에 있다

2018. 8. 25. 09:39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저를 계속 의식 안에서 게임을 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이었다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제가 의식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일들은 어떤 식으로든 일어나지만, 그것은 제 욕망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주가 그일들을 밀어내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마하리지 : 그것을 볼 때 그대는 의식 안에 있었소?

질문자 : 최소한 제가 그 밖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하나의 꿈으로 봅니다.

마하리지 : 그럴 때는 자신이 그 안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모르오. 그냥 지켜보고 있을 뿐이지.

질문자 : 몸과의 동일시가 남아 있는 한, 저에게는 그 주시자가 어떤 식으로든 그 꿈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마하리지 : 그렇소, 깨어있지는 않소, 그것은 일종의 꿈이오.

질문자 : 그것은 제가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홀연히 자각하는, 꿈과 생시사이의 순간들 같습니다. 그 꿈 안에서 깨어나는 사람의 연속성에는 아무 단절이 없습니다. 저는 꿈 속에서 깨어 있습니다.

마하리지 : 그대가 보는 것은 일체가 꿈이오. 그 보는 것이 바로 그대인 '나'인 것이오. 일체를 보는 '나'가 저 의식을 통해서 꿈 전체를 보는 것이오.  

질문자 : 마음이 불안하게 움직일 때는 진언이 효력이 있습니까?

마하리지 : 예,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오, 요동하는 마음을 다잡으라고 말이오.

질문자 : 수행을 할 때 '내가 있다'는 의식이 되는 것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바로 지금 제가 발견하고 있습니다. 저는 '내가 있다'를 명상할 수 있지만, '내가 있다'라는 느낌은 없습니다. 그것은 그냥 뭔가에 대해 외부적인 것 같습니다.

마하리지 : '내가 있다'는 느낌에서 분리되어 있다고 느낄 때,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무엇 혹은 누군가가 있지 않소?​ 


질문자 : 아뇨, 그것은 하나의 감각일 뿐입니다.


마하리지 : 알아내시오. 그대가 모르는 가운데 분리되어 있는지.


질문자 : 그것은 어떤 관찰같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하리지 :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태어나고자 한 우리 자신의 의지때문이오? 아니면 모르는 가운데 이 앎이 우리에게 나타났소?


질문자 : 모르는 가운데입니다.


마하리지 : 이 존재성은 그대가 모르는 사이에 그대에게 다가왔지만, 그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것을 사용하고 있소. 나는 그 개인성을 사형에 처하고 싶소. 내가 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이 아니겠소?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오. 그 개인성이 사라져야만 하오. 빠라브라만은 가장 순수한 정의이며 진리인 것이오.

우리는 오늘 여기서 우리 자신의 의지 때문에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우리는 자신의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소. 그대는 하루동안이나 혹은 한 달 동안이라도 삼매에 들 수도 있겠지만 정상으로 돌아오면 의식이 달라지지 않소. 그대는 삼매를 성취했다고 만족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자는 이미 있는 것이지, 그대가 선택해서 온 것이 아니요.


질문자 : '내가 있음'을 명상하는 중에도 삼매상태처럼 몸의식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능합니까?


마하리지 : 삼매 중에는 '내가 있다'는 앎이 정지해 있소.


질문자 : 그러나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습니까?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나요?


마하리지 : 그렇소, 아무 것도 잃어버리지 않소.


질문자 : 이것은 '내가 있다'와 같은 것입니까? 이 의지 말입니다.


마하리지 : 그것이 바로 '내가 있음'이오. 그것은 저절로 나타나고, 그런 다음 의지에 의해서 사용되는 것이오.

그런데 주시하기는 의식 이전의 원리인 절대자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오. 그러나 절대자는 의식의 도움을 받아 지켜보는 것이오. 꿈 속에서는 육체적인 '나'가 없지만 그래도 그대는 보는 것이오. 일체의 바탕이 그 자각이라오.

질문자 : 절대자는 자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나요?

마하리지 : 의식 이전의 그 상태는 항상 있고, 저절로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의식의 성질이오.

스승은 보통 그 사람의 수준에 맞추어 설명하는데,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보통 해체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일체가 의식 안에 합일된다고 말하고, 의식 이전의 원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소. 왜냐하면 한꺼번에 다 이해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질문자 : 진인에게는 해가 지고 난 뒤에 다른 새벽이 있습니까? 다른 의식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이 진인의 원리에는 뜨고 짐이 없소. 그대의 말로 진인을 조건 지을 수 없소. 그는 절대자이니까요.

질문자 : 의식없는 자각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절대자, 즉 자각은 의식을 지탱하는 원리인 것이오.

질문자 : 그러나 무엇에 대한 자각인가요? 자각할 대상이 없이 자각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빠라브라만 상태에서는 (이원적인)지각성의 성질이 존재하지 않고, 현현된 의식과 같은 어떤한 장식이나 형상도 그것은 전혀 없소. 빠라브라만 상태는 자기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이 현상계도 지니고 있지 않소. 우주가 해체되어도 저 절대자는 영향을 받지 않소. 그것은 그냥 있소. 그 원리가 지금 의식의 도움을 받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오. 의식의 영역 안에서 이 나툼이 계속 진행되고 있소.


질문자 : 저는 섬에서 살았던 적이 있는데, 바다를 자주 바라 보았습니다. 파도들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저는 그것이 하나의 개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파도들의 춤과 제가 세계 안에서 보는 것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저의 개인성은 하나의 찰나적인 섬광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저의 깨달음은 어떤 경험에 대한 하나의 묘사로만 머물러 있습니다.

마하리지 : 절대자는 현현된 의식을 넘어서 있소.  현상세계는 동적인 생명력, 저 의식의 바다가 벌리고 있는 유희인 것이오.

질문자 : 파도가 고요할 때는 그 원리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마하리지 : 절대자는 이 바다 의식의 원리와 아무 관련이 없지만, 절대자가 없이는 그것들이 있을 수 없소. 절대자가 그 원리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담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