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오방편(大乘五方便)-8

2018. 8. 17. 10:24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十一]

사바세계 석가여래는 음성으로 불사(佛事)하니 이근(耳根)이 혜문(慧門)이 되고,

광명세계 등명여래는 광명으로 불사(佛事)하니 안근(眼根)이 혜문(慧門)이 되며,

향적세계 향적여래는 여러 향으로 불사(佛事)하니 비근(鼻根)이 혜문이 되고,

감로세계 감로여래는 감로의 맛으로 불사(佛事)하니 설근(舌根)이 혜문(慧門)이 되며,

중화(衆花)세계 화광여래는 중화(衆花)로 불사(佛事)하니 의근(意根)이 혜문(慧門)이 된다.

이 방편은 능히 혜(慧)를 발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능히 올바른 선정을 얻게 된다.

問 : " 무엇이 삿된 선정이고, 올바른 선정입니까?"

답 : " 2인승은 6식을 멸하고, 공적 열반을 증(證)하니 이것이 삿된 선정이며,

보살은 6근이 본래 부동함을 알아 소리가 있어도, 소리가 없어도, 소리가 사라져가도 항상 들으니

이것이 올바른 선정이다.

[十二]

問 : "누가 능히 지혜문을 열 수 있습니까?"

答 : "선지식이 능히 열 수 있다. 선지식의 설함을 듣고 6근이 본래 부동함을 깨달아, 소리가 있든, 소리가 없든,

소리가 사라져가든 항상 듣고, 항상 부동의 수행에 수순한다. 이를 이름하여 외선지식(外善知識)이 능히 지혜문을 여는 것이라 한다."

問 : "무엇이 내선지식(內善知識)입니까?

答 : "지혜가 그것이다. 지(知)함이 지(智)이고, 식(識)이 혜(慧)이다. 의(意,여기서는 모든 識)를 전변하여 지혜를 이루니 이것이 지혜를 여는 문이고, 바로 지혜를 얻는다. 이를 이름하여 내선지식(內善知識)이 능히 지혜문을 여는 것이라 한다.

[十三]

무엇이 삿된 선정이고 올바른 선정인가. 2승인에게는 선정은 있고 지혜가 없으니 삿됨(邪)이라 하고,

보살은 선정이 있고 지혜도 있으니 올바름(正)이라 한다.

問 :  "무엇이 대소(大小)의 열반입니까?

答 : "열반은 서국(인도)의 범어인데 이 땅에서 번역하여 원적(圓寂)이라 하였다.

무엇이 원적인가. 지혜로 적멸을 얻으니 이것이 대 열반이다.

보리는 서국의 범어이고, 이 땅에서 번역하여 지견(知見)이라 한다. 지견(知見)은 지혜가(家)에서 쓰는 것이고, 보리는 열반가에서 쓴다. 지견(知見)은 용(用)이고, 지혜는 체(體)이다.

보리는 용(用)이고, 열반은 체(體)이다. 체와 용이 분명하다.

경에서 이르길, <보리를 심신(心身)으로 얻을 수 없다.

적멸이 보리니 모든 상을 멸한 까닭이다.

問 :  "왜 몸과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까?"

答 : "마음이 부동하여 상념을 떠나 일어남이 없으니 보리를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 색(色, 물질)이 부동하여 상념을 떠나 일어남이 없으니 보리를 몸으로 얻을 수 없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부동하니 바로 적멸이며, 보리이고, 모든 상을 멸한 까닭이다. 또 몸과 마음이 모두 상념을 떠났으니 바로 이것이 원만보리이다."

問 :  "(6根과 6塵의 12入이) 만나지 않음(不會)이 보리이니, 제입(諸入, 12入,12處)이 만나지 않은 까닭이며, 이것이 몸과 마음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이라고 한 것은 왜 그러합니까?

答 :  "육근이 부동하니 제입(諸入)이 만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원만보리이다. 또한 근(根, 감각기관)과 진(塵, 감각대상,색성향미촉법)이 오염되지 않으니 일체처에서 (경계를) 만남이 없다."

問 :  " 장애가 보리이니 모든 순(順, 법에 수순하는 수행)을 장애하는 까닭이라고 한 것은 왜 그러합니까?"

答 :  "육근이 부동하니 모든 순(順,법이 수순하는 수행)이 생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원만보리이다."

問 :  " 또한 경계가 들어와도 (오염되지 않고)씻어낼 수 있습니까?"

答 : "올바른 용심(用心)은 (마음에 경계가) 들어옴을 봄이 없고, 나감을 봄도 없다. 들어옴을 보는 것도 동(動)이고, 출입이 있는 것도 동(動)이다. 들어옴이 없음을 보는 것도 동(動)이니, 들어옴도 없고, 들어오지 않음도 없음이 부동(不動)이다"

[역자해설]

<장애가 보리이니 모든 순(順, 법에 수순하는 수행)을 장애하는 까닭>이라 한 것은 법에 수순하여 행하는 것도 동심(動心)을 초래하는 것이라 이러한 행도 막는 것이 곧 보리가 된다는 것이다. 어떠한 법상에 따라 마음을 움직이면 그 또한 잘못이니, 처음 수행시에는 능지(能智, 法相에 의지한 觀行)가 필요하지만 궁극에는 그 능지(能智)도 없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초기 선종의 여러 법문에 불관(不觀), 절관(絶觀)의 선리(禪理), 그리고 <사익범천소문경(思益梵天所問經)>에 일체의 행을 불행(不行)하는 법문을 개시(開示)하였다.  ​

                                                     -박건주님 역주 대승오방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