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1. 11:10ㆍ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지식인들이여 ! 이제까지 배워온 모든 것들을 버려 버리고 이를 가지고 간(看)하려 하지 마십시오.
지식인들이여 ! 선(禪)을 배운지 5년, 10년, 20년이 된 분들은 지금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고 괴이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버리라고 한 것은 단지 망심을 버리라는 것이지, 그 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버리라는 것이) 정법이라면 시방제불(十方諸佛)이 와서 제거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지금의 선지식이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컨대 사람이 허공 중에서 행주좌와 하되 허공을 떠나지 않는 일과 같습니다.
위 없는 보리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베푸는 행을 운용함도 모두 법계를 떠나지 않습니다.
경에서 이르길 "단지 그 병을 제거할 뿐, 그 법을 제거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지식인들이여 !자세히 들으시오 ! 망심(妄心)에 대해 설하겠습니다.
무엇이 망심인가? 여러분들이 이제 여기에 왔는데 재색(財色)과 남녀 등을 탐애하는 것과 원림과 가옥을 생각하는 이러한 것이 거친 망념이니 응당 이러한 마음이 없어져야 합니다.
미세한 망심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잘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미세한 망념인가?
마음으로 보리를 듣고, 마음을 일으켜 보리를 취하며, 열반을 설함을 듣고 열반을 취하며, 공(空)을 설함을 듣고 마음을 일으켜 공을 취하며, 청정을 설함을 듣고 마음을 일으켜 청정을 취하며, 선정을 설함을 듣고 마음을 일으켜 선정을 취하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망심이고, 또한 법에 묶임(法縛)이며, 또한 법견(法見,法相)입니다.
만약 이와 같이 마음을 쓴다면 (마음을 일으켜 법상을 취한다면)해탈할 수 없을 것이며, 본연의 적정심(寂靜心)이 아닌 것입니다. 열반에 머무는 것을 지으면 열반에 묶이고, 청정에 머무름을 지으면 청정에 묶이고, 공에 머무름을 지으면 공에 묶이며, 선정에 머무름을 지으면 청정에 묶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써서 짓는 것은 모두 보리도를 장애하는 것입니다.
<반야경(금강반냐바라밀경)>에 이르길, <만약 마음에서 상을 취한다면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일체의 모든 상에서 떠남을 바로 제불(諸佛)이라 한다>고 하였으며, 법상(法相)에서 떠남이라 합니다.
[유마경]에 이르길, < 무엇이 병의 근본인가? 반연(攀緣, 마음이 대상을 향하여 끌리어 감, 취착함)하는 것이다. 어떻게 반연을 끊는가? 얻을 바 없다는 법으로써 끊는다. 얻을 바가 없기 때문에 병의 근본(實體)이 없는 것이다.>고 하였다. 도를 배우면서 미세한 망심을 모른다면 어떻게 생사의 대해(大海)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지식인들이여 ! 각자 마음으로 자세히 듣고, 먼저 각자 본연의 청정심을 잘 살펴보십시오.
보리에 대해 설함을 듣고 생각을 지어 보리를 취하지 말것이며, 열반에 대해 설함을 듣고 , 생각을 지어 열반을 취하려 하지 말며, 청정에 대해 설함을 듣고 생각을 지어 청정을 치하지 말고, 공에 대해 설함을 듣고 생각을 지어 공을 취하지 말고, 선정에 대해 설함을 듣고 생각을 지어 청정을 취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용심(用心)하면 바로 적정열반이 됩니다. 경(대반열반경)에서 이르되, <번뇌를 끊음을 열반이라 하지 아니하고, 번뇌가 生하지 않아야 열반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비유컨대 새가 공중을 나르다가 공중에 머무른다면 반드시 떨어지는 우환이 있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테면 도를 배우는 이가 무주심(無住心, 머무르지 않는 마음)을 닦으면서 마음이 법(法)에 머물러 버린다면 이는 바로 주착(住着)함이니 해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경(유마힐소설경)에서 이르길, < 그 밖의 다른 방법이 없나니 오직 공병(空病)만이 있을 뿐, 공병 또한 공이고, 공이라하는 바도 또한 공이다>라 하였고, 경(유마힐소설경)에서 이르길, <항상 무념을 행함이 실상(實相) 지혜행이나니, 만약 법계로써 법계를 증(證)하려는 이가 있다면 이는 바로 증상만이다>고 하였습니다.
지식인들이여 ! 일체의 선악에 대해 모두 사량하지 말것이며, 마음을 집중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고, 또한 마음으로 마음을 직시하지도 말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은 직시(直視)에 머무름에 떨어지는 것이어서 옳지 않은 행용(行用)입니다.
눈을 아래로 내려뜨리지 말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은 곧 눈에 머무름이 떨어지는 것이어서 잘못된 행용입니다.
생각을 지어서(作意)마음을 다스리는 행을 하지 말 것이며, 또한 다시는 멀리 바라 보거나 가까이 바라보는 행도 하지 말아야 하나니 모두 옳지 않은 행용입니다
경에서 이르길, <관(觀)함이 없는 것이 보리이니 생각함(憶念)이 없는 까닭이다>고 하였습니다.
(관함이 없으면) 곧 그대로가 자성의 공적심(空寂心)인 것입니다.
-하택신회 선사 어록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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