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감촉을 지각한다는 것은 곧 본각의 지혜를 입증하는 것이다

2018. 3. 30. 09:35성인들 가르침/초기선종법문



질문 : 경에서 이르길, "여러 감촉을 지각함이 지(智)가 증(證)함과 같다"고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답변 : 여러 감촉을 지각한다는 것은 본성이 부동(不動)함을 말해 줍니다.

만약 그 지각함이 (지각의 性이 如一하지 아니하고) 다르게 된다면, 즉 이는 동(動)이게 됩니다.

<譯註 : 지각하는 性은 항상 如一 無心해서 달라짐이 없으니 부동이다. 마치 거울 속의 사람이 무심한 것과 같다.

거울이 무심하고, 그 속의 사람도 무심하다. (만약  - - -動이게 된다)는 사실이 아닌 예를 말한 것이다.>

이를 테면 거울 가운데 사람이 갖가지로 거동하고 있으나 무심(無心)인 것과 같습니다.

지금 여러 감촉을 지각함도 이와 같습니다.

지(智)가 증(證)함이란  본각(本覺)의 지(智)입니다.

지금 지(智)가 증(證)함이라 한 것은 바로 본각의 지(智)가 능히 지(知)하는 까닭에 지증(智證)이라 한 것입니다.


소의 뿔을 빌려 비유하여 뜻을 세우겠습니다.

뿔이 바로 있을 때에는 여의(如意,본각)라 할 수 없습니다.

바로 如意하게 된 때는 뿔이라 이름 할 수 없습니다.

<譯註 : 소의 뿔은 곧 지각되는 명(名)과 의(義)이다. 名(이름)과 義(의미)가 있는 이상 아직 식(識)의 분별세계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소의 뿔 등 일체의 이름과 뜻이 소멸되었을 때 여의(如意;자유자재)하게 된다>

그 뿔은 비록 여의성(如意性)을 함축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뿔이 소멸되지 않은 때에는 여의(如意)라 칭할 수 없습니다. 여의(如意)가 비록 뿔로 인하여 성취된 것이지만 '성취됨' 또한 '뿔'이라 칭할 수 없습니다.


경에서 이르길, '(名과義의 분별) 지각이 멸하니 도(道)가 성취된다. '고 하였습니다. 그 뜻이 이와 같습니다.

만약 견(見)함이 두루하다면 각조(覺照)도 또한 세워지지 않습니다.

지금 覺照가 있다함은 견해가 두루함에 의거해서 논한 것입니다.

만약 청정한 체(體)에 의거한다면 어디에 각(覺)이 있겠습니까?

또한 어디에 조(照)함이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세간의 사물을 있는 것이라 여기고, 나는 허공을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러한가?

세간의 사물은 因緣 화합으로 있게 된 것이고, 因緣(으로 모인 것들)이 흩어지면 없게 됩니다.

불을 만나면 타고, 물을 만나면 빠집니다. 얼마 안 있어 파괴되니  이 때문에 무(無)라고 합니다.

허공은 불이 태울 수 없고, 물이 빠지게 할 수 없으며, 파괴할 수 없고, 흩어질 수 없으니, 이 때문에 '상(常)'이라 칭합니다. 까닭에 유(有)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하택신회선사 어록 중에서 발췌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