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3. 23. 09:41ㆍ성인들 가르침/시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밧줄이 뱀이라는 착각이 사라지면 밧줄은 원래부터 있는 그대로 있다.
"뱀'의 환이 사라지면 밧줄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고, 명백히 밧줄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간적 삶에 개입하게 되는 원인은 무지, 곧 에고인데, 그 에고가 사라지면 브라만이 이미 충만하게 존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비록 세계가 참된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빠라마뜨만으로만 보아야 한다.
영적인 공부는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깨달음에 대한 말들을 열심히 들을 지 모르지만, 그 앎을 의식 속으로 가져가는 것은 여러분의 정서와 열정이다. 예를 들어 브라만은 영적으로 의심할 바 없이 왕이지만. 실제로 현실에서의 왕은 왕으로써 임무를 수행할 때는 매우 예리하게 깨어있으면서 왕답게 행동해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겉모습 안에는 브라만 외에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은 브라만일 뿐이다'라는 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깨달은 성자의 제자는 많은 사람들이 이루지 못하는 것을 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성취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인식하고자 하던 그것이 결국은 된다.
수십억 번 환생한 뒤에야 성취되는 그 광대무변함이 우리 자신의 성품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결코 남들의 좋은 성질이나 나쁜 성질을 찾아내려고 하면 안된다.
그런 모든 경박한 활동을 놓아 버려야 한다.
개아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은 다 나쁘고, 나만이 좋다'고 생각한다.
개아는 모든 사람과 모든 일에서 남의 흠을 헐뜯거나 약점을 찾아내려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수행에서는 이런 좋지 못한 성질이 우리를 더 높은 상태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남들을 비판하는 소리가 들릴 때는 귀를 닫아라.
남들의 작은 미덕을 크게 보는 사람이 참으로 위대하다.
더 좋은 것은, 여러분을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적의도 품지 않은 채 그를 평가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다.
남들에 대한 비판을 듣는 것은 어떤 경우에는 기분 좋은 일처럼 보이기는 한다.
에고에게는, 남들에 대해서 험담하는 것을 듣는 것이 그렇게도 고소하고 재미가 있는가?
반면에 지혜로운 사람은, 남들에 대한 쑥덕공론을 듣지 않는 것이 감로보다 더 달콤하다.
영적인 일을 걷는 구도자는 남의 흠을 허뜯거나 남에 대한 뒷공론에 몰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마음 속에 남들에 대한 악의를 결코 품지 말아야 한다.
구도자의 마음이 순수하지 않으면 모든 존재 안의 전능자를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브라만이다'라는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누구에 대한 비판이나 악의의 어떤 자취도 결코 없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은 남의 사람이라는 구별을 한다면 결코 성자가 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은 늘 모든 존재가 자기 자신의 진아이고, 그들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야 한다.
세상사람들은 현자가 다른 사람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보는지 여부를 알아내려고 늘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다.
사람들은 일부러 그들을 괴롭히기도 하는데, 그것은 그들을 시험해 볼 수도 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말썽꾼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빠라마뜨만 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면, 일체 아무 문제가 없다. '여러분'이 없는데 누가 누구를 비난하겠는가? 이것을 알면 모든 수수께끼가 풀린다.
진아지를 갖기를 원하는 구도자들은 뉴스 따위를 보아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우리의 영적인 공부를 분명히 방해하기 때문이다.
삶의 궁극적인 가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이 순수하고 일념이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일념일 때만 실재 속으로 합일 할 수가 있다.
우리가 실재에 접근할 때에는 의식의 주의를 끄는 다른 어떤 것도 있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뉴스나 세상사에 대한 다른 모든 구경꺼리를 치워버려야 한다.
구도자는 늘 스승의 가르침을 (성찰의 막대기로) 거듭거듭 저으면서 지고아 바라마뜨만에 대해서만 명상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마음이 동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왜 세상사를 가지고 더 많은 번뇌를 불러들일 생각을 하는가?
구도자가 진아에 대해 명상 할 때는 꾸준히 그리고 명확하게 김각기관들의 욕구충족을 피하고, 그 대신 초점을 다른 방향으로, 내면의 빠라마뜨만 쪽으로 돌려야 한다.
요컨대 일상적인 세상사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은 쓸데없는 낭비인 것이다.
거기서는 어떤 유익한 것도 얻을 수가 없다.
헌신과 신에 대한 찬송이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신을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활동이다.
주 크리슈나는 자신도 이 수행을 했기 때문에 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모든의 신이 된 것은, 단 하나의 진아인 브라만이 모든 존재 안에 거주하고 있다는 깨달음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인 나의 상태는 만물과의 이 단일성에 기초해 있다, 그 단일성에 힘입어 나는 영향받지 않는 무행위자로 머무르고 있다. 나는 수십억 년 동안 모든 일을 해 왔음에도, 무행위로 남아 있다. 흙으로 주 가네샤의 상(像)을 많이 만드는 조각가가 내심으로는 모든 상이 진흙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나 또한 모든 창조된 형상들 속에서 브라만을 본다"
만물이 위대하다는 것, '모두가 브라만'임을 아는 구도자는 빠라마뜨만이 된다.
자기 자신의 존재, 곧 진아에 대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늘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을 의미한다.
주 브라마가 나를 찾아서 나에게 귀의했다. 왜냐하면 그는 만물에 편재하는 그러한 의식을 통해 수십억의 인간들을 해방시키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브라만)의 참된 성품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베다의 시구를 암송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복이 있어서 나(브라만)의 헌신자를 만나는 것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브라만)의 헌신자 가까이 있음으로써, 구도자는 나(진아)를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은 자기 의지로 매우 치열한 수행을 하여 빠라마뜨만을 깨닫겠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은 가장 신성한 비밀이다.
궁극적인 성공은 성자들과의 친교를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구도자는 핵심을 놓치고, 자신이 상상하는 것을 브라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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