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28. 12:37ㆍ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한 찰라사이에 연화장 세계에 들어가고 비로자나불의 국토에도 들어간다.
해탈 국토에도 들어가고 신통국토에도 들어가고 청정국토에도 들어간다.
범부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성인의 세계에도 들어가며, 아귀 축생의 세계에도 들어간다.
그러나 곳곳마다 찾고 또 찾아 보아도 아무 곳에도 생사가 있음을 보지 못하고 허망한 이름만 있을 뿐이다.
환영이며 허깨비이며 헛꽃인 것을 애써서 붙잡으려 하지 말고 이득과 손실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다 놓아버려라.
-임제 선사 어록-
[閑 談]
마음은 한 찰나에도 전체 우주, 모든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제로(0) 차원으로도 들어가고, 1차원으로도 들어가고 2차원,3차원 4차원, 5차원- - -무한차원으로 동시에 퍼져 버립니다. 자기의 한 생각이 저기 저~ 밤 하늘 저편에서 아득하게 껌뻑거리고 있는 북두칠성 꼬리별에 있는 외롭게 서있는 바위벽에도 미미하겠지만 영향을 분명히 미칩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아득한 그 우주 공간 넘어도 결국은 자기의 의식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전 우주가 바로 자기 존재의식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 찰라에 절대진아의 세계로도 들어가고 오염된 이원화의 상대적 세계에도 들어가고, 깨끗한 성인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중생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천상의 세계에도 들어가고, 지옥의 세계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 생각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천상에도 들어가고 지옥 연화세계에도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상대세계는 의식 안에서 벌어지는 허공꽃과 같은 관념의 세계일 뿐입니다.
한 마디로 생각의 차원이 다른 것이고 그 명칭이 다른 것일 뿐이지, 모두가 생사(生死)의 세계인데,
생사(生死)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의식의 파동성이 다양하게 변화하여 만들어진 세계를 말합니다.
생(生)과 사(死)라는 것은 파동학에서 한 에너지가 '일어남(生)"과 꺼짐(死)"의 변화를 반복하는 것을 말하는데, 말하자면 디지탈 전자 스위치가 ON(生)-OFF(死) 동작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사(生死)는 on-OFF 동작을 말하며 이것이 파동성입니다. 의식이 계속 on(生)-OFF(死)를 반복하는 것이 바로 생명활동(生氣)의 기본입니다.
연못 표면에서 물결이 저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움직일 뿐이지 연못물자체에는 변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이 그대로입니다. 생(生)이 <+>라면 사(死)는 <->인데, 결국 <+> 와 <-> 가 반복해서 왔다리 갔다리 한다면 아무리 오랜동안 반복운동을 해도 결국은 <+> <-> 합치면 항상 <0>, 또는 <無>가 아닙니까? 이것은 그 자리에서 반복해서 많은 시간을 움직였지만 실지로는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이나 별다름 없지요.
그런데 이 영원해 보이는 우주세상, 육신,마음,나, 아내,남편,자식,돈,집,재산,명예,사랑,권력 이런 것들이 모두 이 의식의 on- off 작용이 반복되는 의식의 파동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관념, 즉 진동하는 생각으로 형성된 허공꽃입니다.
이 생사작용은 아무 움직임도 없는 절대진아 표면에서 일어날 뿐입니다. 그 드넓은 바다 위에 잔파도 물결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바다 전체로 보아서는 파도물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파도물결 하나가 전체파도를 변화할 수가 있습니까? 따라서 우리 참존재(진리)에서 생사(生死) 변화 작용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바다 속으로 조금만 깊히 들어가면 파도 물결이 어디 있습니까?
절대진아, 천상의 신들, 아수라, 인간, 동물식물의 세계, 연화지옥 아귀, 등등의 육도(六度)란 바로 의식의 파동주파수 스펙트럼을 거친 것에서 미세한 것으로 나누어서 무지한 중생들이 알아듣기 쉽게 드라마적인 관념을 붙혀서 해설해논 일종의 어린아이들을 달래기 위한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놓고 드라마 이름을 붙혀둔 관념의 허황한 이름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허깨비나 허공의 꽃과 같은, 관념(觀念)으로 만든 그림자들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세계나 성인의 깨달음의 경지를 구하려고 애쓰고, 범부의 세계를 싫어하는 그 자체행동이 모두 분별이며 차별이며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범부의 세계나 성인의 세계나 모두 헛된 이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은 옳고 그름, 깨끗함과 더러움, 선과 악의 구별이 사라진 무심(無心)의 경지입니다.
그런데 좋고 아름다운 세계만이 진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를 추구한다면 이 또한 진리에서 한참을 벗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별을 일시에 놓아버려야 합니다.
끝으로 심신명(信心銘)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夢幻空華(몽환공화) 何勞把捉(하노파착)
得失是非(득실시비),一時放却(일시방각)
꿈과 같은 환상의 그림을 어떻게 잡으려 하는가
얻고 잃음 옳고 그름을 일시에 모두 놓아버리게나.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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