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6. 10:29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필름에 대해서 말인데요. 우리가 "나는 누구인가?"하고 물을 때에 그 답은 그 필림 안에 서 일어나는 것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즉, '나는 누구인가?'와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는 그 필림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맞습니까?
마하리지 : 존재성이 그대에게 나타난 이후로 그 앎을 통해서 이루어진 모든 일들은 모두가 오원소들이 그대를 통해서 작용한 결과이고, 또한 그대가 그 원소들로부터 받아온 '내가 있다'의 모든 앎을 통해서 작용한 결과이기도 하오.
'내가 있다'는 '내가 있다는 앎'보다 앞서 있지만, 바로 지금 그 앎을 통해서 작용하는 것,즉 그대자신이라고 여겨온 그 인격은 오원소에서 나오는 그 음식기운의 결과인 것이오.
그대가 지극히 고요해지고 '내가 있다'앎 안에 그대 자신을 안정시키면, 이 일상 활동의 결과는 '내가 있다'로부터 따로 떨어질 것이오. 먼저 '내가 있다'앎 안에서 안정되어야 하오.
질문자 : 주시자는 그 필림의 일부를 주시하는 그 필림의 일부인가요?
마하리지 : 그대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가 있다'가 그대에게 나타나는 것이 주시자이지만, 그 순간이 지나버리면 모든 현상계가 그 '내가 있다'의 영역 안에 들어오면서 전체 현상계를 주시하는 것이오.
깊은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의식이 '내가 있다'인 그대에게 비추는 순간에, 그것이 주시자상태와 같소. 그 순간 이전에는 그대가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소. 주시자도 없었고 '내가 있다'는 앎도 없었소.
그대가 있다는 증거는 의식이 그대에게 나타나자 마자 있었지만, 그 증거를 받아들이자 마자 그 의식이 육체의식으로 변해버렸소. 그 '내가 있다'가 육체의식으로 변하자 마자 그는 이 현상계 내에서 어떤 생각이 나타나든 그것을 통해서 행동해야 하는 것이오. 우리는 그것을 개인의식, 혹은 개인마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오.
질문자 : '내가 있다'는 1차적 개념은 실제로 주시하기를 하는 자인가요? 아니면 그것은 비인격적 주시하기처럼 한 측면만 주시하는 것입니까?
마하리지 : 의식은 나에게나 그대에게나 하나의 개체적인 것이오. 나는 내가 의식한다고 말하고, 그대는 그대가 의식한다고 말는데, 그러므로 그 의식과 별개의 그 의식을 자각하는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이오.
질문자 : 그러니까 그것은 의식의 주시자인 원래의 상태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 원래의 상태에서 마하리지는 주시하기가 아무 애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계시는군요. 저절로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마하리지 :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식이오.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재산이오. 이 의식에서 일체가 공(空)해지고 나면 우리는 저절로 그 원래상태에 도달하는 것이지만, 그 상태가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면, 그 모든 앎이 그 상태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오.왜냐하면 그대의 원래상태가 무엇이었는지 알려면 (그대가) 무엇인지를 깨쳐야 되며, 육체와의 그 동일시를 포기하고 자신은 아무 형상도 이름도 없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어야 하기 때문이오. 그대가 해야할 일이란 그것이 전부요.
몸-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 그대는 조건화에 묶이는 것이오. 그러나 '내가 있다'앎 안에서 아무 조건없이 안정되고 나면 그대는 "내가 있음"의 핵점(核點,의식의 뿌리)에 있게되고 전체성이 되어 더 이상 한 개인이 이닌 것이오. '내가 있음'의 핵점 안에서는 그대가 무엇을 한다는 것이 없소. 왜냐하면 그대가 더 이상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모든 것이 그대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오. 이것을 통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대도 그것이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겠지만, 그대가 무엇을 한다거나 된다는 그런 것은 없소.
빗물을 받는 것으로부터 좋은 식물과 나쁜 식물들이 생겨나지만, 나쁜 식물들이 자란다고해서 빗물 탓으로 돌릴 수도 없고, 좋은 식물들이 자란다고 해서 빗물 덕분이라고 말할 수도 없소. 빗물에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어디 있으며, 빗물에 죄나 공덕이 어디에 있겠소?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대화록-
[閑 談]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가르침이 몇줄 글자로 농축되어 있는 문장들 같습니다.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의식에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원적 현상계 입장부터 말한다면, 이 현상계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라고 부르는 수시로 움직이는 감각세계와 온갖 생각들은 표면의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개인의식 또는 육체의식이라고 하며, 우리가 보통 마음이라고 부릅니다.
다음 단계는, 세상만사가 모두 의식이라고 위에서 마하리지가 말씀하셨는데, 이 경우의 의식은 바로 이 "내가 있다"앎상태에서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은 우주적 자아의식상태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이것은 "우주적 보편의식 또는 존재의식이며, 전체의식의 뿌리 부분(核點)에 안주된 상태를 말합니다. 또한 절대진아의 입구라고도 부를 수 있습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내가 있다"는 바로 이 의식의 뿌리부분을 말하는데, 이 '내가 있다" 존재의식이 개인의식 또는 개인 마음의 1차 주시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주시자의식이 되라는 것은 바로 "내가 있다"앎의 영역으로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내가 있다"앎이라는 것은 "내가 있다"와 개인의식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반 개인의 감각적 마음에 "내가 있다"주시가 자연적으로 비쳐진 상태를 말하는데, 이 상태는 개인마음도 있지만 항상 주시자로써 깨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가 아무 형상도 없다는 그런 확고한 믿음상태에서 모든 것을 말없이 주시하는 주시자입장에 확고하게 안정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원화 분별대상에 끌려 다닌다든가 분별생각에 미혹된 상태가 아니라 그 배경의 우주적 보편의식상태에서 깨어있는 마음상태를 말합니다.
마하리지는 구도자가 항상 이 주시자 상태에 안정되게 있으라고 우리들에게 충고해 줍니다.
그러면 지금 명상 초보자들이 바로 이 주시자 입장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좀 어렵습니다.
보통 일반적인 이원화 중생의 마음상태에서는 주시자상태는 "모르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처음 명상을 시작하는 초보자나 아직 "내가 있다"앎 상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이 "내가 있다"앎의 상태에 까지 별도로 기초명상을 해야 합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와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란지트 마하리지도 마찬가지지만, 이들은 처음에는 스승이 준 만트라로 만트라 수행을 했습니다. 이 만트라 수행으로 "내가 있다"수준까지 된 다음에 다음부터는 특별한 수행법을 했다기 보다는 "내가 있다"존재의식상태를 항상 안정되게 유지시키는 보림만을 한 것 같습니다.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도 "내가 있다" 존재의식상태에서 (32세에 깨침)40~50년을 유지하고 있다가 (81세에)암이 발생하기 약 2년전 쯤에야 절대진아를 깨친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가르침으로 구도를 하는 분들은 가능하면 기초는 만트라나 불교 염불명상등 쉬운명상법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있다"상태는 한마디로 "내가 아무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는 무(無)"라는 상태를 확신하는 단계입니다. 참고적으로 니사르가타타 마하리지는 스승인 싯따르메쉬와르 마하리지에게서 처음에 "따뜨 뜨왐 아시(네가 그것이다)"라는 만트라를 받아서 2년동안 열심히 만트라를 수행한 결과 "내가 있다"단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말씀들은 마하리지가 세상을 하직하기 전 한 2년전부터 기록한 내용으로 마하리지가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아주 높은 수준의 가르침들입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실지로 수행하는 구도자분들은 이 마하리지의 말씀만 자꾸 반복적으로 읽고 기억하려고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어떤 적절한 수행방편을 선택해서 직접 기초 명상 수행을 실행하여야 합니다. 그냥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의 수숭한 말씀이 아주 듣기 좋고 이해하기 쉽다고 그번역된 글들만 믿고 읽는데만 즐길려고 하면 생전에 "내가 있다" 단계까지도 맛을 못 보고 아까운 시간만 허비할 수가 있습니다. 마하리지 말씀이 듣기는 즐겁고 이해하기가 쉬운 것같지만, 실은 그 가르침의 수준은 굉장히 수숭하고 심오한 단계입니다. 그것을 이원적 분별지식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직접 체험적으로 그것이 되어 보아야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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