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의식 없이 행위하라

2017. 1. 6. 10:23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질문자 : 행위의 길과 지(知)의 길은 서로의 별개의 독립된 방법들입니까?

아니면 행위의 길은 하나의 예비적 절차로서 그 수행에 성공하고 나면

지(知)의 길을 따라서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입니까?

행위(의 길)에서는 행위에 대한 무집착을 옹호하면서도 활동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지(知)는 포기를 의미합니다.

포기의 참된 의미는 무엇입니까?

욕정,정념,탐욕 등을 조복받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되고,

어떤 길에서도 필수적인 예비단계입니다.

정념에서 자유로워졌으면 포기를 이룬 것입니까?

아니면 포기는 그와 달리 활동적인 삶의 중지를 의미합니까?

이런 물음들이 저를 괴롭히고 있는데, 부디 이 의문들에 빛을 던져 주시기 바랍니다.

마하리쉬 : (미소지으며) 다 이야기했군요.​ 그대의 질문이 그 답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정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그것이 성취되면 다른 모든 것이 성취됩니다.

질문자 : 스리 쌍가라는 지(知)의 길을 강조하면서 포기를 그것의 예비단계라고 합니다. 그러나 <기타>에서는 분명히 두 가지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행위와 지(知)입니다.

마하리쉬 : 스리 아짜리야(샹카라)는 <기타>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 구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질문자 : <기타>는 행위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르주나에게 싸우라고 권하기 때문입니다. 스리 끄리슈나 자신도 대단한 공훈을 세우는 활동적인 삶으로써 모범을 보였습니다.

마하리쉬 : <기타>는 그대가 몸이 아니며, 따라서 행위자가 아니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질문자 : 그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사람은 자기 자신을 행위자로 생각함이 없이 행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위들은 그의 에고가 없어도 진행됩니다 그 사람은 어떤 목적을 위해 왔습니다. 그 목적은 그가 자신을 행위자로 여기든 않든 달성될 것입니다. 


질문자 : 행위요가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행위나 그 열매(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까?

마하리쉬 : 행위 요가는 그 사람이 행위자의 직분을 사칭하지 않는 요가입니다. 행위들은 자동적으로 진행됩니다

질문자 : 그것은 행위의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까?

마하리쉬 : 그런 질문은 행위자가 있을 때만 일어납니다. ('기타'에서는) 그대 자신을 행위자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질문자 : 그러니까 행위 요가는 '행위자 의식없는 행위'로군요.

마하리쉬 : 예 정말 그렇지요.

질문자 : <기타>는 처음부터 끝가지 활동적인 삶을 가르칩니다.

마하리쉬 : 예, 행위자없는 행위지요  


질문자 : 그러면 집을 떠나서 포기의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까?


마하리쉬 : 집이 그대의 안에 있습니까,아니면 그대가 집안에 있습니까?


질문자 : 집이 제 마음 안에 있습니다.


마하리쉬 :그러면 그대가 물리적 환경을 떠날 때 그대는 어떻게 됩니까?

질문자  : 이제 알겠습니다. 포기는 행위자라는 의식이 없는 행위일 뿐입니다. 생존 해탈자에게는 행위가 없습니까?


마하리쉬 : 그 질문을 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생존해탈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입니까?


질문자 : 생존해탈자는 아닙니다.


마하리쉬 : 그 질문은 생존 해탈을 얻고 난 뒤에도 그럴 필요가 있으면 하도록 하십시오. 해탈은 마음 활동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인정됩니다. 해탈자가 행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까?


질문자 : 행위를 포기한다 해도 그 행위는 그를 떠나지 않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그가 자신을 무엇과 동일시해야 그 질문이 해당 될 수 있겠습니까?


질문자 : 예, 다 잘 알겠습니다. 제 의문들이 이제 풀렸습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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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閑 談]

'행위자 의식이 없이 행위한다"라는 말은 다른 말로 바꾸면 <무위행(無爲行)>을 말합니다.

행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자의식이 없으므로,

모든 행위는 진행되지만  행위의 주체가 없이 전체적으로 저절로 행위가 진행되는 것을 말합니다.


<무위행(無爲行)>에 반대되는 것이 <유위행(有爲行)>입니다.

무위행은 행위 주체가 없이 저절로(자연적으로) 행위가 진행되는 것이고,

유위행은 어떤 행위 주체(나)가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인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유위행(有爲行)은 개아인 "나"가 행위자로써 주체가 되어 "나'의 개별적 의지로 행위를 하는 것이고,

무위행(無爲行)은 개인인'나"가 없어서 행위의 주체없이 전체성이 저절로 진행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따라서 '행위자 의식이 없이 행위한다"는 것은 개인인 '나'가 사라진 상태(無我)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개인의식이 사라지면 자연히 모든 행위가 전체적이며 무위적으로 진행되며,

이 상태가 행위자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다.


개별적인 의지에 의해서 인의적으로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행위가 진행되는 상태를 '행위자 의식이 없이 행위한다"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의식, 또는 '나'라는 느낌이 사라지면, 행위자의식도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절대진아를 깨달으면 개인느낌인 '나'가 사라지므로, 모든 행위가 무위적(無爲的)입니다.

무위행에는 뒤따르는 업(業)도 생기지 않습니다.

행위자체가 흔적이 없으므로 업보(業報)도 없고,업보(業報)도 생기지 않으므로

따라서 인-과(因-果)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윤회(輪廻)가 그칩니다.


그러나 행위자의식이 있는 유위행에는 항상 그에 수반하는 업인(業因)과 업보(業報)가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그 업보(業報)를 받고, 그 업보가 인(因)이 되어 윤회(輪廻)가 계속 돌아갑니다.


절대진아를 깨달았다는 것은  '에고"가 사라지는 것이고,

인과(因果) 연결고리인 윤회(輪廻)작용이  끊어집니다.

행위자 의식이 사라지므로 모든 행위가 무위적(無爲的,自然的)으로 됩니다.

'나라는 느낌'이 사라진 무아(無我)상태가 바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행위를 할 때에  "내가 한다" 라고 '나'라는 <능동적> 행위자의식으로 행하지 말고,

"내가 한다는 느낌"없이,  행위가 저절로 진행된다는 <수동적인> 마음자세를 가지고 행위에 임하라고

어떤 스승들은 충고해주기도 합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