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상함을 알라

2017. 1. 4. 20:38성인들 가르침/과거선사들 가르침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그대들은 이 꿈 같고 허깨비 같은 몸뚱이를 잘못 알지 말라.

머지않아 머뭇거리는 사이에 곧 덧없음(無常,죽음)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대들은 이 세계 속에서 무엇을 찾아 해탈하겠느냐?

그저 밥 한술 찾아 먹고 누더기를 꿰매며 시간을 보내는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지식을 찾아 참문(參問)하는 일이다.

그럭저럭 즐거운 일이나 쫒아 지내지 말라.

시간을 아껴라.

순간 순간 덧없이 흘러가서 크게 보면 지(地),수(水),화(火),풍(風)이 흩어지는 것이고,

미세하게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네 가지 변화에 쫓기고 있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지수화풍과 생주이멸의 형상 없는 경계를 알아서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임제 선사-

- - - - -

[閑 談]

우리 보통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갖고 싶은 것, 등을 쫒아 다니느라고 정신없어서,

이 몸뚱이가 허깨비같다는 생각을 전혀 해 보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절에서 스님들에게 이 몸뚱이는 허깨비라는 법문을 수백번 반복적으로 듣지만, 듣는 그 순간만 고개를 끄덕이는 척 할 뿐이고, 이런 인터넷이나 책에서 이런 말을 들어도 그냥 아무 관심없이 지나쳐 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갑자기 자기 부모님 중의 한분이나 자기의 사랑하는 짝이나 자식이 죽어서 장례를 치룰 때는

잠시나마 이 삶이 무상하게 느껴지고 살아있다고 느끼는 이 육체라는 것이 역시 허깨비와 같다는 것을

스스로 잠깐이나마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나 자기 짝이나 자식을 잃어버린 슬픔이 점차로 가시고 마음이 안정되어 일상으로

복귀하면 장례기간 동안에 뼈져리게 느껴던 육체의 무상함과 삶의 허망함을 금새 전부 잊어버립니다.

절에서 지내는 천도제라는 것이 바로 육체의 덧없음,삶의 허망함을, 죽어서 아직 중음계에 머물러 있는 영혼에게, 그리고 살아서 천도제를 지내는 가족들에게 직접 가르쳐 일깨워주는 의식입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바로 이 점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즉 자기와 가장 친근했던 사람이 죽어서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자기가 느꼈던 삶과 육체의 무상(無常)함에 대한 느낌과 감정을 그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그것을 기억을 해서, 자기 수행에 활용 함으로써 육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곁에서 죽은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에게 육체와 삶이란 무상한 것이라는 설법을 말없이 자연스럽게 법문해 주는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자신이 잘 받아들여 숙지해야 합니다.

이런 수행법이 티벳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장례식 명상과 같은 것인데, 중요한 불교수행법 중의 하나 입니다.  

말하자면 죽은 사람의 장례식장이 바로 육체의 허망함을 공부하는 아주 훌륭한 명상학교가 되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벽제 화장장 같은 곳이 아주 훌륭한 명상 학교라는 것입니다.

몇칠전까지 자기 앞에서 생생하게 살아서 같이 살던 그 사람이 몇칠사이에 한줌의 재로 변해버린 허망한 현실을 뼈속깊히 자각하면 과연 삶이란 무엇인지, 이 살아있는 존재인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스스로 깊고 진진한  탐구가 시작될 것입니다.이것을 마음 속에 계속 기억하면서 자기 육체가 얼마나 덧없고 무상한 가를 뼈져리게 이해하고 다지게 됩니다.죽은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말없이 삶과 육체의 허망함을 마지막으로 설법(說法)하고 가는 것입니다.

부모나 자기 사랑했던 짝이나 자기 자식이 죽은 것에 대한 슬픔은 모든 살아남은 사람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이기도 하지만, 또한 생각의 전환에 따라서는 삶의 무상함과 육체의 허망함을 바로 깨닭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치유설법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이 약효가 그대로 지속되는 강력하고 생생한 체험적인 설법입니다.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마음을 먹으며, 평소에 이런 법문을 많이 듣고 공감하려고 얼마나 애쓰려고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말하자면 절대적인 삶에 대한 믿음과 성인들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습니다.

인류의 철학과 면면이 이어져온 전통적인 모든 종교는 바로 이 죽음의 의식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입니다.

한 개인의 삶의 전환도 바로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을 직접 면전에 대면하면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이 점을 자기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데 스스로 십분 활용해서 영원한 지혜를 이끌어 내야 합니다.


위 본문에서 맨 마지막에 임제스님이 말씀하신,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가지 지수화풍과 생주이멸의 형상 없는 경계를 알아서

그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에서,

이런 사대(四大)와 육적(六賊)의 경계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그저 말없이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할 수 없이 보는 것입니다. 억지로 눈을 감고 안보던가 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나가는 것을 다 지켜보되, 이러쿵 저렇쿵하면서 생각으로 분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생각없이 무심히 보기만 하라는 것이죠. 무엇을 보면서 생각을 하면 그것이 분별심을 내는 것입니다. 생각을 안하면 분별심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보되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귀로 들리는 것이야 할 수 없이 듣지만, 그 소리의 내용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해서 이렇쿵 저렇쿵 생각이 일어나면 이것이 분별심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냥 듣기만 하면 그것이 <그냥 듣되 듣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이 끄달려 다닌 다는 것은 거기에 생각이 일어나서 생각에 끌려다니는 것을 말합니다.

눈이나 귀는 아무 죄도 없고, 단순히 자기 생각이 좋다 나쁘다 분별하므로 이 분별심에서 죄(罪)와 업(業)이 생기는 것입니다. 크리스나무리티는 특별한 명상수행방편을 보급하지 않았습니다. 억지로 명상수행한다는 것은 모래로 밥짓는 것과 같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자연주시, 즉  지나가는 모든 것을 말없이 그냥 지켜보기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분별적인 생각이 없이 지켜만 보는 자연주시를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크리스나무리티가 말하는 유일한 명상법이 바로 이 자연주시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나무리티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관(觀) 수행법이 이 생각없이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금강경 구라마집본의 10장에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한다.>라는 말도 비슷한 뜻인데, 어떤 대상에 대하여 아무런 분별생각없이 무심으로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는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에 '머무르는 바가 없는 것'이 바로 '분별망상심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또 마음을 낸다는 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작용은 있는 그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생각없는 무심(無心)으로 그냥 본다,듣는다,느낀다,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사전에 약간의 정신을 집중하는 연습도 하긴 해야 합니다.

여하튼 모든 것을 (분별판단하는 생각없이) 지켜보는 수행을 하면 위에서 임제스님이 말씀한 네 가지 지수화풍과 생주이멸의 경계에 휘말리지 않는 지혜를 서서히 터득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요즘 거리에 나가면 아름다운 패션의상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많이 지나가는데, 대부분 남자들은 (늙으나 젊으나 관계없이)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한번 더 쳐다보는데, 그 쳐다보는 순간에 마음 속으로  ( 멋진데 혹은 옷이 비싼 것 같네, 혹은 흥, - - 등등) 뭐 이런 식으로 속으로 한마디 생각이 스쳐지나 갈 수가 있는데, 바로 이런 망상, 이러다 저렇다라는 분별심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 옷을 잘입은 여자를 보되, 한 번 더 본다면 어떤 분별심이 작용하여 모종의 망상을 일으켰으므로 불필요한 행동이 한번 더 일어난 것입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무심히 지나쳤다면 망상도 안 일어나고 분별심도 없었겠죠. 어떤 대상이 앞에 있을 때에 거기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판단하거나 좋다 나쁘다 분별하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 없으면 얼마든지 보아도 상관없을 겁니다. 이런 방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자기마음자세를 단단하고 단정하게 다져나가는 것이 바로 위에서 임제스님이 말씀하신 "모든 경계에 휘밀리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 자연주시법은 특별히 수행할 필요가 없고, 일상생활에서 마음 자세만 바뀌면 자연적으로 행해지는 명상법입니다. 크리스나무리티도 바로 그런 측면에서 생활명상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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