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9. 09:34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마하리쉬 : 개인에게는 다섯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1) 자그라뜨((Jagrat,생시), (2) 스와뿌나(Swapna,꿈), (3) 수습띠(Sushupi,잠), (4) 뚜리아(Turia), (5) 뚜리아띠따(Turiatita)입니다.
이 중에서 자그라뜨는 생시의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비슈와(Visua) 측면의 개아와 비라뜨(Virat) 측면의 주(主)가 심장연꽃의 여덟장 꽃잎 안에 함께 거주하는데, 눈을 통해 작용하면서 모든 감각과 기관 등을 가지고 다양한 대상들로부터 (그때그때) 새로운 쾌락을 즐깁니다.
널리 퍼져 있는 다섯가지 거친 원소들과, 열 가지 감각기관(지각기관-눈,귀,코,혀,피부, 운동기관-입,손,발,항문,생식기), 다섯가지 생기(쁘라나,아빠나,비야나,사마나), 네 가지 내적 기능(마음,지성,기억, 에고) 등 24가지 근본요소 모두가 합쳐져서 거친 몸을 구성합니다. 생시의 상태는 (AUM(옴) 중에서) '아(A)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비슈누 신이 지배하는 사뜨와 구나에 의해 특징지워집니다.
스와쁘나는 잠의 상태입니다. 이때는 따이자사(Tijasa)측면의 개아와 히라나가르바 측면의 주(主)가 심장연꽃의 꽃부리 안에 함께 거주하는데, 목 안에서 작용하면서 마음을 통해 생시의 상태에서 수집한 인상들의 결과를 경험합니다.
모든 원리들(10가지 감관), 다섯가지 거친 원소, 의지와 지성 등 도합17가지가 합쳐져서 꿈 상태의 미세신을 구성합니다. 이 상태는 (AUM에서) 문자 'U(우)'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브라마 신이 지배하는 라조구나에 의해 특징지워집니다. 현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수습띠는 깊은 잠의 상태입니다. 이때는 쁘라나 측면의 개아와 이스와라 측면의 (主)가 심장연꽃의 수술 안에 함께 거주하면서, 미세한 무지를 가지고 지고자의 지복을 경험합니다. 앎닭이 낮 동안 돌아다니다가 밤에는 병아리들을 불러 날개 밑에 넣고 잠자리에 들듯이, 미세한 개인적 존재는 한 동안 이어지던 생시와 꿈의 경험들을 끝낸 뒤에 그 두 상태에서 수집한 인상들을 가지고 원인체 속으로 들어 갑니다. 이 몸은 무지로 구성되어 있고, (AUM 중에서)문자 "무(M)'의 의미를 지녔으며, 루드라(시바)신이 지배하는 따모구나에 의해 특징지워집니다.
깊은 잠은 순수한 존재의 체험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 가지 상태는 세 가지 영역, 세 가지 요새, 세 가지 신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러나) 존재는 앞에서 말했듯이 심장 안에 항상 안주하고 있습니다. 만약 생시상태에서 심장을 놓아 버리지 않으면(망각하지 않으면) 마음 활동들이 고요해져서 오직 부라만을 내관하게 되는데, 그 상태를 뚜리아(Turia)라고 합니다. 또 그 개인적 존재가 지고자에 합일 될 때는 그것을 뚜리아띠따(Turiatita,절대진아)라고 합니다. 식물계는 항상 깊은 잠에 들어있고, 동물들은 꿈과 깊은 잠 양자에, 그리고 신들(천신들)은 항상 생시에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세 가지 상태에 다 들어 있지만, 안목이 뚜렷한 요기(수행자)는 뚜리안 안에만 거주하고, 최고수준의 요기는 뚜리아띠따 안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세 가지 상태가 의지와 무관하게 번갈아 듭니다. 그러나 마지막의 두 상태(뚜리아와 뚜리아띠따)는 수행의 결과이며, 해탈에 이르는 명료한 방편입니다. 나머지 세 가지 상태(생시,잠,꿈)들은 하나가 다른 두 가지를 배제하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에 의해 한정됩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생시와 꿈의 상태에 있는 우리의 존재자체가, 진아로서의 의식은 다섯가지 상태 전부의 바탕을 이루고, 시종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으며, 그 상태들 모두를 주시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깊은 잠 속에서의 그와 비슷한 의식과 관련하여 사람들은 누구나 "나는 아무 것도 몰랐다. 나는 행복하게 푹 잤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아무 것도 몰랐다는 것과 푹 잔 잠의 행복감)을 알 수 있습니다. 잠 속에 이런 것이 없고 경험되지 않는다면, 생시상태에 있는 그 사람이 그런 표현을 할 수 없겠지요. 추론을 통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모든 대상을 뒤덮는 어둠을 눈이 보듯이, 현상세계를 뒤덮고 있는 무지의 어둠은 진아가 봅니다.
그것(진아)이 지고한 지복의 점들 속에서 나타나 마치 흔들리는 나뭇닢들 사이로 비치는 달빛처럼 가늘고 미세하게 한 순간 언뜻 비쳤다가 사라질 때, 우리는 이 어둠을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은 (마음의 감각기관과 같은) 어떤 매체를 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깊은 잠 속에는(대상을 지각하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깊은 잠속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상대적인 앎이 없기 때문이고, 그 행복감은 (들끓는) 생각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깊은 잠 속에서의 그 경험이 하나의 사실이라면, 왜 모든 인간들 가운데서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 찾던 것을 물밑에서 발견한 잠수부는 물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물가에서 고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발견 소식을 알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잠을 자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때가 되어 그의 원습이 자신을 깨우기 전에는 표현 기관과 접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아는 사뜨, 찌뜨, 아난다의 빛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비슈와, 따이자사, 쁘라냐는 각기 생시, 꿈, 잠의 상태에 있는 그 경험자에 대한 명칭입니다. 같은 사람이 그 모든 상태의 저변에 있습니다.따라서 그것들은 순수한 사뜨, 찌뜨, 아난다인 참된 자아(진아)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의 경험을 브라만의 지복이라고도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런 지복의 소극적 측면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생각들이 존재하지 않는 결과니까요. 더구나 그것은 일시적입니다. 그런 지복은 반사물, 곧 지고한 지복의 위조물(가짜)일 뿐입니다. 그것은 관능적 쾌락의 지복감과 다르지 않습니다. 깊은 잠 속에서는 쁘라나는 진아와 결합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잠 속에서는 개인성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진아는 모든 경험의 토대입니다. 그것은 주시자이자 그 모두의 지지물입니다. 그래서 실재는 생시, 꿈, 깊은 잠의 세 가지 상태와는 다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閑 談]
위에서 마하리쉬님이 말씀하신 경험의 다섯(여섯) 단계는 생시,꿈, 잠, (원인체)뚜리아, 뚜리아 띠따, 인데, 수행측면에서 보통사람은 생시,꿈, 잠은 누구나 경험을 하지만, 원인체, 뚜리아와 뚜리아띠따 두(세) 상태는 고도의 수행자만이 체험하는 상태입니다. 다만 위 본문에서는 원인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는데, 뚜리아와 원인체는 함께 붙어 있습니다. 뚜리아 상태를 다른 용어로 대원인체 또는 초원인체로 부르기도 합니다. 생시,잠,꿈과 직접 붙어있는 뿌리는 원인체이고, 원인체 다음에 절대진아쪽으로 뚜리아(또는 대원인체,초원인체)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뚜리아따따가 있습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생명체라면 어떤 것이든지 모두 생시 꿈 잠의 세 가지 상태는 겪습니다. 그것은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몸과 마음이 삶을 유지하려면 세 상태가 필수적으로 번갈아 가며 변화하는 파동성의 움직임의 그림자인데, 그것이 바로 존재의식의 파동성이 육체와 의식상으로 드러난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파동변화작용입니다. 그 세가지 상태를 좀 세밀히 관찰해 보면 의식의 활동측면에서 보자면 생시상태와 잠상태, 의식의 움직임과 안움직임의 두 상태로 구분되고, 꿈 상태는 생시상태와 잠상태가 반반 섞인 상태인데, 생시상태에서도 꿈 상태가 섞여 있고, 잠 속에서도 꿈상태가 섞여 있습니다. 진아측면에서 보자면 생시, 잠, 꿈상태가 전부 꿈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생시 잠 꿈 상태는 의식의 파동운동의 변화양태를 커다란 그림으로 우리들에게 직접 보여주는 것입니다.
생시상태는 절대바탕의 "존재"측면 또는 " 공간요소"의 그림자가 반영되어 보이는 것인데, 물론 아무 생각없는 생시상태일때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고, 잠은 절대바탕의 "지복상태" 또는 "무시간"의 움직임없는 그림자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다음 꿈이란 생시이든 잠이든 간에 의식의 움직임, 활동성이므로 절대바탕의 "의식측면"의 그림자를 반영한 것이라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따라서 뚜리아라는 미세한 의식상태에서 파동성 활동으로 의식이 활성화 된 상태가 생시,잠, 꿈 상태로 거칠게 이원화 상태로 반영되어 인간생명활동의 활동양태로 변형된 것입니다.
역으로 표현하자면, 뚜리아띠따가 존재의식(내가 있음)이 절대 본체에 합일된 삼매체험상태인데, 이 뚜리아띠따에서 미세한 의식의 변화가 나온 것이 뚜리아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뚜리아 상태가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상태인데, 아주 미세한 파동의식이어서, 마치 작은 점같은 의식의 미세한 파동핵점이며, 여기서부터 원인체를 거쳐서 의식이 다시 거칠게 변형이 되어 생시상태, 잠, 꿈으로 크게 변형되어 나옵니다. 물론 이 생시, 잠,꿈상태는 육체기관에 의해서 미세한 존재의식이 더욱 거칠게 그 주기가 드러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위에서 생시상태가 8개 연꽃잎에 붙어서 상주한다고 표현했는데, 그 8개의 연꽃잎이라는 것은 파동주파수가 8 Hz ,즉 진동하는 두뇌의식의 변화주기가 1초에 8번 진동하는 것을 상징한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실제로 사람의 생시상태에서 두뇌생체파동 주파수가 8Hz 전후인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생시상태는 이러한 거친 파동의식이 활동하는 기간이며, 반대로 잠은 의식의 파동활동이 잠잠해지는 상태로써
뚜리아 이전의 원인체에서 의식의 활동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인체 다음 단계가 뚜리아 단계인데, 말하자면 잠을 지켜보는 그 넘어 상태가 뚜리아상태입니다. 뚜리아 상태는 잠 뿐만 아니라, 생시상태, 꿈상태, 원인체를 모두 지켜보는 생명체의 바탕, 즉 존재의식상태를 말합니다. 그 다음 단계인 뚜리아띠따는 뚜리아상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보는 그 넘어에 있는 절대바탕체험상태를 말하는데, 뚜리아띠따가 절대진아 그 자체라기 보다는, 절대바탕에 합일된 개인의식의 체험상태라고 여기서 마하리쉬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다른 베단타 스승들은 뚜리아띠따가 절대진아라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시 확실히 이해하려면 선불교의 기신론에서 말하는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관계와 비슷한 것 같아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각(覺, 절대바탕의 깨달음)에는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의 두 가지가 있는데, 본각이란 원래 부터 있는 절대바탕을 말하며, 시각(始覺)이란 처음엔 깨닫지 못한 무지상태에서 수행을 해서 깨달은 상태를 시각(始覺)이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절대 진아는 그대로 있고, 수행을 해서 절대에 합일된 체험상태를 뚜리아띠따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절대 바탕에 합일된 개인의식의 체험 상태를 '뚜리아띠따'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하리쉬는 다른 곳에서는 대부분의 질문자들에게 말하길 뚜리아가 절대진아나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뚜리아 (원인체와 붙어있음)상태는 원래는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것은 "내가 있다" 존재의식상태, 즉 생시,잠, 꿈 상태와 함께 붙어있는 그 배경의 주시자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생시,잠,꿈과 뚜리아상태는 함께 있는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배경에 있는 그 세 가지 배경(존재핵점)의 체험상태를 말합니다. 따라서 뚜리아 상태를 넘어가야 절대바탕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 절대바탕에 도달한 체험상태를 뚜리아띠다라고 부릅니다. 물론 뚜리아띠따는 뚜리아 상태까지 도달한 구도자가 더 순수하고 깊어지면 체험되는 절대진아의 최종 깨달음 체험상태를 말합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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