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2. 09:37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103회]
5.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耳根圓通)
5-5. 문수의 선택
3) 게송으로 24원통을 분별하다
3-1) 육진(六塵)
[본문]
[色想結成塵하야 精了不能徹하니 如何不明徹으로 於是獲圓通리닛고
音聲雜語言이니 但伊名句味일새 一非含一切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香以合中知하고 離則元無有하야 不恒其所覺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味性非本然이라 要以味時有하고 其覺不恒一커늘 云何獲圓通리닛고
觸以所觸明하나니 無所不明觸하고 合離性非定이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法稱爲內塵니와 憑塵必有所하야 能所非遍涉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
물질과 망상이 맺히어 경계를 이루었기에 마음을 내고 알려고 하면 마침내 통할 수 없는데, 어떻게 명철(明徹)하지 못한 것으로 여기에서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음성은 언어가 모인 것이니 다만 이름과 구절과 의미뿐이기에 한 마디 말이 일체를 포함할 수 없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향기는 코와 합해야만 느낄 수 있고 코를 떠나서는 원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항상 깨닫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맛이라는 성품은 본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반드시 맛을 볼 때에만 있고, 그 느낌이 항상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감촉[觸]은 느낄 몸[所觸]으로 밝아집니다. 만약 몸이 없으면 감촉을 밝힐 수 없고, 합하고 여읨[合離]에 따라 성품이 일정치 않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진(法塵)을 내진(內塵)이라고도 하나 경계[塵]에 속한 것이라면 반드시 처소가 있어서 능소(能所)에 널리 통하지 못할 것이니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해설]
첫번째, 색진(色塵,물질)이란 망상(妄想,생각)들이 맺혀져 굳어져서 생긴 경계이므로, 설사 망상의 정묘한 마음(識見)으로도 그것을 꿰뚫어 알 수 없으므로, 색진으로는 도저히 원통을 얻을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색진은 앞서 25원통을 소개하는 데서 우파니샤타가 색진관(色塵觀)을 이야기한 것을 말합니다.
두번째는 교진나가 소개한 성진관(聲塵觀)인데, 음성이란 여러 가지 말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인데, 이름과 뜻과 말 구절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한 마디 말로는 모든 의미를 포함할 수 없으므로, 원통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하면, '불'만 의미하지, '물'이나, '흙'과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향엄의 향진관(香塵觀)인데, 냄새는 코와 합해야 인식될 수 있는 것이며, 향냄새를 예를 들면, 숨을 내쉴 때는 코로 냄새가 들어오지 않아서 향내를 맡을 수가 없고, 또 향이 없을 때는 아예 향내 자체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향내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중에게 원통법으로 적당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네번째,약왕의 미진관(味塵觀)인데, 맛이라는 성품도 역시, 혀로 맛볼 때만 아는 것이므로 그 성품이 항상하지 않으므로 대중들에게 추천할 적당한 원통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발타바라의 촉진관(觸塵觀)인데, 촉진은 접촉함이 없을 때는 알 수 없어서, 합하고 떨어지는 성품이 항상하지 않으므로 대중들에게 추천할 원통법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섯째, 대가섭의 법진관(法塵觀)인데, '법이란 내진을 말함'이라는 것에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은 외진(外塵)인데, 법진(法塵)이란 밖에 있는 외진(外塵)이 의근(意根, 마음)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내진(內塵)을 의지해서야 의근(意根)의 작용이 생기므로, 진(塵)을 의지했다고 하면 반드시 진(塵)이 있을 마음 안에 일정처소가 있어야 하는데, 마음 안(意中)에 대상이 들어와 있다고 한다면, 일정한 장소를 차지하므로 의근이 모든 것에 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마음 안의 일정 대상에 대하여 보는 주관이 함께 있어야 하니, 주,객이 분리된 상태에서 어떻게 원통을 얻을 쉽게 수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3-2) 육근(六根)
[見性雖洞然이나 明前不明後하야 四維虧一半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鼻息出入通이나 現前無交氣라 支離匪涉入이리니 云何獲圓通리닛고
舌非入無端이오 因味生覺了하니 味亡了無有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身與所觸同하야 覺非圓覺觀이니 涯量不明會이니 云何獲圓通리닛고
知根雜亂思일새 湛了終無見이요 想念不可脫어늘 云何獲圓通리닛고 ]
보는 성품이 비록 밝다고 하여도 앞만 밝고 뒤는 밝지 못하여 사유(四維)에서 하나 반이 모자라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로 숨 쉬는 것은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통하기는 하나 교차하는 순간에는 기운이 없고 완전하지 못해[支離] 거둬들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혀는 맛을 볼 대상이 없이는 성립될 수 없고, 맛을 통해야만 느낌이 생깁니다. 이와 같이 맛이 없으면 느낄 수도 없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몸[身]과 대상[所觸]은 다 같이 원만한 각관(覺觀)이 아니기에 몸과 대상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涯量]에는 어두워 알지 못하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의지근(意知根)은 어지러운 생각이 모인 것이기에 묘담(妙湛)을 끝내 보지 못하는 것이요, 이처럼 추상적 분별심[想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해설]
이번에는 육근관(六根觀)에 대한 평가입니다.
첫번째로 아나율타가 말한 안근(眼根)인데, 눈의 보는 성품은 비록 온갖 것을 다 볼 수가 있지만, 앞면은 밝게 보지만 뒷면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팔방에서 뒷면과 뒷쪽 좌우방 일부의 1.5방이 못보기 때문에 전체 1200공덕에서 800공덕 밖에 보지 못합니다. 말하자면 전후좌우 중에서 뒷면과 뒤쪽의 좌우 부분이 빠지므로 원통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주리반특가의 비근(鼻根)인데, 비근은 코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동안은 다 통하지만, 숨의 들이쉼과 내쉼의 중간부분에서는 잠깐 숨이 끊어지는 기간이 있기 때문에 원통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교범발제의 설근(舌根)인데, 혀로 음식 맛을 받아들여야 미각(味覺)의 느낌을 내는 것이므로, 맛보는 것이 없으면 맛의 느낌도 없어지니, 원통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네번째는 필릉가바차의 신근(身根)이며, 신근은 촉식(觸識)을 일으키는 몸인데, 몸도 하나의 촉진(觸塵, 감촉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촉의 주체와 대상이 서로 접촉해야 촉진이 생기는데, 감촉의 주체와 대상이 서로 합쳐져야 촉감을 알지, 따로 따로 떨어져 있으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통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는 수보리의 의근(意根)인데, 의근(意根)은 곧 제6식을 일으키는 감관이니 생각이 끊임없이 뒤섞여서 변화하므로 이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뜻을 가지고 이리저리 혼란스런 생각을 가지고는 담연한 여래장 성품을 본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어려우므로 원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관세음보살의 이근(耳根)은 빠졌습니다.
나중에 특별히 이근원통에 대하여 말하기 위해서 여기서는 빠져 있습니다.
3-3) 육식(六識)
[본문]
[識見雜三和하니 詰本稱非相이라 自體先無定어니 云何獲圓通이리요
心聞洞十方은 生于大因力이라 初心不能入어늘 云何獲圓通이리요
鼻想本權機니 只今攝心住라 住成心所住어니 云何獲圓通이리요
說法弄音文이니 開悟先成者라 名句非無漏어니 云何獲圓通이리요
持犯但束身이니 非身無所束이라 元非遍一切어늘 云何獲圓通이리요
神通本宿因이니 何關法分別이며 念緣非離物어늘 云何獲圓通이리요]
식(識)이 본다는 것은 근경식(根境識)의 삼사화합(三四和合)으로 섞인 것이니 근본을 따져 보면 실상이 아니다[非相]. 자체가 애당초 결정됨이 없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듣는 것이 시방세계에 통하는 것은 보살만행의 큰 인행(因行)의 힘으로 생긴 것이기에 초심자로서는 쉽게 들어갈 수가 없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코끝에 생각을 두게 한 것은 본래가 방편으로 다만 섭심(攝心)하여 마음을 머물게 하고자 함이니 머문다면 마음이 머물게 되는데,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법을 설하여 말과 글로 희롱하는 것은 알음알이만 먼저 이루는 것이기에 명구(名句)로는 무루(無漏)가 될 수 없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계율을 지킴은 다만 몸을 단속하는 것이니 몸이 없으면 단속할 대상도 없을 것이다. 원래가 일체에 두루하지 않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신통은 본래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얻은 것이니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의식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망념으로 반연하는 것은 경계[物]를 여읜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원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해설]
첫째는 사라불의 안식(眼識)입니다. 보는 것은 눈(眼根), 대상(色塵)의 작용으로 안식을 내는 근(根),진(塵),식(識)이 세 가지가 서로 결합하여 나타난 것이라 근본적으로 그림자처럼 허망한 것입니다. 그 자체가 애당초 결정된 구조가 아니어서 일정함이 없으므로 원통의 방편으로 삼기가 어렵습니다.
두번째는 보현보살의 이식(耳識)이니, 보현보살이 마음으로 듣는 것이 시방세계에 두루 통하는 것은 크나큰 발심(發心)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중생이 처음부터 이것을 따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손타라난타의 비식(鼻識)이니, 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은 원래 수행 초보자들에게 마음을 한곳에만 집중시켜서 산란심을 가라앉히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입니다. 마음을 코에 머물게 하면 마음은 일시적으로 조용해질지 모르지만,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무주심(無住心)을 얻을 수는 없으니 원통하기는 부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네번째는 부루나의 설식(舌識)이니, 설법자체는 음성과 문자로 이루어진 것인데, 설식을 통한 원통은 음성과 문자에 대해 일찍암치 깊게 깨우친 자(先成者)에게 가능한 방편일 뿐입니다. 또한 문자 자체가 이원적인 구조이므로 그 의미를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에게는 설식의 원통도 어렵다는 것입니다.
다섯번째는 우파리의 신식(身識)이니, 계(戒)를 지키거나 범하는 것은 오직 한 몸에 국한된 것일 뿐이어서 몸을 떠나서는 단속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몸으로는 일체에 두루하지 못하므로 원통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목건련의 의식(意識)이니, 목건련존자의 신통(神通)함은 전생(前生)부터 닦은 인연에서 얻어진 것이며, 애초부터 의식이 법을 분별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의식 자체를 놓고 볼 때 생각하는 인연은 물질, 즉 객진(客塵,이원적 대상)을 떠나지 못하니 대중에게 적당한 원통방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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