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시,꿈,잠의 바탕

2016. 5. 10. 21:37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방문자 : 우리가 깊은 잠에 들었을 때보다 생시의 상태에서 순수의식에 더 가까이 있습니까?

마하리쉬 : 잠, 꿈 , 생시상태들은, 그 바탕은 움직이지 않으며 단순한 자각의 상태인 진아 안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느 누가 한 순간이라도 자기와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런 질문도 일어날 수 있겠지요.

방문자 : 생시의 상태는 깊은 잠이 들었을 때보다 우리가 순수의식에 더 가까이 있다고 흔히들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그 질문은 차라리 '저는 생시의 상태에서보다 잠이 들었을 때 저 자신에게 더 가까이 있습니까? 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왜냐하면 진아는 순수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기로부터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이원성이 존재한다면 그런 질문도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순수의식의 상태 안에 이원성이란 없습니다.

같은 사람이 잠을 자고, 꿈을 꾸고, 깨어납니다. 생시의 상태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여깁니다.

잠 들었을 때는 그런 경험을 할 수 없으니까 잠의 상태는 둔하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기 전에 이 점을 분명히 해 봅시다. 그대는 잠자는 동안에도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방문자 : 예, 인정합니다.

마하리쉬 : 지금 깨어있는 사람도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방문자 : 그렇습니다.

마하리쉬 : 따라서 잠의 상태와 생시상태 간에는 하나의 연속성이 있습니다. 그 연속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수존재의 상태일 뿐입니다. 그 두 상태 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생시의 상태에서는 사건들, 즉 몸, 세계, 대상들이 나타나지만 잠 속에서는 그것이 사라집니다.

방문자 : 그러나 저는 잠들어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하리쉬 : 맞습니다. 몸이나 세계에 대한 아무런 인식이 없습니다.그러나 "저는 잠들어 있을 때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잠 속에서도 그대가 존재해야 합니다. 지금 그렇게 말하는 것은 누구입니까? 그것은 생시의 사람입니다. 잠자는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자기를 육신과 동일시하는 그 개인이, 잠 속에서는 그런 자각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대가 자신을 육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주위의 세계를 보면서 생시의 상태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잠의 상태에서는 한 개인으로서의 그대가 없었고, 따라서 그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 상태는 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어떻습니까? 세 가지 상태 모두에 존재의 연속성이 있지만, 그 개인과 대상들의 연속성은 없습니다.

방문자 : 그렇습니다.

마하리쉬 : 연속되는 것은 또한 지속적입니다. 즉 영구적입니다. 연속되지 않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방문자 : 그렇습니다.

마하리쉬 : 따라서 존재의 상태는 영구적이지만 육체와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영원하고 움직임없는 존재-의식의 화막 위를 지나가는 찰나적인 현상들입니다.

방문자 : 상대적으로 말해서, 잠의 상태가 생시의 상태보다 순수 의식에 더 가깝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그렇지요. 그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잠에서 생시로 넘어올 때 '나'라는 생각이 시작되고, 마음도 활동을 개시하며,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때 몸의 기능들도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모든 과정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깨어있다고 말하게 됩니다. 잠의 상태는 이런 과정이 전개되지 않는 것이 특징이고, 따라서 그것은 생시의 상태보다 순수의식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언제나 잠만 자고 있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첫째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잠은 반드시 다른 상태들과 번갈아 들게 되어 있으니까요.

둘째로 잠은 진인이 들어 있는 지복 상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의 상태는 영구적이며 번갈아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잠의 상태는 사람들이 자각의 상태로 인식하지 못하지만, 진인은 항상 자각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잠의 상태는 진인이 자리잡고 있는 상태와는 다른 것입니다.

더욱이 잠의 상태는 생각들과 그 생각들이 개인에게 주는 인상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어떤 노력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순수의식에 더 가깝기는 하지만, 진아를 깨닫고자 노력하기에는 적합한 상황이 아닙니다.

깨닫고자 하는 동기는 생시의 상태에서만 일어날 수 있고, 노력도 우리가 깨어있을 때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시상태의 생각들이 잠의 고요함을 얻는데 장애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그래서 고요함이 구도자의 목표입니다. 최소한 한 순간에 한 생각이라도 고요히 하려는 단 한번의 노력도 오래 거듭하면 침묵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노력은 필요하며, 그것은 생시의 상태에서만 가능합니다. 여기에 노력이 있고, 여기에 자각도 있으며, (여기서) 생각도 고요해집니다. 그래서 (생시에도) 잠의 평안을 얻습니다. 그것이 진인의 상태입니다. 그것은 잠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 그 둘의 중간입니다. 생시상태의 자각과 잠의 고요함이 (동시에) 있습니다. 그것을 '생시-잠'이라 합니다. 또 그것을 깨어있는 잠, 잠자는 생시, 잠없는 생시 혹은 생시없는 잠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잠이나 생시의 어느 한쪽과는 다릅니다. 그것이 '너머 생시' 혹은 '너머 잠'입니다. 그것은 완전한 자각과 완전한 고요함이 결합된 상태입니다. 그것은 잠과 생시의 중간이며, 또한 연속하는 두 생각 사이의 간격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거기서 생각들이 솟아나는 근원인데, 우리는 잠에서 깨어날 때 그것을 봅니다. 바꾸어 말해서 생각들은 잠의 고요함 속에 그 기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들이 잠의 고요함과  생시의 소란함 사이의 모든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생각들의 뿌리로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잠의 고요함에 도달합니다. 그러나 왕성한 탐구의 활력을 가지고, 즉 완전한 자각을 가지고 거기 도달해야 합니다.

그것이 또 앞에서 말한 생시-잠입니다. 그것은 둔한 상태가 아니라 지복입니다. 그것은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합니다. 거기서 생각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모든 경험들이 생각아니고 무엇입니까? 쾌락과 고통은 생각에 불과합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생각에서 벗어나 있되 그러면서도 자각하고 있으면, 그대는 바로 저 완전한 존재입니다. (609)


[閑談]

위에서 마하리쉬가 말씀하시는 생시-잠의 바탕상태는 "내가 있다"는 앎의 뿌리,뚜리아상태를 말합니다. 그 상태는 절대진아와 접촉점이자, 의식의 파동현상이 처음으로 생기는 지점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생시와 잠의 중간 삼매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대략 수행자들이 이와 비슷한 상태를 겪지만, 이 상태가 아닌 단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깊은 잠과 같은 원인체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도 잠과 생시의 바탕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자아탐구 수행자들이 이 깊은 잠과 같은 원인체 삼매상태에서, 이것을 순수의식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깊은 잠과 같은 무자각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는 정신을 차려서 거기서 만족하지 말고 계속 수행을 더 정진해 가야 합니다. 이 깊은 잠과 같은 원인체 삼매상태를 지나야 순수의식인 뚜리아상태에 진입하게 됩니다. 지금 위에서 마하리쉬가 말씀하시는 순수의식 상태는 베단타에서 말하는 뚜리아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는 "내가 있다" 앎의 뿌리끝부분, 즉 초원인체 또는 대원인체를 말하는데, 라마나 마하리쉬께서는 이 뚜리아 상태를 진아상태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나 그의 스승인 싯다르메쉬와르 마하리지는 이 상태는 절대진아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지로 이 뚜리아상태를 체험한다면 그 체험하는 자는 바로 진아상태에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그래서 라마나 마하리쉬는 이 뚜리아 상태를 진아상태라고 구도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또 수행자가 아직 원인체 삼매상태에 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수행 중간에 아무 자각없는, 마치 깊은 잠같은 원인체 삼매상태에 든것 같은 상태를 맞이 하게 되는데, 이것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중간에 끼어든 무기(無記)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수행중에 주시가 끊어진 잠이나 졸음과 비슷한 아무 것도 모르는 무자각 상태에 빠져 있을 때인데, 속히 정신을 차려서 그 장애상태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생시-잠의 삼매상태는 처음에는 그 상태에 들어간 것인지도 잘 자각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잠깐 졸았나보다고 여겨지지만 그러나 차츰 반복해서 그 상태에 접어드는 시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자기가 사라지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깨어나서는 한편으론 놀래고 겁도 나지만, 점차로 그 상태에 익숙해짐에 따라 '나"가 사라진 것을 스스로 자각하고 깨닫게 됩니다. 수행을 하다가 무기상태나 삼매상태, 자기가 사라지는 상태를 겪으면 주변의 경험많은 스승들에게 빨리 문의를 해서 잘못된 것은 바로 수정하고, 잘 되어가는 것은 계속 지속되도록 해야 하는데, 혼자서 자기가 잘 안다고 그대로 밀고 나가다가는 엉뚱한 삼천포 길로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항상 자만감을 없애고 성실하게 공부하고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진지하게 정진해 가야 합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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