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허공 안에 마음-허공이 있고, 마음-허공 안에 전체 우주현상계가 담겨있다.

2016. 1. 21. 10:17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질문자 : 거울 안에는 허공이 있고 거울은 상(像)을 반사합니다. 이 상들은 어떻게 해서 거울 안에 있습니까?

마하리쉬 : 대상들은 공간 안에 머무르는데, 대상과 공간은 함께 거울 안에서 반사합니다. 사물들은 공간 안에서 보이듯이, 거울 안에서도 보입니다. 거울 자체는 얇습니다. 그 대상들이 어떻게 그 (작은) 범위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질문자 : 항아리 안의 허공은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해 줍니까?

마하리쉬 : 항아리의 허공 안에서는 아무 것도 반사되는 것이 없습니다. 반사는 그 안에 담긴 물에서만 일어납니다. 몇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워 저수지 안에 두면, 허공은 항아리들 안에 든 물과 저수지의 물에서 똑같이 반사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 우주도 각 개인 안에서 반사되는 것입니다.

질문자 : 항아리들의 주둥이가 저수지의 수면보다 위에 있어야 합니다.

마하리쉬 : 그래야 되겠지요. 그렇지않고 만일 저수지에 잠겨 있다면 항아리들을 어떻게 식별하겠습니까?

질문자 : 거기서 반사는 어떻게 일어납니까?

마하리쉬 : 순수한 허공은 반사를 일으킬 수 없고 물의 허공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유리는 대상들을 반사하지 못하고, 그 뒷면에 불투명한 칠을 한 유리판 만이 그 앞에 있는 대상들을 반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순수한 지(知)는 그 안에 대상들을 포함하지도 않고 대상들을 반사하지도 않습니다. 제한하는 부가물인 마음이 있어야만 그것이 세계를 반사합니다.

세계는 삼매 속에도 머무르지 않고  잠속에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밝은 빛 속이나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환(幻)이 있을 수 없습니다. 희미한 빛속이라야 밧줄이 뱀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순수 의식은 빛으로만 남아 있는데, 그것은 순수한 지(知) 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일어나는 마음은 대상들이 별개로 있다고 착각합니다.

질문자 : 그러니깐 마음이 바로 거울이군요.

마하리쉬 : 마음이라 - 마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찌뜨(Chit.지성)와 생각의 복합체입니다. 따라서 그것이 이 모든 것- 거울, 빛, 어둠, 반사를 만들어 냅니다.

질문자 :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마하리쉬 : 의식- 허공(Chidakasa)은 순수한 지(知)일 뿐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근원입니다. 마음은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에는 빛일 뿐이고, 나중에 '나는 이것이다'하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 '나'라는 생각이 개아와 세계를 만들어냅니다. 처음 일어나는 빛은 순수한 마음, 마음 허공 혹은 이스와라입니다. 그것의 양상들이 대상들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이 모든 대상을 그것 자체 안에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마음-허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왜 허공입니까? 허공이 대상을 포함하듯이 그것도 생각을 포함하고 있고, 그래서 마음-허공이라고 합니다.

또 물리적 허공이 모든 거친 대상들(전 우주)을 포용하면서도 그 자체는 마음 허공의 내용이듯이, 마음-허공도 그 자체는 의식-허공의 내용입니다. 이 마지막의 것은 의식 그 자체입니다. 그 안에는 어떤 사물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지(知)로서만 머물러 있습니다.

질문자 : 왜 그것을 허공이라고 합니까? 물리적인 허공은 지각능력이 없습니다.

마하리쉬 : 허공은 지각능력이 없는 물리적 허공뿐만 아니라 순수한 지(知)를 뜻하기도 합니다. (순수한) 지(知)는 대상들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대상을 아는 것은 상대적인 지(知)입니다. 순수한 형태의 지(知)는 홀로이자 하나인, 독특하고 초월적인 빛이지요 !

질문자 : 그러면, 우리는 명상을 할 때 그것을 상상하고 있어야 합니까?

마하리쉬 : 왜 상상합니까? 우리가 다른 것과 독립해 있을 때만 그것을 상상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우리가 이 순수한 지(知)와 독립해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만이 있지요 ! 그것을 어떻게 이러하다거나 저러하다고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자 :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마하리쉬 : 비아(非我)만 제거하십시오.

질문자 : 이제 제대로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 잊어버립니다.

마하리쉬 : 잊어버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잊어버렸다는 것을 아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을 잊어버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망각도 의식-허공일 뿐입니다.

질문자 : 그러면 어째서 그것이 저에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의식은 지(知)이며, 순수하고 단순합니다. 마음은 거기서 일어나는데, 이 마음은 생각들로 이루어집니다. 어둠이나 무지가 끼어들면 순수한 지(知)가 그 진정한 모습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즉, 그것이 욕망, 집착, 증오 등으로 가득 찬 '나'와 '세계'로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욕망 등이 실재를 가린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질문자 : 생각들은 어떻게 제거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진아지>에서 말하는 대로 '마음 눈의 눈'같은 것입니까?

마하리쉬 : 거기서 마음은 허공, 곧 존재를 나타내고, 눈은 지(知)를 나타냅니다. 사뜨(존재)와 찌뜨(知) 둘이 합쳐서 우주를 이룹니다.

질문자 : 그것을 어떻게 깨닫습니까?

마하리쉬 : <진아지>에서 지적한 대로 "마음눈의 눈, 마음 허공의 허공인 - - -)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지(知) 이면의 지(知), 곧 마음 허공을 포함하는 의식-허공은 항상 밝게 빛나는 오직 하나로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질문자 : 그래도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깨닫겠습니까?

마하리쉬 : 또 ( 그 구절에 이어서) "생각에서 벗어나고 있고", "안으로 향한 마음 속에서만 깨달아진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생각에서 벗어나 심장 안에 합일된 마음은 의식 그 자체입니다.

질문자: 앞에서 말씀하신 마음- 허공은 이스와라입니까, 히라냐가르바입니까?

마하리쉬 : 후자가 전자와 독립해 있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스와라이자 히라냐가르바입니다.

질문자 :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다릅니까?

마하리쉬 : 내재적 존재를 이스와라라 합니다.

질문자 : 내재적 존재는 의식-허공일 뿐이지 않습니까?

마하리쉬 : 내재성은 마야와 함께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야와 함께 있는 존재의 지(知)입니다. 여기서 미세한 자만심인 히라냐가르바가 나오고, 후자에서 거친 자만심인 비라뜨가 나옵니다. 의식-자아는 순수존재일 뿐입니다.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한담(閑談)]​ 

위에서 마하리쉬 말씀 중에서 "의식-허공" 이라는 단어와 "마음-허공"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의식-허공>은 절대 본체의 순수한 의식측면을 표현한 것이고,

<마음 허공>은 절대바탕에서 나온 "내가 있다"존재의식 중에서 그 핵점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의식-허공"은 파동성 움직임이 전혀 없는 순수한 절대바탕을 말씀하시는 것 같고,

"마음 -허공"은 아주 미세한 파동성(빛)이 있지만, 실지로는 모든 파동성의 시작점인 순수한 "내가 있음" 존재의식 핵점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존재의식 안에는 개아와 전체 우주현상계의 파동의식이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의식-허공 안에 마음 -허공이 담겨 있고, 마음-허공 안에 우주 현상계가 담겨 있습니다.

말하자면 개인과 우주,시간과 공간,주관과 객관이 "내가 있다 존재의식의 작은 한점 속에 뭉쳐져 있습니다. 이 미세한 파동의식의 핵점에서 수많은 파동의식의 기생주파수가 파생되어 생겨나서 개인과 삼라만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지점을 이스와라라고 부릅니다. 이스와라는 우주 신(神)인데, 존재핵점에서 만물이 생성된다는 우주적 신(神)의 측면을 말하고, 히라나가르바는 개아적인 측면에서 우주적 중심점을 말합니다. 결국 이스와라나 히라나가르바는 같은 의미이며,  "내가 있다"존재핵점을 다른 측면에서 각각 다르게 부르는 명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내가 있다" 존재의식은 미세한 파동성이 있기 때문에 마야와 함께 작용하는 지(知)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마야는 바로 파동성의 움직임이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파동성은 그것이 일정한 진동 움직임인데, 한 자리에서 계속 반복적인 같은 움직임을 하므로, 반복적인 진동으로 인해, 그 안에서 시간과 공간이 생기고, 주관과 객관이 생기는 씨앗을 연속으로 만들어 냅니다. 원래는 아무 움직임이 없던데서 첫 움직임이 시작하는 점이 주관이 되고, 나중에 되돌아오는 지점이 객관이 되어, 그것이 계속 반복하게 되면, 그 속에서 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이 만들어지고, 또한 수많은 진동수를 가진 다양한 기생진동파를 발생시켜서 그들 사이에 주관과 객관 관계를 서로 얼키고 설키게 형성되고, 그 존재의식으로부터 일어나는 다양하고 수많는 파동의식들은 마치 무한한 바다 표면에서 무한정하게 일어나는 파도물결처럼 서로 인연작용이 형성되여 서로간 연동되어 움직입니다. 이것이 인과작용과 인연작용으로 서로 엮어진 연기(緣起)의 세계입니다. 그것은 존재의식이라는 한 바다 안에서 일어나는 파도물결같이 항상 츨렁이며 움직이며 상호간섭하며 인연작용으로 연결되지만, 결국 단 하나의 바다 안에서 움직이는 것 같이 보일 뿐, 바다 자체는 아무 것도 움직임이 없는 것이죠.

이 파도의 움직임이 바로 마야의 장난입니다.

마야란 원래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며, 바다의 파도도 그 자리에서 출렁일 뿐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전체적으로 보면 항상 그대로 있지,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개인과 우주전체가 나온 "내가 있다"존재의식의 핵점을 마음-허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이 실지로는 미세한 파동성을 지닌 점(點)과 같은 것이지만, 그 점 자체에서 모든 현상계의 다양한 의식파동들이 나오고, 그 모든 삼라만상을 담긴 그릇이라는 의미로 마음-허공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모든 현상계의 물질과 정신작용은 오로지 존재핵점에서 나와서 존재핵점으로 되돌아가는 사이에 잠시 존재의식의 바다 표면에서 일렁이는 파동의식의 움직임이 비쳐낸 그림자들일 뿐입니다.

이 수많은 현상계의 파동의식의 다양한 움직임을 어떤 측면에서는 신의 유희, 우주의 춤, 또는 연기(緣起)의 우주인드라망의 출렁임 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의식-허공인 절대바탕의 순수의식은 항상 고요하고 무변(無變)일  뿐입니다.          -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