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는 즉유(卽有)하는 것이며, 가장 친밀한 것이다.

2016. 1. 15. 20:22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진인은 요기와 다릅니까?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마하리쉬 : <스리마드 바가바드 기티>에서는 진인이 참된 요기이자 참된 헌신가라고 합니다. 요가는 하나의 수행일 뿐이고, 깨달음(知)은 성취입니다.

질문자 : 요가가 과연 필요합니까?

마하리쉬 : 그것은 하나의 수행이지요. 진지를 성취하고 나면 그것이 필요없습니다. 모든 수행법들이 요가라고 불립니다. 예를 들어 행위 요가, 헌신 요가, 지(知)요가, 8지(枝) 요가(라자요가) 같은 것입니다. 요가가 무엇입니까? 요가란 "결합"을 뜻합니다. 요가는 '분리'가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지금 그 사람이 분리의 망상 아래 있습니다. 이 망상이 제거되어야 하는데, 그것을 제거하는 방법을 요가라고 합니다

질문자 : 어느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까?

마하리쉬​ : 그것은 그 개인의 기질 나름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전생의 상습들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방법들 중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것이 쉬울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것이 쉽겠지요. 여기에는 정해진 원칙이 없습니다.

질문자 : 명상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명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보통 단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럴 때 다른 생각들은 배제되는데, 그 한 가지 생각도 적당한 때가 되면 사라져야 합니다. 무념(無念)의 의식이 목표입니다.

질문자 : 에고는 어떻게 없앨 수 있습니까?

마하리쉬 : 에고를 없애려면 그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먼저 그것을 붙드십시오. 그러면 나머지는 쉬울 것입니다.

질문자 : 그것을 어떻게 붙듭니까?

마하리쉬 : 한 에고가 있어서 다른 에고를 붙들거나 그 다른 에고를 없앤다는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두개의 에고가 있습니까?

질문자 : 신에게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마하리쉬 : 신에게 기도하는 '나'가 있을 수 밖에 없지요. '나'는 분명히 즉유(卽有)하고 친밀한 반면, 신은 그렇게 생각되지 않습니다. 더 친밀한 것을 찾아내십시오. 그러면 신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기도도 할 수 있겠지요.


                                                                                                      -라마나 마하리쉬 대담록-

[한담(閑談)​]

위에서 마하리쉬 말씀이 "에고를 없애려면 ​그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먼저 그것을 붙드십시오"라고 말씀하신 구절이 있는데, 이 말씀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내면 속으로 찾아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느낌"을 붙잡고, 내면으로 들어가서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느낌이 어디로부터 나왔는가?"하고 자문해 보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느낌이 있긴 있는데, 육체는 분명히 나라고 말할 수 없고, 육체와 함께 붙어있는 마음도 하나의 느껴지는 대상이며, 생각의 작용이 있을 때만 마음이 느껴지므로 나라고 말할 수 도 없고, 육체의 움직임이나 오감각기능도 나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없어서 육체, 마음, 그리고 육체의 생기(生氣)도 "나"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느낌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나라는 느낌이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식으로 내면을 향해서 자기가 무엇인지를 탐구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라는 느낌을 계속 탐구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나라는 느낌이 꼬리를 감추어서 오리무중이 되는 때가 옵니다. 말하자면 "나"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고, 마지막엔 나라는 느낌이 사라집니다. 찾는 자가 사라지므로 찾는 행위도 정지되는 것이죠.이 나라는 느낌이 사라져 안정된 상태가 바로 참나라고 말하는 것이죠.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실참에 들어가서는 계속 "나라는 느낌"을 붙들고  내면 속을 파고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좀 어려운 문제는 대부분의 자아탐구 수행자들이 마음의 감각에 겉으로 드러난 "나라는 육체감각느낌"을 "나라는 느낌"이라고 여겨서, 그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육체느낌을 붙잡고서는 "이 나는 누구인가?"하고 마음속으로 자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육체느낌은 의식 밖으로 나온 그림자이지, 내면의 나라는 의식이 아닙니다. 만일 그 육체느낌을 '나라는 느낌'으로 여겨서 자아탐구를 한다면 의식내면 속으로 깊히 들어 갈 수가 없고, 의식 밖에서 헛바퀴만 자꾸 맴맴 돌기만 합니다. 그 육체감각 느낌이 아니라, 그 육체느낌을 아는, 알려지지 않는, 주시자가 원래는 "나라는 느낌"입니다.

이미 '마음으로 느껴지는 육체느낌'은 나라는 느낌의 밖으로 비쳐진 그림자일 뿐이지, 진짜 "나라는 느낌"은 그 육체느낌 이전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진짜 '나라는 느낌'은 그 겉으로 느껴지는 육체느낌을 주시하는 드러나지 않은 "나라는 느낌" 입니다. 이것은 모양도 없고 드러나지 않지만, 육체느낌을 아는 '그것'이 나입니다. 비유를 들면, 눈이 있다는 것을 느끼려면 구태여 눈 자신을 보려고 하지 않아도,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바로 눈의 존재를 증명해 줍니다. 그러나 그 앞에 나타난 대상들이 눈 자체는 아니죠. 눈자체는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나라는 느낌"도 밖으로 드러나서 느껴지거나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알수 없는 것이 "나라는 느낌"입니다. 무엇인가 느껴지거나 대상으로 알려.지는 것은  옳바른  "나라는 느낌"이 아니고, 의식이 만든 반사된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눈이 자기자신을 보지 못하듯이, "나라는 느낌"도 알려지는 모든 대상을 제거하고 나서 마지막까지 알려지지 않는 그것입니다. 그것을 말로 하면 "無"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無라고 인식하거나 여긴다면 또 그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인식 상에 나타나는 '나라는 느낌'은 진짜 '나라는 느낌'이 아닙니다. 이 '나라는 느낌'을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는 "내가 있다"앎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육체느낌이 미세하게 남아있을 때의 "나라는 느낌"을 "내가 있다"앎이라고 말하지만, 육체느낌이 전혀 없을 때의 "내가 있다"는 진아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는 이론으로 따질 수는 없고, 실지로 명상 중에 직접 체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 내면을 향해서 "나라는 느낌"을 탐구해 가다보면, '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삼매상태를 맞게 됩니다. 처음엔 짧은 순간에 불시에 일어나서 놀랍고 두려운 느낌도 들지만, 자주 자기가 사라지는 그런 삼매상태를 겪다 보면 그것에 차츰 차츰 익숙해져서 한참 가서야(경우에 따라서는 수년 내지는 수십년이 경과할 수도 있음) 비로소 그 '아무 것도 아닌 상태'가 진짜로 "나라는 느낌"임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위 본문의 맨 마지막 구절의 마하리쉬 말씀 중 <'나'는 분명히 즉유(卽有)하고 친밀한 반면,>라는 구절에서 <즉유(卽有)>란 말은 <어떤 변화나 보이는 대상에도 관계없이 항상 그대로 지금 여기 있는 것으로 알려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혀 모르는 이것이 바로 가장 친밀한 <즉유(卽有)>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알고자 하는 나가 사라진 상태는 알려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알려지는 것은 나와 거리가 먼 다른 것(他)이고, 전혀 알려지지 않는 것, 모르는 것이 가장 친밀한 자기 자신(自)이라는 것입니다.   <즉유>는 지금 현재 있음이지만, 그렇다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이원화 대상화 상태이든 아니면 진아의 비이원화 상태이든 <즉유>는 항상 모르는 상태로서 변함이 없습니다.

실지로 "나"가 없으면 모든 이원화 현상도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대상이 있던 없던 항상 지금 있는 그대로 있음이 즉유상태입니다.

바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탐구는 그 결과가 어떤 것도 알려지는 것(대상)이 없는 전체와 일체상태를 말합니다. 그것이 어떤 특정화된 속성있는 상태가 아니라, 항상 있는 그대로 변함없는 본연(本然)의 속성이 없는 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편의상 그냥 참나 또는 진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