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1. 3. 09:32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비지각(非知覺)의 상태에 안주해 있는 진인이 어떻게 저희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까?
마하리지 : 진인이 진인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몸으로 지탱되는 진지(眞知)인 "내가 있다"앎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진지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진인은 '비지각', 즉 절대진아 상태 안에 있는 것이지. 그 "내가 있다"존재성과 육체가 진인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지만, 그러나 그는 그 의사소통의 도구와 그것을 통해서 표현되는 언어가 아냐.
자네도 역시 (내면으로)물러나서 자네 안에서 언어가 일어나기 이전 상태에 안주하고 있다면, 그런 진인의 상태로 머무를 수가 있어. 그런 상태는 깊은 잠과 생시상태의 경계선에서도 드러난다구. 그것이 바로 의식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단계야. 이 상태를 빠라삭티 혹은 빠라바니 상태라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나오는 근원이라고 하지.
말이 나오는 제1 단계인 이 근원에서부터 의사소통을 위해 말이 입밖으로 터져 나올 때까지 언어가 형상되어 나오는 것은 세 단계를 더 거치기 때문에, 모두 4단계 라고 할 수 있어. 두번째 단계는 빠시얀트라고 하는 초기 단계인데, 이때 형태없는 언어의 언어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지. 세번째 단계는 마드햐마, 즉 중간 단계인데, 여기서는 마음의 구역 안에서 형태있는 언어의 구성이 시작되는 것이야. 네번째 단계는 바이카라인데, 이때 숨이 그 언어로 하여금 입밖으로 터져 나와 음성으로 표현되는 것이야.
빠라바니는 언어의 가장 미세한 형태인데, 여기서 이 용어는 더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빠라는 '다른 것'이라는 뜻으로, 절대 상태와 별개이면서도 그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야.
어떤 진인인가, 주 크리슈나인가는 '나는 바라바니'가 아니다.라고 했지. 왜냐하면 그들은 지고자 안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끄리슈나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그를 한 인격체로 여기면 안되지. 왜냐 하면 그는 바로 절대자이니까. 자네는 어떤 개념이나 '그리슈나'같은 호칭이나 이름을 '알고 있다'고 느기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런 것이 아니야. 그를 진짜로 이해하려면 자네가 직접 크리슈나가 되어 보아야 해.
빠라바니는 절대자의 언어가 아니지. 왜냐하면 그것은 여전히 존재성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야. 몇 단계로 거쳐서 그 빠라바니는 결국은 어떤 개념을 음성으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것이 우리 마음을 점령한다구.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그 개념과 전적으로 동일시하고 우리의 참된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야.
질문자 : 저는 일단 명상에 들면 마음 이전의 빠라마니 상태 안에 고정되고, 과거와 미래의 환영을 봅니다.
마하리지 : 빠라마니 상태 안에서는 초능력을 얻고 과거와 미래를 읽을 수 있지. 그것은 또한 꾼달리니 에너지를 깨우기도 해.
-THE NECTAR OF IMMORTALITY-
[한담(閑談)]
구도자들 중에는 가끔 위의 질문자가 첫번째 하는 질문과 유사한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즉 부처처럼 완전히 절대진아를 깨달은 진인들은, 절대상태가 비지각상태이므로,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래서 몸과 마음을 쓸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이어갈 수가 있습니까? 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바로 오늘(10.31)도 우리 옹달샘 카폐에서 이와 비슷한 질문이 들어와 있는데, 마침 그 질문에 대한 답변도 겸사로 여기서 저절로 답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
이러한 질문은, 깨달은 이에 대해 이론적인 이야기만 듣고서, 이원적인 분별심측면에서 비이원적 상태에 있는 깨달은이를 생각으로만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의문인데, 많은 구도자들이 이런 의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을 예를 들면, 우리가 대변이 마려우면 화장실에 가서 대변을 누는데, 대변이 뱃속에 있다가 밖으로 나왔으면, 그 대변을 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몸을 나라고 여기면, 일단 뱃속에 들어 있는 똥은 내 몸과 하나입니다. 그러니깐 몸을 자기라고 여기면 뱃속에 있는 똥도 자기가 되지만, 밖으로 나온 똥을 자기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몸밖에 있는 세상은 '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내몸과 따로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몸을 알고 마음(생각)도 알고 이 세상도 알므로, 몸과 마음(생각)과 이 세상을 지켜 볼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몸,마음,세상은 인식의 대상화가 되므로, 나라는 주체와는 별도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아는 주체이고 보는 주체이지, 몸과 마음처럼 알려진 대상이 아닙니다. 따라서 나는 그 이전 일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 이전은 우리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그 모르는 이전을 계속 파고들면 의식의 끝에 이릅니다. 이 의식의 막다른 지점을 우리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핵점이라고 불러 봅시다. 우리는 이 의식의 마지막 막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에 우리는 그 의식의 마지막 지점, 즉 "내가 있다"는 존재핵점도 어떤 것의 대상이 됩니다. 따라서 "내가 있다"는 앎의 상태에 안정적으로 머물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는, 실지적으로 그는 바로 그 "내가 있다" 핵점의 넘어인 절대진아에 안주해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있다"를 깨친 구도자는, "내가 있다" 이전인 "절대본체"에 안주해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내가 있다"가 "내가 있다" 속으로 스스로 합일되는 절대삼매상태를 직접 체험해 보아야 비로소 "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있다" 그 자체 속에 합일하는 삼매를 오랫동안 체험한 구도자는 평소 일상생활 에서는 "내가 있다" 속에 머물러 있지만, 그 "내가 있다"를 지켜보는 입장에 있으므로, 그 자신은 " 절대진아"상태에 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인가 앞에 있다는 것이 주시되면, 그 주시자가 무엇이든 간에(모르든 알든 상관없이) 그 이전에 있는 그것입니다.
따라서 본문 맨 위의 문장인 "진지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진인은 '비지각', 즉 절대진아 상태 안에 있는 것이지. 그 "내가 있다"존재성과 육체가 진인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지만, 그러나 그는 그 의사소통의 도구와 그것을 통해서 표현되는 언어가 아냐.자네도 역시 (내면으로)물러나서 자네 안에서 언어가 일어나기 이전 상태에 안주하고 있다면, 그런 진인의 상태로 머무를 수가 있어."라는 말씀이, 바로 위에서 제가 밖으로 나온 똥얘기부터 시작한 설명 내용입니다.
이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 바로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과정에서 정신이 완전히 들기 직전,깨어나는 순간 자신의 존재는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깨어나는 아주 짧은 간격과 비슷하다고 위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라는 생각'이 없이 순수한 깨어남만 있는 찰나에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를 빠라삭티 혹은 빠라바니 상태라고 하는데, 그것은 말이 나오는 근원이라고 하지.
말이 나오는 제1 단계인 이 근원에서부터 의사소통을 위해 말이 입밖으로 터져 나올 때까지 언어가 형상되어 나오는 것은 세 단계를 더 거치기 때문에, 모두 4단계 라고 할 수 있어. 두번째 단계는 빠시얀트라고 하는 초기 단계인데, 이때 형태없는 언어의 언어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지. 세번째 단계는 마드햐마, 즉 중간 단계인데, 여기서는 마음의 구역 안에서 형태있는 언어의 구성이 시작되는 것이야. 네번째 단계는 바이카라인데, 이때 숨이 그 언어로 하여금 입밖으로 터져 나와 음성으로 표현되는 것이야. >
이 부분은 존재의식으로부터 언어가 나오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맨처음 1단계인 빠라바니는 존재의식의 핵점근방의 아주 미세한 상태, 불교 유식학적으로 말하면 8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제2단계인 빠시얀트는 존재핵점의 지극히 미세한 주파수파동의식에서 좀 더 거친 파동주파수로 저하된 상태를 말합니다. 비유해 보자면 아무런 잔물결도 없는 아주 고요한 연못 표면을 제 1단계 근원이라고하면, 2단계는 여기에 미세한 바람이 불어서 미약한 물결이 생기는 것으로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제2단계는 불교 유식학적으로 본다면 제7식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단계의 파동의식은 어떤 특별한 개념적 특징이나 요소가 없이 단순히 파동성 움직임만 있는 상태입니다.
다음 3단계인 마드마하는 2단계보다 더욱 거친 주파수 파동의식으로 저하된 상태이며, 어떤 특정 개념이 물들어 있는 마음상태입니다. 연못 물결에 비유하자면 제 2단계의 미세한 바람이 불어서 연못 표면에 잔물결의 소용돌이가 일어나서 퍼진 상태에서 그 잔물결 파동이 물위에 떠 있는 나뭇닢에 부딪치자 또 다른 거친 물결파동이 반사되어 제 3의 거친 물결파동이 만들어져서 좀 크게 일렁이는 것으로 비유해 볼 수도 있습니다. 불교 유식학적으로 볼 때는 제6식의 작용에 해당된다고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제 4단계인 바이카라는 호흡의 힘으로 입에서 언어의 형태로 밖으로 터져 나오는 상태를 말하는데, 제3단계까지는 보이지 않는 의식마음의 파동의식(생각)이었는데, 제 4단계는 물리적 파동의 소리로 변형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연못의 표면 물결로 비유해 보자면 제3단계에서 나뭇닢에 부딪쳐서 더 거치른 물결 파동이 일어나 나믓닢 자체를 출렁출렁 상하로 움직이게 하는 물리적 작용으로 비유해 보아도 될까요? .
불교 유식학적으로 말하자면 전5식의 작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존재의식 핵점-> 미세한 존재의식파동 -> 거친 의식파동(개념,생각) -> 물리적 파동(소리),
이런 4단계를 거쳐서 우리는 서로 서로 말을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입니다.
간혹 존재의식의 상태에 있을 때는 어떤 체험을 하게되느냐는 질문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기초명상을 어느 정도 하게되면, 명상 중에 눈을 감고 고요히 있으면 마치 무한하고 빛나는 검푸른 전체공간에 휩싸여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검푸른 공간 자체는 진푸른 빛으로 완전히 충만되어 있어서 공간 그 자체에서 번쩍이는 푸른 빛으로 꽉 찼습니다. 그 상태는 형상이 다양한 현상세계의 표면의식의 깊은 내면 속이며, 바로 홀로그렘 파동 세계인 검푸른 빛의 바다 속이 드러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물질적 현상계 바로 이전인 내면 속의 파동의식의 세계인데, 그것을 대상으로만 관찰해 볼 것이 아니라, 그것과 하나가 되어 합일되어야 하며, 더 깊히 들어가 있는 "내가 있다" 앎의 핵점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 초입에 온 것일 뿐입니다. 그 핵점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안주해 있어야지 "내가 있다"상태에 안정되게 머물 수가 있습니다. 과거 미래에 대한 환영을 본다든가, 먼거리에 있는 광경을 실시간으로 본다든가 하는 신비현상이나 초상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바로 이 존재핵점의 입구의 초입인 빛나는 검푸른 허공이 앞에 나타나서부터 종종 사람에 따라서 간혹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그런 것에 관심을 두면 망상의 진흑구렁에 다시 빠지므로, 오로지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검푸른 빛의 허공과 하나가 되어 침묵 속에서 자신을 완전히 그것과 자연스럽게 합일되어, 그 속에 나라는 느낌이 완전히 녹아서 사라지는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즉 검푸른 허공도, 주시자도 둘 다 완전히 사라져 버린 삼매상태에 잠겨서 남은 원습(原習)을 완전히 녹여서, 깊은 잠을 체험하는 것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완전히 정착 되어야 합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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