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6. 20:58ㆍ성인들 가르침/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질문자 : 크리슈나가 육체 형상 안에 있지 않을 때는 말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하여선생님께서는 동의하셨습니다.
마하리지 : 물론이지. 왜냐하면 절대적 상태에 있는 끄리슈나에게는 말 할 수 있는 어떤 장치(마음,말하는 기관)가 없었으니까, - - 그리구 누구에게 말 하겠나?
이 모든 사건들은 "내가 있다'(존재성)의 영역 안에 있는 오원소들의 산출물(파동의식)이자 유희라는 것을 이해하고 깨달으면, 자네는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것과는 별개로 떨어져 있게 되는 것이야.
나의 주의는, 내가 그것을 가지고 '내가 있다'를 알게 되는,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세계를 경험하는 그 매체(존재성)에만 가 있다구. 나는 초능력이라든가 나타나는 어떤 것에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문제는 이 매체('내가 있다'는 존재성)가 어떻게 있게 되었느냐는 것이야.
여기 오는 사람들은 어디서 얻어들은 지식을 가지고 와서 내가 그에 대하여 말해 주기를 기대하는데, 내가 어떻게 말할수가 있는가?그들은 이미 그 지식(고정관념)에 걸려 있는데 말야. 그러니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옹호하라고 하지.
죽은 사람은 산 사람 일에는 간섭하지 않아. 그와 마찬가지로, 존재성을 이해하고 깨달은 자는 존재성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사건들에는 관심이 없어요.
여기서는 우리가 존재성을 초월하는 지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것이야. 그러나 세간에서는 누가 그런 심오한 지식에 대해서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겠냐 말야.
자네가 그런 이야기에 제법 관심을 가지고 듣는 다는 것은 하나의 큰 특권이야. 많은 사람들은 설사 들을 기회가 있다해도 이런 류의 이야기에는 별로 관심들이 없어.
질문자 : 어떤 선사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제자가 찾아 갔더니 선사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왔나? 아직도 안 죽었어" 또 라마나 마하리쉬는 마음이 완전히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하리지 : 자네의 그 모든 중얼거림과 개념과 말들을 전부 다 내버려. 결국 마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내면에서 계속되는 중얼거림에 불과해.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안에서 중얼거림이 시작되고, 스토리가 계속 이어지는 거야. 그것이 자네의 마음이라는 것인데, 자네는 계속 그것을 쫏아다닌단 말야. 자네의 호흡 그 자체가 중얼거림이야. 호흡이 그치게 되면 어떤 중얼거림도 있을 수가 없지.
질문자 : 그 문제를 찬찬히 생각해 보면 사랑과 진리가 똑 같다는 것을 알겠고, 또 사랑의 깨달음은 마음을 훨씬 넘어서 있다는 것을 이해하겠습니다.
마하리지 : 그런 이야기는 전부 마음 수준에서 나온 이야기들이야. 그러나 나는 지금 그 개인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나툼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야. 개인은 어떤 개념을 통해 그 자신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쾌락과 고통을 겪고 있는데, 그러나 실제로는 그런 것이 아냐. 행복과 불행을 해석하는 마음은 일상적인 삶의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야. (148)
- The Necter of Immortality -
[덧붙임]
"이 모든 사건들은 "내가 있다'(존재성)의 영역 안에 있는 오원소들의 산출물(파동의식)이자 유희라는 것을 이해하고 깨달으면, 자네는 그것에 영향을 받지 않고 그것과는 별개로 떨어져 있게 되는 것이야." 라는 구절에서, 이 다양하고 무한하게 펼쳐져서 움직이는 우주 만물, 자기육체와 감각기능,마음, 등, 이 세상에 나타난 모든 현상들은 결국 자기 마음이라는 거울 위에 나타나 펼쳐 보여지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대개 다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이 다양하고 무한한 현상세계와 내 마음은 단 한 점의 "내가 있음" 존재핵점에서 투사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마치 영화관에서 영사기 한점의 램프빛이 거대한 스크린에 투사되어 다채로운 영상을 그려내는 것처럼, "내가 있다"는 존재 핵점으로 부터 이 현상세계가 투사되어 나타난 결과물들이 우리들의 눈앞에 드러난 현상세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내가 있다"는 그 뿌리가 있고, 또한 뿌리가 있으면 거기서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자라고 잎이 나고 꽃도 피겠죠. "내가 있다"라는 존재의식이라는 나무는 단순히 땅위에 드러난 줄기와 나무가지 무성한 잎사귀, 열매, 등 보이는 것만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아니죠. 땅밑에 파 뭍혀서 보이지 않는 뿌리도 있습니다.
마하리지가 말씀하시는 "내가 있다"는 바로 "내가 있다"는 전체 현상계의 뿌리인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존재핵점>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최초로 생긴것은 뿌리이며, 뿌리를 바탕으로 줄기, 가지 잎사귀등이 나왔으므로, 존재핵점으로부터 이 전체 현상계가 나오기 때문에, 모든 우주만물은 드러나서 보이지 않고 알수 없지만 이 최초로 생긴 작은 존재핵점 범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크기도 알 수 없는 무한하게 펼쳐져 있는 거대한 우주바다가 어떻게 해서 깨알보다도 더 작은 존재핵점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인가? 이것은 바로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은 파동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파동이란 것은 계속 일정하게 진동하는 에너지를 말하는데, 진동하는 주기가 빠른 것, 즉 주파수가 높은 것은 파장이 아주 짧습니다. 그리고 진동주기가 느린 것은 주파수가 낮은 것인데, 대신 파장의 길이는 아주 깁니다. 따라서 파장이 짧은 것, 즉 주파수가 높은 것은 그 안에 주파수가 낮은 것, 파장이 긴 파동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실을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개의 동심원이 있다면, 보통 움직임이 없는 동심원 세개 중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동심원은 제일 작아서 거의 점에 가까운데, 그래서 움직이지 않을 때는 그 중심에 있는 작은 동심원이 큰 동심원의 안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일 이 세개의 동심원이 같은 속도로 계속 따로 따로 돌아 간다면, 가장 안쪽의 동심원이 한 회전을 도는 주파수가 가장 빠르므로 밖에 있는 제일 큰 동심원의 주파수가 가장 안쪽에 있는 동심원의 주파수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즉 파동주파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안쪽에 있는 동심원이 바깥쪽에 있는 동심원의 주파수를 포용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파동 주파수면에서 보면 가장 커 보이는 바깥쪽의 동심원이 가장 작아지고, 가장 작은 중심에 있는 동심원이 다른 큰 동심원을 포용하게 됩니다.
다시 정리하면 주파수가 아주 높은 것 안에는 주파수가 낮은 것들이 다양하게 많아 포함될 수가 있습니다.
마치 통신사에서 발사하는 휴대폰 중계기 전파의 주파수는 수백메가 헤르츠에서 수천메가 헤르츠(기가헤르츠)이므로
작은 한 중계기 안에서 수천개의 차넬이 들어가 있어서 그 지역의 수천개 휴대폰을 동시에 중계해 줄 수가 있는 것이죠. 또한 방송국에서 일반 가정에 전파로 보내주는 각종 TV프로그램 영상과 음성 프로그램은 영상 주파수(30헤르츠~6메가헤르츠)보다도 지극히 높은 몇백메가 헤르츠의 높은 주파수의 반송전파에 실려서 남산송신소나 관악산 송신소에서 수도권지역에 전파를 송출해 주면 각 가정에서는 안테나로 수신해서 높은 반송전파는 걸러내 버리고 낮은 방송프로그램(동영상과 음성)만 수신하는 것이죠. 이렇게 파동주파수가 높으면 그 안에 많은 다른 낮은 파동주파수가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내가 있다"는 존재핵점은 그것이 점(点)처럼 미세하기는 하지만 역시 아주 미세한 파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미세하고 순수한 파동성으로부터 이 현상세계의 다채로운 형상을 만드는 온갖 거친 파동성을 생성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감각기관으로 감지하는 이 다채로운 우주 만물의 현상세계는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순수한 기본 파동의식으로부터 다양하고 거치른 파동성으로 산출된 결과를 우리 감각기관으로 감지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끝도 모르는 우주 공간과 모든 별들의 움직임, 바다,산,강, 세상이 모두 이 "내가 있다"는 존재의식의 한점으로부터 파동의 형태로 산출되어 우리 감각기관에 의해서 삼차원의 시공간에 펼쳐져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제가 정신적인 이런 철학개념이나 의식의 작용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 파동성을 비유해서 많이 이야기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해하려기 보다는 먼저 거부감부터 느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자세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시공간에서 허상으로 비친 자기 자신을 진실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좁은 고정관념의 사고방식 속에 갖혀 있는 것이죠. 예를 들며 이 산하대지가 산이면 산의 고정된 형태로 보이고, 물은 물, 사람은 사람, 이렇게 보이는데, 거기에 파동성이 어디에서 근거를 두고 얘기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영성과학의 동영상들도 많이 보급되어 그런 원리를 어렴 풋이 이해하지만, 그러나 뚜렷하게 와 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마음의 보는 관점을 바꾸려면 '모든 현상은 마음이다', 라는 한 마디만 이해하고 믿으면 단번에 모든 현상계가 의식의 파동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계가 마음으로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의식이라는 이야기이고, 의식은 곧 나의 "내가 있다"는 존재성 자체이므로 결국은 전체우주가 바로 나의 존재자체라는 것을 금방 수긍하게 됩니다. 또한 의식자체는 항상 진동하는 파동성의 총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바로 이 우주 만물이 의식의 파동작용이라는 것도 자동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따라서 파동성이라는 것은 에너지의 끊임없는 움직임이며, 항상 안정되게 고정되어 있지 못하고 변화하는 것이므로, 그 실체가 없습니다.
진동, 파동이라는 것은 그 실체가 없고 움직임만 있는 것을 말합니다. 실체가 없으면 허황된 것이죠. 실체가 없다는 것은 고정되고 안정되어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항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주 속도가 빠른 것을 지금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에 이미 "거기에는 없다"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파동 움직임입니다. 한마디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뱅글뱅글 돌면서, 아니면 진동하면서 마치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진동을 하는 그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절대바탕인데,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바탕이지만,
그것이 움직이고 있을 때, 즉 진동할 때는 환(幻)이라고 하고, 의식적으로 이야기하면 무명(無明) 또는 근본 무지(無知)라고 말합니다.
음력 정월보름날 하는 쥐불놀이에서 불이 담긴 깡통을 계속 돌리면 불꽃으로 된 큰 동그라미가 생기는데, 실은 그 불꽃 동그라미는 움직임 때문에 생긴 것이지, 움직임이 없으면 금방 불꽃 동그라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움직임으로 인해 생긴 환상의 불꽃 동그라미처럼, 바로 이 모든 현상계, 나를 포함한 세상이라는 것이 단순히 파동움직임으로 그려진 환(幻)의 그림자입니다.
이와같이 이해를 하다보면 파동성, 항상 움직이는 것은 실체가 없는 빈 것이다. 즉 공(空)한 것이다,라는 이해가 오는 것이죠. 그렇다면 결국은 우리 존재성의 뿌리인 "내가 있다"도 역시 미세한 파동성이므로 , 텅빈 것이 저 혼자 움직일 뿐입니다. 이 존재의식의 파동을 기본으로 수많은 거친 파동들이 이 우주 삼라만상인데, 이 실체가 없는 파동성의 존재의식"내가 있다"로부터 산출된 "나라는 생각"과 육체, 감각기관,의식, 전체 우주삼라만상이 모두 실체가 없는 환상과 같은 파동성으로 되어 있어서 모든 것이 텅 빈 공(空)이라는 것입니다.
부처가 말하는 인연작용, 즉 연기성(緣起性)은 바로 존재의식의 핵점에서 펼쳐진 전체 파동의식의 바다 움직임을 설명한 것입니다. 만일 남아메리카의 칠레 바다에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면, 거대한 쓰나미 파도가 일어나 태평양을 건너서 한반도 남해안에까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부처가 말한 연기법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아메리카 서해안에서 지진이 나면 일본이나 우리나라 남해안, 중국 해안, 인도 동해안 등에 까지 그 바다 파동물결이 퍼져서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럼 우리가 보는, 예를 들어서, 눈으로 보는 저 북한산의 인수봉 바위가 파동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어떤 원리로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보는 어떤 형상이 어떤 과정으로 파동에 의해서 형성됬을까 하는 원리를 알수 있는 간단한 실험이나 단서는 없을까? 그런 원리들이 요즘 과학실험 동영상으로 발표되고 있으므로 그 중의 하나를 예를 들어 보았습니다. 즉 파동에너지가 특정한 공진에너지장에 의해서 어떤 고정된 형상을 만들어 가는데, 이 모든 형상은 그런 파동성의 에너지에 의해서 유전자나 유기체 세포, 또는 무정물의 분자구조, 원자,미립자등을 진동시켜서 어떤 형상을 만들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러한 작은 분자나 세포들이 서로 서로 합하고, 빼앗고, 나누고, 서로 곱하고, 또 화합해서 또 다른 새끼 파동에너지를 생성하고,서로 서로 영향끼치면서 진화하거나 분열하거나 확장해가며 어떤 고정된 패턴의 형상을 형성해 가는 것입니다.
모든 자연속의 형상들이 이러한 파동의 공진현상으로 만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옛날 시골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 학교 파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길가에 있는 흔한 풀인 강아지풀의 씨앗을 도화지나 마문지에 놓고 수평으로 잡고 입에 물고는 움~ 움~하고 소리를 내면 마분지 위의 강아지풀 씨앗들이 그 움~ ~하는 진동소리에 씨앗마다 각자 따로따로 움직이면서 일정한 모양의 패턴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보는 놀이를 했는데, 아래 동영상은 이런 강아지풀 씨앗을 종이 위에 올려놓고 입으로 옴~하고 울리게 하여 종이를 진동시켜서 그림을 그리는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일정한 파동 주파수를 종이 위에서 진동시켜 주면 종이 위에 있는 미세한 알갱이들이 진동으로 움직이면서 일정한 파턴을 그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파수에 따라서 그 패턴 그림이 달라지는데, 사람의 형상이나 어떤 동물의 형상도 3차원적으로 그 형상을 어떤 소리파동으로써 만들어 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몇년전에 일본의 한 방송기술 잡지에서 본 것인데, 인공연못에 일정한 소리파동으로 물결이 움직이는 시설을 해 놓고 콤퓨터 소프트웨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특수한 소리파동으로 연못 위에 꽃이나 사람형상, 또는 도구,특정 사물의 그림을 연못표면에 물결로 그리는 장치를 소개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에서 진동이 주파수별로 어떻게 독특한 그림을 만들어 내는가 한번 구경해 보시죠.
모든 형상이나 소리, 맛, 감각느낌 등은 그 이면에 온갖 복잡한 파동 주파수의 복합체가 움직이며 작용하는 홀로그램 파동 세계이지만, 우리들의 뇌와 감각기관에 의해서 지금 보이고 들리고 맛보고 느끼는 형태로, 또는 고정된 형태로, 감각기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테레비죤 화면에 나오는 여러가지 화려한 동영상이 실은 그 테레비죤 기기 내부에서는 단순히 전기파동의 신호흐름 밖에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그 존재라는 파동의 전체 바다(의식의 홀로그램)를 이해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현상세계가 실체없는 파동의 그림자라는 것을 이해하는 자는, 바로 그 파동이전에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의식파동의 홀로그램 밖에서 그것을 아는 자는 바로 , 그 홀로그램 파동 바다(꿈) 속에는 없고 그 밖에서 지켜보는 절대진아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현상세계가 전부 텅빈 실체가 없는 無 또는 空임을 이해하게 되면, 그 아는 자는 그것을 벗어나 그냥 지켜보는 자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허망한 말장난으로 귀한 시간만 쓸데없이 허비했네요. 아래 동영상이나 보세요.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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