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27. 21:16ㆍ카테고리 없음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64회]
4. 각(覺)은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다
4-1. 인연 아니면 자연인가 (아난의 질문)
[본문]
[卽時阿難在大衆中이라가 頂禮佛足起立白佛하사대 世尊現說殺盜
淫業의 三緣斷故三因不生하야 心中達多狂性自歇이며 歇卽菩提라
不從人得이니 斯則因緣皎然明白이어늘 云何如來頓棄因緣이닛고
我從因緣心得開悟이니 世尊此義가 何獨我等年少有學聲聞이리잇고
今此會中大目犍蓮及舍利弗須菩提等도 從老梵志라가 聞佛因緣하고
發心開悟하야 得成無漏어늘 ]
그 때 아난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이마를 부처님 발에다 대어 예를
올린 후에 일어나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께서 지금 말씀하시
기를‘살, 도, 음의 삼연(三緣)이 끊어지기 때문에 삼인(三因)도 생
기지 아니하여 마음에 연약달다(演若達多)의 미친 성품이 자연 없어
지는 것이니 미친 성품이 쉬면 바로 깨달음이요, 이것이 다른 사람
에게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인(因)과 연(緣)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여래께서
는 갑자기 인연을 버리시려 하시나이까? 저도 인연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열려 깨닫게 되었습니다. 세존이시어! 이 이치가 어찌 더
배워야 할 유학(有學)의 성문(聲聞)들 뿐이겠습니까! 지금 이 모임
에 대목건련(大目犍蓮)과 사리불(舍利弗)과 수보리(須菩提) 등도
처음에는 외도[老梵志]를 추종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하고 깨달아 번뇌가 없는 무루도(無漏道)를 이루게 되었습니
다.
[해설]
여태까지 부처님과 부루나의 대담을 듣고 있던 아난이 다시 질문을 합니다. 즉 삼연이 끊어지면 삼인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인연작용을 말하는 것인데, 인연작용이 없어지면, 앞서 말한 연아달다의 미친 성품이 사라지고 따라서 깨달음을 얻는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인연작용이 분명한데, 부처님께서는 어째서 깨달음은 인연작용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냐는 것이 아난의 의문입니다. 아난 역시도 인연작용으로 인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생겼고, 무루도인 소승 아라한까지 얻은 대목건련, 사리불,수보리 등도 처음에는 외도수행을 하다가 부처님의 인연법을 듣고서 발심해서 결국은 소승 아라한 단계까지 도달했는데, 부처님은 어째서 깨달음이 인연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냐고 아난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본문]
[今說菩提不從因緣하시니 則王舍城拘舍離等所說自然成第一義
니다 惟垂大悲하사 開發迷悶하소서 ]
지금 여래께서‘깨달음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拘舍離) 등이 말하는
‘자연(自然)이 제일의제(第一義諦)가 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큰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들의 미혹되고 답답함을 열어주소서!”
[해설]
또한 부처님께서 지금 깨달음은 인연을 따라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신다면 , 그렇다면 인연작용이 아니면 자연일 텐데, 자연은 구사리등의 외도가 주장하는 개념인데, 외도의 주장과 같다는 것이니 어떻게 된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사고 아난이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자연은 인연작용의 반대 개념이므로 인연 작용이 아니라면 자연일 것이다,라는 것이 아난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의문점입니다.
4-2. 비유로서 자연도 인연도 아님을 밝히다.
[본문]
[佛告阿難卽如城中演若達多狂性因緣이 若得滅除하면 則不狂性이 自然
而出하리니 因緣自然理窮於是니라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마치 저 성중의 연약달다에게 미친 성품
[狂性]의 인연이 소멸하면 곧 미치지 않은 본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
니 인연과 자연의 이치가 여기에서 다할 것이다.
[헤설]
미친 증상이 이미 없어지고 나면 자연의 성품이 나오는데, 미친 증상이 있기 이전에는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그런 것이 모두 본래 없는 것입니다. 인연작용이 나온 근원을 찾아 보면 어디서 나왔는지 도저히 그 근원을 찾을 수가 없고, 인연이나 자연이니 하는 개념은 다 무지의 미혹이 있은 이후에 나온 허망한 개념이니, 무지해서 미혹되지 않았을 때에는 애당초부터 인연이니 자연이라는 말조차 없었으나, 무지로 인해 망념(妄念)들이 나타난 이후에 생긴 것이므로 <이치가 여기에서 다할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阿難演若達多頭本紫煙인댄 本自其然無然非自어늘 何因緣故怖頭狂走오 ]
아난아! 연약달다의 머리가 본래 자연이라면 본래부터 스스로 그러한 것
이어서 그렇게 자연 아닌 것이 없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머리가 없다고
두려워하며 미쳐 달아났겠느냐?
[해설]
자연이란 본래 있는 그대로이므로 인연작용에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말아야 하는데, 만일 본래 자연적인 것이라면 미치거나 미치지 않은 그런 것들이 다 자연 그대로여서 자연 아님이 없을 것인데, 어째서 다시 거울에 비친 영상으로 인해서 인연이라는 영향을 받은 다음에야 미치서 날뛰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若自然頭가 因緣故狂인댄 何不自然因緣故失고 本頭不失어늘 狂怖妄出
이니 曾無變易인댄 何籍因緣이리요 ]
만약 자연(自然)인 머리가 인연(因緣) 때문에 미쳤다면 어찌하여 자연인
머리가 인연을 따라서 자주 잃어버리지 않느냐? 본래 머리는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데 다만 미쳐 두려워한 것이 허망하게 나왔을 뿐이니 이미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면 어찌 인연을 빌리겠느냐?
[해설]
만약 본래는 스스로 미친 것이 아니었는데, 거울을 보는 인연으로 미친것 이라면,본래는 스스로 잃어버리지 않앗던 것이 어째서 인연작용으로 인해서 잃어 버렸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연작용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머리는 이미 잃어버리지 않았는데, 다만 두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미쳐서 망령이 허망하게 나와 제 머리를 잃어버려다고 미친 것이지, 인연 때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本狂自然인댄 本有狂怖니 未狂之際에 狂何所潛고 不狂自然인댄 頭本無
妄어늘 何爲狂走오 ]
만약 미쳐 두려워한 것이 본래 자연이라면 이는 본래 미쳐 두려워함이 항
상 있었다는 말이니 아직 미치지 아니하였을 때에 그 미쳐 두려워함은 어
디에 숨어 있었겠는가? (그러니‘본래 미쳐 두려워함이 자연이다’할 수
도 없고) 만약 미쳐 두려워함이 본래 자연이 아니라면 머리가 본래 잘못된
것이 아닌데, 무슨 까닭으로 머리에 눈과 얼굴이 없다고 미쳐 달아났겠느
냐?
[해설]
만약 미치고 두려워 하는 것이 본래 자연 그대로라고 한다면, 이것은 본래 미치고 두려워 함이 항상 있어야 하는데, 그러나 미치지 않을 때는 그 미치고 두려워 함에 어디에 숨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숨어 있는 것이 없다면 본래부터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만약 미쳐서 두려워 함이 본래의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면, 머리는 잘못된 것이 전혀 없는데, 왜 자기 머리에 눈과 얼굴이 없다고 미쳐서 달아 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본래 미치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본래 미친 것이 아니라면 본래 미치지 않은 것도 아니니, 자연이다, 인연이다 라는 말이 다 허망하게 성립된 것임을 알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연, 인연 그 둘에서 떠나면 이렇꿍 저렇꿍 따져 볼 이론(말)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4-3. 인연도 자연도 끊어진 자리가 각(覺)이다.
[본문]
[若悟本頭하야 識知狂走하면 因緣自然俱爲戱論이리니 是故我言호대 三緣
斷故卽菩提心이니라 ]
만약 본래의 머리를 깨달아 미쳐서 달아났던 일이 다 허망이었음을 알게
된다면‘인연이다, 자연이다’하는 말도 모두 희론임을 알 것이기에 그러
므로 내가‘삼연(三緣)이 끊어지면 그대로 깨어 있는 마음이다’고 말 한
것이다.
[해설]
만약 본래부터 '참되다'라는 것을 깨달으면 모든 망령된 생각들이 서로 상관이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는 것이죠. 참된 성품을 본 사람은 일체의 因과 緣들로 이루어진 모든 현상들이 모두 망령된 것임을 잘 안다는 것입니다.
[본문]
[菩提心生生滅心滅인댄 此但生滅이요 滅生俱盡無功用道에 若有自然인댄
如是卽明自然心하고 生滅心滅이니 此亦生滅이요 ]
깨달으려고 하는 마음[普提心]이 생기고 세속에 집착하는 마음[生滅心]
이 멸한다면 이것도 생멸이요, 생멸이 다한 공용(空用)이 없는 곳에‘자연
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면 이는 분명‘자연심이 생기고 생멸심이 멸한
것’이니 이 또한 생멸이다.
[해설]
깨닫고 난 보리심에는 본래 나고 멸하는 생멸심이 없으며, 또 자연도 없는데, 만약 보리심이 생기고 생멸심이 없어졌다면, 이것도 또한 또 하나의 생멸심인 것이지, 영원한 보리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의 생멸작용이 끝난 공부를 다 해서 얻은 도가 자연이라고 한다면 이로 인해서 자연심이 새로 생겨난다면, 이것도 또한 나고 멸하는 생멸심일 뿐이지 영원히 안정된 보리심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無生滅自名爲自然인댄 猶如世間諸相離和하야 成一體者名和合性하고 非
和合者稱本然性이니 本然非然과 和合非合의 合然俱離하고 離合俱非하야
此句方名無戱論法이니라 ]
만약 생멸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 한다면 이는 마치 세간의 모든 모습을 섞
어서 한 덩어리가 이루어지면 이를‘화합성(化合性)이다’하고 화합하지
않는 것은‘본연(本然)의 성품이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본연이다’‘본연이 아니다’‘화합이다’‘화합이 아니다’
하는 등의 이러한 화합과 본연을 모두 여의고, 또한 여의고 합함에서 벗어
났다는 생각에도 집착하지 아니하여야[俱非] 이러한 구절을 비로소 희론
이 없는 진리[無戱論法]라고 할 수 있다.
[해설]
또한 나고 멸함이 없는 즉 생멸작용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을 비유하여 다시 말해 보자면, 마치 이 현상세계의 모든 모습을 합쳐서 하나로 된 것이 화합이라고 하고, 화합하지 않은 것은 본연(자연)의 성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기는 논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과 자연이 아닌 것, 화합과 화합이 아닌 것 등의 희론을 모두 멀리 벗어나서 , 또한 버리고 버릴 것도 없는 것조차 없다는 생각도 없어져야 비로소 어떤 개념도 없는 무심의 경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菩提涅槃尙在遙遠하야 非汝歷劫에 辛勤修證이니 雖復億持十方如來 十
二部經淸淨妙理호미 如恒河沙라도 秖益戱論이라 ]
깨달음과 열반이 이처럼 아득하고 멀어서 그대가 수많은 세월에 걸쳐 닦
아 증득하지 못했던 것이니 비록 시방여래와 12부경(十二部經)의 청정한
이치를 기억하여 마치 항하의 모래 수와 같더라도 다만 희론만 더했던 것
이다.
[해설]
말과 생각으로 된 이원적인 개념으로 보리와 열반을 얻을려고 앞 세운다면 천년을 가도 보리와 계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교설한 것은 다 청정묘리(淸淨妙理)인데, 십이부경의 경전에 있는 청정묘리의 내용들을 아란이 모두 기억하고 이해한다 하드라도 그것들은 다 말로 된 이원적인 개념이므로 실질적으로 보리를 체득하는데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입니다.
4-4. 무루업을 닥아야 생멸을 벗어난다.
[본문]
[汝雖談說因緣自然호미 決定明了하야 人間稱汝하야 多聞第一이며 以此
積劫의 多聞薰習이나 不能免離摩登伽難하고 何須待我佛頂神呪코사 摩
登伽心淫火頓歇하고 得阿那含하야 於我法中成精進林하고 愛河乾枯하야
今汝解脫고 是故阿難 汝雖歷劫에 億持如來秘密妙嚴이나 不如一日에
修無漏業하야 遠離世間憎愛二苦니라 ]
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하는 것이 분명하여 사람들이 너를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한다. 이렇게 여러 겁 동안 다문(多聞)을 훈습했
으나 마등가의 난(難)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
呪,능엄주)를 기다리고 나서야 마등가의 마음에 음욕의 불길이 사라지고
아나함(阿那含)을 증득하여 나의 법 가운데에서 정진의 숲을 이루고 애욕
의 강물이 말라 그리하여 그대가 애욕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되었더냐?
그러므로 아난아! 그대가 비록 여러 겁(劫,시간)에 여래의 비밀한 가르침
[妙嚴]을 ‘잘 기억하고 있다’ 하나, 이는 단 하루 무루업(無漏業)을 닦
아서 세간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두 가지 고통을 멀리 여의는 것만 같지 못
하다.
[해설]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이론으로 따지는 것은 빠사하게 잘 알지는 모르겠지만, 실지로 도 닦는 데는 그런 개념적이론은 아무 쓰잘데도 없으며, 많이 들어서 유식한 것이 남들에게는 훌륭하게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도를 닦는데는 장애만 될 뿐 아무런 효력이 없어서, 네가(아난) 비록 오랜 기간에 공부를 많이 하였다고 하지만, 한 순간에 마등가라는 여인의 유혹에 그대로 넘어 갈 뻔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샘이 없는 도(비이원적인 수행)를 깊히 닦아서 이원화 세상의 분별심의 고통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서 깨달음을 얻어야 된다고 아난을 꾸짓으십니다.
[본문]
[如摩登伽는 宿爲淫女로대 由神呪力으로 銷其愛慾하니 法中今名性比丘尼
라 與羅睺母耶輸多羅로 同悟宿因하야 知歷世因貪愛爲苦하고 一念薰修無
漏善故로 惑得出纏惑蒙授記어늘 ]
마등가녀는 출가 이전에 음란한 여자였으나 신주(神呪,능엄주)의 힘으로
애욕을 소멸하고 불법에 들어와 성비구니(性比丘尼)라는 이름을 얻었으며,
나후라의 어머니인 야쇼다라(耶輸陀羅)와 함께 과거 숙세의 인연을 깨달았
으니 즉 많은 세상을 윤회했던 원인이 탐애 때문에 고(苦)가 되었음을 알
고, 일념으로 무루선(無漏善)을 닦아 혹은 얽매임에서 벗어나고[出纏] 혹
은 수기(授記)를 받았던 것이다.
[해설]
무루법을 닦아 익혀서 속히 깨달음을 얻은 두 여인의 예를 들었는데,아난과 과거 500년 동안 부부였던 마등가와 싯딸다 태자(석가모니 출가전)와 과거 500년 동안 부부었던 아쇼다라를 예를 들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원래 아난을 유혹하던 창녀출신의 마등가가 능엄신주의 힘으로 성욕을 극복하고 부처님께에 들어와 깨달음(아나함과)을 얻은 비구니가 되었고, 아쇼다라도 깨달음을 얻어 비구니가 되어서 과거에 윤회세상의 고통속에서 헤메던 것이 바로 탐욕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 무루선(비이원적인 수행)을 닦아서 욕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아난의 과거 전생의 부인이었던 마등가와 싯달다 태자(석가모니)의 부인이었던 야수다라가 둘 다 숙세의 인연을 깨달아 비구니가 되었다는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내보인 것입니다.
[본문]
[如何自歎하야 尙留觀聽고 ]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스스로 속아서 아직도 보고 듣는 데에만 머물러 있
느냐?
[해설]
아난을 꾸짓어서 괴로움의 원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샘이 없는 도(無漏禪)을 닦아서 속세의 탐욕과 애욕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는 마음과 눈의 대상(이원화 대상)에 집착하지 말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여 분별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이원화 대상으로부터 벗어나서 비이원화 수행(무루선)으로 빨리 탐욕으로부터 해탈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마등가와 야수다라 같은 여인네들도 나약한 근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아나함과 단계를 얻었는데, 아란 너는 도데체 여태까지도 무루선을 닦아 깨닫지도 못하고, 아직까지도 보고 듣고 하는 대상에만 그대로 머물러 집착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고 안타깝기가 그지없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사마타(奢摩陀)에 대한 이야기, 즉 견도분(見道分)입니다. 이상으로 제2장 견도분을 마쳤습니다.
다음부터는 제 3장 수도분(修道分), 즉 삼마제(三摩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