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54)

2015. 5. 8. 20:09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 54회]


1-1. 온갖 현상이 생기는 이치

 

  1) 먼저 근본을 밝히다.


[본문]

[佛言富樓那 如汝所說淸淨本然커니 云何忽生山河大地리요 汝常不聞

如來宣說性覺妙明하며 本覺明妙 富樓那言唯然世尊 我常聞佛宣說斯義

이니다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부루나야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청정하고 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겠느냐? 그대는 내가 늘 ‘성각(性覺)이

묘명(妙明)하고 본각(本覺)이 명묘(明妙)하다’고 하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

부루나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저는 항상 부처님께서 그러한

이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해석]

​전번 회에서, 부루나가 "청정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와 유정이 생겼습니까?"하고 물었는데, 부처님의 대답이 "네 말대로 청전본연한데 어찌하여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겠느냐?"라고 똑같은 문장으로 대답 했습니다. 부르나가 질문한 것은 이원적인 입장에서 교학적인 이치를 물었는데, 부처님께서는 원래 청정본연한데 왜 산하대지가 생겼겠느냐고 대답하셔서, 비이원적인 입장에서 원래 청정본연하면 그것으로 끝내야지, 또 무슨 산하대지가 생겼다는 망상을 부리느냐는 식으로 대답을 한 것이죠.

그리고 부처님이 다시 전에 언젠가 말씀 하신 "성각(性覺)이 묘명하고, 본각(本覺)이 명묘하다"라는 말을 아느냐고 묻습니다.

이 <성각(性覺)이 묘명(妙明)하고 본각(本覺)이 명묘(明妙)하다>는 말에서, 성각이나 본각이나 다 같은 절대본체, 즉 여래장을 표현한 것인데, 이 진여를 두 가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움직임없는 바탕과 작용요소(의식파동)가 잠재해 있는 성품으로 두 가지로 표현할 수가 있는데, 정지와 움직임, 본체와 작용,체(體)와 용(用), 적(寂)과 조(照)로 나눌 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성각(性覺)이나 본각(本覺)이나 다 같은 말입니다. 그러나 성각(性覺)은 본성자리로부터 구족해 나온 것을 성각(性覺)이라 하는데, 각(覺)의 작용(用,의식)이 생기기 이전, 아직 용(用)을 발하지 않고 본성 자리에 구족해 있는 체(體)로만 있는 것을 자각측면으로 표현 한 것을 성각(性覺)이라 하고, 본각(本覺)이란 본래부터 있는 각(覺)이라고 해서, 새로 닦아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원래부터 있는 각(覺,바탕)을 말합니다.

성각(性覺)의 성(性)자는 성품으로 각(覺)이라는 말이지, 작용(用)이 생기는 것을 가리키지 않고, 본각이란 본래부터 있는 각(覺)이지, 닦아서 증득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성각과 본각을 말했는데, 묘명(妙明)이나 명묘(明妙)가 다 같은 말이겠지만, 성각은 묘명하고 본각은 명묘하다고 했습니다.  묘(妙)는 체(體)를 가리키는 말이고, 명(明)은 용(用)을 가리키는 말이니깐, 묘명(妙明)이라는 것은 자체(自體)에서부터 용(用)이 생기는 것을 말하고, 명묘(明妙)라는 것은 용(用)을 거두어 가지고 체(體)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성각(性覺)은 '성품 자체가 각(覺, 깨달음)'이라는 것은, 여래장을 파동성으로 비유하자면 파동성 절대 공진상태를 의식파동적인 측면으로 표현한 용어입니다. 파동성이란 원래는 정지상태 ->움직임의 시작->움직임 진행 ->움직임 정지->움직임 궤환(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감),-> 시작점 도착, 이렇게 해서 한회전의 파동 움직임이 형성이 되는데, 이렇게 움직일 때에는 시간요소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시간 요소에 의하여 공간요소도 따라 나오게 되어 이원화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한 파동의 움직임 중에서 시작점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궤환운동이 거의 제로가 되면 시작점과 궤환점이 1점에 공진되어 최대 에너지의 집약된 핵점이 되는데, 이 시작점과 궤환점이 동일한 지점을 파동의 절대공진상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시작점과 궤환점 사이의 거리를 반파장이라고 하는데, 이 반파장이 제로가 된다면 주파수가 무한대가 되는 묘(妙)의 상태가 되고, 파장이 제로가 되는 완전 자각(自覺)의 상태가 됩니다. 원래 의식파동 자체가 자각(自覺)운동이 밖으로 누설(有漏)되어 길게 파장이 늘어난 것이지만, 파동성의 근본은 아무 것도 새지 않는 점 안에서 무루(無漏)의 자각(自覺, 시작점과 궤환점이 동일한 상태)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절대 본체인 여래장을 움직이지 않는 본바탕의 체(體) 입장에서 말한다면 본각(本覺)라고 말하고, 작용측면으로 말할 때, 즉 의식의 파동성(照)의 측면에서 본체를 말할 때는 성각(性覺), 즉 자각하는 성품 이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묘진여성 여래장을 의식의 작용이 나오는 측면(照)에서는 성각(性覺), 움직이지 않는 바탕(寂)의 측면에서는 원래부터 변함없이 있는 본각(本覺)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성각(性覺)은 묘명(妙明)"이라는 말에서, 묘(妙)는 아주 미세하다, 정밀하다는 뜻이니깐, 가장 미세한 파동성질을 말하며, 바로 파동성 절대공진상태(파동성이 정지된 공진핵점)를 표현 한 것이므로 묘진여성(妙眞如性)을 말합니다. 즉 작용측면에서 표현한 절대바탕을 말합니다. 그, 다음에 명(明)이란 말은, 작용을 말하니깐 의식의 "밝음의 비춤운동"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서 묘명(妙明)은 '태양(절대바탕)에서 빛(존재의식)이 나온다'라고 표현한 것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성각은 묘명하다"는 '자각(깨달음)의 성품은 본체에서 의식(밝음)이 나오는 것이다"라고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본각(本覺)이 명묘(明妙)하다"에서, 본각은 원래부터 있는 본바탕(體)이고, 명묘(明妙)에서, 명(明)은 작용이고, 묘(妙)는 진여(진여) 바탕이므로 , "본각은 밝음이 바탕으로 되돌아 간것이다" 즉 의식 파동이 시작점인 본체로 궤환된 것이다. 라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각은 묘명하고, 본각은 명묘하다>를 전체적으로 해석해 보면, 의식(작용,照)의 측면에서 본 진여는 의식(밝음,照)이 본체(寂)로부터 비추어 나온 것이고(寂照), 본래부터 있던 본바탕 측면에서 보자면 의식작용(밝음,照)은 바탕(寂)으로 되돌어간다(照寂,즉 의식의 작용이 본체 속에 흡수되어 없다)라고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말씀은 여래장은 본체에서 의식이 나왔다가, 다시  의식이 본체로 돌아가므로, 본체, 즉 여래장 묘진여성만 그대로 남아있지, 의식작용은 왔다가 되돌아가고, 왔다가 되돌가는 수시로 움직이는 파동성의 것이므로 , 이 파동성 의식작용으로 나타난 산하대지는 없는 것이고, 변함없는 묘진여성 여래장 그 자체만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작용이라는 것은 파동성 움직임으로서 그 본체에서 나왔다가 본체로 되돌아가는 파동성의 작용일 뿐, 항상 남는 것은 원래부터 있는 여래장 바탕만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 성품은 묘진여성 여래장 바탕만 있을 뿐, 수시로 그 자리에서 들락날락하는 파동성에 의해서 의식작용으로 나타난 산하대지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부르나가 부처님이 항상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수시로 진여 바탕인 제자리에서 들락 날락하는 허망한 의식의 파동성 작용이라는 것을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본문]

[佛言汝稱覺明 爲復性明 稱名爲覺 爲覺不明 稱爲明覺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대가 지금 각(覺)과 명(明)을 말하는 것은 깨달

음의 성품이 본래로 밝다는 뜻에서 각(覺)이라 칭하는 것이냐? 깨달음

의 성품이 밝지 못해서 이를 밝혀야 한다는 뜻에서 명각(明覺)이라 칭하는

것이냐?”

[해설]

부처님이 부루나에게 "그대가 지금 각(覺)과 명(明)을 말하는 것은 - - "이라고 말했는데, 위 문장에서 보면, 부루나가 직접 말한 것이 아니고, 부처님이 전에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고 하니깐, '각명(覺明)을 얘기하는 것을 들을 때에 - -'라는 말입니다.

각명(覺明)은, 성각(性覺)은 묘명(妙明)하고 본각(本覺)은 명묘(明妙)라는 그 성각(性覺), 본각(本覺)의 각(覺)자와, 묘명(妙明)하고 명묘(明妙)하다는 그 명(明)자를 말합니다. 각명(覺明)은 각(覺)와 명(明)자를 따로 따로 말하는 것입니다.

" 성품이 본래 밝다(明)는 뜻에서 각(覺)이라고 칭하는 것이냐?"에서, 본래 밝은 것인데, 밝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본래부터 밝은 것을 갖추고 있으니깐 , 각(覺)이라고만 이름 붙혀서 그 밝음이라는 뜻을 그 가운데 포함시켰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말인데, 부르나가 얼마나 아는지 지금 부처님이 일부러 테스트 하며 떠 보는 질문입니다.

또한 " 각(覺)의 성품이 밝지 못해서 이를 밝혀야 한다는 뜻에서 명각이라고 부른 것이냐?"라는 말에서, 본래 진각(眞覺)자리는 명(明)을 갖추고 있는 것인데, 각(覺)이 밝지 않다면 이것은 망각(妄覺)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여기서 명각(明覺)은 밝혀야 할 각(覺)을 말합니다. 覺이 밝지 않아서 억지로 각(覺)에 명(明)자를 붙혀서 밝게 만드는, 밝혀야 할 각(覺)인가, 묻습니다. 즉, 자성자리는 밝은 것이어서 그냥 각(覺)이라고 부르는데, 각(覺)이라는 가운데 명(明)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느냐, 각(覺) 자체는 밝지 않은데 억지로 명(明)을 갖다 붙혀서 밝혀야 할 각(覺)이라고 생각하느냐? 묻는 것입니다. 위에서 성각(性覺)은 묘명(妙明)하고, 본각은 명묘(明妙)라고 한 것에서, 위에 물은 것은 진각(眞覺)이고, 다음에 물은 것은 망각(妄覺)인데, 부루나 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진(眞)과 망(妄)을 들어서 부루나의 대답을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부루나가 아는지 모르는지 일단 테스트 해 보는 것이죠.

[본문]

[富樓那言 若此不明 名爲覺者인댄 則無所明이니다 ]

 부루나가 말했다. “만약 이와 같이 밝힐 것이 없는 것을 그대로 각(覺)이

라고 한다면 굳이 애써 밝힐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해설]

명(明)이 없으니 무엇을 밝히겠습니까? 覺이 자체는 밝지 않은데, 明을 거기에 붙혀서 명각(明覺)이라고 해야지 옳지, 본바탕 자체가 밝지 않은 것을 각(覺)이라고 한다면 그 각(覺)을 가지고 무슨 작용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명(明)이 있어야 중생을 구제할 텐데, 명(明)이 없다고 한다면 어떻게 각(覺)이라고 하겠습니까? 즉 각(覺)자리는 밝지 않으므로 그것을 밝혀야 할 각(覺)이라고 그래야 되겠습니까,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각(眞覺)은 명(明)이 없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아무 소용도 없으니, 그래서 부루나는 망각(妄覺)이 옳다는 것입니다. 각(覺)이라고 하면 뭘 밝혀야 할 텐데, 자체가 밝지 않으니 어덯게 각(覺)작용을 하겠습니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므로 부처님의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뜻을 가지고 각(覺)이다, 명(明)이다,라는 뜻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佛言若無所明 則無明覺이니라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말대로 밝힐 것이 없는 것을 각(覺)이

라 한다면 밝혀야 할 각(覺)도 없을 것이다.”

[해설]

​네 말대로라면 , 밝힐 바가 없으면 곧 밝힐 각(覺)도 없겠다, 무명각(無明覺)이 아니라, 명각(明覺)이 없겠다는 말입니다. 즉 밝힐 바(所明)가 없어서 각(覺)이라 할 수 없다고 하니, 만약 밝힐 바가 없으면 곧 밝혀야 할 깨달음도 역시 없을 것이다, 그 말입니다.


[본문]

[有所非覺이요 無所非明이니 無明又非覺湛明性이라 ]

 너의 말대로 만약 깨달아야 할 것[所覺]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진각(眞覺)

이 아니다. 그러나 깨달을 것[所]이 없으면 깨달음의 밝음[明]도 있지 아니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밝음이 없는 것[無明]을 어떻게 깨달음의 밝은 성품

[覺湛明性]이라 이름 할 수 있겠느냐?

[해설] 

만약 밝혀야 할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 밝힐 것을 갖다 대놓는 것이니깐 진각(眞覺) 자체에 명(明)이 구족해 있는 깨달음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밝힐 것(所明)이 있어야 되겠다고 하니, 밝혀야 할 것이 있다면, 즉 명(明)을 갖다 대서 밝힐 것이 있다면 진짜 깨달음(眞覺)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밝은 것이 없으면 깨달음의 본체, 즉 본래 밝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밝은 바(所明)가 없으면 그것은 명(明)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밝힐 바가 있어도 안되고, 밝힐 바가 없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소명(所明,밝힐 것)이 있으면 본각(本覺) 자리가 아니고, 소명(所明,밝은 바)이 없으면 또 각(覺)이 아니라는 것이죠. 깨달음(覺)은 원래 그 자체가 밝음인데 만일 밝음이 없다면 (無明) 어떻게 원래부터 밝은 깨달음이라고 할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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