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17. 20:31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50회]
6-5-6. 견대(見大)가 곧 여래장
[본문]
[阿難見覺無知하야 因色空有하나니 如汝今者에 在袛陀林하야 朝明夕昏
하며 設居中宵하야도 白月則光하고 黑月便暗이요 則明暗等을 因見分析
하나니 此見爲復與明暗相幷太虛空으로 爲動一體아 爲非一體아 惑同非
同이며 惑異非異아 ]
아난아! 보고 느끼는 것에 앎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색(色)과 공(色空) 등의
경계 때문에 앎이 있는 것이다. 네가 지금 지타림에 있을 때에 아침에는 환하
고 저녁에는 어두우며 설사 밤중이라도 보름달이 비출 때에는 환하고 그믐에
는 어두울 것이다.
이러한 명암(明暗) 등을 봄으로 인하여 분석(分析,앎)이 있게 되는데, 이 보
는 성품[見]이 다시 명암의 현상과 태허공(太虛空)으로 더불어 동일체(同一
體)이냐, 동일한 체가 아니냐? 아니면 혹은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하며,
혹은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
[해설]
"보고 느끼는 것이 앎이 있는 것이 아니라(見覺無知),"에서, 견각(見覺)이란 눈으로 보고 깨닫는 것을 말하는데, 꼭 눈으로 보고 모양을 느끼는 것 뿐만 아니라, 귀로 듣고 소리를 느끼는 것, 코로 냄새맡고 냄새를 느끼는 것, 혀로 맛을 보고 맛을 느끼는 것,등등의 육근(六根)의 작용을 느끼는 것을 통 털어 표현한 것인데, 육근 중에서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니깐, 견(見)을 대표로 내세워서 견각(見覺)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견각(見覺)이라고 표현함으로서 해석들을 엉뚱하게 할 수도 있는데, 견각(見覺)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육근각(六根覺) 또는 근각(根覺)이라고 해야 명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가 있읍니다. 다시 말하면, 견각은 보는 것(眼根작용)을 느끼는 것 뿐 만 아니라, 듣는 것(耳根작용), 냄새맡는것(鼻根작용), 맛보는 것(舌根작용), 촉감(身根작용), 생각하는 것을 아는 것(意根작용) 등 6근 전체를 표현한 것입니다. 견각(見覺)에서, 견(見)은 육근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전오식(前五識) 작용을 가리키는 것이고,각(覺)은 제8식(識)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견각(見覺),즉 전오식과 8식이 그 체(體)가 같다고 주장하는 데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본다고 할 때, 눈은 거울면과 같아서 그대로 비추기만 하지 구체적으로 분별하는 앎이 없습니다. 여기서 견각(見覺)이라는 것이 안근의 작용으로서 분별하는 앎이 없고, 이 전오식이 제 8식에서 나오므로 그대로 전오식과 8식이 분별작용이 없는 체(體)가 같다는 것입니다. 분별앎이 없이 눈으로 본다는 작용은 전오식과 제8식이 같은 체(體)이기 때문에 눈으로 본다는 작용만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전오식이 작용을 할 때에, 예를 들어 안근(눈)으로 빨간 사과를 볼 때에 안근이 작용할 때에, 동시에 제6식이 작용을 해야 눈으로 보고 "빨간 사과가 있다"는 것을 아는 분별앎은 생기는데, 만일 6식이 작용해 주지 않으면 보기는 보되 그것이 빨간사과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보는 작용은 전오식과 8식으로만 작용하지만, 대상에 대한 육식의 분별앎은 없어서 무지(無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각(見覺)이 무지(無知)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色과 空으로 인하여 있다"에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은 색(色), 즉 물질과 공(空) 등 대상들로 인해서 분별앎이 생긴다는 말씀입니다. 즉 색(色)이나 공(空) 없이, 안근(眼根) 혼자서는 보고 아는 작용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밝음과 어둠 등을 봄으로 인하여 보는 것이 분석되나니"라는 말에서, 밝음과 어둠이 보이는 것은 바로 그 보는 자(보는 주체) 자체가 있다는 것을 밝혀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보는 것(주체)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밝음과 어둠 등의 대상이 변화하는 것을 알므로 보는 것도 있다는 것을 따로 뽑아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밝고 어둠 등이 견(見)으로 인해서 분석(分析)된다."라고 써야 할 텐데, 견(見,주체)은 밖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므로, 먼저 밖으로 나타나는 明,暗 등의 변화하는 대상을 먼저 말하고, 그로 인해서 견(見)이 있음이 분석된다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보이는 대상을 기준으로 보는 주체인 견(見)이 있음을 추출해 낸다는 것이죠.
" 이 보는 성품이 명암과 더불어 태허공과 동일체이냐, 동일체가 아니냐?"에서, 명암(明暗)은 색(色)을 말하고, 태허공은 공(空)을 말하니깐, 이 보는 견(見)이 明暗色空과 같으냐, 다르냐고 물어 보는 것입니다.
"아니면 혹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하며, 다르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느냐?"에서, 말을 좀 복잡하게 늘어 놓았는데, 다시 정리해보자면, "혹 같거나 다르거나, 혹 같지 않거나 다르지 않거나" 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러가지 논리적 현상을 늘어 놓은 것은 이원화 물질현상세계에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증명해 볼려고 하는 것이죠.
[본문]
[阿難此見若復與明與暗과 及與虛空으로 元一體者인댄 則明與暗은 二
體相亡하야 暗時無明하고 明時無暗이니라 ]
아난아! 만약 이 보는 성품이 다시 명암(明暗)이나 허공과 함께 원래 한 덩
어리였다면 명암의 두 가지 체(體)가 서로 공격하여 어두울 때는 밝음이 없어
지고, 밝을 때에는 어두움이 없어질 것이다.
[해설]
만약 보는 성품이 밝음과 어둠,허공과 더불어 동일체라고 한다면, 어둠과 밝음은 각각 두가지 체(體)가 없어서 밝을 때는 어둠이 없어지고, 어두울 때는 밝음이 없어지므로, 명암이 일체가 될 수가 없다는 이유를 듭니다.
[본문]
[若與暗一인댄 明則見亡이요 必一於明인댄 暗時當滅이니 滅則云何 見明見
暗이리요 若明暗殊나 見無生滅어늘 一云何成이리요 ]
만약 이 보는 성품이 어두움과 한덩어리라면 밝을 때에는 응당 보는 것이
없어질 것이고, 반드시 밝음과 한덩어리라면 어두울 때에는 응당 볼 수 없을
것이니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이 소멸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밝음을 보고, 어두
움을 보겠느냐? 이와 같이 명암은 비록 달라지나 보는 성품은 원래로 생멸이
없거늘 하나의 몸[一體]이라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해설]
만약 이 보는 성품이 어둠과 동일체라면 밝을 때는 당연히 어둠과 함께 보는 見도 없을 것이고, 만일 見이 밝음과 동일체라면 어두을 때는 당연히 밝음과 함께 견(見)이 없으므로 볼 수 없을 것인데, 우리는 밝음도 알고 어둠도 알고 있으니, 보는 見은 명암의 대상들처럼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어둠이나 밝음은 다르게 생멸변화하는 것이지만, 보는 견(見)은 항상 그대로 이므로, 밝음과 어둠 등의 대상과 동일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若此見精與暗與明으로 非一體者인댄 汝離明暗及與虛空하고 分析見元하라
作何形相고 離明離暗하고 及離虛空이면 是見元同龜毛兎角하리니 明暗虛空
의 三事俱異인댄 從何立見이리요 ]
만약 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밝음과 어둠과 함께 하나의 몸[一體]
이 아니라면 너는 명암과 허공을 여의고 보는 성품의 근원을 분석해 보아라.
무슨 형상이더냐?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을 떠나서는 보는 성품이 원래로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인데,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의 세 가지 일과 다르다면 무엇으로
보는 성품[見]을 세우겠는가?
[해설]
만일 見의 정미로움(見精-보는 것의 근원)이 밝음과 어둠과 함께 동일체가 아니라면, 네가 밝음,어둠,허공이 없을 때에 見의 근원을 분석해 보라는 것인데, 견(見)이라는 것은 밝은 것과 어둠을 알고, 허공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견(見)하는 작용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없다고 한다면 견(見)이라는 것이 무슨 형상을 가지고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밝음,어둠, 허공을 벗어나서는 본다(見)는 그 작용자체가 성립이 안되므로, 보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밝음, 어둠, 공(空)이 세가지가 없다면 본다는 見의 작용자체가 없으므로 견(見)이라고 내세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明暗相背어늘 云何或同하며 離三元無커니 云何或異하며 分空分見컨댄 本無
邊畔커늘 云何非同이며 見暗見明으로 性非遷改어니 云何非異리오 ]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어긋나는데, 어떻게 보는 성품이 이들과 같다고 할 수
있으며, 밝음과 어두움과 허공의 세 가지를 떠나서는 따로 보는 성품을 세울
수 없는데, 어떻게 또 보는 성품이 이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으며, 허공을 나
누고 보는 성품을 나누려고 해도 본래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같지 않다고 할
수 있으며, 어두움을 보기도 하고 밝음을 보기도 하지만, 보는 성품은 옮기고
바뀌는 것이 아니거늘, 어떻게 명암과 보는 성품이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겠
느냐?
[해설]
보는 성품인 견(見)이 밝음,어둠,공(空)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또 이들 생멸하는 밝음,어둠,공 등의 대상들을 벗어나서 별도로 보는 성품이 있다고 내세울 수도 없으므로, 보는 성품이 이들 변하는 대상들과 다르다고도 말할 수가 없으며, 허공이라는 것은 경계가 없어서 무한하여 나눌수가 없으므로 , 견(見)이 공(空)이고, 공(空)이 견(見)이어서, 어디서 어디까지가 견(見)이고, 어디서 어디까지가 공(空)의 경계라고 경계선을 그을 수가 없으니, 空과 見이 같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밝음과 어둠은 수시로 달라지는데, 보는 성품은 그대로 있으니깐, 보는 성품과 명암이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죠. 즉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일체(一體)와 비일체(非一體), 그리고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고(或同或異), 그리고 같지 않기도 하고, 다르지 않기도 하고(非同非異)를 다 이야기 했습니다.
즉 위에서 이원화 세계에서 밝혀 낼 수 있는 모든 현상적 증명을 다 분석해 보았더니
결정적인 단일한 결론은 결코 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보는 견(見)은 현상적인 논리구조로는 그것을 밝히는데 한계가 있음을, 즉 말고 현상적인 논리로는 증명하기가 불가능함을 알았습니다.
[본문]
[汝更細審하야 微細審詳하야 審諦審觀하라 明從太陽하고 暗隨黑月하고 通屬
虛空하고 壅歸大地어니와 如是見精이 因何所出고 ]
너는 다시 자세하고 미세하게 살펴서 깊이 분별하고 유심히 관찰해 보아라.
밝음은 태양에서 오고, 어두움은 달이 없는데서 오며, 통한 것은 허공에 속하
고, 막힘은 대지로 돌아가는데, 이와 같이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은 어
디에서 나오느냐?
[해설]
다시 또 다른 방법으로 미세하게 살펴서 보는 성품인 견(見)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를 따져 봅니다. 앞의 장에서 따져 보았듯이, 모든 현상적 대상들은 그것이 어딘가에서 온 근원이 있는데, 만일 그 대상들이 온 근원을 찾아서 그 근원으로 돌려 보낼 수 있으면 그것은 없앨 수가 있는 것이고, 만일 그것이 온 근원이 없어서, 근원으로 돌려 보낼 수가 없다면, 그것은 바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최종 바탕인 여래장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밝음은 그 밝음이 온 태양으로 돌려 보내면 밝음은 없어질 수가 있고, 어둠은 달이 없는 밤으로 돌려 보내면 어둠이 사라지고, 통한 것은 허공에서 나온 것이고, 막힘은 땅에서 나온 것임을 아는데, 이런 식으로 보는 성품이 나온 곳을 찾아 보아도 그것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찾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見覺空頑이라 非和非合이며 不應見精이 無從自出이니라 ]
보는 성품은 깨달아 아는 것이 있고, 허공은 완고한 것이니 화합에서 나온 것
도 아니며, 그렇다고 응당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인연이 없이 스스로
나온 것도 아니다.
[해설]
"보는 성품은 깨달아 아는 것이고, 공(空)은 완고한 것이니"에서 보는 성품(見)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성품 뿐 아니라, 소리를 듣고, 맛을 보고, 냄새를 맛는 등 前五識 작용을 모두 통틀어서 말하는 것으로서, 눈으로 보는 견(見)을 대표적으로 내세워 말하는 것입니다.
즉 견문각지(見聞覺知)와 공(空)이 같다는 것으로 여겨서, 견(見)과 공(空)의 성품이, 깨닫고 아는 작용이 있으면서도, 움직임없이 고집스럽기 때문에, 다른 것과 섞여가며 화(和)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합(合)으로 인해 나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것과 인연이 없이 혼자서 저절로 나온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若見聞知性原周遍하야 本不動搖인댄 當知無邊한 不動虛空과 幷其動搖
하는 地水火風하야 均名六大니 性眞圓融하야 皆如來藏本無生滅하니라 ]
만약 이와 같이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
는 것이라면 응당 저 끝없는 부동의 허공과 동요하는 지수화풍(地水火風)과
함께 나란히 육대(六大)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품이 참되고 원
융하여 모두가 여래장이요 본래 생멸이 없기 때문이다.
[해설]
"만약 이와같이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 원만하고 두루하여 본래 동요하지 않는 것이라면"에서, '보고 듣고 아는 성품'이라는 것은 견문각지(見聞覺知)를 말하며, 이것은 육근(六根)의 작용을 통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육근의 작용, 즉 전오식의 작용은 원래 제8식의 체와 같다는 말과 같습니다.
테레비죤 방송을 비유적으로 말하면, 테레비죤 화면 위에 나타나는 다양한 색채와 모양의 동영상 프로그램의 그림이나 소리로 나오는 말과 음악이나 방송국의 송신소에서 프로그램을 실어서 세상에 발사하는 높은 전자파인 UHF반송파 전파 등은 모두가 파장이나 주파수만 다른 동일한 전자기 파동이며, 이것들의 근원은 모두가 60헤르츠의 낮은 진동수의 교류전원에서 파동성이 없는 직류전원으로 만들어서 이 직류전원으로부터 생겨나온 다양한 전자파 파동인 것처럼, 제8식과 前五識은 모두 같은 의식의 체(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소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육근(六根)의 근원도 전체에 두루 골고루 펼쳐 있으면서 부동의 변화없는 여래장의 바탕이라면, 앞서 부동의 절대바탕의 여래장 속에 포함되어 있는 기본 성분들인 지,수,화 풍,공의 기본성분들에 대(大)자를 붙혀서 공대(空大), 지대(地大), 수대(水大),화대(火大), 풍대(風大)라고 했듯이, 보는 성품인 견(見)도 역시 견대(見大)라고 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 근(根)의 근본 성품은 순수하고 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는 공통적인 바탕 속에 골구루 펼쳐져 있으므로, 그 육근의 작용 자체가 여래장이요, 그 바탕이 본래 생멸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阿難汝性沈淪하야 不悟汝之見聞覺知가 本如來藏하니 汝當觀此見聞覺知
하라 爲生爲滅가 爲同爲異아 爲非生滅이요 爲非同異아 ]
아난아! 너는 성품이 잠겨 있어서 너의 견문각지하는 것을 다시 돌이켜 관
찰하여 보아라. 이것이 생이더냐, 멸이더냐? 같더냐, 다르더냐? 생멸도 아
니고, 같고 다름도 아니더냐?
[해설]
"너는 성품이 잠겨(沈淪) 있어서" 라는 말은 본래성품인 여래장이 중생의 무지(無知) 밑에 잠겨져서 뭍혀 있다는 말입니다. 일상의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바탕에서 본래부터 보는 성품이 生하고 滅하는 것이 있던가, 아니면 일상의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또한 생멸하지도 않으며, 같고 다름도 아닌 것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멸, 같음,다름, 생멸도 아니고, 같음도 아니고, 다름도 아니다,라는 여러가지 상태는 다양한 이원화적인 현상을 그 바탕의 보는 성품에서 발견할 수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여래장은 이런 이원화 현상처럼 표현할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같습니다.
[본문]
[汝曾不知로다 如來藏中性見覺明과 覺精明見이 淸淨本然周遍法界하야
隨衆生心應所知量하나니 如一見根이 見周法界인달하야 聽齅嘗觸과 覺
觸覺知도 妙德瑩然하야 周遍法界하고 圓滿十虛커니 寧有方所리오 循
業發現하거늘 世間無知하야 惑爲因緣及自然性하나니 皆是識心分別計度이
니 但有言說都無實義니라 ]
너는 일찍이 여래장 가운데 성품이 보는 것[見]인 진공(眞空)의 각명(覺明)
과 성품이 공(空)인 깨달음[覺]의 묘정명견(妙精明見)이 청정본연(淸淨本然)
하고 법계에 두루하여 중생심(衆生心)을 따르고 소지량(所知量)에 응하는 것
임을 알지 못하는구나!
이는 마치 하나의 견근(見根)의 보는 성품[見]이 법계에 두루하듯이 귀의
들음[聽]과 코의 맡음[嗅]과 혀의 맛봄[嘗觸]과 몸의 느낌[覺觸]과 뜻의
분별[覺知]도 그 묘덕(妙德)이 환하게 법계에 두루하여 시방의 허공에 가득
한데, 거기에 어찌 장소가 따로 있겠느냐?
보고 깨닫는 것이 다 업에 따라 나타난 것인데, 세상 사람들이 무지하여 이
것을 ‘인연의 성품이니 자연의 성품이니’하고 미혹하는 것이다. 이는 다
식심(識心)으로 분별하고 계탁한 것이니 다만 언설(言說)이 있을지언정 도무
지 실다운 뜻이 없다.
[해설]
여래장은 공간과 시간이 없는 밖에서 보면 마치 점과 같은 것으로, 어떤 상태로써 표현할 수는 없지만, 파동성(波動성)으로 비유해 보자면, 모든 파동의 근원이면서 모든 파동주파수의 총합인 절대 공진상태라고 표현해 보겠습니다. 따라서 모든 파동 에너지가 한점에 집약되어 그 파장이 제로점에 무한급수적으로 가장 접근해 있고, 주파수는 수열적으로 무한대에 최대한 접근된 상태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여래장이라고 비유해 보자면, 이 우주의 불랙홀과 같은 절대 공진점 속에는 모든 정현파의 순수한 파동 에너지가 무한대로 잠자고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여래장 속에는 무한대의 의식의 순수파동들이 잠재해 있는데, 그 중에서 보는 성품(見, 빛의특성)의 순수한 정현파 의식파동성분을 진공(眞空)의 각명(覺明)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래장 속에 있는 순수한 빛의 비춤 특성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래장 속에서 공(空)은 순수성을 말하고, 각(覺)은 깨닫는 특성 또는 빛이 자기가 나온 태양 그자체를 되비추는 절대공진(共振)작용과 비슷하다고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해에서 비추는 빛이 해 그자체이고, 해 그 자체가 해에서 나온 빛인 것처럼, 공(空)이 각(覺)이지만, 그 중에서도 잠재하고 있는 보는(비추는) 특성을 가진 순수의식파동의 밝은 비춤(자각) 특성을 성품이 공(空)인 각(覺)의 묘정명견(妙精明見)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태양이 태양자체를 되돌려 비추는 빛의 자각(自覺)특성인 절대공명성(共鳴性)을 표현한 말인것 같습니다. 다만 스스로 빛을 되돌리는 휘드백 시간이 제로(동시성)이고, 진동 주파수는 무한대라고 수학적으로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여래장 속에 잠재해 있는 보는 성품(見性)인 진공(眞空)의 각명(覺明)이나 공(空)의 성품(空性)인 각(覺)의 묘정명견(妙精明見)이라는 것은, 움직임없는 여래장 자체에서 말없이 스스로 되돌려 비추는 순수한 의식파동성, 절대자각(絶大自覺)성분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들은 순수한 자각성이기 때문에 오염되거나 변형되지 않고 청정한 그대로 법계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는 것이지만, 중생들의 타락하고 오염되고 편협된 분별 마음의 휠타를 통해서 중생이 생각하는데로(업에 따라) 맞추어져 대상으로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눈의 보는 특성(見)이 온 세상에 두루 펼쳐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귀의 듣는 성품, 코의 냄새맡는 성품, 혀의 맛보는 성품, 몸의 감촉을 느끼는 성품, 뜻을 분별하는 각지(覺知)도 법계 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으며, 어떤 특정한 곳에, 즉 눈,코,귀,--등 6근에만 각각 특정지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체에 두루하게 펼쳐져 있는 절대 순수자각성이 중생의 무지로 인해 분별마음을 만들어 움직이는 파동성으로 변화하여 마치 눈이 보는 성품이 있는 것 같고, 귀가 소리를 듣는 성품처럼 여겨지고, 코가 냄새맡는 성품을 가진 것처럼 착각하는데, 이 모든 것은 기본적으로 여래장의 순수한 절대 자각성으로 인하여 나타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하는 것이, 원래는 비이원적인 것으로서, 모양도 없고 어떤 특성도 없는 여래장 묘진여성이 작용하는 것인데, 중생이 무지로 인해 자기의 분별마음의 업(業)에 따라서 이원화 대상의 허상으로 나타난 것인 줄 모르고, 이것을 인연작용으로 생긴 것이니, 자연적으로 생겼느니 하며, 여래장 묘진여성을 마치 이원적인 허상의 물질현상처럼 개념적인 생각을 지으며 미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두 6식의 분별마음에 의존하여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므로 말과 허망한 개념만 있을 뿐, 전체에 두루하여 변하지 않는 진실한 실재(實在, 절대 자각성-묘진여성 여래장)는 모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저 먼저 앞장에서는 오음(五陰),육입(六入),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가 여래장 묘진여성임을 차례대로 증명을 해서 점차로 그 범위를 넓혀가다가, 여기서는 地,水,火,風,空, 견식(見識-根識)이 모두 여래장 묘진여성이라고 밝혀서, 온 우주 법계가 여래장 묘진여성이 가득 차서 서로 방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범위가 확- 넓어졌습니다.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식대(識大)가 여래장 묘진여성임을 밝힙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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