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35)

2015. 1. 31. 19:31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35회]


6-2-6. 의입(意入)이 곧 여래장 


[본문]

[阿難譬如有人 勞捲卽眠하고 睡熟便寢하여 覽塵所億하고 失億爲忘

하나 是其顚倒 生住異滅이라 吸習中歸하여 不相踰越하니 稱意知根

어니와 兼意與勞 同是菩提瞪發勞相이니라 ]

 아난아! 마치 어떤 사람이 피곤하면 자고, 잠을 다 자고는 문득 깨어서 경계를 보기억이 사라지면 망각하게 되는데, 이것이 의입(意入)의 전도(顚倒)된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모습이다.

 이와 같이 전에 익혔던 추억 등 고정관념[法塵]을 기억하여 그 가운데 돌고 돌아 차례를 어기지 아니하니 이것을 뜻으로 아는 근[意知根]이라 칭하는데, 이러지근(意知根)과 피로[勞]가 다 깨달음이 밝음을 고집[瞪]하여 그로 인한 미혹[勞,로]으로 생긴 현상이니라.

[해설]

<아난아,마치 어떤 사람이 피곤하면 자고 , 잠을 다 자고는 문득 깨어서>에서, 자고 깨고 하는 것은 의근(意根)의 작용입니다.

<경계를 보고는 기억이 사라지면 망각하게 되는데>에서, 의근의 작용을 법진(法塵,경계)이라고 하는데, 법진은 생멸(生滅)입니다. 감각이 생기는 것이 생(生)이고, 없어지는 것이 멸(滅)인데, 기억하는 것과 망각하는 것이 모두 생명(生滅) 작용입니다.

<이것이 의입의 전도된 생멸이주의 모습이다>에서, 잘 때는 없어지고 깰 때는 있는 것이니깐, 전도(顚倒)한 생멸이주(生滅異住)입니다.생멸(生滅)이라고만 할텐데 사상(四相)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生은 뜻으로 생각하는 감각이 처음 생기는 것이고, 주(住)는 생긴 것이 얼마간 지속되는 것이며, 이(異)는 生에서 滅로 옮겨가는 과정이고, 滅은 없어지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주(住)는 생(生)에 속하고 이(異)는 滅에 속하는 것이니까, 결국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사상(四相)이 생멸(生滅)이라는 말입니다.

<이와같이 전에 익혔던 추억 등 고정관념을 기억하여 그 가운데 돌고 돌아 서로 차례를 어기지 아니하니 이것을 뜻으로 아는 (意知根)이라 칭하는데>에서, 사람이 디딤돌 다리를 건너 갈 때에, 앞 사람이 건너간 후에 뒷 사람이 건너 가듯이 의근의 작용도 차례차례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근의 작용이 모두 보리(여래장)가 피로해져서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리가 피로해진다는 말은, 보리는 움직임도 없는 절대공진 상태에 안정된 평형상태의 공진파동형태인데, 이 공진파동상태에서 일부 튀어나온 의식의 빛 한줄기가 평형상태가 깨져서 미세한 불안정 진동운동을 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

[因于生滅二種妄塵으로 集知居中吸攝內塵호대 見聞逆流流不及地하니

知性어니와 此覺知性離意無體니라 ]

 생하고 멸하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 속에서 아는 것을 모아 그 가운데 의식 속의

[內塵]을 집착하는 가운데 보고 들었던 것을 거슬러 아는 것[逆流覺知]이니 이는 성품[覺知性]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아는 성품이 깨어나드는 생멸의 두 가지 경계를 떠나서는 필경 그 실체가 없다.

(생기고 없어지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으로 인하여 모아진 앎이 중간에 있으면서 내진(內塵)을 흡수해 들여서 그 보고 들음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흐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거꾸로 흐름을 '알아 깨닫는 성품'이라고 하니 그 앎이 생기고 없어지는 것과 깨고 잠자는 두 가지 허망한 대상을 벗어나면 마침내 그 자체가 없을 것이다. )


[해설]​

​이 문장의 해석을 상,하에 두 가지로 제시해 놓았읍니다. 상기 해석이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고, 아래 해석이 더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습니다.

​위의 해석에서 <생하고 멸하는 두 가지 허망한 경계 속에서 아는 것을 모아 그 가운데 의식 속의 일(內塵)을 집착하는 가운데>에서, 내진(內塵)과 법진(法塵)은 같은 말이며, 의근(意根) 안에 있기 때문에 내진(內塵)이라고 하고, 내 몸 밖에 있는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외진(外塵)이라고 하며, 우리의 눈과 귀 등 전오근(前五根)의 작용은 현재의 상태만을 보고 듣고 감각하지, 지나간 것이라든가 앞으로 올 것은 감각을 못하는데, 의근(意根)의 작용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법(三世法)을 감각할 수가 있기 때문에 法塵이라고 합니다.

보고 들었던 것을 거슬러 아는 것이니, 이것을 각지성(覺知性)이라 부르는 것이다.에서, 위의 해석은 이 부분이 좀 해석이 애매한데, 의식이 지난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을 의근이 生하는 것이고, 기억을 잊어버리는 것을 멸(滅)이라고 하며, 이러한 느끼고 아는  의근의 작용을 각지성(覺知性)이라고 하는데, 이는 生과 滅을 떠나서는 그 실체가 없이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如是阿難當知하라 如是覺知之根 非寤寐來 非生滅有 不於根出

非空生이니 何以故苦從寤來인댄 寐卽隨滅하리니 將何爲寐 必生

時有卽同無하리니 令誰受滅이며 若從滅有인댄 生卽滅無하리니

知生 若從根出인댄 寤寐二相隨身開合이라 離斯二體하면 此覺知

空花하야 畢竟無性하리라 若從空性인댄 自是空知어니 何關汝

리요 ]

 이와 같이 아난아! 응당 이러한 아는 근성[覺知之根]이 깨어나고 잠드는 것에서

것도 아니고, 생멸로 인하여 있는 것도 아니며, 의근[根]에서 나온 것도 아니요,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아는 근성[覺知之根]이 깨어 있음에서 온 것이라면 잠을 잘 때는

따라 없어질 것이니 누가 잠자는 것이 되느냐?

 만약 반드시 생길 때에 있는 것이라면 멸할 때에는 곧 없는 것과 같을 것이니 누멸을 받겠느냐? 만약 멸로부터 있는 것이라면 생길 때에는 곧 멸하여 없을 것이니 누가 생긴 줄을 알겠느냐?

 만약 의근[根]에서 나온 것이라면 깨어나고 잠드는 두 가지 모습은 본래 몸의 (開合)을 따르는 것이기에 깨어나고 잠드는 두 가지를 여의고는 아는 근성[覺知之根]이 마치 허공의 꽃과 같아서 필경 체성이 없을 것이다.

 만약 허공에서 생긴다면 허공 스스로가  아는 것인데, 너의 의입(意入)과 무슨 겠느냐?

[해설]

그래서 이렇게 의근의 느끼고 아는 작용이, 잠이나 깨어남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생멸로 인해서 ​나온 것도 아니고, 허공에서 생긴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느끼고 아는 의근이 깨어남에서 온 것이라면 잠을 잘 때는 그 느끼고 아는 의근의 성품이 없어져야 할 텐데, 무엇으로 잠자는 것을 아느냐는 것입니다. 깨면 기억하고 자면 잊어버리니깐, 그 잠자는 자체가 의근의 망각하는 작용이라는 말입니다.

또 느끼고 아는 의근의 작용이 반드시 生길 때만 있다면 滅할 적에는 없을 것이니 무엇이 滅을 받아들이며, 만약 滅으로 인해 있다면 生할 적에는 滅이 없으니 무엇이 生함을 알게  되느냐는 말씀입니다. 즉 의근의 느끼고 아는 작용의 생멸이 잠과 깨어남에서 왔다고 해도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또 의근(意根)에서 나온 것이라면, 깨어나고 잠드는 두 가지 모습은 기억이 있거나, 기억이 없거나 하는 것에 따른 것이므로, 깨어나거나 잠드는  두가지를 벗어나서는 의근의 느끼고 아는 성품이 없으므로 마치 허공꽃처럼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공에서 느끼고 아는 성품이 생긴 것이라면, 허공이 스스로 아는 것이니, 아난의 의근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是故當知하라 意入虛妄하야 本非因緣非自然性이니라 ]

 그러므로 응당 아는 의입(意入)의 현상이 허망하여 성품이 본래 인연도 아니

자연도 아닌 여래장 묘진여성(妙眞如性)임을 알아야 한다.

[해설]

그러므로 의입(意入)의 느끼고 아는 작용(相)은 허망한 것이고, 그것이 본래 성품(性)은 인연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자연적인 것도 아닌 항상 변함없는 여래장 묘진여성임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해서 육입(六入)이 다 끝났습니다.


                                                               -무한진인-

'성인들 가르침 > 능엄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능엄경 공부(37)  (0) 2015.02.06
능엄경 공부(36)  (0) 2015.01.31
능엄경 공부(34)  (0) 2015.01.31
능엄경 공부(33)  (0) 2015.01.24
능엄경 공부(32)  (0) 201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