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28)

2014. 12. 31. 19:49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28]

 

[본문]

[復次阿難又汝今者 妙淨見精 爲與明合인가 爲與明合인가 爲與通合인가

與塞合인가 ]

 다시 아난아! 너의 지금 묘정(妙淨)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밝음과 더불어 합(合)해진 것이냐, 어두움과 더불어 합해진 것이냐, 통함과 합해진 것이냐, 막힘과 더불어 합해진 것이냐?

[해설]

지금 정미로운 보는 성품(見精)이 명(明),암(暗),​ 통(通),색(塞)과 각각 화합될 수가 있는가 따져 보고 있읍니다. 결론적으로는 견(見)은 어떤 것하고도 화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서 입니다.


 [본문]

[若明合者인댄 至於暗時하야 明相已滅하고 此見卽不與諸暗合이어니 云何見暗이리

]

 만약 보는 성품이 밝음과 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라면 어두울 때에는 밝은 모습은 이미 사라졌고, 보는 성품이 어두움과는 합하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하여 어두움을 보느냐?

[해설]

​合했다는 것은 한데 붙어서 뗄수 없다는 말이니깐, 어두울 때에는 밝음(明)이 없어졌으니, 그 밝음(明)과 合했던 견(見)도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견(見)이 밝음(明)과 합했던 것을 그만두고, 다시 어두움(暗)과 합해진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어둠(暗)을 보겠느냐는 말이니까, 요는 밝음(明)과 합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若見暗時 不與暗合인댄 與明合者함도 應非見明인댄 卽不見明인댄 云何明合이며

了明非暗 ]

 만약 어두움을 볼 때에 어두움과 합하지 아니하고 어두움을 본다면, 밝음과 합하게 되었을 때도 응당 밝음을 보지 못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밝음과 합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또 밝음은 어두움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느냐?

[해설]

바로 위에서 밝음(明)과 합했던 것이 밝음(明)이 없어질 때, 밝음(明)은 없어졌지만, 견(見)이 어두운 것(暗)과 합하지 않고도 어두운 것(暗)을 본다면, 똑같이 밝음(明)과 합하지 않을 때도 밝음(明)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밝음(明)과 합하지 않고도 밝음을 본다면, 밝음(明)과 합할 때는 도리어 밝음(明)을 보지 못해야 할게 아니냐,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밝음(明)과 더불어 합한 것도 빽빽히 밝음(明)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밝음을 보지 못한다면  견(見)이 밝음과 합하였다고 말할 수 없으며, 견(見)이 밝음과 어둠의 구별을 어떻게 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彼暗與通及諸群塞 亦復如是하니라 ]

 이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가지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해설]

결론적으로 견(見)은 밝음,어둠,통함 ,막힘과 각각 화합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ㅇ. 見은 비화합(非和合)도 아니다.


[본문]

[阿難白佛言호대 世尊如我思惟컨대 此妙覺元 與諸緣塵 及心念慮

非和合耶니이다 ]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저의 생각 같아서는, 이 묘정(妙精)한 깨음의 근원이 저 모든 경계[緣塵]와 마음[心]과 생각[念慮]으로 더불어 화합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해설]

아난이 우리들의 묘각의 바탕은 밝음(明),어둠(暗),통함(通),막힘(塞) 등 모든 대상들과 마음,의식 등과 화합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본문]

[佛言汝今又言호대 覺非和合이라하니 吾復問汝호리라 此妙見精 非和合

인댄 爲非明和爲非暗和爲非通和 爲非塞和 ]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다시 ‘묘각(妙覺)은 화합이 아니다’고 하니 내가 다시 너에게 묻는다. 이 오묘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妙見精]이 섞여 합한 것[和合]이 아니라면 밝음과 섞인 것[和]이 아니냐, 어둠과 섞인 것이 아니냐, 통함과 섞인 것이 아니냐, 막힘과 섞인 것이 아니냐?”

[해설]

아란이 묘각은 어떤 것과도 화합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나, 다시 부처님이 밝음,어둠,통함,막힘의 네가지에서 어떤 것과 섞이지 않은 것이냐고 따지십니다​.


 [본문]

[若非明和인댄 則見與明 必有邊畔하리니 汝且諦觀하라 何處是明이며

處是見 在見在明 自何爲畔 ]

 만약 밝음과 섞인 것이 아니라면 보는 성품[見]과 밝음[明]에 반드시 경계선이 있야 할 것이다. 너는 자세히 보아라. 어디까지가 명(明)이며 어디까지가 견(見)이냐? 見이 있고 明이 따로 따로 있다면 어디에서부터 경계를 삼아야 하느냐?

[해설]

만약 밝음(明)과 보는 성품(見)이 서로 섞이지 않았다면 따로따로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두개가 구별되는 경계선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阿難若明際中 必無見者인댄 則不相及이라 自不知其明相所在리니 畔云

이리요 ]

 아난아! 만약 밝게 보일 때 너의 말대로 비화합(非和合)이어서 거기에 반드시 보는 성품[見]이 섞일 수 없다면 견(見)과 명(明)이 서로 미칠 수 없을 것이요, 이와 같이 명상(明相)의 소재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경계[畔]를 세울 수 있겠느냐?

[해설]

명(明)과 견(見)이 서로 미칠수 없다는 것은, 따로 따로 있으니깐 명(明)이 견(見)에 미치지 못하고, 견(見)이 명(明)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서로 미치지 못하면 견(見)은 명(明)이 있는 곳을 모르므로 경계선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彼暗與通及諸群塞 亦復如是하니라 ]

 이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해설]

만약 견(見)이 명(明)과 비화합이라면, 명(明)이라는 구분을 할 수 없는데, 어둠,통함, 막힘,등도 또한 見과 명(明)간에 경계선이 없어서 구분이 안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견(見)은 明,暗,通,塞 등과도 비화합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又妙見精非和合者인댄 爲非明合 爲非暗合 爲非通合 爲非塞合가]

 다시 이 묘정(妙淨)한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見精]이 비화합(非和合)이라면 밝음과 합(合)한 것이 아니냐, 어두움과 합한 것이 아니냐, 통함과 합한 것이 아니냐, 막힘과 합한 것이 아니냐?


[본문]

[若非明合인댄 則見與明性相乖角호미 如耳與明 了不相觸하야 見且不知

明相所在커늘 云何甄明合非合理리요 ]

 만약 밝음과 합(合)이 아니라면 견(見)과 명(明)의 성품이 서로 이그러지는 것이 마치 듣는 것과 밝음이 서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보더라도 명상(明相)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합(合)과 비합(非合)의 이치를 밝게 분별할 수 있겠느냐?

[해설]

만일 명(明)과 견(見)이 합하지 않는다면, 明은 저쪽으로 향하고​ 있고, 見은 이쪽으로 향하여 서로 성품이 어긋날 것이므로,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데,  이것은 마치 원래 눈은 밝은 것(明)을 보고, 귀는 명(明)에 대해서 상관이 전혀 없는데,  이와같이 귀와 밝음이 서로 감응하지 못하는 것처럼, 눈과 밝음도 서로 감응하지 못하므로, 見이 보더라도 밝음(明)의 소재를 모르는데, 어떻게 合하고, 合하지 않는 이치를 밝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의 견(見精)은 화합한다느니, 비화합한다느니 하는 이치와는 관계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彼暗與通及諸群塞 亦復如是하니라 ]

 그 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막힘에 대해서도 이와 같다.

[해설]

어둠(暗)이라든지 밝음(明)이라든지 화합(和合)이라든지, 화합하지 않은 것이라든지, 이 세상 모든 물질은 和合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우리들의 본묘각명(本妙覺明) 자리는 있던 것이 없어지고 없었던 것이 생겨나는 생멸성(生滅性)이 아니기 때문에, 인연(因緣)이니, 자연(自然)이니, 화합(和合),비화합(非和合)이니 하는 말들이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화합(和合)이란 인연(因緣)을 가리키는 것이고, 비화합(非和合)은 자연(自然)을 가리키는 말인데, 우리의 本心자리는 생멸심(生滅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주,객 이원적인

개념의 희론명상(戱論名相)을 통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비이원적(非二元的)인 절대본체(絶對本體)에 대하여, 상대성의 主,客 二元的인 개념어로 해석하고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ㅇ. 두가지 전도망견(顚倒妄見) 설법에 대한 총정리


부처님이 두 가지 전도망견(顚倒妄見)을 밝히게 된 동기는 아난이 見性은 인연(因緣)도 자연(自然)도, 모든 화합(和合)도, 비화합(非和合)도 아님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진견(眞見)과 망견(妄見)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를 깨우쳐 주시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앞서 열번의 眞見을 내보이실제, 진심(眞心)이 무엇인지 설법을 듣고도 아난이 깨닫지 못한 이유는, 아난이 진심(眞心)을 이해하고자 하는 식(識)의 작용자체가 모두 妄想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망상(妄想)으로 진심(眞心)을 이해하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망상의 범주에서 벗어나서 진여(眞如)의 성품에 가까이 다가 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아난의 생각 자체가 모두 망상(妄想), 즉 망견(妄見)임을 깨우쳐 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즉 이번 전도망견(顚倒妄見)에 대한 설법은 망상(妄想)의 범위를 아체(我體,나)에서 현상계(現象界)전체로 확대하여 法執마저 타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별업망견(別業妄見)을 설명해서 눈병과도 같은 망견(妄見)이 허상(虛相)을 만들고 시비(是非)를 따져 보면서 밝혀 주었습니다.

또한 동분망견(同分妄見)을 설명하여서 중생의 공통된 妄見을 밝혔습니다.

두 망견(妄見)을 합명(合明)하여 한 개인이 일체세간(一切世間, 삼라만상)을 보는 것이 모두 망견(妄見)임을 밝히고, 일체의 모든 중생들이 일체세간의 삼라만상을 보는 것이 또한 망견(妄見)임을 밝혔으며, 나아가 일체만물과 일체 중생의 모든 현상이 다 망견(妄見)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화합생멸(和合生滅)함을 밝혔습니다.

이와같이 전후(前後), 종횡(縱橫), 겹겹으로 모두 妄見임을 거듭거듭 밝히고 중생이 妄見에서 벗어나려면 이러한 허망한 화합상(和合相)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고 설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망견(妄見)임을 깨닫고 또 화합과 인연, 자연을 떠날 때 비로소 진견(眞見)을 통하여 만물이 모두 여래장(如來藏)임을 알게 되며, 중생이 여기까지 깨달아야 생사의 윤회를 끊고 상주진심(常住眞心)의 자리로 들어가는 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어느새 2014년 마지막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네요.


새해에도 밝고 평안하게,또한 건강하게 지내시고

하시는 일마다 모두 잘 되시기를 빕니다.​


                                              - 2014. 12.31. 무한진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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