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27)

2014. 12. 30. 19:32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27]


5-2.연(緣)경계에서 벗어나면 진심이 나타난다. 


ㅇ. 見은 化合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본문]

[若能遠離諸和合緣 及不和合하면 則復滅除諸生死因하고 圓滿菩提 不生滅

하야 淸淨本心 本覺常住리라 ]

 만약 모든 화합(和合)의 연(緣)과 불화합(不和合)의 연에서 멀리 벗어나면 곧 생사의 가지가지 인(因)을 소멸하고, 나고 죽지 아니하는 깨달음의 성품을 원만하게 이루어 청정한 본심인 본래의 깨어 있는 마음[本覺]에 항상 머무르게 될 것이다.

[해설]

화합을 떠나고 불화합의 영향에서 벗어난다면, 생사(生死)의 움직임, 즉 의식의 파동성이 소멸되므로, 생사변화가 없는 보리의 원만하고 청정한 절대바탕인 본각에 항상  ​안정되게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본문]

[阿難汝雖先悟 本覺妙明 性非因緣이며 非自然性이니 而猶未明如是覺

非和合性이며 及不和合이로다 ]

 아난아! 네가 비록 본래로 깨어 있어 묘하게 밝은[本覺妙明] 참성품이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라는 것은 이해하였으나, 아직 이와 같은 깨달음[覺]의 근원이 화합(和合)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불화합(不和合)으로 생긴 것도 아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해설]

원래부터 깨어있는 참성품이 인연도 아니고 자연도 아니라는 것은 앞서 부처님이 설명해 주셔서 이해를 했지만, 그것이 화합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불화합으로 생긴 것도 아니라는 것은 아직 모를 것이므로 이제부터 부처님이 이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본문]

[阿難吾今復以前塵問汝호리라 汝今猶以一切世間妄想和合 諸因緣性

而自疑惑하야 證菩提心和合起者로다 ]

 아난아! 내가 지금 다시 앞에 있는 대상을 가지고 너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도 일체 세간에서 망상으로 화합하는 가지가지 인연의 성품을 알지 못한 까닭에 깨어 있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구나!

[해설]

<내가 지금 앞에 있는 대상을 가지고 너에게 묻는다>에서, 앞에 있는 대상이라는 것들은 우리가 보고 듣는 것들을 말하는데, 말하자면 물리적인 현상측면에서 견(眞見)이 화합성인가 아닌가 따져 보겠다는 것입니다.

<너는 지금도 일체 세간에서 망상으로 화합하는 가지가지 인연의 성품을 알지 못한 까닭에>에서, 일체 세간의 허망한 생각으로 화합해서 생기는 모든 인연작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는 마음도 화합으로 생긴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구나>에서,  세간의 일에 대해 모두 허망한 생각으로 지어내는 것처럼, 그런 방식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보리를 證하는 마음도 화합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의심하고 있는 것 아니냐? 이런 뜻입니다.


 [본문]

[則汝今者妙淨見精 爲與明和爲與闇和인가 爲與通和爲與塞和인가 ]

 너의 말대로 화합이라면 지금의 이 묘하게 맑은 보는 성품의 정미로움[妙淨見精]이 밝음과 섞여서[和] 된 것이냐, 어두움과 섞여서 된 것이냐, 통함과 섞였느냐,막힘과 섞여서 된 것이냐?

[해설]

​화(化)라는 것은 물에다 설탕을 타면 설탕물이 돼서 물과 설탕을 나눌수가 없는 것처럼, 제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두 물질이 한데로 합쳐져서 한 물질이 되는, 자기성질을 잃어버리는 것이  化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묘하고 맑은 보는 성품이 밝음, 어둠, 통함,막힘과 각각 섞여서 된 것이냐고 묻습니다.


[본문]

[若明和者인댄 且汝觀明 當明現前하리니 何處雜見 見相可辯어니와

何形象 ]

 만약 밝음과 섞여서 된 것이라면 네가 밝은 것을 볼 때에 응당 밝음이 앞에 나타것이니 어느 곳에서 보는 성품[見]이 섞여 있더냐? 보는 성품과 밝음의 현상은 수 있을 것이니 섞였다면 어떠한 모습이냐?

[해설​ ]

지금 보리를 證하는 보는 성품(見)이 밝음(明)과 화합해 있었다고 하면, 보는 성품과 밝음이 섞여 있다면 밝음(明)을 볼 때에 보는 성품(見)도 동시에 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깐, 밝음과 화합했다고 말할 수 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보는 성품과 밝음의 현상은 가릴 수가 있는데, 두개가 섞여 있다면, 보는 성품도 아니고 밝음도 아닌 무엇인가가 있어야 할텐데, 그것이 어떤 형상으로 나타나겠느냐는 것입니다. 즉 물에다가 흙을 타면 흙탕물이 되는 것과 같이, 보는 성품(見)과 밝음(明)이 섞여지면 어떤 형태의 화합물(化合物)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若非見者인댄 云何見明이며 若卽見者인댄 云何見見이리요 ]

 (이 화합물이) 만약 견(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밝음을 보며, 만약 (밝음이 견과 섞여서) 見이 되었다면 어떻게 견(見)이 견(見)을 볼 수 있겠느냐?

[해설]​

<만일 見이 아니라면 어떻게 明을 보며>에서, 만일 밝음(明) 가운데 견(見)이 없다고 한다면, 즉 見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明을 보느냐고 했으니깐,見이 아니라고 해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明이 見과 섞여서)見이 되었다면 어떻게 見이 見을 볼 수 있겠느냐?>에서, 밝음(明)이 見이라고 하면,(明을 보는 것이 동시에 見도 보는 것이니깐) 見이 見을 보는 것이니깐, 그렇게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明이 見에 卽한 것도 아니고, 見을 떠나 있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必見圓滿인댄 何處和明이며 若明圓滿인댄 不合見和니라 ]

 만약 반드시 見이 가득하다면 어느 곳에 밝음[明]이 섞일[和] 수 있으며, 만약 밝음이 가득하다면 거기에 見이 섞일 수 없을 것이다.

[해설]​

지금 방안에 見이 가득 찼다고 한다면 見이 가득 찼으니깐 다른 것이 들어 올 수가 없으니깐, 明이 섞일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릇에 쌀을 가득 담으면 다른 것은 못들어 가듯이, 見이 가득한데 明이 들어와서 섞일 공간이 없지 않겠느냐, 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약 밝음(明)이 꽉 찼다면 見이 섞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 


 [본문]

[見必異明이니 雜則失彼性明名字하리니 雜失明性인댄 和明非義니라 ]

 견(見)은 반드시 밝음[明]과는 다른 것이니 서로 섞이게 되면 그 밝은 성품[性明名字]을 잃을 것이요, 섞여서 밝음의 묘정(妙淨)한 성품을 잃게 된다면 밝음과 섞이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해설] 

見은 能見(보는 주체)이고 明은 所見(보여지는 대상)이니깐, 두개가 섞였다면 성질이 밝다고 하는 見과 섞였으니깐, 섞이기 전의 밝은 그 자체(明)가 없어질 거라는 말입니다.  또한 섞여서 밝음 성품을 잃어버렸다면 見이 明과 화합했다는 것이 옳지 않다는 말입니다.


[본문]

[彼暗與通及諸群塞如是하니라 ]

 이밖에 어두움과 통함, 그리고 여러 가지 막힌 것에 대해서도 모두 이와 같다.

[해설]​ 

위에서 明과 見의 화합(化合)과 같이, 어둠(暗)과의 화합, 통함(通)과의 화합, 막힘(塞)과의 화합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곧 화합(化合)이라는 말이기 때문에 因緣이라고 하면 당연히 化合이라는 것이 따라다니니깐, 앞에서 見이 因緣이 아니라고 했듯이, 化合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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