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16)

2014. 12. 4. 09:11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 16]


4-4. 見은 잃어버리지 않는다(見性不失)


ㅇ 아난이 '참성품(眞性)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하여 의심함

 

 

 [본문]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합장하여 예(禮)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만일 이렇게 보고 듣는 것[見聞]이 반드시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면 어찌하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에게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뒤바뀐 행동을 하느냐’고 하셨습니까? 원컨대 자비하신 마음을 일으키시어 저희들의 찌든 때를 씻어 주소서!”

[阿難卽從座起하야 禮佛合掌長跪白佛호대 世尊若此見聞必不生滅인댄 云何世尊

名我等輩遺失眞性顚倒行事니잇고 願興慈悲洗我塵垢하소서 ]

[해설]

앞의 글에서, 부처님이 견성은 생멸(生滅)하지 않음을 밝히시자,  아난이 또 의문을 제기합니다. ​즉 부처님이 견성은 변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째서 저희들이 참마음을 잃어버리고  바뀐 행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 합니다.

여기서 아난의 질문에는 두 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읍니다. 첫째는 '참성품(眞性)을 잃어 버렸다'는 말에 대한 오해이고, 둘째는 '뒤바뀐 짓(顚倒)'을 한다는 말의 의미를 묻는 것입니다. '진성을 유실하고 뒤바뀐 짓을 한다'는 말은 앞서 견성의 부동함을 밝히실 때 하신 말씀인데, 뒤이어 "심성(心性)에서 참됨을 잃고 물건을 자기로 여기며 그 가운데(몸과 경계)서 윤회(輪廻)하여 스스로 유전(流轉)함을 취하는냐" 라고 하셨습니다. 아난이 생각하기에 앞서 부처님이 너희들이 진성을 유실하였다고 하셨는데, 또 견성(진성이 곧 견성임)은  생멸하지 않는다고 하시니, 말씀이 일치해 보이지가 않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부처님이 앞서 말씀하신 '진성을  유실하고 뒤바뀐 짓을 한다'는 말씀에서 '잃어버린다(遺失)'의 의미는 아난이 의심하는 것과 같이 진짜 사라진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 진성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으되, 중생이 색심(色心)의 인연(因緣)에 휩싸여 전도된 망상으로 참마음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어서, 이를 보고 잠시 "잃어버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의 <잃어버렸다(遺失)>는 것은 중생의 전도성(뒤집혀 있는 성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그 때 여래께서 금색의 팔을 드리우시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켜 보이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지금 나의 모다라수(母陁羅手)를 보았으리니 ‘바로’라 하겠느냐, ‘거꾸로’라 하겠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거꾸로’라고 하지만 저는 무엇이 ‘바로’이고 무엇이 ‘거꾸로’인지 모르겠습니다.”

[卽時如來垂金色臂하사 輪手下指하시며 示阿難言汝今見我母陀羅手하니 爲正爲

阿難言世間衆生 以此爲倒어니와 而我不知誰正誰倒니다 ]

[해설]

<모다라>는 인도어이며 한문으로는 "결인(結印)"을 뜻합니다. 즉 큰 손각락을 하나만 세우고 ​나머지 손가락은 뫃아논 형상을 하고 있는 것 손모양입니다.

세간 사람들은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것을 거꾸로 라고 말하겠지만, 아난 자신은 그렇게 말할 이유가 없으니, 그래서 모른다고 말합니다. ​

 

 ㅇ. 정변지(正偏知)와 성전도(性顚倒) 

[본문]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이것을 ‘거꾸로’라 한다면

떤 것을 ‘바로’라 하느냐?” 아난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팔을 세워 도라면

(兜羅綿) 같은 손이 위로 허공을 가리키면 ‘바로’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이 곧 팔을 세우시고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전도(顚倒)는 다만

팔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듭거듭 우

러러 보고[一倍膽視] 있는 것이다.

[佛告阿難若世間人 以此爲倒인댄 卽世間人將何爲正 阿難言如來竪臂하사

兜羅綿手 上指於空하면 則名爲正이니다 佛卽竪臂하사 告阿難言若此顚倒

首尾相換어늘 諸世間人一倍瞻視니라 ]

[해설]

 

<이와 같은 전도(顚倒)는 다만 팔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듭거듭 우러러 보고[一倍瞻視] 있는 것이다.>에서, 팔 자체는 거꾸로니 바로니 라고 할 것이 없지만, 손가락이 아래로 향하던 것이 위로 향한다면 상하(上下)만 달라지는 것이지, 팔 자체는 거꾸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이 거듭 거듭 우러러 보고(一倍瞻視)>는, 내린 팔을 거꾸로라 하는 것이 한번(一), 세운 팔이 바로라 하는 것이 거듭(倍), 우러러 본다(瞻視)는 뜻입니다.즉 일첨시(一瞻시), 배첨시(倍瞻시)라고 하는 말입니다. 다시 한번 잘못보고, 한번 더, 두배 잘못 본다는 것입니다. 

 

[본문] 

이러한 점에서 너의 몸과 여러  부처님의 깨끗한 법신(法身)을 비교해서 설명한

다면 ‘여래의 몸은 정변지(正遍知)라 부르고, 너희들의 몸은 성전도(性顚倒)라 부른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則知汝身與諸如來 淸淨法身 比類發明인댄 如來之身名定徧知 汝等之身

號性顚倒니라 ]

[해설]

정변지(正遍知)는 삼막삼보리를 말합니다. 정변지(正遍知)의 정지(正知)란 옳바르게 안다는 것이고, 변지(遍知)란 두루 안다는 뜻으로, 정지(正知)와 변지(遍知)를 합해서 부처님이 정변지(正遍知)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온갖 일을 옳게 아는 것을 정지 라고 하고, 하나도 모르는 것이 없이 모두 다 아는 것을 편지라고 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말하자면, 마음이 우주만법을 다 포괄했음을 통달한 것을 정지라 하고, 만법이 다 마음인 것을 통달한 것을 편지라고 하는데, 정편지란 마음이 곧 우주만법 그 자체이며, 우주만법이 다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성전도>란 성품을 모르고 있으니 뒤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바르다는 말과 거꾸로 라는 말은 정반대가 되는데, 부처님을 정편지라고 하는 것은 손이 바르다는 것이고, 아란의 몸이 성전도라는 것은 손이 거꾸로라는 것입니다. 머리와 꼬리가 바귀었을 뿐이지, 손 자체는 바로 거꾸로가 없는 것인데, 부처님의 몸은 정편지요, 아란의 몸은 성전도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

 

[본문] 

너는 이제 자세히 살펴보아라. 너의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성전도(性顚倒)라 하는데 그렇게 불려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그 때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물끄러미[瞪瞢] 부처님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리지 않고 있었으니 몸과 마음이 전도하게 된 그 근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隨汝諦觀하라 汝身佛身稱顚倒者 名字何處하야 號爲顚倒 于時阿難與諸大

瞪瞢瞻佛하야 目精不瞬이니 不知身心顚倒所在러라 ]

[해설]

​<너의 몸을 부처님의 몸에 비교하여 성전도(性顚倒)라 하는데 그렇게 불려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에서, 부처님의 몸이나 아란의 몸이나 같다고 부처님은 말하고, 아란 너는 잘못되었다고 하는데, 어느 것이 잘못되었느냐는 것입니다. 팔은 같은 팔인데, 위로 올리면 바르다고 하고, 아래로 내리면 그르다고 하는데 무엇을 그르다고 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이후부터 부처나 중생이나 같다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하십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일체 중생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즉 사람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이 자기 본성만 깨치면 지금 이대로가 다 부처라는 것이죠.금반지와 귀걸이는 모양이 다르지만, 그 재료가 다 금으로 된 것처럼, 우리의 외모는 다르지만 모두 참성품은 같다는 것이 불교의 절대평등원리입니다. 이제부터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셋이 차별이 없다는 절대평등을 얘기 합니다. ​

 

ㅇ. 성품이 전도된 까닭 

[본문] 

부처님이 자비하신 마음으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해조음(海潮音)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말씀하셨다.

 “선남자들이여! 내가 늘 ‘대상[色]과 마음[心]과 마음의 모든 반연[諸緣]과 업[心所事]과 가지가지 현상들[諸所緣法]이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너의 몸과 마음이 참으로 다 묘명(妙明)하고 진정(眞靜)한 묘심(妙心) 가운데 나타난 하나의 현상[物]이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본묘(本妙)하고 원묘(圓妙)한 밝은 마음의 보명묘성(寶明妙性)을 잃어버리고, 이와 같은 깨달음 속에서 미혹을 자기 마음으로 오인하느냐?

[佛興慈悲하사 哀愍阿難及諸大衆하야 發海潮音으로 遍告同會하사대 諸善男子我

當說言호대 色心諸緣及心所使 諸所緣法 唯心所現이니 汝身汝心 皆是妙

明眞精妙心中所現物어늘 云何汝等 遺失本妙圓妙明心 寶明妙性하고 認悟

中迷 ]

[해설]

<해조음(海潮​音)>은, 해조란 바다의 조수(潮水)라는 말인데, 바다의 밀물,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현상이 제 때를 놓치지 않는 것과 같이, 부처님의 설법이 때에 맞추고, 근기에 맞추어 하신 것을 비유한 단어입니다.

참고로 어떤 곳에서는 "천고(天鼓, 하늘의 북)은 아무 생각이 없으나 사람을 따라서 소리를 내고, 海潮는 無念하나 그 때를 잃지 않는다. 이는 無念無悲를 나타내어 그 根機를 따라 說하신 것이요, 請을 기다렸다가 說함이 아니다"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늘 ‘대상[色]과 마음[心]과 마음의 모든 반연[諸緣]과 업[心所事]과 가지가지 현상들[諸所緣法]이 오직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하였듯이>라는 말에서, 色(대상)이란 형상이 있는 물질입니다. 色水想行識, 色不異空, 空不異色하는 그 色은 물질이며, 心은 물질이 아닌 마음입니다. 그래서 色과 心하면 물질과 마음을 말합니다.

諸緣이란 모든 緣이라는 말인데, 우리의 참마음은 생멸이 아니지만, 지금의 생멸하는 마음은 여러가지 인연을 따라서 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의 諸緣은 色이 생기는 緣과 마음이 생기는 緣을 말했습니다.

심소사(心所使)란 눈으로 본다든지 귀로 듣는다든지, 그냥 보거나 듣는 것은 마음의 왕이 된다고 해서 心王이라 그럽니다. 心王이란 눈으로 보는 眼識과 귀로 듣는 耳識과 鼻,舌,身,의식, 7識, 8識까지 여덟인데, 心所使는 心王에 딸린 종속적인 존재입니다. 가령 눈으로 빛을 보지만, 빛을 보고 누른지 붉은지 그 대상의 전체및 부분에 대해서 작용하는 心王에 구속된 所使입니다. 그래서 心所使라 하기도 하고 心所有,心數法 등 여러가지로 이야기합니다. 所緣이란 산하대지라든가 몸이라든지 심왕이라든지 온갖 유형무형의 전부를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즉 위에서 말한 色과 心과 諸緣과 心所使를 다 통해서 범위를 넓게 이야기한 것 뿐입니다. 유심론에서 일체의 것이 다 마음에서 나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음에서 생겼다는 것이 실제로 산이 따로 있고, 사람이 따로 있다거나 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이 인식하기 때문에 있다는 것입니다.

 <너의 몸과 마음이 참으로 다 묘명(妙明)하고 진정(眞靜)한 묘심(妙心) 가운데 나타난 하나의 현상[物]이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본묘(本妙)하고 원묘(圓妙)한 밝은 마음의 보명묘성(寶明妙性)을 잃어버리고, 이와 같은 깨달음 속에서 미혹을 자기 마음으로 오인하느냐? >에서, 묘명진정(妙明眞精)은 우리의 진심자리를 묘하고  밝고,참되고 정미로운 네 가지로 표현했습니다. 묘심이란 좋다, 나쁘다하는 분별망심이 아니라, 참진심자리를 말합니다. 잃어버렸다(遺失)이란 우리의 참본성자리가없어진 것이 아니고, 모르니깐 잊어 버렸을 뿐이라는 말입니다. <깨달음 속에서 미혹을 자기 마음으로 오인하느냐?>하는 말은 깬 가운데 본 진리는 조금도 迷하지 않은 것인데, 진심을 모르니 迷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깨어있지만, 깨어있는지를 모르므로 중생이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진여(眞如)에 어두운[無明] 까닭에 회매(晦昧)한 것이며, 이 회매로 인하여 꽉 히어 완공(頑空)이 되고, 이렇게 막히고 어두운 가운데[空晦暗中] 어두움이 맺히어 색(色)이 되고, 색이 망상과 섞여서 생각[想]과 형상[相]을 지닌 몸이 되었거늘, 대상에 끌려감[緣]을 쌓아 안으로 흔들리고 밖으로 치달려서 어둡고 번거로운[昏擾擾] 모습으로 자기의 심성(心性)을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미혹하여 마음이라 하고, 거기에 집착하여 이제는 이 마음이 색신(色身)의 속에 있다고 착각하여 이 몸과 밖에 있는 산과 강 그리고 허공과 대지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다 묘하게 밝은 참마음[妙明眞心]에서 비추어진 하나의 현상[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맑고 청정한 백천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거품을 오인하여 그것으로 바다 전체라 하면서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까닭에 그대들을 미혹한 가운데 다시 배[倍]나 더 미혹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니 앞에서 내가 손을 드리워서 이야기했던 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래서 여래는그대들을 ‘가엾은 사람이다’고 하는 것이다.”

[晦昧爲空하고 空晦暗中結暗爲色하야 色離妄想하야 想相爲身거늘 聚緣內搖하고

趣外奔逸하야 昏擾擾相以爲心性이니 一迷爲心 決定惑爲色身之內하야 不知

色身 外泊山河 虛空大地 咸是妙明眞心中物하니 譬如澄淸百千大海棄之

하고 唯認一浮漚體하야 目爲全潮하야 窮盡瀛渤인달하야 汝等卽是中倍人이니

如我垂手 等無差別하며 如來說爲可憐愍者니라 ]

[해설]

 <진여(眞如)에 어두운[無明] 까닭에 회매(晦昧)한 것이며, 이 회매로 인하여 꽉 히어 완공(頑空)이 되고, 이렇게 막히고 어두운 가운데[空晦暗中] 어두움이 맺히어 색(色)이 되고, 색이 망상과 섞여서 생각[想]과 형상[相]을 지닌 몸이 되었거늘, 대상에 끌려감[緣]을 쌓아 안으로 흔들리고 밖으로 치달려서 어둡고 번거로운[昏擾擾] 모습으로 자기의 심성(心性)을 삼고 있는 것이다.> 에서, 진여는 밝음인데, 그 진여의 밝음 가운데서, 그것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밝음이 없어진 것이 무명(無明)입니다. 그래서 그 무명속에 있어서 어둡다는 것이 회매(晦昧)라고 합니다. 이 회매라는 것이 깨달음(悟) 중의 미혹(迷)라는 것입니다. 이 '회매가 空이 되었다'는 것은 원래 본성자리 입장에서 보면 虛空이 없는데, 晦昧했기 때문에 캄캄한 것이 허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허공은 본래가 캄캄한 것입니다. 이것은 세계가 처음 생길 때에 허공이 먼저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생기는 과정은 제4권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이렇게 막히고 어두운 가운데[空晦暗中] 어두움이 맺히어 색(色)이 되고,>에서, 空은 캄캄한 虛空이고 晦昧란 無明이며, 우리의 본성자리는 밝은 妙有인데, 그것이 明이 없어져서 晦昧했으니깐 없어진 그것이 無明입니다. 어두운 것이 맺힌다는 것은 結晶이 되는데, 어두운 것이 똘똘 뭉치면 물질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물질은 전부 어두운 것이며, 色은 물질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空은 虛空이고, 晦昧는 無明이며, 그 둘 가운데 無明이 차차 굳어져 가지고 물질이 처음 생기는 것입니다. 그 물질을 불교에서는 四大라 하고, 과학에서는 元素라 합니다. 四大란 地大,水大,火大, 風大의 넷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세상 온갖 유형물은 다 사대로 되어 있습니다.

 <色이 忘想과 섞여서 생각[想]과 형상[相]을 지닌 몸이 되었거늘>에서, 色은 물질이며, 망상은 회매(晦昧)한 것, 즉 지금 우리의 분별심, 생각입니다. 우리 중생은 망상이외의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망상입니다.

色은 육신이요, 妄想은 우리의 마음이니까, 色과 忘想이 섞인 그것이 想과 相입니다. 앞의 想은 생각想자니까 妄想을 가리키고, 뒤의 相은 모양相자니깐 色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육신의 모양은 相, 만물을 생각하는 것은 妄想,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몸이라고 합니다. 그게 아닌데, 그 이외의 몸은 우리가 모르고 있습니다.

<대상에 끌려감[緣]을 쌓아 안으로 흔들리고>에서, 緣이란 정신상태라든지 뜻이라든지 우리의 망상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구분입니다. 흔히 魂이라고 하기도 하고, 넋이라고 하기도 하고, 정신이라고 하기도 하여 우리의 마음을 말하는데, 그것을 여기서는 연(緣)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연(緣)이 한데 모여, 마음 안에서 흔들린다는 말입니다.  흔들린다는 것은 곧 망(妄)이라는 것입니다. 妄이란 動하는 것이고, 眞이란 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에 客塵煩惱를 말할 때에 손님은 왔다가는 것이고, 주인은 그냥 머물러 있다 했으니, 허공은 가만히 있는데 티끌이 흔들린다고 했듯이, 흔들리고 動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안으로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우리의 생각이 밖의 환경에 접촉하지 않고, 그냥  몸안에서만 마음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밖으로 치달려서 어둡고 번거로운[昏擾擾] 모습으로 자기의 심성(心性)을 삼고 있는 것이다. >에서, 내면에 있던 마음이 눈으로 나와서 보고, 귀로 나와서 듣는 등, 이렇게 밖으로 나오면 어둡고 흔들리면서 묘하게 밝은 마음이 물질화되어 나타나고,마음이  분별심으로 되어 나온 것이 바로 우주 전체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주전체가  참마음의 자리에서 나왔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주가 우리의 참마음 자리에서 나왔는데 그것을 모르고 우리 몸 가운데 있어서 생각하고 보고 듣는 이것(분별망상심)을 마음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며, 부처님이 손을 내렸을 때에 거꾸로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미혹하여 마음이라 하고, 거기에 집착하여 이제는 이 마음이 색신(色身)의 속에 있다고 착각하여 이 몸과 밖에 있는 산과 강 그리고 허공과 대지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다 묘하게 밝은 참마음[妙明眞心]에서 비추어진 하나의 현상[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에서, 본래 내 몸만이 아니라 우주전체가 내 마음으로부터 나왔으니까, 그것이 다 마음 속에 있는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주 가운데 조그마한 일부분, 다섯자도 못되는 우리 몸, 이 속 안에 있어서 좋다,나쁘다 하는 것을, 이것을 가지고 마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팔 자체는 거꾸로 바로가 없는 것을 알지 못하고, 즉 전체를 모르고, 내리면 거꾸로 라고 생각하여 잘못 아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마치 ‘맑고 청정한 백천의 큰 바다는 버리고, 오직 하나의 거품을 오인하여 그것으로 바다 전체라 하면서 바다를 다 알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에서, 백천대해는 우리의 진심자리를 가리키는 것이고, 조그만 물거품은 우리의 육신을 비유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물거품 하나를 바다 전체로 잘못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망상의 마음이 몸 속에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망심을 가지고 온갖 우주를 통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그대들을 미혹한 가운데 다시 배[倍]나 더 미혹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이니 앞에서 내가 손을 드리워서 이야기했던 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래서 여래는그대들을 ‘가엾은 사람이다’고 하는 것이다.”>에서, 여기서 배(倍)자는 우리의 마음에 대하여 본 참마음 자리는 모르고, 작은 망상심, 이것을 내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한 번 잘못 본 것이고, 또 내 마음이 우주 전체를 다 포함했다고 하는, 즉 물거품 하나가 큰 바다 전부를 포함했다고 하는 그것이 두번 잘못  본 것입니다. 전에 팔에 대해서 일배첨시(一倍瞻視)한다고 했던 그 부분이 여기와서 결론이 나온 것입니다.

거울 가운데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 거울의 본체입니다, 우리의 본 진심자리는 이 맑디 맑은 거울과 같습니다. 그런데 거울은 어디갖다 놓든지 영상이 비칩니다. 곧 그 앞에 있는 그림자가 비칩니다. 물건의 그림자를 안비추는 거울은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거울 가운데 형상이 비치는 것은 앞에 있는 것의 그림자가 비추는 것이나 거울의 본 바탕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림자가 비추는 것은 우리의 망상입니다. 지금 우리가 좋다,나쁘다 분별을 내는 그 마음입니다. 본 마음은 거울과 같아서 좋다,나쁘다의 차별이 없는 것인데, 우리의 본심자리를 迷해서 그릇 내 마음이라고 여기는 것이 마치 거울에 영상이 비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깐 마치 거울이 없이 영상이 비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우리 참마음 자체에 영상이 비치는 것을, 그 영상을 참마음인 줄 알면, 지금의 허망한 망상심이 본심을 떠나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겁니다.

대개의 경우 거울 가운데 있는 영상을 없애 버려야 참 거울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무슨 방법으로 거울 가운데 있는 영상을 없애 버릴 수 있겠어요. 없애버리지 못합니다. 만약 거울을 거울끼리 맞대어 그림자를 안 비추게 할지라도 우리는 보지 못하지만 거울과 거울은 서로 비춥니다.

우리의 망상심에서 망상을 떼놓고 불성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망상만 없어지면 불성이요, 그걸 말해서 중생이 이대로 부처라고 합니다. 迷하면 중생이요, 깨달으면 부처라고 하는 말이, 이 마음 떼버리고 새 마음 취하는 것이 아니며,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 분별인데, 거울 가운데 사람을 비춘다든지, 꽃을 비춘다든지 그것만 인정합니다.

결론적으로 거울 가운데 있는 영상인줄 만 알면 아는 그때가 부처입니다. 그걸 모르니 부처님이 여기서 가련하고 연민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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