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엄경 공부(12)

2014. 11. 24. 09:13성인들 가르침/능엄경

[무한진인의 능엄경 공부하기12]

2-3. 대상을 따라 나타난 마음은  진심(眞心)이 아니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다 눈 앞의 대상[前塵]에 의해 생겨난 허망한 망상이기에 다만 너의 진성(眞性)을 미혹하게 할 뿐이다.

 네가 시작이 없는 옛날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도적을 오인하여 아들을 삼고, 너의 원래로 항상한 것을 잃어버렸기에 그러므로 윤회를 받게 되느니라.”  

<佛告阿難하사대 此是前塵虛妄相想이라 惑汝眞性이니 由汝無始至于今生 認賊爲子失汝元常할새 故受輪轉이니라 > 

 

[해설]

<전진(前塵,대상)의 허망한 망상>이란 우리가 사람이나 온갖 산하대지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허망한 생각의 모양이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예를 들면 금으로 만든 반지나 목걸이가 분명이 그 몸체는 금일 뿐이지,반지나 목걸이는 이름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금은 못보고 반지나 목걸이라는 모양만 봅니다.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 눈앞의 허망한 대상의 모양이며, 진리의 모양과 이름이지, 그 진리 자체는 아닙니다. 우리 눈을 비롯해 6근의 감관이 실제를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가진 것은 오직 이것 밖에 없으니, 이것으로 모양이 분명하니깐 실제로 본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상에 이끌려 다니는 마음작용이 생사(生死)하는 근본이라는 것입니다. 대상의 허망한 모양을 인식해서 아는 그것이 참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성을 미혹케 한다>는 것은 참성품이 있는데 그걸 모르고 허망한 생각을 자기의 마음인 줄 아는 그것이 들어와서 참성품을 미혹케 한다는 것입니다.

<도적을 오인하여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전진의 허망한 생각이 도둑인데 참마음인 줄 알고 그가 하자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니, 그 참마음, 참아들을 잃어버렸으니 생사의 윤전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맨 처음에 아난이 부처님에게 묻기를 십방 부처님의 성불하신 사마타,삼마, 선나의 셋에 대해서 물었는데, 부처님이 답하시기를, 이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는 공부를 해야 모르니, 먼저 그것을 떼어 버려야 된다고 하셨는데, 바로 불교수행의 가장 기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어! 저는 부처님의 사랑하는 동생으로, 저의 이 마음이 부처님을 사랑했기에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어찌 유독 여래만을 공양했겠습니까? 더 나아가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국토를 두루 다니면서 여러 부처님과 선지식을 받들어 섬기며, 대용맹심을 발하여 일체의 어려운 수행을 행하는 것도 또한 이 마음입니다.

 비록 법(法)을 비방하고 선근(善根)에서 영원히 물러난다 하더라도 또한 이 마음입니다. 만약 이것을 가리켜 마음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저는 곧 마음이 없어서 저 들판의 흙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며, 이렇게 알고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는 다시 마음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이를 ‘마음이 아니다’라고 하십니까? 저는 정말 놀랍고 두려우며, 아울러 여기 모인 대중들도 의아해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원컨대 대자비를 드리우시어 아직 깨닫지 못한 저희들의 안목을 열어 주소서!”

<阿難白佛言호대 世尊我佛寵弟 心愛佛故令我出家호니 我心何獨供養如來리잇고 乃至徧歷恒沙國土하야 承事諸佛及善知識하며 發大勇猛하야 行諸一切難行法事皆用此心이며 縱令謗法永退善根하야도 逆因此心이니 若此發明不是心者인댄 我乃無心同諸土木하야 離此覺知更無所有리니 云何如來說非我心이잇고 我實驚怖兼此大衆無不疑惑하니 唯垂大悲開示未悟하소서 >

[해설]

​<여러 부처님과 선지식을 섬기며>라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아니고, 십방세계 부처님과 선지식에게도  이 마음으로 섬긴다는 것이죠.

<만약 이것을 가리켜 마음이 아니라고 하신다면 저는 곧 마음이 없어서 저 들판의 흙이나 나무와 같을 것이며, 이렇게 알고 분별하는 것을 떠나서는 다시 마음을 찾을 수도 없습니다. > 라는 것은 자기가 지금 알고 있기로는 마음이란 이 알고 분별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없는데, 어떻게 된 것이냐고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이를 ‘마음이 아니다’라고 하십니까? 저는 정말 놀랍고 두려우며, 아울러 여기 모인 대중들도 의아해 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원컨대 대자비를 드리우시어 아직 깨닫지 못한 저희들의 안목을 열어 주소서> 라는 것은  이런 알고 분별하는 마음이 아닌 다른 마음이 있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고 있읍니다.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깨우쳐서 그들의 마음이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려고 사자좌(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면서 말씀하셨다.

 “여래는 항상 ‘모든 법(法)의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인과(因果)와 세계의 가지가지 현상이 다 마음으로 인하여 뼈대[體]를 이룬다’고 했다. 아난아! 만약 모든 세계의 가지가지 존재와 그 가운데 더 나아가 풀잎이나 실오라기 하나라도 그 근원을 찾아보면 다 체성(體性)이 있으며, 비록 허공일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는데 하물며 청정(淸淨)하고 묘정(妙淨)하며 밝은 참마음은 일체 마음의 본성이거늘, 어찌 스스로의 그 체(體)가 없겠느냐?”

<爾時世尊開示阿難及諸大衆하사 欲令心入無生法忍코자 於獅子座摩阿難頂而告之言하사대 如來常說호대 諸法所生唯心所現이며 一切因果世界微塵 因心成體라호니 阿難若諸世界一切所有 其中乃至草葉縷結이라도 詰其根元인댄 咸有體性이며 縱令虛空이라도 亦有名貌어든 何況淸淨妙淨明心 性一切心어늘 而自無體리요 >

[해설]

​<그때 세존께서 아난과 여러 대중들을 깨우쳐서 그들의 마음이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게 하려고 사자좌(獅子座)에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면서 말씀하셨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불성자리를 열어보인다는 것입니다.

<무생법인(無生法忍)> 이란 생멸(生滅)이 없는 존재를 아는 지혜인데, 무생(無生)은 무생멸(無生滅)을 가리키며, 인(忍)은 지혜를 가리키고, 법(法)이란 형상이 있고 없건 간에 일체의 존재를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원효스님이 무생법인을 증득했다고 하는데, 초지(初地)에 아르러서 얻는 지헤라고 합니다.

사자좌(獅子座)는 부처님이 앉아서 설법하는 자리인데, 사자는 동물가운데 왕이니깐 두려움이 없듯이, 부처님의 설법은 조금도 두려움,공포가 없는 설법이라고 하여 사자좌라고 합니다.

<아난의 정수리를 쓰다듬는 것>​ 은 아란이 지금 놀라고 있으니까 놀라지 말라고 위로해 주는 것입니다.

<여래는 항상 ‘모든 법(法)의 생기는 것이 오직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일체의 인과(因果)와 세계의 가지가지 현상이 다 마음으로 인하여 뼈대[體]를 이룬다’고 했다>에서, 여기서 '마음'이란 식정(識精)이 본래 밝은 우리 참마음 자리를 말합니다.

<인과(因果)>라는 것은 중생이나 범부를 인(因)이라고 하고, 부처되는 길을 가서 果를 얻는 것을 과(果)라고 하는데, 중생과 성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세계와 微塵(세계의 가지가지 현상)>은  모두 무정물인데, 큰 것은 세계요, 작은 것으 미진(微塵)입니다. 세계,미진, 유정, 무장이 모두 마음으로 된 것인데 아난이 마음이 없다고 하니깐 왜 없겠느냐는 말씀입니다.  

<풀잎이나 실오라기 하나라도 그 근원을 찾아보면 다 체성(體性)이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하잘것 없는 것이 풀잎이나 실오라기인데, 풀잎파리는 풀잎파리의 체성이 있고, 실오라기는 실오라기의 체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비록 허공일지라도 이름과 모양이 있는데 하물며 청정(淸淨)하고 묘정(妙淨)하며 밝은 참마음은 일체 마음의 본성이거늘, 어찌 스스로의 그 체(體)가 없겠느냐?>라는 것은, 허공은 체(體)가 없는 것 같지만 이름은 허공이요, 모양은 걸릴게 없이 툭 트여 있다는 것이죠. <淸淨>이란 본래부터 더럽지 않은 것을 말하며, <妙淨>은 연꽃에 물을 뿌리면 한방울도 묻지 않고 흘러내리듯이, 아무리 더럽혀도 더렵혀지지 않는 것이 묘정입니다. 참 불성자리를 끌고 六趣를 다니면서 중생노릇하지만, 본체는 부처님이나 보통범인이나 조금도 다르지 않고, 아무리 더러운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는 우리의 본 마음을 말하며 묘정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일체의 성품이 그런 마음으로 부터 됐는데 自體가 없을리 있는냐, 즉 아란이 마음이 없다면 목석(木石)과 같을 것이라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고, 진심을 보여주고자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만약 분별하고 각관(覺觀)하여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굳이 참마음이라고 한다면 이 마음이 응당 일체의 색향미촉(色香味觸) 등 가지가지 경계[諸塵事業]를 떠나서도 따로 온전한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

<若汝執悋分別覺觀 所了知性하야 必爲心者인댄 此心卽應離諸一切色香未觸 諸塵事業코도 別有全性하리라 >

 [해설]

<分別>이란 눈으로 본다든지, 귀로 듣는다든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이고, <覺觀>이란 분별하는 것보다 더 세밀히 관찰하고 이치를 다지는 것인데, 분별은 보통으로 좋다 나브다 한느 것이고, 그걸 다져서 더 분명하게 살펴서 관찰해 보는 것이 각관입니다. 둘은 같은 것이지만 분별은 대체적으로 하는 것이고, 미세하게 연구한느 것은 각관입니다.

<이 마음이 응당 일체의 색향미촉(色香味觸) 등 가지가지 경계[諸塵事業]를 떠나서도 따로 온전한 성품이 있어야 할 것이다.>에서, 6진 가운데 聲塵과 法塵이 빠졌습니다만, 글을 만들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고, 모든 塵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事業>은 일 자체인데, 크다,작다,좋다,나쁘다 하는 게 다 사업입니다. 참 마음이라면 색성향미촉을 여의고도 자체가 있어야 할텐데, 눈으로 분별하는 마음은 빛이 없으면 없어지고, 소리를 분별하는 생각은 소리가 없으며 없어질 것이니, 前塵의 허망한 모양을 생각하는 것 밖엔 참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허망한 마음과 참마음을 여기서 분별하는 것입니다. ​ 

 

네가 지금 나의 법을 듣는 것도 소리로 인하여 분별이 있으니 비록 일체의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소멸하고 안으로 고요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사실은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허망한 그림자[分別影事]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如汝今者承聽我法함도 此則因聲하야 而有分別이니 縱滅一切見聞覺知하고 內守幽閑도 猶爲法塵分別影事니라 >

 [해설]

지금 법문을 듣는 그 마음도 소리가 있기 때문에 (분별)마음이 생긴 것이니, 소리가 있든 없든 自體가 있어야 할 텐데, 없으니 그건 참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비록 일체의 견문각지(見聞覺知)를 소멸하고 안으로 고요함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사실은 법진(法塵)을 분별하는 허망한 그림자[分別影事]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에서,

육근으로  환경을 접촉해서 아는 것이 見聞覺知입니다. 곧 선정에 처음 드는 상태가 유한(幽閑)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참 유한일지라도 객(客)이요, 法塵을 분별하는 그림자입니다. 法塵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대상입니다. 色塵이나 聲塵들을 실로 존재하는 것이고, 法塵은 그 五塵의 그림자입니다. 예를 들자면 사진 찍을 때 찍는 순간은 이미 없지만 사진은 남아 있듯이, 마음 가운데 법진은 그렇게 남아 있으며, 우리가 마음으로 어제의 일도 생각하고 좀 전의 일도 생각하지만, 눈은 일초전의 것은 보지 못하며, 귀도 역시 현재 있는 소리만 듣지, 지나가면 듣지 못하지만, 법진은 과거,현재,미래를 다 생각하는데, 선정에 들어 있을 때도 참마음이 아니고 법진을 분별하는 그림자 밖엔 안된다는 애깁니다.  

 

내가 지금 너에게 너의 생각하는 것을 마음이 아니라고 억지로 우기려는 것이 아니다. 너는 한번 온 마음으로 내가 하는 말을 깊이 헤아려 보아라. 만약 앞의 대상[前塵]을 떠나서도 따로 분별하는 체성(體性)이 있다면 그 때는 그것을 진실한 너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분별하는 성품이 밖의 대상[塵]을 여의고 따로 그 체(體)가 없다면 그 마음은 곧 앞의 대상을 분별했던 하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네가 지금 대상을 분별하여 아는 성품을 고집하여 참마음이라 하는데) 눈앞의 대상은 항상한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변하여 사라질 때 그 분별했던 그림자 마음은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곧 너의 참마음[法身]도 아주 없어진다는 말이 되나니 누가 깨달음[無生法忍]을 닦고 성취하겠느냐?”

<我非勅汝하야 執爲非心이니 但汝於心 微細揣摩하라 若離前塵하고 有分別性인댄 卽眞汝心어니와 若分別性離塵無體인댄 斯則前塵分別影事니라 塵非常住일새 若變滅時에 此心則同龜毛하야 則汝法身 同於斷滅어늘 其詰修證無生法忍하리요 >

 [해설]

<前塵을 떠나서 따로 분별하는 체성이 있다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걸 떠나서 참 성품이 있다면, 그 말씀입니다.

 <눈앞의 대상은 항상한 것이 아니기에 그것이 변하여 사라질 때 그 분별했던 그림자 마음은 마치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을 것이다. 그렇다면 곧 너의 참마음[法身]도 아주 없어진다는 말이 되나니>에서, 전진이 변하여 없어질 때는, 곧 전진을 분별한는 것은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이 말만있고 실재하지 않아서 참마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법신은 아닌데 아난이 참마음이라고 하니깐 법신자체는 항상 있는 것인데, 前塵 생각하는 마음을 법신이라고 한다면 前塵도 없어질 때는 法身도 단멸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깨달음[無生法忍]을 닦고 성취하겠느냐?> 에서, 무생법인을 증득하려면 왔다갔다 움직이는 헛된 마음 말고, 前塵이야 있든 말든 늘 항상 존재하는 이 마음(恒常心)을 얻어 공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능엄경이 다른 경과 다른 것은 처음부터 생멸이 없는 恒常하는 존재의 이 마음을 가지고 시작해야, 결과가 항상하는 존재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 여기의 [해설] 내용은 운허스님이 직접 강설하신 것을 일부 발췌해서 옮겼습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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