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2. 19:43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2. 마음이 몸 밖에 있는 것 같다.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여래의 이와 같은 법음(法音)을 듣고, 이제 저의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마치 방 안에서 등불을 밝히었을 때, 이 등이 반드시 먼저 방안을 비추고, 문을 통하여 나중에 뜰에 이르게 되는 것처럼, 일체 중생이 몸 안은 보지 못하면서 유독 몸 밖의 것만 보는 것은 마치 등불의 광명이 집 밖에 있어서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뜻이 반드시 분명하여 미혹됨이 없고, 부처님의 참다운 뜻과 같아서 잘못됨이 없는지요?” >
<阿難稽首而白佛言호대 我聞如來如是法音하고 悟知我心實居身外이니다
所以者何譬如燈光然於室中하면 是燈必能先照室內하고 從其室門後及庭
際인달하야 一切衆生不見身中하고 獨見身外호미 亦如燈光居在室外하야
不能照室하니 是義必明하야 將無所惑하야 同佛了義하니 得無妄耶잇가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기에 모인 여러 비구들이 지금 나를 따라 실라벌성(室羅筏城)에서 차례차례 음식을 얻어 지타림에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이미 공양[齋]을 마쳤거니와 너희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음식을 먹었을 때 많은 사람의 배가 불러지더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어! 왜냐하면 이 모든 비구들이 비록 아라한들이라고 하나 몸과 목숨이 각각 다르거늘, 어떻게 한 사람이 음식을 먹었을 때 여러 사람의 배가 불러질 수 있겠습니까?” >
<佛告阿難是諸比丘가 適來從我하야 室羅筏城循乞摶食하고 歸祗陀林한대
我已宿齋어니와 汝觀比丘컨대 一人食時諸人飽不아 阿難答言不也世尊이
시여 何以故是諸比丘誰阿羅漢이나 軀命不同어늘 云何一人能今衆飽리요 >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정말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달라서[相外] 관계가 없을 것이다. 즉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이 깨닫지 못하고, 깨달음이 몸에 있을 때 마음은 알지 못할 것이다. >
<佛告阿難 若汝覺了之心이 實在身外인댄 身心相外하야 自不相干이라
卽心所知를 身不能覺하니 覺在身際에 心不能知하리라 >
<내가 지금 너에게 도라면(兜羅綿)같은 손을 보였으니 너의 눈이 볼 때에 너의 마음도 따라 분별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어!”
부처님이 아난에게 다시 말씀 하셨다. “만약 그와 같이 서로 아는 것이라면 어떻게 밖에 있다고 할 수 있겠느냐? >
<我今示汝兜羅綿手하니 汝眼見時心分別不아 阿難答言如是世尊이시여佛告
阿難하사대 若相知者인댄 云何在外리요 >
*주 : 도라면 - 인도에서 나는 보드랍고 결백한 좋은 솜인데, 보통 부처님의 손에 비유함.
<그러므로 네가 말한 ‘깨닫고 아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是故應知하라 汝言覺了能知之心이 住在身外함은 無有是處니라 >
[해설]
전번 회에서는 '깨닫고 아는 참마음은 안에 있지 않다"고 부처님의 반론을 들었읍니다. 그렇다고 깨닫고 아는 마음이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는데, 아난은 자기 혼자서 지레 짐작으로 마음이 몸 안에 있지 않다면, 그럼 마음이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난의 생각은 마음이 분명 어딘가에는 있긴 있을 것인데, 몸 안에 마음이 없다면 틀림없이 몸 밖에 있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해 버린 것이죠.
여기서 아난은 우리 보통 깨닫지 못한 무지한 중생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대표해서 말하는 것이고, 부처님은, 이렇게 단순 명확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을 부처님이 반박하여 깨뜨리면서, 아난과 우리 무지한 사람들이 참마음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유도하고 있읍니다.
아난이 참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을 비유해서, 집 밖에 있는 등불이 집안을 비칠 수 없듯이,
일체 중생이 자기 몸 속을 보지 못하고 유독 몸 밖만 본다고 말 합니다.
이에 부처님께서 역시 비유를 들어 아난을 반박하십니다.
"한 사람이 먹을 때에 여러 사람이 배가 부르느냐?"
당연히 여러 사람도 배부름을 느끼지 못합니다. 아난도 역시 그렇게 대답합니다.
한 사람이 먹을 때에는 오직 밥을 먹은 그 한사람만이 배가 부름을 느낍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아렇게 물으신 이유가 뭘까요?
앞서 아난이 비유한대로 , 만일 마음이 몸 밖에 있어서 등불의 광명이 밖에서 방안을 제대로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렇다면 한 사람이 밥을 먹을 때 비록 자신은 밥을 먹지 않았지만, 밥을 먹지 않은 다른 사람들도 배부른 마음을 느낄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몸 밖에서 등불의 광명처럼 외부를 비춘다면 외부의 상태에 대해서도 마음이 느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오직 배부름을 느끼는 사람은 밥을 먹은 한 사람 뿐입니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정말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달라서[相外] 관계가 없을 것이다. 즉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이 깨닫지 못하고, 깨달음이 몸에 있을 때 마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이치에 안맞는 것이다" 부처님이 두 번 째 깨뜨려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아난이 마음의 소재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부처님이 앞으로 7번을 더 깨뜨리게 되는데,
부처님이 아난에게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고 아난의 대답을 깨드려 버리는 이유는 ,
아난이 부처님의 삼십이상를 보고 좋아했다는 그 마음 자체가 참마음이 아니니까, 부처님의 사마타, 삼마, 선나를 얻으려는 공부를 하려면 참마음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자꾸 묻고 깨드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아난이 가지고 있는 것은 참마음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고 싶은데, 그냥 아니라고 말로만 하면 잘 믿지도 않고 겉으로 흘려서 형식적인 대답만 할 뿐이니깐, 아예 , 마음있는 데를 7번씩이나 계속 물어가며 아난의 망상으로 만든 대답을 아니라고 그 즉시 깨뜨려 버리므로서, 아난이 빨리 망상을 벗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부처님이 아난의 대답에 대하여 "아니다"라고 부정한 본래 뜻은 참마음이라고 하면 있는 곳(處所)가 있을 것인데, 아난의 말은 허망한 마음(이원화 상대적인 마음)에서 나온 말이니깐, 허망한 존재는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디시 말하면 앞으로 아란이 7번이나 마음있는 곳에 대해서 대답한 것을 부처님이 다 증명해서 반론하여 파(破)하시어, 아란으로 하여금 자기가 생각하는 이 마음이 정말로 마음이 아닌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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