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2. 19:40ㆍ성인들 가르침/능엄경
제1장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사마타로 진심을 찾는다.
- 허망한 마음을 밝히다.
제1절 아난에게 출가의 동기를 묻다
1. 부처님의 상(相)을 보고 출가했다고 대답한다.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
“너와 나는 사촌[同氣]이지만 우리의 정리로 보면 친형제[天倫]와 같다. 네가 처음 발심하였을 때 나의 법 가운데에서 무슨 수승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렇게도 갑자기 속세[世間]의 그 깊고 무거운 사랑과 은혜를 모두 버릴 수 있었더냐?” >
[佛告阿難汝我同氣라 情均天倫하니 當初發心하야 於我法中見何勝相이완대
頓捨世間深重恩愛오 ]
<해설>
부처님과 아난은 사촌간이라고 하죠. 사촌간이면 거의 친 형제나 다름 없죠.
여기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왜 출가했냐고 묻습니다. 무엇에 홀려서 속세의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집을 나와서 중이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저는 여래의 삼십이상(三十二相)이 수승하고 절묘하며, 그 몸의 비치고 사무침이 마치 유리와 같음을 보고 항상 ‘이러한 수승한 모습은 욕애(欲愛)로 인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욕애의 기운은 추하고 탁하며 비릿한 것으로, 고름과 피가 섞여 있어서 한없이 깨끗하고 묘하게 밝은[勝淨妙明] 자금색의 광명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렇게 생각한 까닭으로 목마르게 부처님을 우러러 사모하고 끝내는 부처님 앞에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
[阿難白佛我見如來三十二相이 勝妙殊絶하야 形體映徹호미 猶如瑠璃하고
常自思惟호대 此相非是欲愛所生이니 何以故欲氣麤濁腥臊交遘하고 膿血
雜亂하야 不能發生勝淨妙明紫金光聚와 是以渴仰投佛剃落이니다 ]
<해설>
아난의 대답이 부처님의 외모가 빼어나고 고귀하게 투명한 빛이 나는 것을 보고 부처님을 우러러 사모하여 부처님을 따라서 출가했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의 삼십이상이라는 것은 부처님의 몸에서만 보이는 특징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머리 정상이 상투처럼 육봉이 솟아 있다던가, 발바닥에 수레바퀴 형상이 그려져 있다던가, 두 귀바퀴가 크게 늘어져 있다던가, 등 32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육체에 이런 특징이 있지만, 이것은 모두 형상일 뿐이죠. 그런데 아난은 이러한 부처님의 외모에 이끌려 출가했다고 대답합니다. 이것은 아난이 아직 허망한 육체의식(상대적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며,부처님의 보이지 않고 모양없는 법신(法身)에 대해서 아직 관심이 덜 하다는 것입니다. 금강경에서도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고 해서 '모든 상(相)은 허망하다'고 설하고 있죠. 그래서 부처님이 다음에 아난에게 진심(眞心)이 무엇이며,허망한 마음(妄心)이 어떤 것인지를 가려내도록 설하십니다.
2) 망상(妄想)으로 유전한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착하구나. 아난이여! 너희들은 응당 ‘일체 중생이 시작 없는 옛날부터 나고 죽음을 계속하는 것은 다 항상한 참마음[常住眞心]의 청정하고 밝은 그 본성의 체[性淨明體]를 알지 못하고, 가지가지 망상(妄想)을 사용하는 까닭이니 이 망상이 본래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생사에 윤회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佛言善哉阿難이여 汝等當知하라 一切衆生無始以來生死相續은 皆由不知常 住眞心性淨明體하고 用諸妄想이니 此想不眞故有輪轉이니라 ]
[해설]
일체 중생이 나고 죽는 윤회를 반복하는 것은 바로 이 항상 있는 본바탕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겉으로만 드러나 작용하는 온갖 망상이 진심이라고 잘못 아는 바람에 모든 중생이 생사의 혼돈 속에서 윤회하면서 떠돈다는 말씀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대가 이제 위없는 깨달음을 참구하여 그 진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응당 순수한 마음[直心]으로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하라. 시방의 여래께서 한결같이 동일한 방법[一道]으로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셨으니 모두가 이 순수한 마음이었다. 마음과 말이 곧아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중간에도 전혀 구부러진 모습은 없었느니라.”>
[ 汝今欲硏無上菩提하야 眞發明性인댄 應當直心酬我所問하라 十方如來同一 道故로出離生死호대 皆以直心이니 心言直故如是乃至 終始地位히 中間永無 諸委曲相이니라 ]
<해설>
우선 진실한 성품을 찾아 내려면 곧은 마음(直心)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직심(直心)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하는 직심이란 바로 구부러지지 않은 마음(不曲)인데, 이것은 어떤 관념이나 습에 의하여 오염되지 않는 생각없이 직바로 직관적인 마음을 말합니다.
<응당 직심으로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하라>는 말씀은, 바른 마음을 가지고, 물을 때에 무엇인가 생각해 가면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아는 그대로 솔직히 직바로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솔직하고 터 놓은 자세로, 체면을 위한다든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디서 얻어들은 것을 말한다든지 그러면 부처님의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씀같습니다.
모든 성인들의 자세도 말과 마음이 곧이 곧대로 순수하고 직설적여서 절대로 숨기거나 에둘러서 말하거나 구부러진 모습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십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묻는 말에 아난 너도 솔직하게 확 가슴을 터 놓고 회끈하게 이야기 해 보자는 말씀입니다.
3. 무엇으로 보고 누가 좋아하는가?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는다.
“너의 발심이 ‘여래의 삼십이상을 말미암았다’고 했는데 무엇으로 보고 무엇으로 사랑하고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어! 제가 이와 같이 부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였던 것은 저의 마음과 눈이었습니다. 눈으로 여래의 수승한 모습을 보고 마음으로 좋아하였기 때문에 저는 발심하여 생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阿難我今問汝리라 當汝發心緣於如來三十二相인댄 將何所見이며 誰爲愛樂고 阿難白佛言世尊如是愛樂用我心目이니다 由目觀見如來勝相하고 心生愛樂하야 故我發心願捨生死이니다 ]
<해설>
부처님이 묻기를, 나의 삼십이상을 보기는 무엇이 보았고, 좋아하기는 무엇을 가지고 좋아했느냐? 고 묻습니다.
그랬드니 아난이, 제가 삼십이상을 좋아 한 것은 저의 마음과 눈으로 하였습니다. 눈으로는 여래의 거룩한 상을 보고, 마음으로 좋아했으므로 발심하여 (부처님처럼) 생사(生死,윤회)를 버리고 해탈하기 위해서 부처님에게 왔읍니다.라고 대답했읍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난의 대답에 모순이 보입니다. 부처님의 외모를 보고 좋아하는 마음을 낸 것이 생사심인 망상인데, 이런 망상을 가지고 생사심을 버릴 순 없죠. 생사심을 버릴려면 망상을 없애야죠. 그래서 다음 회부터는 부처님이 아난의 그 망상(妄想)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마음과 눈"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추궁해 가면서 그 과정에서 망상과 진심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도록 깨우쳐 줍니다.
이것이 수능엄경에서 유명한 칠번파심(七番破心)입니다. -무한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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