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9. 19:32ㆍ성인들 가르침/라마나 마하리쉬
안나말라이 스와미 : 마음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붙잡아 제어하려고 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그것은 그림자를 쫓아가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쫏아 간다거나 그 위에 그림자 손을 덮는다고 해서 그림자를 제어하거나 제어 할 수 없읍니다. 그런 것은 어린애의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람 띠르타(북인도와 희말리아에서 1873~1906년 사이에 살았던 성자)가 언젠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한 사내아이는 자기 그림자의 머리를 따라잡으려고 길거리에서 달음박질을 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쫏아가도 자기 머리 그림자는 자기보다 항상 몇 발자국 앞에 있었기 때문에, 아이는 결코 그것을 붙잡지 못했읍니다. 아이를 지켜보면서 웃고 있는 엄마가 소리 질렀읍니다.
"머리에 손을 얹어!"
아이가 그 말대로 하자, 그림자 손이 그림자 머리를 잡았읍니다. 그걸로 아이는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지요.
이런 종류의 조언은 아이들이야 족히 즐겁게 하겠지만, 수행과 명상의 영역에서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제어의 기법을 가지고 그대의 그림자 생각과 그림자 마음을 쫏아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런 기법 역시 그림자이니까요. 그러지 말고, 그림자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가서 거기에 머무르십시오.
그 자리에 안주할 때 그대는 행복할 것이고, 그림자 생각들을 쫏아갈 욕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가반(라마나 마하리쉬)께서는 종종 자기 그림자를 구덩이에 파 뭍으려고 애쓴 한 사나이의 이야기를 하셨읍니다. 이 사람은 구덩이 하나를 파고나서 자기 그림자가 방금 판 구덩이 바닥에 비치도록 그 가장 자리에 섯읍니다. 그림자를 이렇게 맞춘 다음 그는 그림자를 뭍으려고 그 위에 흙을 던지기 시작했읍니다. 물론 아무리 많은 흙을 구덩이에 던져도 그림자는 여전히 바닥 위에 그대로 있었지요.
그대의 마음은 실체가 없는 하나의 그림자이며, 그대가 어디로 가든 그대 곁을 따라 올겁니다. 그것을 없애거나 제어하려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그대가 여전히 마음을 실재한다고 여기면서 물리적이거나 정신적인 활동으로 그것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한, 성공할 수 없읍니다.
질문 : 그러나 이 그림자 마음은 어떤 수단에 의해서든 역시 제거해야 합니다.
스와미 : 진아 깨달음이 일어날 때는 마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제어한다고 해서 진아 깨달음을 얻지는 못합니다.
깨달음은 마음이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대가 이해하고 알때 일어 납니다. 그것은 실재하고 참된 것을 인지하는 것이며, 그대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이 무상한 그림자의 실재성과 실체성에 대한 그릇된 관념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가반과 다른 많은 스승들이 뱀과 밧줄의 비유를 계속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대가 땅에 있는 한토막의 밧줄을 뱀으로 오인하면, 그 뱀은 그대의 마음 속에 하나의 관념으로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관념은 그대에게 많은 걱정과 두려움을 야기할 수 있고, 그대는 뱀을 피해야 하나, 죽여야 하나 하고 궁리하느라고 많은 정신적 기력을 낭비할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이 사실은 남습니다. 즉, 그대의 상상 밖에서는 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뱀이라는 그대의 거짓된 관념이 덧씌어지는 바탕인 그 밧줄을 바로 보게 되면, 뱀이 한 마리 있고 그것이 실재한다고 하는 관념은 일순간에 사라집니다. 사라진 것은 진짜 뱀이 아니라, 그릇된 관념 뿐입니다.
마음의 거짓된 관념이 덧씌워지는 그 바탕은 진아입니다. 그대가 마음을 볼 때, 그 저변에 있는 바탕인 진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거짓된, 그러나 끈질기게 남아 있는 관념에 의해 가려집니다. 그리고 반대로, 진아를 보게되면 마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질문 : 그러나 마음이 실재한다는 이 거짓된 관념을 어떻게 놓아 버릴 수 있습니까?
스와미 : 잘못된 어떤 관념을 놓아 버리는 것과 같은 방법이지요. 그 관념을 그냥 믿지 않아 버리는 것입니다. 스승으로부터 그 진리를 들었을 때 그것이 저절로 되지 않으면, 그대 자신에게 '나는 마음이 아니다. 나는 마음이 아니다. 마음은 없다. 마음은 없다. 의식만이 존재한다.'라고 계속 말하십시오. 이것이 진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날 이 확고한 신념이 성숙되어 그대의 직접적인 체험이 될 때가 올 겁니다.
의식(마음의 뿌리,우주의식)만이 존재합니다. 만일 그대가 이것이 진리라는 확고한 신념을 일으킨다면, 결국 이 확고한 신념이 그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이 될 것입니다.
의식만이 존재합니다. 다시 말해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나 의식일 뿐입니다. 이것을 명심하고, 그대 자신이 다른 어떤 것을 실재한다고 여기는 것을 용납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마음에 조금이라도 실재성을 부여하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거짓된 실체가 될 것입니다.
이 최초의 그릇된 동일시- '나는 마음이다. 마음은 실재한다'-가 일어나고 나면, 문제들과 괴로움이 따라 옵니다.
마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가짜 호랑이이고,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재하지 않는 것이 그대에게 해를 끼칠리 없읍니다. 두려움과 걱정은 그대가 자신의 근처에 진짜 호랑이가 있다고 믿으면 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겁을 주려고 장난으로 호랑이 소리를 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사람이 나타나면 그대의 모든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그대의 상상 밖에서는 어떤 호랑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문득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질문 : 우리는 저변의 실재인 진아에 대한 일시적인 체험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런 다음 그것은 사라집니다. 어떻게 하면 그 상태 안에 안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어떤 지침을 주시겠읍니까?
스와미 : 불을 켠 등불은 바람이 강하게 불면 꺼질 수도 있읍니다. 만일 불빛을 다시 보고 싶으면 등불을 다시 켜야 합니다.
그러나 진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나가는 생각이나 욕망들의 바람에 꺼져 버릴 수 있는 하나의 불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밝고, 항상 빛나며, 항상 있습니다.
만약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대가 그 앞에 시야를 가리는 하나의 카텐이나 베일을 쳐 두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진아는 커튼 뒤로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참되지 못한 관념들을 믿음으로서 거기에 커텐을 친 사람은 그대 자신입니다.
만일 커텐이 걷혀다가 닫힌다면, 그것은 그대가 여전히 그릇된 관념들을 믿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관념들을 완전히 뿌리 뽑고 나면, 그것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겠지요. 이런 관념들이 진아를 은폐하고 있는 동안은 아직 부단히 수행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대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진아는 스스로를 안정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완전합니다. 마음은 안정될 수도 있고 불안정해 질 수도 있지만, 진아는 그렇지 않습니다.
질문 : 부단한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 탐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스와미 : 그렇습니다. 수행의 힘에 의해, 이 수행법에 의해, 이 베일은 완전히 제거됩니다. 더 이상의 장애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대는 아루나찰나의 정상에 올라갈 수 있지만, 만일 정신 차리지 않으면, 주의하지 않으면, 미끄러져서 산밑에 있는 이사야니 흰두사원까지 내려갈지도 모릅니다.
진아를 깨달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길 위에서 멈추어 무지(無知)로 다시 떨어지기는 아주 쉽습니다. 언제라도 도로 떨어질수가 있습니다. 정상에 처음 도달했으면, 거기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강하고 굳센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결국 진아 안에 완전히 자리 잡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게 진아 안에 완전히 자리잡고 나면 다시는 떨어질 수 없습니다.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고, 더 이상 아무 노력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 올 때까지 부단한 수행이 필요합니다.
질문 : 이 단계에서는, 즉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기간 중에는 스승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까?
스와미 : 그렇습니다. 스승은 그대를 인도하며, 그대가 한 수행이 충분치 않다고 말해 줍니다. 우리가 동이에 물을 채울 때, 공간이 아직 남아 잇으면 항상 물을 더 채웁니다. 그러나 동이가 완전히 다 차면, 즉 다 차서 물이 넘치면, 단 한 방울이라도 물을 더 채우는 것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대는 충분히 물을 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신의 동이가 가득 찼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승은 아직 공간이 남아 있고 물을 더 채워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더 좋은 위치에 있습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그대 자신의 판단에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도달한 상태가 완전하고 최종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만일 스승이 "그대는 수행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면 스승의 말을 믿고 더 노력을 경주해야 합니다.
반가반은 종종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신체적 스승은 바깥에 있으면서 그대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하고, 그대를 진아 안으로 밀어 넣는다. 내적인 스승, 곧 내면의 진아는 동시에 그대를 자기 자신 쪽으로 끌어 당긴다."
그대가 일단 내적인 스승인 진아 안에 자리 잡게 되면, 스승과 제자 간의 구별이 사라집니다. 그 상태에서는 더 이상 어떤 스승의 도움도 필요 없습니다. 그때가 그것, 즉 진아입니다.
강은 바다에 도달할 때까지는 계속 흘러가야 하지만, 바다에 도착하면 그것은 바다가 되고 흐름은 멈춥니다. 강물은 원래 바다에서 왔습니다. 흘러가면서 그것은 단지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대가 명상을 하거나 수행을 할때, 그대는 자신이 온 근원으로 도로 흘러 가는 것입니다. 그 근원에 도달하게 나면, 그대는 존재하는 모든 것-세계, 신, 마음, - 이 하나라는 것을 발견합니다. 어떤 차이나 구별도 거기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이원성이 지(知,jnana)이고, 이원성이 윤회(삼사라)입니다. 이원성을 놓아 버릴 수 있으면 부라만만이 남게되고, 그대는 자기 자신이 그 부라만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이것을 발견하려면 지속적인 명상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 일정한 시간대를 활당하지는 마십시오. 그것을, 앉아서 눈을 감고 있을 때 하는 어떤 일로 여기지 마십시오. 이 명상은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밥을 먹을 때, 걸을 때, 심지어는 말을 할때도 명상을 하십시오. 그것은 무슨 일을 하든 내내 지속되어야 합니다.
-라마나 마하리쉬의 직계제자인 슈리 안나 말라이 스와미의 마지막 가르침,
-마음은 없다- 에서 발췌함
<탐구사, 데이비드 가드먼 엮음, 대성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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