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2. 10:20ㆍ성인들 가르침/불교경전
나는 이와같이 들었다.
붓다가 날라 마을의 숲속 사원에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가차야나 존자가 붓다를 찾아와 물었다.
"여래께서 '바른 견해'를 말씀하셨는데, 여래께서는 어떻게 '바른 견해'를 말씀하셨나요?"
붓다가 카차야나 존자에게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두 개의 견해 중에 하나만을 믿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유(有) 아니면 무(無)라는 견해이다.
그것은 세상사람들이 잘못된 인식에 얽매여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식이 '유(有) 또는 무(無)'와 같은 개념들을 낳는다.
카차야나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별심과 편애, 집착과 애착같은 정신적 의지에 얽매인다. 집착과 애착과 같은 정신적 의지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더 이상 자아를 고집하거나 상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들은 괴로움도 그 원인들이 있기 때문에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고, 그 원인들이 소멸하면 괴로움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해한다.
더 이상 그들은 미혹에 빠지지 않는다.
깨달음은 다른 사람들을 의지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통찰력에 의해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이런 통찰력을 '바른 견해'라고 말한다.
이것이 여래가 말한 '바른 견해'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세상에 '나타나는 것들을' 통찰력을 통해 바르게 관찰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없다(無)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에 '사라지는 것들을'통찰력을 통해 바르게 관찰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있다(有)'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카차야나야, 세상을 '유(有)'라고 보는 것은 극단적인 견해이다.
세상을 '무(無)'라고 보는 것도 극단적인 견해이다.
여래는 이 두가지 극단을 피하고 '중도(中道)'에 의지해서 법(法)을 말한다.
'중도'는 '그것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있다', '그것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없다'라고 말한다. (因緣法)
무명(無明: 무지 혹은 어리석음)이 있기 때문에 충동(움직임)이 있고,
충동이 있기 때문에 의식이 있고,
의식이 있기 때문에 명색(名色 : 정신과 물질)이 있고,
명색이 있기 때문에 여섯가지 감각기관(眼耳鼻舌身意)이 있고,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있기 때문에 접촉이 잇고,
접촉이 있기 때문에 감정이 있고,
감정이 있기 때문에 갈망이 있고,
갈망이 있기 대문에 집착이 있고,
집착이 있기 때문에 생성이 있고,
생성이 있기 때문에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 죽음, 고통, 슬픔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은 이렇게 일어난다. (十二 緣起法)
그러나 무명이 사라지면 충동도 소멸하고,
충동이 사라지면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사라지면 명색이 소멸하고,
명색이 사라지면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소멸하고,
여섯가지 감각기관이 사라지면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사라지면 감정이 소멸하고,
감정이 사라지면 갈망이 소멸하고,
갈망이 사라지면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사라지면 생성이 소멸하고,
생성이 사라지면 태어남이 소멸하고
결국 늙음,죽음,고통,슬픔이 사라질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괴로움이 이렇게 사라진다."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난 후, 카차야나 존자는 깨달음을 얻었고 슬픔에서 해방되었다. 그는 모든 번뇌에서 해탈하여 아라한을 얻었다. [잡아함경 301]
- 탁니한 스님의 "중도란 무엇인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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