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 수행과정의 단계별 고찰(3)

2012. 11. 12. 19:42무한진인/참나 찾아가는 길목

 

 

 

 

 

간화선에 대하여 한 마디(4) 

 

2) 疑團, 夢中一如, 제7말라식, 法空, 微細體, 受相行 

전번 3회에서는 간화선 수행과정에 의정(疑情)의 형성에 대하여 다루어 보았읍니다. 간화선 수행자가 화두에 대하여 의심을 하는데, 그 의심이 계속 끊이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면 의정(疑情)이 생긴다고 했읍니다.

의정(疑情)이란 의심이 억지로 애를 쓰지 않아도 힘들이지 않고 저절로 이루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동안에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어떤 상황에서도 꾸준히 이어지지만, 꿈을 꿀 때나 깊은 잠에 들었을 때는 화두를 잊어 버리는 상태입니다.

 

이제 수행자는 화두를 억지로 기억해 내며 의심을 짓지 않아도 깨어 있는 동안에만은 화두의심이 항상 머리 속에서 머물러 있읍니다.

이러한 저절로 화두의심이 익숙하게 되는 상태에서 무기나 산란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의심을 간절히 이어지게 하면 그 의심의 덩어리가 점점 크게 형성이 됩니다.

전에는 간혹 머리나 가슴 중간에 의심 덩어리가 부분적으로 뭉쳤다 풀어졌다 하는 것 같았으나, 이것이 점점 단단하게 커져서 몸 전체와 하나가 되고 자신과 의심 덩어리가 일체가 되는 상태가 옵니다.

이 의심덩어리를 의단(疑團)이라고 부르는데, 이 상태가 되면 우주 전체가 오직 의심 덩어리 하나로만 뒤덮히는 것과 같읍니다.

그러면 온몸에 맥이 쑥 빠지고 힘을 들일 수가 없어서 화두를 들래야 더 이상 의도적으로 들 수도 없읍니다. 왜냐하면 화두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옛 선사들은 이 상태를 화두를 잡을래야 손잡이가 없어서 들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화두를 드는 것을 맛도 없는 마치 쇠덩이로 만든 떡을 씹는 것 같이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직 의심만 있는 의단(疑團) 상태를 의단독로(疑團獨露) 또는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 부릅니다. 이 상태는 무엇을 하든지간에 분별적인 생각이 없이 그 대상과 일체가 되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의단이 독로한 타성일편일 때를 유식학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제7말라식이 화두의정과 하나가 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읍니다.

제7말라식은 주로 자아의식으로 작용하며, 아만(我慢), 아견(我見), 어리석음, 탐욕의 네가지 번뇌와 도거(掉擧), 혼침(昏沈), 불신(不信), 방일(放逸), 실념(失念),산란(散亂), 부정지(不正知) 등으로 작용하는데, 나라는 자아의식을 내세우는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제7 말라식이 화두의심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개인 자아의식과 거기에 딸린 위의 여러가지 미혹작용이 모두 의단(疑團) 속으로 녹아 없어진다고 말할 수가 있읍니다.

 

또한 이  타성일편 상태를 몽중일여(夢中一如) 상태로 비교해 볼 수도 있겠읍니다. 몽중일여 상태는 꿈 속에서도 의단(疑團)과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인데, 생시상태의 타성일편 상태가 그대로 꿈 속까지 연장되는 상태입니다.

그 전에는 깨어 있을 때에 움직이든 고요하게 있던 간에 항시 의심이 끊이질 않았지만, 꿈 속에서는 화두를 잊어버리고 딴 동네에 와서 화두와는 상관없는 엉뚱한 짓을 해왔읍니다만, 의단이 독로해진 뒤로는 꿈 속에서도 내내 화두가 자동으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몽중일여를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깨어있을 때의 모든 현상이 꿈과 같은 환상으로 보이는 상태이며, 이미 몸과 이세상이 의단 속에 녹아 버렸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식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확연하고 아는 상태라고 볼 수가 있겠읍니다. 

간화선 수행자가 이렇게 몽중일여 상태까지 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수행자가 깨어있는 낮동안 계속 화두를 끊임없이 들면 의단이 형성 안되드라도 꿈 속에서도 화두를 드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하루 이틀 또는 간간히 꿈 속에서 화두를 들었다고 해서 몽중일여는 아닙니다.

적어도 몽중일여가 될려면 의단이 확실히 형성되어 우주전체와 내가 오직 하나의 의심덩어리로 뭉쳐 있는 타성일편 상태에서 그대로 꿈 속에서도 말없이 화두가 뚜렸하게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대략 1-2주 이상 연속으로 꿈 속에서 화두가 끊임없이 머물러야 온전히 몽중일여라고 단정할 수가 있을 겁니다. 

 

또한 이 의단독로(疑團獨露)상태는 법망(法忘) 또는 법공(法空)상태로써 비교해 볼 수 있읍니다.

법망 또는 법공 상태라는 것은 이 세상 전체(대상)를 잊어 버렸다 또는 이 세상 전체가 공(空)이 되었다,라는 말인데, 의단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세상이 의단 속에 녹아 버렸으므로 세상을 잊었다(法忘) 또는 세상이 공(空)해졌다, 라고 표현할 수도 있읍니다.

 

아드바이트 베단타에서는 이 상태를 미세체(微細體,마음과 지성,자아)가 화두 의심에 완전히 점령당했다,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미세체란 육체에 깃든 여러가지 정신작용, 즉 생기, 감정, 사고, 마음, 자아,지성, 등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정신생기체입니다. 이 중에서 지성과 자아에 관련된 사항이 포함되었으므로 미세체가 의단과 일체가 되므로 선불교의 타성일편의 상태와 유사하다고 볼 수가 있읍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오온 (五蘊), 즉 색(色), 수(受),상(相),행(行),식(識) 중에서 색(色)은 물질적 육체이며, 색수상행식이 정신작용인데, 이 수상행이 화두와 일체가 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위와같이 간화선에서 소위 의단독로(疑團獨露), 타성일편의 상태를 다른 측면에서 여러가지 개념어에 상응하여 함께 살펴 보았읍니다.

 

다음은 수음(受陰)이 녹을 때 나타나는 마구니에 대하여 용성스님의 법문을 발췌해 올리겠읍니다.

 

[모든 아는 것을 두지 아니하고 일심으로 나아감에 색음은 녹아지고 또 다시 수음이 녹고자 할 때에 열 가지 마구니의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니 자세히 보고 공부해야 한다.

수음의 성질은 받아 들이는 것이라서 색음이 이미 모두 녹음에 따라 안과 밖이 비어 융통하나 수음이 녹지 못하면 가위눌린 사람과 같아서 훤히 들리고 보이나 마음에 객기(客氣)가 접촉된 것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한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색음이 녹아지면 이 몸으로 산하석벽을 걸림없이 드나들고 수음이 다 녹으면 비유하건대, 사람이 집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는 것과 같이 마음이 몸에서 출입하기를 마음대로 한다. 

첫째는 일심으로 마음을 닦는 것으로 수음이 녹을 때에 마음이 몸을 떠나 순식간에 무량한 세계를 두루 자유왕래하는데, 그때에 자기가 위 없는 도를 성취한 것으로 생각하고 저 중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내어 저 중생을 어떻게 할까 하여 눈물을 흘리며, 모기만 보아도 외아들 생각하듯 하여 눈물을 흘리나니 이것은 비마(悲魔)가 마음에 들어간 것이다. 

둘째는 그 마음이 한없이 날카롭고 용맹하여 모든 성현을 업수이 여기는 바 이것은 미친 마구니가 든 것이다. 

셋째는 크게 목마른 생각을 내나니 정력(定力)이 굳세고 지혜는 적으며 또 수음이 다 녹지 못했으므로 나아감에 새로이 더 증득한 것은 없고 색음은 이미 다 녹아 아득하게 의지할 것을 알지 못한 고로 크게 답답하여 목마른 생각을 내는 것입니다. 

넷째는 내가 위 없는 도를 철저히 증득함이라 하여 다시는 공부를 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이는 지족(知足)하다는 마구니가 들어와 붙은 것이다. 

다섯째는 근심하여 살고자 아니 하나니 곧 근심 마구니가 들어와 붙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즐거운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일어나는 것이니, 이것은 희마(喜魔)가 붙은 것이다. 

일곱째는 무한한 아만심(我慢心)을 걷잡지 못하여 고금천하에 한 사람도 눈앞에 없으므로 모든 사람에게 포고(布告)하여 말하되, 성상(聖像)이라 함은 우상에 불과한 것이다. 너희들은 이것을 보라. 이것은 금으로 만든 것이요, 저것은 구리로 만든 것이며, 또 이것은 흙으로 만든 것이며, 저것은 나무로 만든 것이다.

또 저 경(經)을 보라. 이것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것이다. 사람의 육신이 참된 것인데 이것을 공경치 아니하고 무단히 쓸데없는 흙과 나무를 숭배 공경하여 공양하는 것이 실로 허망하다고 하니, 이것을 누가 알지 못할 사람이 있겠는가?

경전과 성상은 만고에 표준 뿐이며, 자기만 아는 것이므로 이것은 큰 이단 마구니가 붙은 것이다. 

여덟째는 무단하게 한량없이 편하다는 마음을 내어 노래도 하고, 춤도 추나니 이것은 경청마(輕淸魔)가 붙은 것이다. 

아홉째는 비고 맑은 성품을 얻어 길이 없어진 것으로 주장하여 인과가 없다고 하나니, 이는 공마(空魔)가 붙은 것이다. 

열째는 그 공부가 깊히 들어가면 수음이 다 녹아질 지경에 이르러 그 마음이 홀연히 사랑함을 내므로, 사랑이 극도에 이르면 미친 마음이 발하여 탐욕심이 불 일듯 하나니, 이는 욕마(欲魔)가 붙은 것이므로 마음 공부하는 사람들은 부디 자세하게 이 글을 보고 마구니에게 속지 말지어다.]

 

다음엔 상음(想陰)이 녹아질 때에 열가지 경계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용성스님 법문을 들어보겠읍니다.

[일심으로 마음을 닦으면 수음(受陰)은 비록 녹았을지라도 또 다시 상음(想陰)이 있는지라, 다시 용맹정진하여 일심으로 정진하면 상음이 녹을 때에 열 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상음이라 하는 것은 부동(浮動)하는 망습이니, 낮이면 생각이 되고 밤이면 꿈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음이 녹아지면 꿈이 없어지고 자나깨나 한결 같아서 맑은 허공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 마가 제일 극심하나니 이 글을 자세히 볼지어다. 

첫째는 수음이 다 없어진 사람은 마음이 일정하고 밝으므로 그 사람이 더욱 일심으로만 닦아 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나, 무단히 그 마음이 뚜렷하게 맑은 것을 사랑하여 그 정밀한 생각을 날카롭게 하여 잘 공교함을 구하면, 그 구하는 마음을 틈타서 하늘 마구니가 그 사람의 심간에 붙어 만 가지 변화를 나툰다. 

혹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변재가 한량없어 설법을 잘 하게도 하며, 혹 상제(上帝)의 몸도 나투며, 부인의 몸도 나투고 여러가지 몸을 나투되 그 몸 한가운데에서 광명이 나는지라, 어리석은 사람들은 도인인 줄로 믿어 그 교화를 얻어 청정계행을

파하고 가만히 음욕을 몰래 내통한다. 

그 뿐만 아니라 또 마귀에게 붙어서 온갖 변화를 부리되 어떤 때에는 병고가 나며, 어떤 때에는 좋은 일이 있고 어떤 때에는 겁화가 일어나며, 어떤 때에는 난리가 난다고 하여 모든 백성의 재물을 무고히 없애게 하나니, 자기의 몸에 마구니가 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모든 신도로 하여금 사도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공부에는 아는 것과 구하는 것이 큰 병이다.

공부하는 법을 알아 가지고 일심으로 정성된 마음으로 하여 가면, 공부가 수순하여 자나깨나 말하고, 묵묵할 때, 활동하고, 고요하게 있을 때에도 간단없이 화두가 자연히 들어있을 것이니, 그러할수록 더욱더욱 오로지 한결같이 하여가면 나의 본래 면목을 깨달아 모든 마구니에게 속임을 입지 않을 것이다.  

상음(想陰) 가운데에 열 가지 마구니의 경계가 있으니 너무 지리하여 번거로와 그만 두리라. 그러나 추호라도 달리할 생각과 구하는 마음을 두지 말며, 설혹 이상한 경계를 볼지라도 마음이 동하지 아니하면 마구니가 자연히 물러 나가는 것이다 

구하는 틈을 보든지, 알려고 하는 틈을 보든지, 무슨 틈을 보든지 간에 그 마음이 움직임에 따라 하늘 마구니와 귀신마구니들이 백천가지의방편을 베풀어 도를 닦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속지 아니하면 마가 혹 부모와 친척과 권속과 친구 등의 사람에게 붙어 가지고 백방으로 유인도 한다.

마의 신변으로 지나간 일도 다 알게 하며, 돌아오는 일도 알게 되고, 잠시 동안에 여러 만리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앉은 자리에서 천상과 인간과 지옥과 아귀와 축생을 다 보기도 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마음 가운데서 참다운 도덕으로 나타난 것인가 하여 즐거운 마음을 내어 그 경계를 쫓다가 그 마구니의 권속이 되고 만다.

또 마구니의 말은 흔히 음욕도 상관없다고 하고, 술과 오신채도 상관없으며, 음주 식욕이 다 무방반야(無防般若)라고 하니 이런 소리를 함에 신도들은 참으로 가려낼 수 없다. 

근일에는 불법이 더욱 쇠퇴하여 마구니가 대단히 왕성하여 지니 신도들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승려 가운데 마구니가 많으며 선지식이라는 명성을 얻은 사람 가운데에 외도 마구니가 많다. 또는 도인이라야 서로 아는 것이니 근일 신도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무단히 된 승려나, 아니된 승려나 자기의 친소를 따라 도인이니 선지식이니 하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어지간히 도에 눈이 밝아 가지고는 도인을 알기 어렵거늘 어찌 나의 눈이 밝지 못하고서 남의 도를 알 수 있겠는가?

부디 신도들은 음주 식육이, 무방반야라는 승려들이, 비록 선지식일지라도 쫓아가 배우지 말지어다.]

                                                              

                                                                        -무한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