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5. 10:22ㆍ무한진인/無爲閑人 心身不二
<2012.3. 18. 개운사에서>
[경 26]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존자이시여, 만약 어떤 중생이 법이 생겨나는 것을 볼 때에는 저들로 하여금 어떠한 견해를 없애도록 해야 합니까?"
解脫菩薩 而白佛言 尊者 若有衆生 見法生時 令滅何見
[논 26]
이하는 세번째 문답이다. 바로 앞의 문답에서는 대상으로써의 법이 멸한다는 잘못된 견해의 병통을 밝혔고, 이제 이 문답에서는 주체로서의 멸하는 견해인 약(처방)에 대하여 나타내고 있다.
또 앞에서는 생과 멸이라는 두 극단의 견해를 깨드렸고, 여기서는 유와 무라는 양 변의 견해를 깨트리는 것이다.
지금 질문하는 의미는 '만약 관(觀) 수행을 닦는 자가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에 따라 법이 일어날 때에는 어떤 견해를 없애 주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어떤 견해를 없애도록 해야 하느냐'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을 물은 것이니, 우선 한변(生)을 들어서 멸(滅)함을 관찰하는 것까지 겸하여 나타내었다.
[경 27]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살아, 만약 어떤 중생이 법이 생겨나는 것을 볼 때에는 (전에는)없었다고 하는 견해를 없애도록 하고, 법이 없어지는 것을 볼 때에는 (전에는) 있었다고 하는 견해를 없애도록 하여라.
만약 이러한 견해를 없애면 법이 진실로 없음을 증득하며 결정성(決定性)에 들어가서 결코 생겨남이 없을 것이다."
佛言 菩薩 若有衆生 見法生時 令滅無見 見法滅時 令滅有見 若滅時見 得法眞無 入決定性 決定無生
[논 27]
'법이 생겨남을 볼 때'라는 것은 세속법이 인연으로 생기는 순간을 관찰할 때이니, 이 때에는 (이전에)없다(無)라는 견해를 취하던 것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있기 때문에, (이전에는) 없었다(無)는 견해를 멸(滅)하라'고 한 것이다.
'법이 멸함을 볼 때'라는 것은 세속법이 본래 멸하는 것임을 바로 관찰할 때이니,
이 때에는 (이전에) 있다(有)고 취했던 견해를 쉽게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있다는 견해를 멸하게 하라'고 한 것이다.
이 중에서 무슨 까닭으로 '멸하게 하라'고 한 것인가?
이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관찰하는 자로 하여금 (견해를)멸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뜻은 관행(觀行)을 닦는 사람이 법이 일어남을 관찰할 때에는 다만 (이전에)없었다고 하는 견해를 떠날 뿐 일어난다는 생각을 두지 않고, 적멸함을 관찰할 때에는 오직 (이전에)있었다고 하는 견해를 떠날 뿐, 멸한다는 생각을 취하지 않음을 바로 밝힌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일어난다는 생각을 둔다면 일어남은 본래는 적멸했던 것이었고, 만약 멸한다는 생각을 취한다면 멸함은 곧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래의 게송에서 "인연으로 일어난다는 뜻은 이 뜻이 (이전에)멸했었다는 것이지, (이전에는)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모든 생멸이 멸한다는 뜻은 이 뜻이 (이전에)일어났던 것이지 (이전에)멸했던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두변을 떠났지만 중간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무를 떠나서 유를 취하거나 유를 깨드려서 공를 취한다면, 이것은 허망한 공(空)이지 참된 무(眞無)는 아니다.
이제 비록 유를 떠났으나 공을 두지 아니하니, 이와 같아야 곧 모든 '법이 참으로 진짜 무(眞無)임을 증득한다'고 말하였다.
'결정성'의 뜻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 참된 공을 얻었을 때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관찰하여 일체 유무의 마음을 떠났기 때문에 '결코 일어남이 없다'고 말하였다.
[백은 덧붙임]
예를 들어 어떤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관찰할 때에 그 아기가 생기기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음"이었지만, 이제 새로 태어나서 한 사람이 "있다"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은 이전에 "없음"이라는 기존 개념의 바탕 위에서 나타난 새로운 생각입니다. 따라서 생(生)은 멸(滅)의 바탕 위에 나타난 견해이므로 생과 멸은 한쌍이며, 마찬가지로 있다(有)라는 생각은 없다(無)라는 뿌리생각으로 부터 나왔으므로, 뿌리인 없음(無)의 견해를 없앰으로써 줄기와 잎파리인 있다(有)라는 생각도 저절로 함께 없어진다고 설명하고 있읍니다.
사람이 태어났다는 생각이 있으므로 죽는다는 공포감이 있는 것이고, 새로 태어났다는 생각은 전에는 없었다는 뿌리개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절대본체는 '없다' 와 '있다'는 양변과는 전혀 관련이 없고 양변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나무로 비유해 보자면,이와 같이 지금 '내가 있다'생각은 밖으로 드러나 있는 줄기와 이파리의 개념으로서, '내가 없다'는 보이지 않는 뿌리개념으로부터 싹이 나와서 커진 생각이며, '내가 없다'는 뿌리 개념을 뽑아서 멸해 버리면 '내가 있다'는 줄기와 잎파리 개념도 함께 따라서 멸(滅)하므로, '있다- 없다' 양변에서 벗어나서 중도(中道)의 절대바탕이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죽는다'라는 생각은 그 이전에 "내가 태어났다"라는 개념으로부터 나온 생각이므로, "내가 태어났다" 또는 "내가 있다"는 생각만 없애주면 "내가 죽는다"는 공포감도 일어나지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내가 있다"라는 생각의 싹은 그 뿌리가 "내가 없다"라는 생각이며, 그 "내가 없다"는 생각조차 멸해져야 온전한 절대진아를 만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새로 생겨난다는 생각이 나타날 때는 바로 그 이전상태인 "없었다'는 생각을 없애주면, 새로운 대상이나 경계가 생긴다는 견해가 없어질 수가 있고, 또 무엇인가 멸한다, 또는 없어진다,는 생각이 일어 날 때에는 그 바탕에 잠재해 있는 "있다" 또는 "생겨난다"라는 바탕견해를 없애주면, "멸한다, 없어진다"라는 경계짓는 생각도 저절로 없어진다고 말하고 있읍니다.
밖으로 나타난 이원적인 경계 생각만을 억지로 없애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드러난 생각의 원인인 숨어있는 그 뿌리생각을 없애므로써 양변을 함께 없앤다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관(觀) 수행 기법의 한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 것 같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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