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9. 19:45ㆍ성인들 가르침/지두크리스나무리티
<서울숲에서, 11.19.>
생각과 생각하는 자, 관찰자와 피관찰자가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문제를 그냥 대충 훑어보고 나에게 피상적으로 이런 저런 설명을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결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의 문제이기도 하다.
너무나 파괴적이고 우리를 너무도 황폐하게 만드는 이 내면의 끊임없는 투쟁은 여러분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정치,경제,다양한 관료 체제 속에서 진행되는 피상적인 혁명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분의 내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여러분 자신의 문제다.
요컨데 여러분은 지금 나라는 사람이나 삶을 바라보는 내 방식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므로, 이것들은 여러분 자신이 직면해야 할 여러분의 문제다.
물론 이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더 깊고 분명하게 보도록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언어적인 차원에서만 분명하게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이런 이해는 창조적인 내면의 변화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언어와 모든 상징, 이것들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을 초월해야 한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사랑과 연민없이 경험과 기억을 다음 세대로 전달해 주는 '나'를 어떻게 해야 해체할 수 있는가 하는 중심적인 문제에 다가가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스스로를 생각과 생각하는 자로 분리하지 않을 때만 초월이 가능하다.
생각과 생각하는 자가 하나가 되어야만 침묵이 생기고,
이 침묵 속에서는 이미지를 만들지도 않고 더 나은 경험을 기다리지도 않는다.
경험과 경험하는 자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내면의 혁명은 오로지 이럴 때만 일어난다.
-지두 크리스나무리티-
<서울숲에서,11.19.>
'성인들 가르침 > 지두크리스나무리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각의 장 안에서 벗어나라. (0) | 2012.01.29 |
---|---|
"나"에게 연속성을 부여하지 마라. (0) | 2012.01.15 |
종교 속에 진리가 있는가? (0) | 2011.09.18 |
전체를 보라 (0) | 2011.08.25 |
생각하는 자와 생각의 이원성 (0) | 2011.07.13 |